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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5강
말씀/ 잠언 10:1-11:31
요절/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0-29장은 잠언의 본론입니다. 그 중 전반부 10-15장은 의인과 악인, 지혜자와 미련한 자를 흑과 백으로 대조했습니다. 사람을 의인과 악인,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선과 악, 두 종류의 모습이 사람안에 공존합니다. 선을 사모할 때도 있고 악을 꾀할 때도 있습니다. 악인이 회개하고 의인으로 변화되기도 하고 의인이 타락하여 흑화되기도 합니다.
잠언에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는 삶의 방향 또는 결과의 차이에 대한 말씀입니다. 악한 길이 지혜롭게 보이지 않도록, 의로운 길이 미련하게 보이지 않도록 깨우치기 위해서입니다. 의인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길인가! 악인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가,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0장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라” 그렇다면 누가 지혜로운 자녀이며 누가 미련한 자녀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불법으로 모은 재물은 부모에게 무익하고 공의를 행하는 아들은 부모를 죽음에서 건진다는 말씀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주가조작으로 10억을 벌어 그 중 5억을 어머니에게 드리면, 나는 지혜로운 아들입니까! 미련한 아들입니까! 어느 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교사로 살겠다며 늙은 어머니를 놔두고 먼나라에 간다면, 나는 지혜로운 아들입니까! 미련한 아들입니까! 많은 선교사들이 부모를 봉양하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자녀가 공의를 위해 희생하면, 부모들도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감리교 신학자 윤성범 박사는 ‘진정한 효도는 부모보다 큰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숭고한 가치를 붙들고 살아야 부모도 동반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목자 혹은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불신자였던 부모들에게 믿음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자녀된 역사들이 정말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아울러 시골 처녀 마리아를 만세에 복 있는 여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여호와는 의인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십니다.(3)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잠언에서 의인으로 산다는 것은 일상을 제쳐두고 오로지 봉사에만 힘쓰는 생활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십자가를 부지런히 감당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손이 게으르면 부모의 근심이 되고 손이 부지런해야 부를 쌓고 부모의 기쁨이 됩니다. 손이 게으르다는 것은 손이 빠르지 않다, 손재주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바일 게임에 중독되어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손가락을 부지런하게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길가면서도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총신대 주종훈교수는 ‘게으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행동이 느린 것이 아니라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녀는 추수해야 할 때에 손을 움직여 추수하는 사람입니다.(5) 각각의 때에 맞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반면 미련한 아들은 추수할 타이밍이 왔는데도 일하지 않음으로써 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끼칩니다.
6-14절은 말과 의인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머리와 악인의 입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유익한가?’, 생각이 의인의 삶을 시작케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반면 악인은 부정적인 말, 사나운 말, 정죄하는 말을 입에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병들이기 독을 머금었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그의 이름을 기념할 때마다 칭찬을 불러옵니다.(7) ‘최베드로? 정말 훌륭한 분이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 반면 악인의 이름은 썩은 악취처럼 불쾌함을 줍니다. ‘최베드로?, 아침부터 저 인간 이름을 들으니 기분 더럽네...’ 지혜로운 아들은 계명을 받습니다.(8) 말씀을 암송하며 마음 깊이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말씀이 떠올라서 바른 길로 이끌어 갑니다.(9) 걸음은 평안하고 굽은 길로 가지 않습니다. 반면 미련한 사람은 간직한 말씀이 없기에 감정대로 내뱉으며 마음속 밑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눈짓으로 남모르게 악한 일을 도모하다가 근심을 끼치고 미련한 말로 화를 자초합니다.(10)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잠언은 반복하여 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지 말조심하자는 정도가 아닙니다. ‘독을 머금었다’라는 표현이 벌써 6절과 10절에서 반복되었습니다.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 입에서 거칠고 더러운 말이 나왔다면, 내 기분을 망친 누군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거칠고 더러움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돌멩이를 호수에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듯이, 말 또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말에 미움이 담겨 있으면 다툼의 파문을 일으킵니다. 반면 사랑을 담으면 사랑의 파문이 모든 허물을 가립니다. ‘모든 허물’이라고 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허물도 가릴 수 있고 말을 듣는 사람의 허물도 가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속마음과 다르게 입에서 사람 속을 긁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말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고,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벧전4:8)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을 담은 말을 하기에 힘쓰고, 미련한 자는 매를 버는 말을 합니다.(13) 어떤 형제가 우리 모임이 경직되어 있다는 첫인상을 안고 말씀공부를 출발했습니다. 그는 말씀공부에서 목자의 가르침과 다른 해석을 자주 제시했는데, 목자는 그에게 ‘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라고 응답했습니다. 그 말이 안 좋았던 첫인상을 지우고 말씀에 집중하도록 돕는데 유익을 주었습니다. 