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자연은 따뜻해진다. 인공구조물이 범람하는 도심에서 외로운 사람을 위한 위로나 마음에 온기가 전해지는 물건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인적 없는 골목길 도린곁에 있는 우체통을 보면 헤어진 벗을 만난 듯 어쩐지 마음이 가든해진다. 어릴 적부터 따스한 마음을 품고 전하는 이웃집 누나처럼 각인된 탓이다. 색이 바랬거나 흠이 없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면 애틋하기조차 하다.
마음이 복잡할 때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영혼의 편지들을 가끔 뒤적인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아리다. 그의 편지에 기교는 없다. 순수 맑음 그 자체인 여린 영혼의 속삭임이다. 그의 편지는 길거리를 지키고 선 우체통을 통해 동생 테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화가 공동체를 꿈꾼다는 편지도 보냈지만 꿈으로 끝났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은 순간의 꿈이었을지언정 오래도록 글로서 살아남아 깊은 울림을 준다. 차가운 철제 상자를 통해 켜켜이 띠앗이 오갔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체통이 있는 골목길은 이야기가 풍성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우체통은 대체로 붉은색이다. 마음을 열게 하는 문이라서 그럴까.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하나 둘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우체통이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유년 시절, 위문편지를 써서 과제물로 낸 것 외 편지를 보내본 적은 없었지만 학교 가는 길 우체통에 늘 눈길이 갔다. 하늘이 높아지는 날이나 바람이 쓸쓸히 부는 날에는 예쁘게 칠해진 우체통 앞에 서서 편지 보내는 꿈을 꾸곤 했다.
읍내는 우체통이 여러 곳 있었다. 우체국 앞에는 커다란 주황색 우체통이 입구에 있었고 극장 파란 페인트칠 대문 기둥에도 빨간 우체통이 멋졌다. 시장 큰 골목 우체통에서는 집배원 아저씨가 매일 편지를 거두어 갔다.
편지지나 우표를 살 형편도 아니었지만 편지를 부쳤다는 읍내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웠다. 편지를 주고받을 이도 펜팔 상대도 없었다. 누나는 종종 편지 부치는 심부름을 시켰다. 신작로에서 서성거리며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
그런 날일수록 아저씨가 지나가는 시간은 들쭉날쭉했다. 기다리다 못해 아이들과 구슬치기나 자치기 놀이에 빠져 편지를 부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부치지도 않은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는다며 우체부 아저씨가 지나갈 시간만 되면 나가보라 성화를 대던 누나 뒤에서 혀를 날름 내밀곤 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과의 소통 방식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우체통이 사라진다. 메일이나 스마트폰 문자 전송이 편지를 대체했다. 며칠 밤을 전전반측 고민 끝에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부치는 열정도 낭만도 없어졌다. 편지를 부친 순간부터 어떤 답장이 올지 애면글면 기다리던 일도 먼 옛날 얘기다.
고독 속에서 살다간 고흐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었던 우편배달부 조셉 룰랭 같은 사람이 그립다. 애인한테서 편지가 왔다고 자랑하던 중학교 국어선생님이 생각난다. 말 한마디 편지 한 줄로 온기를 나누던 아날로그 시대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동네 사랑방이 사라진 것처럼 그들도 추억 속 장면이 되어간다.
온라인 세상으로 바뀌면서 소식을 전하기도 마음을 표현하기도 쉽다. 마음을 보내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삭제도 간단하다. 은근함과 깊은 감정을 나누는 것이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이기도 하다.
우체통이 사라지면서 편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잿빛으로 내려앉은 하늘이 으스레하다. 화단 소나무 옹두리에 늙은 직박구리 한 마리 호졸근하게 앉아 있다.
보내지도 않을 편지를 쓴다. 보낸다 하더라도 답장 없을 편지다. 아침부터 밤까지 머뭇대다 결국 마음속 우체통에 집어 넣는다.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되고 주소가 틀려도 괜찮다. 적응하기 힘든 디지털 세상 골목에서는 스스로 위안거리를 찾아야 한다.
카페나 블로그를 우체통이나 사랑방 삼아 마음을 나눌 수밖에 없다. 직접 대면하여 글을 주고받고 낭송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세상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쓰레기 버렸습니다.. ㅋㅋ 좋은글 와~ 대단하십니다. 이선생님.
아침에 일어나면 집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온갖 쓰레기들이 몰려 다니고 거리에 버려집니다.
틈을 노리던 X들까지 설칩니다.
깨끗한 거리 깨끗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청정한 샘물 같은 곳에 낚시를 던지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다림과 설레임이 있었던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나브로 이미 디지털 세상에 빠져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도 카톡을 주고 받는 것 보다는 직접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는게 좋습니다.
오늘도 소중한 추억을 감상하며 하루를 즐겁게 열어갑니다.
님께서 그 먼곳에서 보내준 디지털 상품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주셨군요.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삽니다.
더운 날씨 몸 건강히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자주 오십시요.. 등업해드렸습니다.
@오영록 감사합니다.
오선생님 ~~ ㅎ
좋은 글 전해주시고 카페에 가입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좋은글 항상 옆에서 뵈는것 같이 온화한 필체가 정겹습니다.
김작가님 감사합니다.
회장님과 오선생님 덕분에 이곳에서 김작가님
글을 자주 대할 수 있게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