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의 제목 해석
위에서는 『반야심경』의 단락 대의를 전체적으로 여러분에게 한 번 제시하였고, 다음에서는 좀 구체적으로 강의하겠습니다. 그러나 두 시간 이내에 이 260자를 쉽게 명백하게 강의하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경의 제목을 강의하겠습니다. 경의 제목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반야(般若)
범어인 “반야”를 중문으로 번역하면 혜(慧)ㆍ지혜(智慧)ㆍ정혜(淨慧)입니다. 무엇으로 번역하든 모두 반야라는 단어의 범문의 함의(含義)를 완전하게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혜’ 두 글자로 반야라는 명칭을 국한하지 않도록 범음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반야에는 문자반야(文字般若)ㆍ관조반야(觀照般若)ㆍ실상반야(實相般若) 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경전의 가르침[經教]이 나타내 보이는 도리로부터 얻는, 예컨대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으로부터 얻는 지혜가 문자반야입니다.
문자반야의 기초에서 문자에 따라 관조에 들어가고, 문자에 따라 해석하고, 문자에 따라 수행을 일으켜서 정사유(正思惟)를 진행하여 얻은 지혜가 관조반야입니다. 경문 중의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이 바로 관조반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반야를 관조함은, 문자가 나타내 보이는 반야를 수행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운용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실상반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관조할까요? 제법의 실상을 관조합니다. 제법의 실상은 무엇일까요? “오온개공”입니다. 공의 도리가 바로 실상이며, 실상은 무상(無相)입니다. 현실로부터 증오한 지혜가 실상반야입니다.
규기(窺基) 법사는 현장 법사의 제자인데 그는 말하기를, “실상반야는 진리(真理)이고, 관조반야는 진혜(眞慧)이며, 문자반야는 진교(眞敎)이다.”라고 했습니다. 진교ㆍ진혜ㆍ진리가 바로 세 가지 반야입니다. 진교로부터 진혜가 산생하고, 진혜로부터 진리를 증득하는 것이 세 가지 반야의 상호관계입니다.
앞에서 반야가 불모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반야로부터 태어난다는 말로 보면 바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입니다.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은 말합니다,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부처의 어머니요, 모든 보살의 어머니이다 [般若波羅蜜多是諸佛母、諸菩薩母].” 또 말합니다, “반야는 일체 불법과 일체 보살의 해탈법, 일체 국왕의 무상법(無上法), 일체 유정의 출리법을 낳을 수 있다 [般若能出生一切佛法、一切菩薩解脫法、一切國王無上法、一切有情出離法].”, 모든 부처님이 성불한 까닭은 반야로부터 생겨나옵니다. 모든 보살이 성불하려면 반드시 반야에 의지하여 성취하고 해탈해야 합니다. 모든 세간의 사업, 좋은 사업이나 선한 일이나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일은 모두 반야로부터 생겨나옵니다. 모든 유정중생은 반드시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야 비로소 생사고해를 벗어나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2) 바라밀다(波羅蜜多)
“바라(波羅)”란 저 언덕입니다. 경전의 작자는 말하기를 “저 언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리이고, 또 하나는 열반이다.” 보리는 깨달음[覺悟]이며 지혜입니다. 열반은 구경원만(究竟圓滿)ㆍ구경적멸(究竟寂滅)입니다. 보리열반이 저 언덕입니다.
“밀다(蜜多)”란 도달한다ㆍ떠난다는 뜻입니다. 반야를 행함으로써 모든 장염(障染: 악업에 오염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번뇌―역주)을 떠나기 때문에 저 언덕에 도달합니다. “바라밀다”는 합하면 바로 “도피안(到彼岸)”입니다. 저 언덕에 도달하려면 발심해서 보살행을 닦아야 하며, 저 언덕에 도달하는 공덕을 닦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일곱 가지 방편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 일곱 가지 가장 수승한 방편을 갖추어야 저 언덕에 도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이 그 일곱 가지 가장 수승한 방편입니다.
1. 보살종성(菩薩種姓)에 머물러야 한다 [住菩薩種姓].
보살도를 닦고 보살도를 행하려면 반드시 보살종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선근이 있어야 하고 이런 복덕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보살의 선근이 없고 복덕 인연이 없으면 보살행을 닦고 보살도를 행하겠다는 대도심(大道心)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2. 대보리심(大菩提心)에 의지해야 한다 [依大菩提心].
보살행을 닦고 보살도를 행하는 동력은 바로 대보리심입니다.
3. 중생에게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悲憫有情].
보살도를 행하는 목적은, 위로는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 [上求佛道, 下化眾生]입니다.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려면 반드시 유정중생에 대한 비민심이 있어야 합니다.
4. 사업을 갖추어 행해야 한다 [具行事業].
발심이 있고 보리심이 있지만 그저 발심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런 발심은 영원히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갖추고 실행해야 합니다. 바로 6도만행을 행하여야 합니다. 이런 복덕 사업으로써 보리심과 보살도를 장엄합니다.
5. 무상지혜에 포괄되어야 한다 [無相智所攝].
모든 선법을 닦고 6도만행을 닦음은 모두 무상지(無相智)로써 출발점을 삼아야 하고, 집착을 일으키지 말고, 명성을 날리고 그로 인한 물질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닦지 말아야 합니다. 유상법(有相法)을 닦지 말고 무상법(無相法)을 닦아야 합니다. 이른바 무상(無相)은 집착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6. 보리로 회향해야 한다 [回向菩提].
