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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처럼 지내야 하는 나라 中國 1(Zhongguo 중궈, China)
<長江(Changjiang 양쯔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① ; 샹하이(上海)
厚堂 고 광 창
40여 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황혼의 자유를 찾게 되어 이제는 홀가분한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고픔병’이 찾아왔다. 어디든 가고프고, 무언가 보고프고, 무엇이든 하고프다. 마음에는 나이테도 없고 주름이 없다보니 이런 욕심이 찾아드는 것 같다. 이런 ‘고픔병’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처방전은 여행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구촌 별에 놀러온 여행객’이라 하지 않는가?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다니며 새로운 풍물을 보고 새로운 감정을 느껴 보는 재미로 다니는 것이다. 中國은 친구들과 더불어 자유여행을 1개월씩 3번 다녀왔다. 3번 여행 중 2번은 長江(Changjiang, 일명 양쯔강)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였고 또 한 번은 黃河(Hwanghe)의 하류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였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엄청나게 커서(우리 남한 96배) 다 돌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중국 땅 전체를 縮約해서 내 손 안에 모두 집어넣고 중요한 곳만 둘러보기로 마음먹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마음 편하게 하려면 이웃이 좋아야 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이웃나라인 中國과 日本으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아왔다. 특히 中國과는 애증(愛憎)이 많이 엇갈린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중국은 우리 임시정부의 독립활동을 적극 지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옛 임시정부 청사 3군데(샹하이, 항저우, 충칭)의 옛모습을 복원하고 역사적 기념관으로 지정하여 보존해 주고 있는 고마운 나라다. 또 우리의 제1 交易國일 뿐만 아니라 금속, 전기, 전자제품 만들 때 꼭 들어가야 하는 稀土類金屬(희귀한 광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걸 우리나라에 보급해 주고 있는 나라다. 漢藥에 甘草가 필요하듯이 금속, 전기, 전자제품 만들 때는 稀土類金屬이 꼭 필요하다.
(※ 稀土類 - 희귀한 17가지의 원소(鑛物質)를 총칭하는 말인데 중국에서 나는 희토류가 種類도 다양하고 量도 많다.)
코로나 19 초기 때 중국과의 교역을 중단하지 않아서 코로나가 더 많이 번졌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중국과 교역을 중단하면 생활용품과 식자재 부족도 문제지만 희토류금속을 중국에서 가져오지 못하면 자동차는 물론 TV, 냉장고, 휴대폰 등 우리나라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그 만큼 중국과의 교역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코로나 19 확산시기에도 교역의 문을 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와 중국은 지리적으로는 이웃이지만 정치적 이념의 차이 때문에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경제 안보 차원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중국과 이웃사촌처럼 친하게 지내야 우리의 마음이 더 편할 수 있다.
이번 여행 중에 중국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해 중국이 좋은 이웃이라는 인식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이 우선 과제가 되었다. 중국의 일반적인 사항을 살펴본 후 중국여행에서 좋았던 점을 중심으로 여행 落穗를 몇 차례로 나누어 써 볼 계획인데 먼저 長江유역을 돌아 본 다음 黃河지역으로 가려고 한다.
중국에는 빼어난 자연 경관도 많지만 역사적 유적지도 적지 않아 관광에 앞서 중국 역사에 대한 공부도 좀 했다. 중국의 역사를 알고 보아야 중국의 眞面目을 알 수 있고 보는 재미도 더 많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地名은 가급적 중국에서 사용하는 呼稱法을 따랐고 이해를 돕기 위해 ( )속에 漢字를 병기했다. 단 한자를 병기할 때 지금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는 簡体字를 사용하지 못하고 繁体字를 사용한 점에 대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중국은 문자 표기는 漢字를 사용하지만 발음은 영어 알파벳을 사용한다.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알파벳 기호를 보고 발음하니까 모두 똑 같은데 우리는 발음기호는 보지 않은 채 漢字만 보고 우리 식으로 발음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 우한(武漢 Wuhan 무한x), 창쟝(長江 Changjiang, 장강x) 江 Jiang 지앙⇒쟝 장쟈제(張家界 Zhangjiajie) 장zhang, 家jia쟈, 界jie제 샹하이(上海 Shanghai)
<일반적인 사항>
o 국명 : 中華人民共和國, 中國 중궈, china
※ 한때 중국에 국민당과 공산당 2개의 중국이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 국민당 정부는 그냥 ‘中國’이라하고 공산당 정부는‘中共’이라고 구분해서 불렀던 때가 있었다.
