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5일 목요일. 덥다, 35℃.
튀니스 아파트 원룸에서 아침을 연다. 창문이 없어서 날이 밝았는지도 모르겠다. 시계를 보고 일어난다. 아침 식사는 고추장에 누룽지로 해결한다. 오늘은 두가 유적지를 다녀오기로 했다. 큰 길로 나가서 택시를 잡는다.
북부 루아지 터미널(GARE RUTIERE NORD)을 가자고 택시를 잡았다. 운전사가 정직하지 못하다. 직선으로 가면 금방 도착할 길을 멀리 빙 돌아 원을 그리며 터미널로 간다. 나쁜 택시기사다. 19디나르(7,600원)가 나왔다.
왜 빙 둘러 가느냐고 조용히 말하고 10디나르(4,00원)을 주고 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받는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북부 터미널에서 테베르숙(Teboursouk)으로 가서 두가를 가는 차를 잡아야한다.
두가 유적지를 직접 가는 차는 없다. 테베르숙 가는 루아지를 발견했는데, 수중에 현금이 없다. 할 수 없어 은행을 찾아 나섰다. 고맙게도 부근에 튀니스 은행이 있었다. 50유로를 환전했다.
테베르숙(Teboursouk)을 향해 루아지는 달린다. 요금은 두당 9.2디나르(3680원)이다. 아침 8시 30분이다. 테베르숙 마을 입구 주유소 앞에 우리를 내려준다. 바로 노란색 택시가 우리를 태우러 와 있다.
루아지 기사가 미리 손님이 있다고 택시기사에게 연락해 둔 것 같다. 두가 유적지 까지 흥정을 했다. 왕복 20디나르(8,000원)로 결정하고 택시를 탔다. 요금은 Pay after, 오전 10시다.
2시간 후 두가 유적지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는 돌아갔다. 입장료는 8디나르(3,200원)이다. 우리 같이 개인으로 오는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단체객들이다.
Dougga 유네스코 등재 비석을 만났다. 두가 고고학 유적지(Dougga Archaeological Site)는 튀니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10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550m 지대에 조성된 도시다. 두가 시는 리비아-카르타고의 수도였다.
카르타고 영토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던 두가에는 산기슭을 중심으로 약 3만 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우에드 칼레드 계곡(Oued Kalledd Valley)이 내려다보이는 테베르숙 산맥(Tebersouk Mountains)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누미디아, 카르타고, 헬레니즘, 로마 등 각기 다른 시대의 문화가 훌륭하게 통합된 두가 고고학 유적은 로마의 변방 도시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50년까지 사람들이 살았는데, 유적지 보호를 위해 사람들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튀니지 서부에 있는 유적이다. 베자에서 남쪽으로 25km, 테베르숙(Teboursouk)에서 6k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자리한다.
카르타고, 엘젬, 스베이틀라와 함께 튀니지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다. 고대 지명은 투가 (Thugga)로, '목초지'를 뜻하는 말이다. 누미디아 문화를 바탕으로 로마화 된 중상 규모의 도시였다.
주민들은 라틴계 이주민과 베르베르계 토착민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205년 합쳐지며 로마 문명에 동화되었다. 5세기 기독교화로부터의 상대적 소외와 반달족의 침공으로 두가는 작은 마을로 전락하여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근대 시기 재발견되어 20세기부터 발굴이 이루어졌다. 두가는 거대한 파괴나 자연재해가 없었기에 로마 시대 유적이 매우 온전히 남아있다. 독립 후 1991년, 튀니지 정부는 주민들을 동남쪽 2km 지점으로 옮기고 일대를 고고학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두가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매년 5만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처음 만나는 유적이 두가 극장이다. 두가 극장은 AD 188년에 이 도시의 부유한 주민이 언덕배기에 세웠다.
극장은 작고 표준적인 로마식이며, 3,500석 규모이다. 극장의 무대(scenae frons) 바닥은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다.
리비아어와 카르타고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쓰여진 2,000점 이상의 비문으로 구성된 두가의 중요한 금석학 자료들은 리비아어의 판독, 누미디아의 사회 및 생활, 로마의 식민 정치와 도시 조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카피톨리노 일대가 주요 명소이고 역시나 잘 보존된 극장에서는 매 여름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서기 168년에 로마식으로 건축된 극장이다.
로마극장의 표본인 반원형으로 되어있으며 극장의 직경 120m이고 높이는 15m이다. 전체 좌석은 19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맨 위 좌석은 높은 위치 때문에 두가 시내는 물론 밀밭의 아름다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극장의 주랑이 딸린 현관은 없어졌으며 지금은 몇 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극장의 보존상태가 좋아 지금까지 매년 여름에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반원형 극장의 맨 아래에는 귀빈석이 마련되어있고 이곳에는 낮은 담이 있으며 무대에서 객석까지는 수많은 벽감이 마련되어있어 그곳에 대리석 조각상이 놓여있다.
