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뻥쟁이-윤태규
여기는 겨울방학을 맞아 온 시골 할아버지 댁,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지호야.
“할아버지 모기에게 물렸어요.”
할아버지 눈앞에 봉긋하게 솟은 자국을 들이밀어 보였어.
“모기에게 물렸다고? 이 겨울에?”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서. 할아버지가 내 말을 시큰둥하게 받으니 조금 화가 나려고 하는 거야.
“그럼 이게 모기가 문 것이 아니면 뭐예요?”
모기가 물린 자국이 있는 팔을 할아버지 얼굴에 더 바짝 갖다 대었지. 그제야 할아버지는 신문을 내려놓고 모기 물린 자국을 찾느라 내 양 볼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
“뭣이라? 우리 지호가 모기에 물렸어?”
아침 준비를 하던 할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급하게 오더니 얼른 비상약을 발라주셨어. 이 겨울에 무슨 모기가 다 있냐면서 다시 부엌으로 가셨어.
“보자, 그러니까 우리 지호가 이 겨울에 모기에게 물렸단 말이지?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겨울에 모기에 물렸다면 여기에는 분명 우리 인간들은 모르는 굉장한 비밀이 숨어 있을 거야.”
할아버지가 모기에 물린 자국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이상한 말을 하시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간들이 모르는 굉장한 비밀이라니요?”
“가만 있어봐. 이건 아무래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할아버지가 다시 한 번 자국을 살피더니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입까지 크게 벌리시네.
“병원에 가야 되나요?”
할아버지의 놀라는 모습에 내가 더 놀랐어. 겨울모기에 물리면 큰일이 나는가 싶더라고.
“분명해. 분명하다니까. 안드로메다에서 보낸 모기가 맞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시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할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때 하시는 모습이야.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니 걱정이 더 커지더라. 금방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어.
“잘 들어. 너에게 침을 찌른 모기는 말이야. 보통 모기가 아니라 안드로메다라는 별에서 보낸 모기다 이거야.”
할아버지는 점점 이상한 말을 하셔. 내 손목을 꼭 잡고 말씀 하셨지만 가슴이 콩콩 뛰고 점점 더 불안해졌어.
“안드로메다가 뭐예요?”
“그렇지. 지호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 안드로메다는 말이야 아주아주 멀리 있는 별이야.”
“얼마나 멀어요?”
“음, 지호야 태양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지? 그 먼 거리도 안드로메다에 대면 코앞이라고나 할까.”
“그 먼데서 왜 모기를 보내요? 그리고 왜 하필 내 피를 뽑아가요?”
“겁낼 일이 아니야. 안드로메다에는 지구에 사는 인간들보다 과학이 훨씬 발달한 외계인이 살고 있을 거야. 엄청나게 과학이 발단한 외계인이 엄청나게 발단한 망원경으로 지구를 내려다보았겠지. 그렇게 살펴보니 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고 코로나19니 뭐니 하면서 쩔쩔매고 있는 인간들이 가엾은 거야. 그래서 좋은 치료약을 만들어 보내주려고 피를 뽑아간 거야. 틀림없어! 분명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내 피가 외계인 손에 들어갔단 말이잖아요.”
“그렇지. 지금쯤 실험실에서 우리 지호 피를 살펴보고 있을 거야. 머지않아 다시 모기를 보내서 코로나19는 물론이고 더 무서운 병도 이겨낼 수 있는 약을 가져와서 침으로 주사를 해주겠지. 이제 지구 인간들은 지호 피 덕분에 병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될 거고. 이거 얼마나 신나는 일이야.”
“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뻥이지요?”
나는 아무래도 할아버지 말이 믿어지지 않았어.
“뻥이라니? 이 할애비 가설이 틀림없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골똘하게 머리를 감싸 쥐셨어.
“가설이 뭐예요?”
“가설? 그거 과학자들이 많이 쓰는 거야. 그것은 나중에 조용히 이야기 해주기로 하고 먼저 급한 거부터 이야기하자. 이 할애비가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가설을 바꿔야할 것 같아. 모기가 지호 피를 뽑아서 실험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이미 개발한 약을 가져와서 지호 팔에 주사를 했지 싶어. 맞아 틀림없어. 흠흠흠, 그러니 그 약은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약이거나, 병에 걸려도 대깍 낫게 해주는 치료약일 거야.”
나는 할아버지 말에 점점 빠져 들었어. 처음에는 나를 위로해주시려고 하는 괜한 말로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그럴 것만 같았어. 과학이라는 말과 가설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니까 더욱 믿음이 가더라. 거기다가 할아버지 표정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보였어. 뻥을 치고 있다는 기색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니까.
“그리고 말이야. 또 다른 약 성분도 들어있을지 몰라. 김치나 나물반찬도 잘 먹게 해주고, 게임도 덜 하도록 하고, 코딱지도 안 파게 해주는 그런 성분도…….”
“에이 뻥이네! 뻥이야!”
나는 할아버지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를 냅다 질렀어. ‘김치’ ‘나물반찬’ 게임’ ‘코딱지’ 하는 말이 나오는 순간 대번에 뻥이라는 것을 알았어. 그 말들은 평소 할아버지가 나한테 자주 하는 말씀이거든.
“뻥이 아닌데…….”