수도 - 베이징(北京)
o 행정구역- 21개 省, 5개 자치구(내몽골, 녕하, 신장, 광서, 티베트), 4개 직할시(베이징, 텐진, 샹하이, 충칭(重慶), 특별 행정구(홍콩, 마카오)
※ 지린(吉林 길림)성 옌벤(延邊 연변)은 두만강 북쪽, 헤이롱(黑龍 흑룡)성과의 접경지역이고 러시아 불라디보스토크 인근에 ‘朝鮮族 자치주’가 있다. 省단위가 아닌 조그만 縣단위 자치주다.
o 면적 : 960만 ㎢ (한반도 43배, 남한 96배, 세계 3번째)
※소수민족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 신장위그루, 내몽고가 국토 42%
o 인구 : 14억 4,800만 명, 1980년 漢族은 ‘1가정 1자녀 낳기 정책’을 추진으로 인구 증가률 둔화 시켰으나 지금은 ‘1가정 2자녀 낳기 정책’으로 바뀌었음
o 지형 : 西高東低형 - 티베트 고원과 칭하이(靑海) 고원은 해발 평균 4,500m, 히말라야산맥 봉우리는 보통 6,000m이고, 그 중 40개 봉우리는 7,000m 이상
※ 티베트 고원과 칭하이 고원에서는 3000m 이하 산은 산 이름이 없다고 함.
o 강(江) : 창장(長江 장강), 황허(黃河 황하), 메콩강(란찬장)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름
o 정부/의회 : 인민공화제, 인민대표제(일원제)
※ 말단 조직부터 고위층까지 공산당 아래 획일적인 구조로 되어있음.
최고 권력기관은 공산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인데 25명의 위원과, 210명의 젊은 당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서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기관은 국무원인데 총리와 부총리, 국무위원 및 장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최고의결기구인 전국인민대표회의는 이론상 최고의결기구이지만 사실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승인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정치다.
o 관료조직 : 중국에서 ‘幹部’란 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은 권력을 독점하고 갖가지 특권을 누린다. 정부는 幹部(행정공무원, 경찰)를 통해 주민들을 다스린다.
o 민족 : 漢族(93%)외 55개 소수민족
※ 중국에서 公職者가 되려면 첫째, 漢族이어야 하고, 둘째, 共産黨 당원이어야 하는데 만약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공산당 幹部 자녀여야 한다.
o 언어 : 중국어(漢族의 언어, 漢文, 漢字) 발음은 알파벳으로 표기
※ 문맹률 -20% (민족 고유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은 모두 문맹자로 간주)
문맹률 줄이기 위해 簡体字(한자의 복잡한 획수 따위를 간단하게 표기한 글자)씀
o 종교 :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없지만 도교, 불교, 크리스트교는 묵인하고 있음.
