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하순(10수)
하루시조111
04 21
꽃아 고운 체 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꽃아 고운 체 하고 오는 나비 피ㅎ지 말라
엄동설한(嚴冬雪寒)이면 빈 가지(柯枝) 뿐이로다
우리도 탐화봉접(貪花蜂蝶)이니 놀고 간들 어떠리
엄동설한(嚴冬雪寒) - 눈 내리는 깊은 겨울의 심한 추위.
탐화봉접(貪花蜂蝶) - 꽃을 찾아다니는 벌과 나비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그리워하여 찾아가는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이 완연해지고, 바야흐로 꽃구경 나들이 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꽃 자 들어간 시조를 찾았거늘, 내용은 많이 빗나가는군요. 탐화(探花)가 아닌 탐화(貪花)입니다. 꽃이 여인이라면 남정네의 구애를 거절하지 말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겨울이면 빈 가지로 보잘 데 없을 것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설레발을 앞세워 드러내 놓고 ‘꽃을 탐하는 벌나비’라니요, 요즘 세상의 양성 평등 개념과는 아주 차이가 있는 생각입니다.
‘놀고 간들’에서 ‘놀다’가 주는 의미가 사뭇 불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나리, 논다니, 놈팽이 등등.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말씨나 몸짓은 의젓하고 친절해야겠거늘.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2
04 22
말이 놀라거늘
무명씨(無名氏) 지음
말이 놀라거늘 혁(革) 잡고 굽어보니
금수청산(錦繡靑山)이 물 아래 잠겼세라
저 말아 놀라지 마라 그를 보려 하노라
작중화자는 지금 말 위에 있습니다. 둑 위로 가고 있었을까요. 굽어보니 아름다운 풍경이 물속에 잠겨 있다는군요. 얼마나 볼 만하면 말이 놀랐다고 할까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놀람’이 도입 첫 구에 있습니다. 말이 놀라자 본능적으로 고삐를 당겨잡는 모습이 간단하게 ‘혁’을 잡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죽 혁.
종장의 첫 구는 ‘이’가 아니라 ‘저’라고 하여 거리감을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대는 놀랐겠으나, 나는 이 풍경을 보려고 여기 왔단다’라고 속내를 고백합니다. 타고 있는 말에게 알아듣는 벗으로 만드는 장치일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반전(反轉)의 기교가 돋보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3
04 23
말 타고 꽃밭에 드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말 타고 꽃밭에 드니 말굽에서 향(香)내 난다
주천당(酒泉堂) 돌아드니 아니 먹은 술내 난다
어떻다 눈정(情)에 걸은 님은 헛말 먼저 나느니
주천당(酒泉堂) - 문경 새재 조령(鳥嶺) 고갯길에 있었다는 전설의 장소로, 술이 나오는 샘이 있었는데, 한 사람 앞에 한 사발만 허용되던 법칙을 막무가내로 깬 취객 때문에 사라졌다고 함.
참 재미있는 시조입니다. 초장에서는 향내, 중장에서는 술내, 종장에서는 분(粉)내가 납니다. 각 장의 끄트머리가 ‘난다’로 되어 있고요. 결론은 여인네 즉 님에게 반했다는 것인데, 웬걸 헛말이 먼저 나오더라는군요.
종장의 첫구 ‘어떻다’는 ‘어찌 하다보니’로 풀어지고, 눈정이라는 게 첫눈에 반함이라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뜻 정(情)자는 그 앞에 어떤 글자가 와도 다 말이 만들어지는 표현의 지유자재함에 새삼 사랑스러운 글자입니다. ‘걸다’는 자신이 낚싯바늘로 걸 듯이 눈여겨 보았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헛말은 단순한 헛소리라기보다는 마음에 없는 소리 정도가 되겠고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4
04 24
목 붉은 산상치와
무명씨(無名氏) 지음
목 붉은 산상치(山上雉)와 홰에 앉은 송골(松骨)이와
집 앞 논 무살이에 고기 엿는 백로(白鷺)로다
초당(草堂)에 너희곳 아니면 날 보내기 어려워라
산상치(山上雉) - 산꼭대기의 꿩.