할아버지는 그냥 씨익 웃으며 날을 쳐다보시더라. 거짓말 하다가 들킨 그런 표정이었어.
할아버지 뻥은 처음이 아니야.
가장 먼저 친 뻥은 ‘망태영감’이었어. 내가 몇 살일 때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 걸 보니 세 살은 되었을 때지 싶네. 그때도 할아버지 집이었어.
“지호야, 얼른 뚝 그쳐. 자꾸 울면 뒷산에 살고 있는 망태영감이 잡아 간다.”
할아버지가 뒷산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나를 달래곤 했지. 그래도 내가 그치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아주 급하게 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씀을 하셨어.
“아이구 이걸 어째노? 망태영감이 이리로 오고 있네. 망태가 크기도 하네. 망태영감요, 우리 지호 이제 뚝 그칠 거니까 한번만 봐 주소. 제발 봐 주소.”
할아버지가 얼른 창문을 닫고 현관문 손잡이를 꼭 잡아당기는 거야. 밖에서 문을 당겨도 안 열어주려고 말이야. 그걸 보고 진짜인지 같았어. 이러는데 어떤 어린애가 안 속겠어. 겁이 나서 얼른 울음을 그치려고 꺽꺽 애를 썼지.
“우리 지호가 울음을 그쳐서 돌아가겠다고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가 현관문 쪽으로 허리를 굽혀 절까지 몇 번이나 하시네.
시골 할아버지 집 뒷산 중턱에는 멀리서 보면 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큰 바위가 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바위를 곰바우라고 하셨어.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그 바위 밑에 큰 굴이 있는데 그 굴속에 망태영감이 산다는 거야. 망태영감은 큰 망태를 가지고 있다가 떼를 쓰거나 우는 아이 소리를 들으면 망태를 메고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잡으러 온다는 거야.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니까.
내가 망태영감 이야기가 뻥이라는 것은 안 건 어린이집 다닐 때였어. 어린이 집이 여름방학을 해서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갔어.
“지호야, 할아버지와 할머니 말씀 잘 들어.”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좋아하고 잘 따르니 엄마와 아빠는 가끔 나를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데려다 놓곤 했어.
“자다가 지 에미 애비 찾으며 울어대면 어쩌지요?”
“울면 내놓는 도깨비방망이 있잖아. 망태영감 말이야.”
“네 살이나 되는 지호가 그걸 믿을까요?”
“아직은 통할 걸. 그걸로 안 되면 무서운 귀신이야기로 달래지 뭐. 지호가 무서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잖아.”
슬쩍 엿들은 말이야. 안 그래도 망태영감이 정말 있을까? 뻥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들통이 난 거지. 뻥이었던 거야. 그날 밤, 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써서 할아버지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이야기가 듣고 싶어 일부를 떼를 쓴 거지.
할아버지 뻥은 그 뒤에도 있었어. 작년 그러니까 1학년 때야.
“지호야, 이 웅덩이 이름이 용소야. 왜 용소냐 하면 이 웅덩이에 이무기가 여러 마리 살고 있거든. 그 이무기가 물밑에서 천 년을 기다리다가 물위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이 ‘용이다!’하고 소리치면 정말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지만 ‘뱀이다!’하고 소리치면 그만 용이 되지 못하고 다시 이무기로 물밑에서 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나는 그냥 전해오는 이야기로만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진짜라고 몇 번이고 말씀 하셨어. 할아버지는 이 이무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해줘야 한다는 걸 늘 덧붙이셨어. 덕분에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걸 배우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 역시 ‘망태영감’처럼 뻥이라는 걸 알고 말았지. 이번에는 우연히 본 할아버지 일기장이었어.
‘지호란 놈에게 용소 이무기 이야기를 해줬다. 짜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는 걸 보니 진짜로 아는 듯했다. 하기야 지 애비도 클 때까지는 진짜로 알고 있었지. 이런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도 아이들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면 되지 나쁘지 않다. 내일은 지호를 데리고 경로당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켜야겠다. 짜식이 초등학생이 되더니 아주 의젓해졌단 말이야.
이 일기를 몰래 읽고는 자꾸 웃음이 나더라. 속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할아버지 뻥은 내가 자라면 따라 자라는 것 같아. 다음에는 또 어떤 뻥이 나올지 기대까지 되네. 안드로메다 뻥이 곧바로 들키고 말았으니 아마도 더욱 아리송한 뻥이 될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오늘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말이야. 내가 할아버지에게 뻥을 쳐볼까 싶기도 해. 어느 나라 어느 박사가 연구한 것인데 손자에게 선물을 많이 사주는 할아버지는 건강해 진다거나, 잔소리를 많이 하면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과 같은 뻥 말이야. 이런 뻥이 통할까 싶지만 그래도 한 번 뻥을 치고 싶어지네.
윤태규(chon-1@hanmail.net) 1972년부터 대구 경북 지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2014년 8월 31일로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 더 많은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만날 날을 꿈꾸며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쿠나 호랑이>, <이상한 학교>,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내가 처음 쓴 일기>, <똥선생님>, <하나가 된 사랑나무>, <채은이의 공>, <똥 누고 학교 갈까, 학교 가서 똥 눌까>, <똥 부자, 오줌 부자> <똥 교장 선생의 초등 교육 이야기>같은 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