o 화폐 : 런민 비(人民幣 인민 폐, 元 위안, 塊 콰이) 1元(¥)= 170원
o 역사 :
<왕조 시대> - 4,000여 년간, 황허문명 탄생, 통일과 분열을 반복하며 발전
商 -周 - 秦 - 漢 - 三國(위,촉,오) - 晉- 南北朝 - 隨(수) - 唐 -遙(요) - 宋 - 金(여진족) - 元(몽골족) -明 - 淸(만주족)
o 문화 : 서양의 문화를 말할 때, 그리스 문화를 빼고 말할 수 없듯이 동양의 문화를 말할 때 중국 문화를 빼고 말 할 수 없다. 중국 문화가 곧 동양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양의 문화 중심국가로 이웃 나라 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이웃나라들을 ‘중국 문화권’국가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우리나라를 셀 수 없이 많이 침략 해 우리에게 나쁜 이미지를 남겨 준 국가이지만, 문명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우리에게 전수해 준 고마운 국가이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문명한 나라’라는 뜻으로 ‘中華’란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中華人民共和國’
<서구 세력의 침략> - 중국은 100여 년간 유럽과 일본의 먹잇감 - 치욕적 역사
1차 아편전쟁(1840년) - 난징조약(홍콩을 영국에 이양) 샹하이와 우한에 5개 조차(租借)지 내줌
2차 아편전쟁 - 1858년 텐진조약 (텐진항 개항, 7개국 조계지 내줌), 1898년 칭다오(靑島 청도)시, 1895년 웨이하이(威海 위해)시에 조계(租界)지 내줌
※ 서구 유럽 여러 나라가 중국에 물건을 팔기 위해 항구를 개항하라고 요구하지만 중국이 들어 주지 않자 군함을 앞세워 쳐들어오게 되었고 중국이 반격에 나서기는 했으나 중국 군함은 목선(木船)인데 반해 유럽 여러 나라는 철선(鐵船) 군함에 대포까지 가지고 있으니 중국이 당해 낼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유럽 여러 나라들의 요구 조건인 항구 개항과 더불어 조계지까지 내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중국이 내 놓은 조계지는 1차 아편 전쟁 후 샹하이에 5개, 우한에 5개, 2차 아편 전쟁 후 텐진에 7개, 산둥반도에 2개 등이다.
※租界(借)地 - 해당국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외국인 주거지역
<중국의 현대화> - 청나라 멸망,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태평천국군 봉기, 우창(武昌)봉기, 1911년 순원(孫文)의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멸망 - 국•공내전(국민당, 공산당) - 1931년 일본의 침략 - 1937년 난징 대학살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 문화 대혁명 (네 가지 오래된 것 파괴 -오래된 관습, 오래된 습관, 오래된 문화, 오래된 사고)
o 경제 : 사회주의 경제, 1970년 덩샤오핑(등소평)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비약적 발전, ‘黑猫白猫’ 理論(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가릴 것 없다.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사회주의 경제, 시장 경재 가릴 것 없다. 잘 살기만 하면 된다)
富의 편중 - 소수민족 < 한족 < 공산당원 < 공산당 간부
※ 2010년 경제규모 세계2위, 무역규모 세계 1위,
<농업> - 국토의 15~20% 경작지 (나머지는 고원, 사막, 황무지)
농지의 사유화 인정으로 빈부격차 심해짐 (공산당원 많은 토지 소유)
<공업> - 경제특구 -1979년 외국 자본과 기술 도입을 목적으로 설치한
특별구역
광둥성의 선전, 주하이, 산터우, 푸젠성의 샤먼 등으로 이곳에 세계 유명 기업들 공장이 집결되어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었다. 중국은 경제특구에서 많은 외국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공계 대학생들을 많이 유학 보낸 결과 지금은 첨단 기술 산업이 우리 한국과 일본을 앞서가고 있다.
