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쇼코의 미소] [씬자오,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등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 두마디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주로 우울하고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들이다. 외국인이 자주 등장하고 그 외국인과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 소통하고(그래서 더 솔직해질 수도 있는) 배경도 독일, 일본, 프랑스 등이 나오는 작품이 많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관계 맺기의 어려움, 관계의 지속, 관계의 틀어짐 등이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보여진다.
아주 가까운 관계이지만 오히려 자신의 아픔이나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가족들, 같이 살지만 남처럼 사는 부부, 서로 잘 통한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등을 돌리게 되는 친구, 서로 사랑한다 생각했으나 이유도 모른체 헤어진 연인, 친밀한 사이지만 잘 몰라서 주게 되는 상처들이 차분하게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고 푹 빠져서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흔히 보는 우리의 모습 같아서, 여전히 헤매고 사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외면하고 싶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특히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와 [비밀]을 읽을 때는 눈물이 많이 났다.
할머니 옷 수선집의 일을 도와 주다 좋은 사람 만나 이제는 정말 잘 살아보겠다고, 지금처럼만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던 몸집이 아주 작았던 순애 언니의 인생은 기대대로 풀리지 않는다. 남편이 인혁당 사건으로 고문을 당해 폐인이 되고 그 과정에서 언니네 가족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 것이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에 의해 항상 남을 먼저 배려했던 순애언니는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만큼 무신경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사건이 일어난 초기에 순애 언니를 위해 열심을 내었던 화자의 엄마와 순애 언니는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피상적인 이야기만을 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만을 하다 오히려 사이가 멀어지고 함께 살았던 시간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소원한 관계로 변하고 말았다.
“자신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의 독백이 나의 현재의 모습같아 가슴에 와 닿았다.
비밀은 손녀의 죽음을 모르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애지중지 키운 손녀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 세월호 사건으로 죽었지만 암에 걸린 할머니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픈 엄마를 위해 딸 부부는 그 사실을 숨기고 손녀가 중국으로 갔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딸 부부 또한 사실은 딸을 잃고 겨우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딸 부부가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는 아주 애틋했다.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죽자 동서집에 딸을 맡기고 식당일을 하면서 딸을 키웠다. 어려운 환경에서 일찍 철든 딸을 보았던 할머니는 손녀를 오냐오냐, 철없는 손녀로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할머니 품에서 자란 손녀는 글을 모르던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쳤었고 정식 교사가 되면 할머니를 여행시켜주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하지만 손녀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손녀에게 배운 글로 할머니는 중국에 있다는 손녀에게 서툰 글씨로 편지를 쓴다.
“할민 사람 좋아하는 게 무서웠다. 지민아, 사람 좋아하믄 맘이 아프구 힘들잖여, 할미는 겁이 많아선가 언제부턴가 그런게 무섭드라. 그래두 늙음 안 그럴줄 알았어여. 근데 아니잖여. 눈도 늙구 귀도 늙구 손발이 나무 껍데기만치 딱딱해져두 맘은 안 그렇드라”.
다른 작품들도 나름의 슬픔과 감동을 담고 있지만 감상은 기억하고 싶은 문장으로 대신한다. ...
“어떤 연애는 우정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 쇼코의 미소 중에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 한지와 영지 중에서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 씬자오 씬자오 중에서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 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에민함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 먼곳에서 온 노래 중에서
“그가 하는 일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무능하고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었다. ..... 그가 세상에 소용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미카엘라 중에서
다음에 읽을 책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