만약 ‘딴 생각하지 말고 겸손히 배우기나 해요’라고 말했다면, 안좋은 첫인상을 확신하는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14)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부자의 재물은 세상의 압박을 막아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굳이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5절 이후 말씀이 슬기로운 부자생활을 말하는 힌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민 목자는 수양관 답사현장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수십억 부자라면, 좋은 호텔 빌려 풀코스로 섬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청년들이 감동 받아 친구들을 초청하지 않을까요?’ 경민목자가 지금은 말씀 부자, 심정 부자인데, 수십억 부자가 되어 많은 청년들을 많이 섬기는데 쓰임받으면 좋겠습니다. 성실하게 쌓은 부는 견고한 성처럼 커다란 힘이 됩니다.(16) 훈계를 지키고 법대로 노력하여 부는 생명 길로 이끌어갑니다. 반면 징계를 무서워하지 않고 불법으로 쌓은 부는 어긋난 길로 빠지게 합니다.(17) 돈을 목적 삼아 미움을 감추고 이중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헐뜯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18) 19절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말을 많이하면 안됩니다. 지혜로운 부자는 입술을 제어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순은처럼 유익한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20) 돈 자랑하는 말, 없는 자들을 무시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1절입니다. 부자가 의를 증거하면, 예를 들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증거하면 여러 사람을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반면 미련한 부자는 진짜 해야 할 말을 몰라 재앙을 부릅니다.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흔히 부자가 되면 근심이 사라질 것처럼 기대합니다. 육아 근심, 부동산 근심, 노후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과 근심을 사라지는 것은 별개입니다. 부자이기에 따라오는 근심들이 많습니다. 록펠러가 세계 최고 부자가 되고 난 후에 거식증에 빠진 것이 그러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부자이면서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가 의에 대해 무지하면 절대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23) 악한 부자는 언젠가 두려운 일을 만납니다.(24) 회오리바람 같은 환난이 닥쳐오면, 악인의 쌓은 것은 무너져 내리고 의인의 재물은 영원한 기초가 됩니다.(25) 게으른 자를 고용하면, 고용주는 치아에 식초가 부어진 것처럼, 눈에 연기가 들어간 것처럼 고통을 받습니다.(26) IQ의 높고 낮음을 떠나 게으른 사람을 멀리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생명의 날리 길어지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짧아집니다.(27)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지만, 악인의 소망은 생명에서 끊어집니다.(28) 여호와의 도를 따라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는 그가 쌓은 부가 산성이 될 것이며,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29) 의로운 부자는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부르심에 뿌리를 내리지만, 악인은 부르심의 땅에 남아있지 못합니다.(30) 가인이 그러했고 롯이 그러했습니다. 의인의 입은 사람을 살리는 지혜를 발하고, 악인의 혀는 영혼을 베어 상처를 남깁니다.(31) 32절을 읽겠습니다.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 사람들을 살리는 말을 자가 의인입니다.
11장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1절 말씀은 11장의 배경이 시장(market)임을 추측케 합니다.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양쪽으로 즐비하게 서 있고 싸고 좋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나는 어느 가게 앞에 멈추어서 kg당 3만원으로 적혀 있는 문어가격표를 물끄러미 주목합니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싱싱해 보이는 문어에 마음을 빼앗겨 주문합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보다 많은 무게에 놀랍니다. 하지만 이미 문어가 마음에 들어왔기에 비싼 가격의 찝찝함을 대신합니다. 가게를 나오는 내 뒤로 호구를 낚았다는 상인의 의기양양한 미소가 보입니다. 그렇게 타인의 주머니를 가볍게 털어 이득을 취하면, 교만해져서 세상이 우습게 보입니다. 그러나 교만과 함께 욕도 옵니다.(2) 언젠가 사기행각이 드러나서 수갑을 찰 수도 있고, 안좋은 소문이 퍼져 손님의 발걸음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겸손히 법을 지키는 자는 미련한 자처럼 보였는데, 꾸준히 쌓은 신뢰로 단골을 확보하여 기업을 든든히 합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의 길을 가도록 인도합니다.(3) 반면 사악한 자의 속임은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 속임으로 쌓은 재물은 진노의 날을 견디지 못하지만, 공의로 쌓은 사업은 죽음같은 위기에서도 무너지지 아니합니다.(4) 건축업자들을 상대한 적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뽑아 가야할 수익-절대이윤을 정해놓고 일한다’고 했습니다. 절대 이윤을 남겨야 하기에, 철근값이 오르면 순살로 짓고 추가공사비를 뜯어내고자 작업공정을 멈추는 벼랑끝 전술도 구사합니다. 건축현장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세상 전체가 절대이윤에 목을 매고 살아갑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절대 이윤이 아닌 처음 약속, 처음 원칙을 지킨 완전한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합니다. 반면 이윤을 좇아 약속과 원칙을 저버리는 악한 자는 자기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고 맙니다.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지켜주고, 사악한 자는 자기 뿌린 대로 보응 받습니다.(6) 꼼수를 부리면 당장에는 이득을 얻지만 사람을 잃고 맙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그런 식으로 부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풍족하게 삽니다. 하지만 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부자는 갑자기 찾아온 죽음으로 그 소망이 끊어지고 맙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이야기가 그러합니다.(눅12:13-21) 의로운 부자는 환난에서 구원을 받고, 악한 부자는 자기에게 예비된 심판의 길로 갑니다.(8) 부자와 나사로 비유가 그러합니다.(눅16:19-31)