※ 중국이 淸 왕조 말기 서구 유럽의 침략을 받아 치욕적인 조약을 맺는 등 썰물일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력을 회복해서 G2가 되었으니 중국에 밀물시대가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 중국의 일자리 마련 정책
토목 공사장에서 人力으로 하기 힘든 부분만 重裝備를 동원하고 그 나머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력으로 해결토록하고, 고속도로를 구간을 나누어 빗자루로 쓸게하고, 여자들로 하여금 택시, 버스, 대형트럭, 중장비 차를 운전토록 하는 등 일자리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o 음식 : 중국은 먹거리 천국인데 지역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누면 북부 요리, 동부 요리, 서부 요리, 남부 요리 등인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북부요리에는 안후이(안휘)요리, 산동요리가 있고, 동부요리에는 장쑤(강소)요리, 푸젠(복건)요리, 저장(절강)요리가 있으며, 서부요리에는 쓰촨(사천)요리, 후난(호남)요리가 있고 남부요리는 광둥(광동)요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요리는 지리, 기후, 문화적 차이 등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o 地名 ; 지명과 현재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알 수 있다. 지명은 옛날 우리 선인들께서 주위 환경과 지형을 보고 지은 이름인데 기이하게도 최근 지명에 맞는 시설물이 생기는 등 지명이 현실과 잘 맞아 떨어진다. 光州(照度), 靈光(원자력 발전소), 三湖(호수 3개), 潭陽(호수), 高興(미사일 발사기지), 중국에서도 경사가 거듭되는 重慶, 경제적 경기가 되살아나는 蘇州 등등 이번 기회에 중국의 지명도 함께 살펴 볼 계획이다.
※ 중국 여행 시 주의해야 할 사항
(1) 위조품(僞造品)에 주의
① 僞幣 - 50元과 100元짜리 위폐가 많음
② 洋酒 - 값비싼 洋酒, 특히 마오타이주(茅台酒)는 위조품이 많다.
(2) 택시 바가지요금 - 중국 택시 기사들의 惡名이 높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중국 여행 중 내가 겪은 사례를 몇 가지 소개 해볼 생각이다.
<창쟝(長江 Changjiang, 긴 강, 楊子(양쯔)강>
창쟝(長江)은 시쟝(西藏 티베트)과 칭하이(靑海)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샹하이 연안 東中國海까지 6,300㎞를 가는 동안 중국 땅의 20%에 해당하는 200만 ㎢ 유역을 흐르면서 4억에 달하는 인구의 식량을 보급해 주고 있는 강이다.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므로 창쟝(長江 장강)이라 하고 중국 남부 지방의 곡창지대를 거쳐 가는 동안 수많은 농지에 물을 공급해 주는 젖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쟝(母江, 어머니 강)이라고도 부른다. 서양인들은 이 강을 양쯔강(揚子江)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중국 사람들은 창쟝(長江 긴강)이라고 부르니 우리도 그렇게 불러 주어야 한다.
※ (우리나라 모 대통령 시절에 중국 신임대사가 신임장을 제출하러 왔을 때 우리 대통령이 중국 대사에게 중국이 아직도 우리나라를 ‘조선’이라하고 서울을 ‘한성’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이름은 대한민국(한국)이고 수도는 서울이니 앞으로는 이렇게 호칭해 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귀국의 이름을 淸나라, 수도 이름은 옌징(연경, 옛날 북경이름)으로 부르겠다고 했다는데 그 후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 (중국이 우리를 조선이라고 호칭한 것은 중국에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있는데 한국은 조선족의 나라임으로 ‘한국은 독립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1개 省이다‘ 는 뜻이 담겨있다. 시진핑이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한때 중국영토였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다.)
長江은 주기적인 홍수로 인해 많은 농경지가 침수되고 사람의 목숨을 잃는 물난리를 겪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이 강을 이용하여 농업용수 공급은 물론 생활용품을 운반하는 등 운송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하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창쟝(長江)의 하류인 샹하이에서 출발하여 창쟝의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적지와 관광지등을 살펴 볼 계획이다. 우리 팀은 여길 두 차례 와서 60여 일 동안 돌아다녔지만 1차, 2차 구분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기술해 볼 생각이다.
1. 샹하이(上海 Shanghai)
샹하이는 창쟝(長江)의 하류지역에 있는 중국 제1의 무역항이다. ‘上’자는 차례나 등급을 나타낼 때 맨 위를 지칭하는데 지명을 ‘上海’라고 했으니 육지보다도 바다가 더 중요한 곳이라는 뜻인가 보다. 바다를 이처럼 중히 여긴 연유로 여기가 중국 제1무역항이 된 것 같다.
