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업개론>을 다듬고, 보충 자료를 만들면서 보는 글들이
대체로 1970~80년대 미국 사회사업 이론이란 걸 느꼈습니다.
한국의 사회사업을 공부하다 보면, 이름이 낯익다 못해 오래된 듯한 이론가들을 끊임없이 만납니다.
저메인과 기터만, 셀러비, 로스만, 피너스와 미나한, 코놉카…
이들은 모두 1970~80년대 미국 사회사업의 전성기를 대표한 학자들입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국의 대학 교과서와 강의실은 여전히 이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그럴까?'
이 현상은 단순히 ‘이론의 우수성’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1. 사회사업 교육의 출발선, 미국
한국의 사회복지학은 1950년대 말 미국의 원조와 여러 선교사 속에서 태동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사회복지제도가 자리 잡기 전,
미국 사회사업학교(School of Social Work) 교육과정이 그대로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교수진 대부분은 미국 유학파였고,
그들이 미국 유학 뒤 돌아와 각 대학의 사회사업학과를 세우며 한국 사회복지학의 1세대를 형성했습니다.
한국 사회복지학의 뿌리가 곧 ‘미국식 사회사업 교육의 수입’이었던 셈입니다.
2. 표준 교과가 된 1970~80년대 이론
그 무렵 미국 사회사업은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생태관점, 생활모델, 체계이론, 강점관점, 임파워먼트, 로스만의 지역사회조직 3모델 등
전통적 방법론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활발했습니다.
귀국한 유학파 교수들은 이 시대의 이론을 교재로 삼아 강의했고,
그것이 그대로 한국의 표준 커리큘럼이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사업의 지식 구조는
1970~80년대 미국 사회사업의 ‘골든 에이지’를 거의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3. 학문적 계보 형성과 제도적 관성
미국 유학 1세대 교수들은 구축한 학문적 계보가
이후 세대로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복지학은 안정된 제도적 틀을 형성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지식 체계는 시간이 지나며 ‘표준’으로 굳어졌습니다.
지금의 대학 교과서 대부분이 여전히 당시 이론을 기본틀로 삼고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도 70~80년대 미국 이론을 배우는 것은
학문적 전통이라기보다, 제도와 권력이 이어져온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지속성은 한편으로 교과서 중심의 관성을 만들어,
새로운 이론과 담론이 자생적으로 뿌리내리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4. 그러나, 여전히 배울 가치가 있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이 이론들이 낡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생태, 상호작용, 강점, 임파워먼트 같은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사업의 언어입니다.
문제는 이론 자체가 아니라 ‘적용 맥락’입니다.
미국의 산업사회에서 탄생한 개념을 이제는 한국의 초저출산, 고립사회, 복지관 현장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회사업가들이 이론을 자기 현장에 맞게 다시 번역하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의 몫입니다.
(이론은 가져오지만, 시대에 맞게 재해석합니다.
문제는 평가 방식인데, 시대에 맞지 않은 낡은 틀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5. 현장으로 이론을 되돌릴 때
생활모델은 ‘환경 속 인간’을, 강점관점은 ‘인간의 가능성’을, 로스만 모델은 ‘공동체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이 세 이론이 모두 그 바탕에 ‘사람이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과제는, 이 오래된 이론을 현장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입니다.
이웃 동아리와 같은 작은 주민모임, 한 사람의 일상 회복, 마을의 관계망 중심 실천을
이와 같은 이론으로 설명해내 낼 때, 이 이론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면서도
그렇게 이뤄낸 사회사업가의 말에 주목할 겁니다.
6. 마무리
우리가 여전히 1970~80년대 미국 사회사업 이론을 배우는 이유는
그 이론이 절대적으로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 시대의 유산이 한국 사회복지 교육제도 안에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론을 ‘가져다 쓰는’ 시대를 지나 ‘다시 써내는’ 시대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이 이론을 교과서에서 꺼내 현장으로, 현장의 언어로 다시 적어 넣을 때,
비로소 한국 사회사업은 자기 시대의 학문이 될 겁니다.
'다시 써내는' 사람이야말로 현장 사회사업가이고,
그렇게 실천하며 기록해 나아가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첫댓글 여러 책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것이지, 객관적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사회사업 역사를 주관적으로 서술했을 뿐입니다.
추석 연휴 지나고,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님 가운데 몇몇 분에게 이 내용을 물어봐야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10.07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