모든 선법을 닦은 공덕을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의 작은 과보로 회향하지 말고 반드시 무상보리(無上菩提)로 회향해야 합니다.
7. 번뇌장과 소지장이 사이에 섞이지 않아야 한다 [不爲二障間雜]. 2장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입니다. 만행을 닦고 모든 공덕을 닦을 때 번뇌장과 소지장에서 출발하지 말아야 하고, 2장을 깨뜨려 없애야 합니다. 2장이 수행 과정에서, 신심이 전일하지 않고 서원이 전일하지 않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라밀다” 행을 닦으려면 반드시 이상 일곱 가지 가장 뛰어난 방편을 갖추어야 합니다.
(3) 심(心)
‘심’은 그 글자를 보면 의미가 생각나는데, 여기서의 ‘심’ 자는 두 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본래의 의미에서 말하면 이 268자는 반야의 심장이요 반야의 강요, 반야의 요령이며 반야의 근본입니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器官)인 심장과 같습니다. 마음은 인생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휘하는 작용을 일으킵니다. 이 경은 바로 6백 권 반야경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에 심경(心經)이라고 합니다. 일체 불법은 모두 반야를 중심으로 하고 근본으로 삼습니다.
두 번째의 의미는, 이 268자는 바로 범부의 마음, 성자의 마음, 성불의 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부의 마음으로부터 어떻게 닦아 성자의 마음을 이루고 부처의 마음을 이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심’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네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1. 육단심(肉團心)
육단심은 신체의 기관입니다. 비록 물질적인 것이지만 우리의 정신의 의탁이요 사유의 의탁이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2. 연려심(緣慮心)
갖가지 인연을 만나거나, 갖가지 광경이나 갖가지 경계를 만나면 마음에 사려(思慮)하는 바가 있는 것을 연려심이라고 합니다. ‘연(緣)’은 대상이며 ‘려(慮)’는 주관의 사유 활동입니다. 주관이 접촉을 거치자마자 사유 활동이 있습니다.
3. 집기심(集起心)
제8식 심왕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가리킵니다. ‘집’은 8식종자를 가리키며 원인을 가리킵니다. 제7식ㆍ제6식ㆍ전5식의 작용을 통해서 부단히 접촉하는 외부 경계의 모든 정보를 8식전(八識田) 중으로 되돌아오게 하여 종자가 저장됩니다. 제8아뢰야식은 제7식을 교량으로 삼고 부단히 반복해서 되돌아오고 실어냅니다. 되돌아 들어오면 종자가 되고 내보내면 현행(現行)이 됩니다. 현행이 종자를 낳고[集], 종자가 현행을 낳습니다[起].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집기심이라고 부릅니다.
4. 진실심(眞實心)
우리의 진여불성을 가리킵니다. 진여불성은 매우 깊은 반야의 훈습(薰習)ㆍ개발ㆍ발굴을 통해 무궁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것도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4) 경(經)
경에는 다섯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출생의(出生義)
일체의 의미 도리[義理]를 낳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법의 일체의 의미 도리는 모두 경전의 기록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이해하고 부처님이나 조사들과 소통 교류하려면 오직 경서를 통해서 시작합니다. 경서는 무궁한 묘의(妙義)를 낳을 수 있습니다.
2. 용천의(湧泉義)
모든 경전이 말하는 도리는 그 의미가 무궁무진합니다. 반복해서 깊이 음미하고 반복해서 연구하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낡아지지 않고 영원히 새로운 의미가 있습니다.
3. 현시의(顯示義)
경서의 문자 내용은 불법의 심오하고 미묘한 의미를 나타내어 보일 수 있습니다.
4. 승묵의(繩墨義)
경서 속에서 말하는 모든 도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삿된 견해를 없애고 바른 도리를 드러내며 악(惡)을 고치고 선(善)을 닦을지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언행 실천의 표준이 될 수 있습니다.
5. 결만의(結縵義)
세간 사람은 노끈으로 많은 꽃을 꿰어 화환을 만들면 꽃이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경서도 한 줄의 노끈처럼 불교의 법문들을 꿰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룹니다. 이는 비유하여 이름을 세운 것입니다.
범어 수다라(修多羅)를 법본(法本)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교(敎)는 이치[理]의 뿌리[本]이고, 이치는 교의 뿌리입니다. 교와 이치가 서로 드러내면서 아울러 모두 뿌리입니다.
『반야심경』은 현재의 자료로 보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10개의 번역본이 있습니다. 이 열 개의 번역본은 자세한 것도 있고 간략한 것도 있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의 번역본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것이고, 가장 늦은 것은 누오나 활불[諾那活佛]이 티베트어로부터 번역한 것입니다. 한문 번역 이외에도 『반야심경』은 일어ㆍ한국어ㆍ독어ㆍ영어ㆍ불어ㆍ베트남어ㆍ티베트어ㆍ몽골어 등 많은 종류의 언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반야심경』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번역가이며 불학가로서 대사급이었던 고승 현장(玄奘) 삼장법사(三藏法師)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분은 국제적으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명성이 높은 대사급의 고승입니다. 『반야심경』의 경문에 관해서는 간단히 소개할 수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