인구 1,320만 명으로 중국에서는 충칭(重慶) 다음으로 큰 도시로서 중국경제를 이끄는 경제도시, 세계최대의 금융도시, 서구 문명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문화도시라 일컬어지고 있으며 한때 유럽 강대국 조계지(租界地)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중국속의 작은 유럽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대회가 열린 곳인가 하면 1927년 장제스(장개석)가 공산당에 쿠데타를 일으킨 곳도 이곳이며 4인방이 벌인 문화대혁명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 이곳일 정도로 정치적 파란을 많이 겪은 도시다.
떠나기 며칠 전 친구가 인터넷으로 숙소 예약을 미리 해 두었다고 해서 푸둥(浦東 포동) 국제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는데 가서 보니 호텔이 아니고 아파트에 있는 일반 가정집이고 주인장이 우리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알고 보니 주인장은 탈북민인데 만주 부근에 있으면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멀리 샹하이로 와서 7년 째 인터넷을 통해 민박(民泊)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침 한 끼는 한식으로 해 주고 비행기표, 기차표 등을 예매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이곳에 숙소를 정했다고 한다, 우선 황산을 가려면 이곳에서 2~3일 전 황산역 기차표를 사야 하는데 주인장에게 부탁했더니 이미 표를 예매해 놓았다고 한다. 숙박비와 기차표 값을 아직 주지도 안했는데 ---
아파트는 복층구조로 아래층은 주인의 숙소 겸 식당이고 윗층은 손님들 숙소인데 조그만 방이 4개 있었다. 아래층에서 윗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실내계단이 있는 복층 구조 아파트를 샹하이에서 처음 보았다.
이튿날 샹하이 시내 구경에 앞서 친절한 주인장이 우리들에게 시내 지하철 노선도와 시내버스 노선도를 주면서 갈 곳을 미리 이야기 해 주면 가는 교통편을 안내해 주겠다고 친절을 베푼다.
제일 먼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구경하러 갔다. 나는 그 동안 이곳 샹하이에 임시 정부를 설치한 것은 쑨원(孫文)이 이끄는 중화민국 임시정부와 장제스(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의 도움이 컸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프랑스 정부의 도움도 이에 못지않게 컸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일본이 샹하이를 점령하였지만 프랑스 조계지는 일본 경찰의 영향력을 벗어 날 수 있는 곳인데다가 우리 애국지사들에게 우호적인 프랑스 인사들의 도움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이 프랑스 조계에 살면서 독립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물론 프랑스 정부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간직해야 할 것 같다. 청사는 황푸구 마당로 구 시가지에 있는 옛 3층 건물이었다.
임시 정부 청사입구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임시정부 청사를 관람하러온 한국 관광객이 많아 한 참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던 중 40여 년 전 나주에서 함께 근무했던 친구를 만났다. 같은 교회 교인들하고 함께 왔다고 한다. 이곳이 한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인 것 같았다. 골목길 양옆에 고층 아파트가 머리를 가까이 맞대고 있는데 각 가정 창문마다 빨래가 내 걸린 걸 볼 수 있었다. 임시정부 청사 입구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舊址(옛터)’란 간판이 붙어 있고 안으로 들어서니 김 구 주석 동상, 우리 태극기, 김 구 주석 집무실 등 당시의 사무집기와 물건 등을 재현해 놓았고 벽면에는 임정요인 사진과 노태우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박근혜 대통령까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모두 다녀간 사진 등이 게시되어 있었다. 3층 건물인데 내부가 비좁고 초라해 이런 곳에서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밖으로 나와 안내판을 보니 1926년부터 이곳이 우리나라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는데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본 형사의 습격에 쫒겨 1932년 항저우(항주)로 옮겨간 후 이 건물이 방치되어 있다가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후 1993년 중국정부가 임시정부 청사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여 주었고 2001년에 다시 한 번 수리를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쓰여 있었다. 이런 애국지사들 때문에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애국지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또 우리 임시 정부 청사를 보존 유물로 잘 보호해 준 중국 정부와 샹하이 지방정부의 배려에 대해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생각했다.