송골(松骨) - 송골(松鶻)매의 오기(誤記).
무살이 – 논에 물을 빼고 써레질을 한 논.
전원생활(田園生活)의 풍경을 읊었습니다. 초장과 중장은 눈에 보이는 풍경일진대, 송골매로 목 붉은 꿩을 잡는 재미와 백로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열거해 놓았습니다. 종장에서는 이들을 들먹이며 ‘곧’ 이것들로 하여 매일 매일을 보내며 산다고 읊었습니다.
우리 한반도에 꿩들이 지천이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떡국의 고명으로 어지간한 집집마다 꿩고기를 올렸다네요. 바닷물도 쓰면 준다고, 하도 잡아먹으니 개체수가 줄고, 나중에는 꿩 대신 닭이라며 속담도 생겨났다네요. 옛시조를 통해 그런 가늠도 해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5
04 25
미운 님 괴려느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미운 님 괴려느니 괴는 님을 치괴리라
새 님 번오 마오 옛님을 좇으리라
눈 속의 솔가지 꺾어 이 내 뜻을 아뢰리라
괴다 - (예스러운 표현으로)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다.
치 - ‘위로 향하게’ 또는 ‘위로 올려’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번오 마오 – 변오 마오. 변치 말고.
변치 않는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미운 님’이나 ‘새 님’에 정성을 쏟느니보다 ‘괴는 님’ ‘옛님’에 전보다 더욱 애정을 쏟겠노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종장에서 ‘눈’은 어려운 상황을, ‘솔’은 변하지 않음을 비유하고 있어 그런대로 자신의 다짐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평생 함께 울고 웃고, 자식들 낳고 기르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그런 옆지기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 초로기에 똑같은 다짐을 해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6
04 26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무명씨(無名氏) 지음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山)진이 수(水)진이 해동청(海東靑)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고봉장성령(高峰長城嶺) 고개
그 넘어 님이 왔다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어 넘어 가리라
산(山)진이 – 산지니. 산에서 자라 여러 해를 묵은 매나 새매.
수(水)진이 – 수(手)지니의 오기(誤記). 사람의 손으로 길들인 매나 새매.
해동청(海東靑) - 맷과의 새. 편 날개의 길이는 30cm, 부리의 길이는 2.7cm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으며 등은 회색, 배는 누런 백색이다. 부리와 발톱은 갈고리 모양이며, 작은 새를 잡아먹고 사냥용으로 사육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해안이나 섬 절벽에 서식한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다.
보라매 - 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
음수율에서 자유로운 사설시조입니다. 내용은 님을 반겨 맞겠노라 다짐하는 것이고요. 님과 나 사이에 놓인 고개를 끌어다가 자신의 의지를 더욱 당차게 보여주고 있는 수사가 돋보입니다. 어떤 고개냐구요? 산지니도 수지니도 해동청 보라매도, 날쌘 매들이 모두 쉬어 넘는 높고 험한 고개요, 바람이며 구름도 물론 쉬어 넘는 고개인데, 그 넘어에 님이 왔다고 하면 저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넘어가 맞겠답니다.
초장의 내용은 오래된 가요 ‘추풍령’의 노랫말 출처가 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또한 중장에서는 매의 네 종류를 알게 되었네요. 불과 100년 전만해도 꿩사냥을 매로 했다더군요. 매사냥은 이제 몽골과 우리 나라 공동 등재 유네스코 무형유산이랍니다.
종장에서는 아니 두 글자를 앞세우는 바람에 어법은 어색합니다만 안 쉬고 넘어간다는 의미는 도드라졌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7
04 27
바람 불으소서
무명씨(無名氏) 지음
바람 불으소서 비 올 바람 불으소서
가랑비 그치고 굵은 비 들으소서
한 길이 바다이 되어 님 못 가게 하소서
길 - 길이의 단위. 한 길은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이다. 또는,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한다.