두가의 카피톨리움은 동로마 제국이 아프리카를 재정복한 후, 두가 시를 방어 요새로 개조할 때 도시 중앙의 포룸을 성채로 개조하면서 포함시켰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포름에 나뒹구는 조각상들은 로마시대 유명 정치인들 모습이 새겨져 있다. 두가 중심 포럼이 있는 곳에 높이 솟은 의회건물, 신전처럼 웅장하다.
17세기 프랑스 학자에 의해 카피톨리움으로 확인되었으며 1903~1910년까지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두가에는 놀랍게도 대부분 2~3세기에 지어진 공공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도시 중앙에는 바람의 장미 광장(Rose of the winds square)이 있다. 바람의 장미 광장을 중심으로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 주노 카엘레스티스 신전(Temple of Juno Caelestis)이 있다.
사투르누스 신전(Temple of Saturnus, Temple of Saturn), 미네르바 신전(Temple of Minerva) 등 12개의 신전과 시장, 목욕탕, 극장(Dougga Amphitheatre), 경기장 등이 있다. 주피터 신전은 AD 166년에 건립되었다.
여섯 개의 거대하고 세로 홈을 판 기둥이 8m 위의 주랑 현관을 받치고 있으며, 독수리의 발톱으로 상징되는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를 묘사한 조각이 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주피터 신의 조상이 있었다.
카르타고의 여신 타닛에 해당하는 로마 여신 주노 카엘레스티스에게 바쳐진 신전은 230년경에 지어졌다. 도시의 끝에 있는 사투르누스 신전은 바알 신에 바쳐진 오래된 성소가 있는 지역에 지어졌다.
두가 요새는 후기 비잔틴 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개선문은 많이 파손되었지만, 세베루스 알렉산더(Severus Alexander) 개선문은 여전히 상당한 높이로 서 있다.
3세기에 도시 설비로 지어진 리시니안 목욕탕(Licinian bath)은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두가의 가장 중요한 기념물 가운데 하나인 도시 남쪽의 리비아-카르타고 능묘는 1908~1910년에 복원되었다.
이 능묘는 튀니지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카르타고 건축물의 유일한 주요 기념물이다. 이슬람 시대에는 시디 사비 모스크(Sidi Sahbi Mosque)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디오니수스와 율리시즈의 집(House of Ulysses and Dionysus)은 한때 화려한 주거지였던 곳이다. 여기서 율리시즈가 사이렌에게 매혹되는 장면을 묘사한 '율리시즈 모자이크(Ulysses mosaic)'가 발견되었다.
두가에서 가장 큰 집이다. 리키니우스 목욕탕과 신전을 구경한다. 주거 터에서는 화장실 유적이 복원되어있어 재미있다.
3-4세기 두가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기독교화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고, 따라서 많은 신전 유적들에 비해 제대로 된 교회는 하나 뿐 이다.
입구 외곽에 있는 교회터 주변에는 주거지도 보이고 석관들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4세기 말엽 기독교의 국교화 후 두가는 소외되어 쇠퇴하였고, 결정적으로 5세기 반달족의 침공 시에 파괴되었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은 일대의 유적을 재활용하여 도시에 성벽을 두르고 포룸 자리에 성채를 세웠다. 7세기 이슬람 정복 후에는 작은 마을로 남았다.
9세기 아글라브 왕조 기에 주민들은 시디 사흐비 모스크와 목욕탕을 세웠다. 세월이 흘러 17세기부터 유럽에 알려진 유적은 1901년 카르타고와 함께 최우선 발굴 대상으로 선정되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10년까지 카피톨리노와 리비아-카르타고 영묘가 복구되었다. 1990년대 들어 대대적으로 정비되었고,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올리브 나무들이 유적지 부근에 많이 자라고 있다.
당나귀에 짐을 싣고 가는 주민 한 분이 힘겹게 내려간다. 날이 엄청 뜨겁다. 구경을 다 하고 입구 언덕 나무 그늘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커다란 소 서너마리를 끌고 언덕을 배회하는 여인이 작아보인다. 12시가 조금 넘어 노란 택시는 어김없이 입구로 왔다. 택시를 타고 테베르숙(Teboursouk) 마을로 왔다. 작은 루아지 터미널이다.
모스크와 식당이 보인다. 튀니스를 가는 루아지를 바로 탈 수 있었다. 루아지 차가 오래 되어 달리는데 문이 자꾸 열린다. 문 옆에 앉아서 할 수 없이 문단속을 하며 튀니스로 왔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오려해도 택시 잡기가 어렵다.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메트로를 타볼까 했는데 메트로 정류장에 사람도 없고 메트로도 없이 빈 철로만 보인다.
숙소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점심때가 되었는지 배가 고프다. 간판도 부실한 길가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닭고기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음료수와 함께 먹었다. 질긴 빵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다. 식사로 한숨을 돌린 후 다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