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祭祀)의 의의(意義)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
제사(祭祀)는 부모에게 못 다한 봉양(奉養)을 행하고 못 다한 효도(孝道)를 계속하는 것이다. 제사라는 것은 대를 이은 자식이 그 부모에게 스스로 정성을 다 하는 것이니, 공자께서는 선조를 제사 지낼 적에 선조가 계신 듯이 하셨고 신을 제사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제사라는 것은 사물이 밖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서 생rusk는 것이므로 그것을 조심스럽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하여 예(禮)로서 받드는 것이니 조상의 신령에 대한 외경심 과 조상을 추모하고, 자손의 번영 친족 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행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예로서 받드는 것으로써 오직 어진사람이라야 제사의 의미를 다할(앎) 수 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제사의 근본(根本)이고, 제수(祭羞제사음식)을 다한다는 것은 제사의 말단(末端)이니 근본이 있은 뒤에 말단을 따른다. 그러므로 제사는 밖(외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예(禮)로서 받든다는 것은 마음속에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으로 예로서 밖으로 받들 뿐이다.”
죽은 조상은 살아 있는 자손들에 대하여 덕(德)(得)과 해(害)를 줄 수도 있다고 믿으며, 살아 있는 자손들은 조상의 덕(德)을 기리고, 은혜(恩惠)와 가르침을 잊지 않는 것, 즉 자손으로서의 조상에 대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정신(精神)을 모두들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아득한 고대로부터 하늘을 공경하여 제천의식(祭天儀式)을 거행해 왔으며, 농경(農耕)에 종사한 뒤로는 우순풍조(雨順風調)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의식이 성행하게 되었다.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등이 모두 제천의식인 동시에 농사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형태가 완비된 뒤로는 사직과 종묘, 그리고 원구 방택(方澤) 등 국가 경영과 관련된 제례가 갖추어 졌고, 가정의 제례도 규격화 되어, 사가에서는 가묘나 감실이 있어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정성껏 제사를 받들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무조건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상숭배와 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
현대에 와서도 유가(儒家)에서는 물론 대부분의 가정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어떤 형태로든 지내고 있으며, 각종 신이나 자연물에 대해 다양한 모습의 제사가 이행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제사이든 그 정신과 원리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상이나 규모가 다를 뿐 대체적인 형식은 비슷하다.
제사의 의미는 부모 조상에 대한 효도의 계속이라는데 있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친한 사이이며, 나를 낳아서 큰 사랑으로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기르고 가르친 은혜(恩惠)는 어느 누구보다도 깊다. 성인인 공자나 석가 예수가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지만, 나에게 부모는 그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훌륭하고 위대한 존재임을 우리는 깊이 깊이 알아야 한다.
그 고마운 사랑과 은혜(恩惠)를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는 마음과 정성(精誠)을 나타내는 것이 제사(祭祀)이다. 그렇게나마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죽었다고 바로 잊어버리면 사람이 아니고 짐승과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효(孝)는 모든 행동의 근원(根源)이라 했으니, 부모에게 효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무슨 행동이라도 옳게 하지 못한다고 보아야한다. 사랑도 모르고 은혜도 잊어버리고 남에게 사양과 겸손도 할 줄 모르며 신의와 성실성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편함과 이익만을 생각하여 예절과 법도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사의 자리에서 부모 조상들의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을 듣고 배움과 동시에 자손들에게 내린 교훈을 되새기며, 우리들도 부모 조상들의 아름다운 뜻을 받들어 올바르고 착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자기 자손들에게 보여서 가르치고 본받게 하는 것이 제사이다. 자손들에게 효도를 실행하여 보임으로써 사랑과 공경(恭敬)하는 마음과 태도를 배우고 익히게 함으로써 올바를 인성(人性)을 기르게 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 남녀(男女)를 막론하고 정성들여 음식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서 제사상에 정결하고 가지런하게 차려놓을 줄을 알게 해야 함은 물론이고, 사치(奢侈)와 낭비(浪費)를 경계하며 검소(儉素)와 절약정신도 아울러 굳게 가지게 해야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 조상의 은혜와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도리를 이행하지 않는 것임과 동시에 자손들에 대한 인간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부모 조상을 공경(恭敬)하는 마음이 없이 아무렇게나 제사를 지낸다면 지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 공연한 수고와 물자의 낭비만이 있을 뿐이다. 『예기 단궁편』에서 볼 수 있다.
근래에 명절증후군(名節症候群) 제사증후군(祭祀症候群)이니 하는 말들이 인터넷이나 언론계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주부(主婦)들이 느끼면서 겪고 있는 현실은 서양의 개인주의 사상의 편협 된 사유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증후(症候)를 느끼며 겪고 있는 젊은 주부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고 원인을 깊이 분석하여 치유(治癒)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놓여 있음을 직시(直視) 하고, 효도겨레인 우리나라에서 인성(人性)과 효도(孝道) 교육을 앞장서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도자가 인기몰이를 앞세워 조상 제사에 정성(精誠)은 강조하지 않고 그 예(禮)를 간소화 하는 것만 앞세워 말하면-------, “굳이 곡삭지희양(告朔之餼羊)”《초하루를 아뢰는 의식에 올리는 희생양을 없애려 하였는데 공자께서 너는 그 양(羊)이 아까우냐? 나는 그 예(禮)가 아깝구나. 〈공자〉》과 “생물속생설(生物續生設)”《생물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물로부터 발생한다. 〈루리파스퇴르〉 1822-1895》을 말 하지 않아도 문화(文化)의 생명은 한번 사라지면 되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제례 간소화) 이 시대에 회자(膾炙)되는 까닭은 오랜 세월동안 인성 예절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주부들은 대부분 제사를 왜 지내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까 제사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그것으로 인해 피로감과 불평만 쌓여 왔으며, 어른인 늙은 세대는 현실의 상황과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여 구태의연한 자세를 굳게 지키려고 하니 극한의 충돌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늙은이와 젊은 사람 어린이들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인성 예절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될 수 있는 한 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을 택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연구 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사의 자리에서 부모 조상들의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을 듣고 배움과 동시에 자손들에게 내린 교훈을 되새기며, 우리들도 부모 조상들의 아름다운 뜻을 받들어 올바르고 착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자기 자손들에게 보여서 가르치고 본받게 하는 것이 제사(祭祀)이다. 자손들에게 효도를 실행하여 보임으로써 사랑과 공경(恭敬)하는 마음과 태도를 배우고 익히게 함으로써 올바를 인성(人性)을 기르게 해야 할 것이다.
아! 제례는 이어져 가야 합니다. 야만(野蠻)과 문명(文明)은 태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여하고 있는 문화에서 오는 것일 진대, 우리 전통 문화는 이어져 가야 합니다. 관혼상제(冠婚喪祭)중에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는 이미 없어져 버렸습니다. 제례(祭禮)마저 사라진다면 우리 후손들은 암흑 속에 살아가는 장님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니, 우리 선조들이 살던 밝고 아름다운 문화 세상을 되살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임인년(壬寅年2022) 중추절(仲秋節)
- 성균관(成均館) 전인(典仁), 전례위원(典禮委員)
2022년 성균관추계 석전대제 대축관(大祝官)
부산퇴계학연구원이사(釜山退溪學硏究院理事) 이재철 謹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