임시 정부 청사를 보고나니 윤봉길 의사 생각이 떠올라 홍커우(虹口)공원으로 갔다. 공원 입구에는 ‘루쉰 공원’이라고 씌여 있었다. 이곳 중국 문학가인 루쉰을 기념하기 위해서 루쉰의 무덤을 이곳으로 옮기고 공원으로 조성해서 1950년 공원 이름을 ‘루쉰공원’으로 고쳤다고 한다. 최근에 이 공원 정문에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조재현 배우가 자비를 들여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이라 쓴 한글 간판을 내 걸었다.
1932년 4월 29일 일본은 이곳 샹하이 ‘홍커우(虹口) 공원에서 일본 천황 생일 축하 및 샹하이 점령 전승 自祝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윤봉길 의사가 김 구 주석으로부터 받은 도시락 폭탄을 행사장 단상에 던져 일본 샹하이 파견군 사령관과 일본 거류민 단장 등 2명을 사망케 하고 한국과 중국 침략에 앞장 선 일본 군 고위 장성 과 일본 정부 인사 등 20여 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큰 사건을 일으켰다. 윤봉길 의사(당시 25세)는 임시정부 김 구 주석이 조직한 청년 독립 단체인 ’韓人愛國團‘의 단원으로서 김 구 주석으로부터 오늘 이 행사에 참여하는 일본 군인들은 우리민족의 원수이니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폭탄을 받은 다음 記者로 변장하고 식장에 잠입해 김 구 주석의 지시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일본군이 그 해 1월 샹하이를 무력으로 쳐들어 올 때 중국군이 막지를 못해 할 수 없이 샹하이시를 일본군에 넘겨주고 말았는데 우리 윤봉길 의사가 그 주범인 샹하이 파견군 사령관을 사망케 해서 중국의 원수를 대신 갚아 주었으니 중국입장에서는 무척 통쾌하고 고마웠을 것이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장개석) 총통은 ‘우리 중국군 백만 명도 못한 일을 한국 청년 한 명이 해냈다’고 감탄하면서 그때부터 우리 임시 정부에 대한 중국 측의 시각이 달라졌다. 이때 김 구 주석이 중국 국민당 장제스 총통에게 회담을 제의하고 우리 임시정부를 계속 지원해 줄 것과 한국 독립군 장교 훈련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중국 정부는 우리나라 마지막 임시정부인 충칭(重慶 중경)임시정부까지 계속 지원해 주었고 한국 독립군 장교 훈련을 위해 낙양군관학교에 韓靑班(한국청년반)을 별도로 두기도 했는데 여기서 배출한 장교들이 1940년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을 창설하여 독립운동의 최전방에 서게 되었다. 또한 이 의거는 우리 자체적으로도 항일 독립 운동을 더욱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되는 등 윤봉길 의사 의거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공원 안쪽으로 쭉 들어가니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에 의거 내용을 기록한 돌비석이 있었고 그 안쪽에 의사 기념관인 梅軒(윤봉길 의사 호)관이 있었다. 1층에는 윤봉길 의사 흉상이 있는데 흉상 앞에는 방문객들의 갖다 놓은 꽃다발이 있었고 흉상 옆에는 ‘丈夫出家不生還’(장부가 집을 나서 뜻을 이루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문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말은 윤봉길 의사가 집을 떠나올 때 집으로 보낸 편지 속에 있었던 문구인데 윤봉길 의사의 강한 의지를 엿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은 다큐맨터리 상영관이었다. 기념관 밖 좌측에 안내 설명문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당시 사용했던 폭탄 모형(도시락과 물통 모양)과 김 구 주석님과 당일 아침에 바꿔찼다는 회중시계, 도장 등의 사진이 있었고 윤봉길 의사가 폭탄 던지는 순간 상황도를 실감나게 그려 놓았다. 이곳에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조성해준 중국 측에 감사한 마음을, 그리고 한글 간판을 달아준 서경덕 교수와 조재현 배우, 또 꽃다발을 갖다 놓은 우리 관광객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샹하이는 나날이 그 모습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 조계지에는 아직도 유럽풍이 많이 남아있는데 지금도 계속 유럽풍으로 새로이 바뀌고 있다. 중국 속담에 舊的不去 新的不來(오래된 것이 가지 않으면 새 것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새것을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샹하이에 20층 이상 건물 신축 허가를 신청하면 ‘기존의 건물들과 모양은 물론 디자인이 모두 달라야 신축 허가가 난다’고 한다.