마치 무당의 주술 같습니다. 불어라 바람아 비 오게 불어라. 이 염원은 들어맞았고, 이제는 가랑비 말고 굵은 비를 내리소서. 결론은 비 쏟아져 물이 바다를 이루되 사람 키보다 깊이 잠기게 해라. 이런 기원의 목적은 딱 하나 우리 님 못 가게.
단순하지만 간절함이 절절합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8
04 28
바람새 부는 날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바람새 부는 날에 부스새 미여워라
말씀새 그치시고 잔치새 하사이다
어옥새 더옥새 밑에 가면 노새 할 이 뉘 있으랴
딱 보면 ‘새’가 문제입니다. 유식한 말로 언어유희(言語遊戲)를 이어가는 접미사(接尾辭)입니다. 이런 경우 그 ‘새’를 감추고 읽으면 대충 뜻이 통합니다. 초장의 부스새는 ‘불’로, 미여워라는 ‘미워라’로 나아가 ‘조심해라’ 정도로 읽힙니다.
중장은 초장과 연계성이 뜬금없네요. 그렇지만 중장 앞에다 ‘그런’을 붙여보면 그런대로 넘어가집니다.
종장의 새는 접미사가 아니라 ‘어욱새 더욱새’의 작은 어감의 말로 ‘억새’입니다. ‘새’로 끝나는 단어가 어울렸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헛갈립니다. 암튼 이 억새의 밑은 ‘무덤’입니다. 상당한 비유를 눈치채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죽은 다음에는 누가 놀자고 ‘노세’하지 않느다는 것이지요. 이제야 결론이 명확해지네요. 노세는 ‘세’로군요. 듣기엔 비슷합니다.
억새 밑에 가기 전에 날마다 잔치하고 노세 해야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19
04 29
바람아 불지 마라
무명씨(無名氏) 지음
바람아 불지 마라 비 올 바람 불지 마라
가뜩이 차변된 님 길 질다고 아니 올세
저 님이 내 집에 온 후(後)에 구년수(九年水)를 지소서
차변되다 – 마음이 변하다.
구년수(九年水) - 구년 홍수. 중국 고대 요임금 때의 고사를 끌어와 썼음.
문제는 님이 내 집에 온 뒤에야 삼년 구년 홍수가 지든 말든 할 일인데, 당장은 내 님이 바람분다고, 그 바람에 실린 비가 온다면 길 질다고 아니 올세라 지금은 바람아 제발 불지 마라. 사실 님이 온 후에 구년수는 구년 동안 님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뜻이 숨어 있어 재미있는 반전(反轉)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20
04 30
이 몸이 싀여져서
무명씨(無名氏) 지음
이 몸이 싀여져서 접동새의 넋이 되어
님 자는 창(窓) 밖에 불거니 뿌리거니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싀여져서 – 쓰러져서. 죽어서. 죽은 후에.
접동새 – 두견이. 뻐꾸기과에 속하는데, 전설에 등장하는 새로서 김소월은 같은 제목으로 시를 지었음. 전설에서 제재를 끌어와 민요적인 가락과 정조를 바탕으로 현실의 비극적 삶을 초극하려는 애절한 혈육의 정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거니 뿌리거니 – 피를 토한다는 이미지를 끌어와 얼굴을 향해 후후 불다가, 방을 향해 뿌리다가.
나는 죽도록 못 잊거늘, 상대는 날 잊고 깊은 잠에 드는군요. 이걸 어쩝니까. 그러니 피를 토하듯 울 줄 아는 접동새가 될 수밖에요. 그래서 님의 방 창에 가서 ‘불거니 뿌리거니’라도 해야겠습니다. 깊이 든 잠에서 깨어나 새가 된 나를 감싸 안아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소원의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런 전통 정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군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내어놓고 말하지 못했던 시절, 시조 창은 노래를 통한 토로의 수단으로 훌륭하게 기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