경제문제만큼 공동체안에서의 관계문제도 중요합니다. 공동체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 받아야 기쁨과 삶의 의미를 얻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입으로 이웃을 망칠 수 있고, 입으로 구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목자가 몇 천 만원 투자로 몇 억을 벌 수 있다는 다단계 유혹에 빠져 자신 뿐 아니라 주위 동역자들을 끌여들였다가 많은 이들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건물을 공유한 다른 지부는 휘말리지 않았습니다. 그 지부에는 다단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말리는 목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위기는 하나는 성, 다른 하나는 돈으로부터 옵니다. 교회 모임이 돈 버는 통로가 되도록 용인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말렸는데, 의로운 그의 지식이 동역자들을 구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칩니다.(10) 의인의 성공보다 악인의 패망이 훨씬 강한 임팩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법으로 성공한 자들의 목소리가 모임의 중심에 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수고한 자들이 복을 받을 때, 공동체가 진흥합니다.(11) 자기 욕망을 좇는 자들이 공동체를 향하여 볼륨을 높일 수 있도록 놔두면, 그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됩니다. 지혜 없는 사람은 이웃의 소중함을 모르고 멸시하지만, 명철한 자는 잠잠합니다.(12) 이웃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은 악한 욕망을 합리화하는 말입니다. 성공한 이웃을 두는 것이 나의 발전과 성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두루 다니며 이웃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고 깎아내릴 것이 아닙니다.(13) 명철한 사람은 침묵으로 이웃 편에 서고 이웃의 명예를 지켜줍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판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마냥 침묵하고 숨겨주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공동체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기도지원과 집단지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하려면 지략이 있어야 합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고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립니다.(14) 이웃을 돕는다는 명분에 몰입하여 보증을 서주는 덫에 빠지지 않는 것도 지략입니다.(15) 보증의 덫에 빠지면 돈만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잃어버립니다. 하나님 의지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도록 돕는 것이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지혜입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존영이란 ‘카보드’로서 명성을 말합니다. 재물에서 이웃과의 관계로 그리고 덕을 베푸는 삶으로 주제가 옮겨집니다. 당시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남자들과 비교해보면 정말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덕을 베풀면 열심히 돈을 모은 남자보다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남에게 인자한 사람은 남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고, 남에게 잔인한 자는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해롭게 합니다.(17) 덕을 베풀지 않는 자의 결국은 허무하고,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합니다.(18) 공의를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릅니다.(19) 굽은 마음으로 공동체를 흔드는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습니다.(20) 반면 이웃을 온전히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습니다. 악인은 힘을 합쳐 손발을 맞출지라도 심판을 피할 수 없지만, 의인은 자손까지도 구원을 받게 합니다.(21) 아름다운 여인이 절제하지 않는다면 마치 돼지코에 걸린 금고리처럼 아름다움이 가치를 잃어버립니다.(22)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의인의 소망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오직 선하다’는 말씀은 악을 실행하면서 의인의 명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묵인 혹은 당연시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이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자국보다 월급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사장님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없으며, 악행의 끝은 진노입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흩어 구제하는 것은 아는 사람, 손익계산 따지지 아니하고 구제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집니다.(25) 흉년의 때에 곡식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극한 상황에서 비싸게 하는 것이 고대세계 부자들의 재테크 방법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곡식을 내놓지 않는 자들은 백성의 저주를 받습니다.(26) 반면 정상 가격대로 곡식을 파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경주최씨부자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가훈으로 내려오는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사방 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없는 자들을 구제하는 가문의 전통이 민란이나 도적들이 들끓을 때에도 최씨집안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이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얻습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밥알까지도 남김없이 더듬어 자기 바구니에 넣는 자에게는 악이 임합니다.(27) 보아스가 룻에게 이삭줍기를 허락한 것처럼, 없는 자들을 위해 은혜의 통로를 남겨주어야 합니다. 재물이 전부인줄 알고 없는 자들을 털어 재물을 모으는 것은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소득이며 망하는 길입니다.(28,29)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돈나무를 키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돈보다 사람을 얻습니다. 만약 목자로 살지 않고 돈 버는 데 올인하며 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보다 부자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돈에 몰빵하는 자들이 걸리는 덫에 빠져 있던 것마저 다 날려 먹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혹여 대박을 터뜨려 부자가 되었을지라도 사람을 돕고 살리는 목자의 가치와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면 그렇습니다. 돈으로 속이는 세상 저울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입니다. 최고의 의인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려 만민의 생명나무가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사람을 얻는 생명나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