長江의 하류 마지막 부분에서 갈라진 지류가 황푸(黃浦 황포)강이라는 이름으로 샹하이 시내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샹하이시를 東西로 양분하고 있기 때문에 황푸강 서쪽을 푸시(浦西 포서)라고 하고 그 동쪽을 푸둥(浦東 포동)이라하는데 푸시는 구 시가지이고 푸둥은 지금 한창 개발 중인 신시가지를 말한다.
또 구 시가지인 푸시(浦西)지역은 중심부를 동서로 가르는 옌안루(延安路 연안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4개국 조계지가 있고 남쪽에는 프랑스 조계지가 있는데 영국 조계지는 난징둥루(南京東路)와 와이탄(外灘) 등 번화가가 포함된 지역이고, 프랑스 조계지에는 옛날 중국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샹하이는 한때 도시 전체가 여러 나라 조계지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겪은 도시인데 그것이 지금은 전화위복이 되어 서양문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는 중국의 反日 감정은 우리 보다 훨씬 강한 편인데 이곳 샹하이에서는 반 유럽 감정이나 반일 감정은 느껴볼 수 없었다. 이걸 보면 샹하이는 낡음과 새 것,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란 느낌이 들었다.
샹하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가장 번화가인 난징둥루(南京東路)와 와이탄(外灘 )이다. 황푸(黃浦)강에서 런민(人民) 공원까지의 거리인 난징둥루(南京東路)는 영국 조계지가 있었던 곳으로 완전히 유럽풍의 시가지로 변하여 여기가 유럽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화려한 곳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번화가의 한복판인 난징둥루 간판에 삼성로고가 새겨진 우리나라 ‘신세계백화점’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손님들이 많지는 않았다. 우리는 백화점을 구경한 후 지하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鍋)’로 식사를 하고 나왔다.
와이탄(外灘)은 중산둥이루(中山東一路)에서 황푸강을 따라 1.5㎞ 이어지는 강변도로 보행자 거리인데 출렁거리는 인파를 보니 크리스마스 저녁 광주 충장로 거리를 연상케 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유럽 고전미가 물씬 풍기면서도 건축 양식이 서로 다른 건물과 당시 금융가를 주름 잡고 100여 년간 호황을 누렸던 30개국 외국계 은행이 있는데 밤이면 간판은 물론 건물 몸체에서 발산하는 여러 가지 화려한 불빛의 야경이 황푸강을 아름답게 繡놓고 있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건물들이 화려한 조명을 밝힌 저녁 시간이다. 중국 최고의 야경이고 중국의 자존심이라고 한단다. 황푸강 건너편의 푸동(浦東) 신시가지의 강변에 있는 둥방밍주(東方明珠)탑과 샹하이 타워, 진다오다사(金茂大厦), 세계금융빌딩 등의 야경도 아름답고 야간에 운항하는 황푸강 유람선이 함께 어울려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우리 숙소는 프랑스 조계지에 있는 런민루(人民路)에 있어서 런민(人民)공원도 가깝고, 번화가인 난징둥루나 와이탄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보니까 번화가인 난징둥루에는 가로등이 모두 홍등(紅燈)이어서 여기가 중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샹하이는 역시 밤이 더 아름다운 도시, 밤의 도시라 해야 할 것 같다.
예원(豫園 위위안)은 명나라 때 18년간에 걸쳐 지은 규모가 2만㎡에 이르는 중국 대표 정원으로 그 안에 아홉 번 꺾어지는 다리 九曲橋(중국에서 숫자 8이나 9는 吉한 숫자이고 귀신은 직선으로는 다녀도 곡선으로는 못 다닌다고 생각해서 귀신이 못 들어오게끔 꺾어지는 다리를 만들었다고 함), 하나의 볍씨에서 3개의 이삭이 편다는 三穗當, 가면 갈수록 경치가 아름다워 진다는 漸入佳境, 용의 머리가 그려진 벽 龍壁, 하나의 돌에 72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옥령롱 등 볼거리가 많았다.
포둥(浦東)은 신 개발지로 황푸강 건너 루자쭈이는 높은 빌딩이 많은 마천루(摩天樓) 지역이다. 浦西에서 浦東으로 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데 우리는 와이탄 헤저터널을 통해서 푸둥지역으로 갔다. 터널입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미니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기차표는 50元(우리 돈으로 8,500원)이었고 4~5분 정도 탔다.
터널에서 밖으로 나오니 ‘둥방밍주타’(東方明珠塔)가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이 탑은 높이 467m의 TV안테나 첨탑인데 탑의 외모가 진주처럼 아름다워 샹하이의 상징 건물로 샹하이 여행 다녀왔다는 기념으로 이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1층에는 샹하이 ‘해양 수족관’이 있는데 아시아 최대 규모로 4대양에 서식하는 450여 종의 물고기를 양식하고 있었고, 지하 1층에는 ‘샹하이 역사박물관’이 있었는데 실물을 밀랍으로 만들어 놓아 생동감이 있었다.
샹하이 ‘세계금융타워’는 샹하이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높이가 632m에 지하 5층, 지상 128층 규모이며 엘리베이터 속도가 분당 1,230m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층 전망대에 가서 샹하이 시내를 내려다보았는데 벽은 통유리창이고 전망대 바닥이 강화유리로 되어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 보여 무섭고 다리가 후들리기도 했다. 전망대 입장권을 살 때 식당 식권을 한 장씩 받았는데 아래층 식당에 가보니 한국어 메뉴판이 있어 주문하기도 쉬워 돌솥비빔밥으로 점심을 간단히 하고 나왔다. 이 빌딩은 일본 회사에서 설계와 시공을 맡았는데 빌딩 최상층부에 日章旗 문양을 넣은 것을 시민들이 문제 삼자, 할 수 없이 다른 문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 샹하이 타워(101층 492m), 금무대하(金茂大厦 88층 422m)등이 있었다. 여기는 마천루 지역이라 빌딩들이 서로 키 자랑을 하는 곳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국의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의 롯테 타워 높이가 555m이니 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샹하이 교통편은 비행장은 浦西(푸시)의 엣 시가지에는 홍차오(虹橋)공항이 있는데 와이탄에서 18㎞로 30~40분 정도 걸리고, 浦東(푸둥)의 신공항은 와이탄에서 30㎞로 1시간정도 걸린다. 지하철은 16개 노선이 있고 요금은 대부분 3元인데 거리에 따라 4~5元 정도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샹하이 한국인 학교가 있는데 초중고 학생이 100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고 재정지원도 받고 있기 때문에 이곳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서울 시내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학교 부근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韓人村을 조성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직접 가보지 못해 좀 아쉽다. 친구들끼리 협의 후 일정을 원만하게 마무리해서 회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다음 글 순서>
② 항저우(抗州). 쑤저우(蘇州), 황산(黃山), 장쟈제(張家界)
③ 우한(武漢), 이창(宜昌), 長江 크루즈, 충칭(重慶)
④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⑤ 쓰촨(四川)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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