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100km를 완주 하였지만 더 멀리 달리고 싶은 나의 욕망은 100km의 울타리를 뛰어 넘고 싶은 충동에 2005년10월 노창진님과 함께 충주호 100마일 대회에 도전 했다 실패 하고 2006년 6월엔 노창진님 진성원님 최락림님 정경우님과 함께 낙동강 물사랑 203km 대회에 참가 했다 103km 지점 까지 밖에 못가고 또 다시 실패 나를 가로 막고 있는 100km를 뛰어 넘는 벽은 너무 높게 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포기 할수는 없는일 도전 하지 않고 어찌 성취 할수 있겠는가 동서화합215km울트라마라톤대회는 대회의 취지도 맘에 들고 광주에서 대구까지 코스도 맘에 들어 작년 부터 참가 해 보고 싶은 대회 였는데 작년엔 대회 날짜가 혹서기인 8월인지라 더위에 자신이 없어 엄두를 못 냈는데 금년엔 울트라 하기에 적합한 5월18일로 대회 날자가 변경되어 나에겐 참으로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일찍부터 참가를 결정 하고 대회 준비에 들어 갔다. 고구려마라톤대회 동아마라톤대회 청남대100km울트라 대회도 모두가 215km를 뛰기 위한 준비 과정이였다. 회원님들과 함께한 일요훈련 퇴근하여 틈틈이 한강변으로 나가 열심히는 아니드라도 항상 긴장 하며 훈련 하는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달리는 훈련 보다는 근력 보강 훈련을 많이 한것 같다. 상체 허리 하체 어느 한 부분 소홀히 할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한 훈련은 다리 근육의 힘을 길러 주는 운동 다리 근력 보강 훈련은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틈 나는대로 아무때나 아무 곳에서나 할수 있어 좋았다 아침저녁 한번에 100회정도 앉았다 일어서기 계단에 발끝으로 서서 온몸 들어 올리기 처음엔 두발로 다음엔 한쪽 발로만 번갈아 가면서 헤일수 없이 많이..... 될수있으면 의자에 앉지 않고 쪼그려 앉거나 무릅꿇고 생활하기 식당에서 밥 먹을때도 마찬 가지였다 부족 하지만 이정도 대회를 위한 준비는 하였기에 결전의날 5월18일 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출발선에 섰다. 24시 정각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63명의 울트라 전사들 광주5.18묘역에서 대구 두류공원내 2.28민주기념탑을 향하여 대장정의 발걸음을 옮긴다 출발과 동시에 나는 기가 죽기 시작 한다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5.18묘역에서 큰 도로 까지 3km쯤 되는데 3km를 다 가도록 63명의 대열이 흩어 지지 않고 한 덩어리로 뭉쳐서 달린다. 큰 도로를 접어 들어서도 선두가 워낙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후미 주자도 분명 오버페이스인줄 알면서도 길잃은 한마리 양의 신세가 될까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아니 따라 갈수가 없었다. 주체측 요원들이 완주 하실려면 천천히 달리셔야 합니다 지금 속도가 너무 빠름니다 하고 말리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16km를 달린시간이 1시간40분 100km대회에서도 이렇게 빨리 달리진 않았다. 20 여km까지 숨 가쁘게 달리더니 서서히 천천히 달리는 주자들이 늘어 나기 시작 한다.나도 천천히 달리는 주자들과 합류 하여 같이 가는데 초반 오버페이스를 한 탓인지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 20km이후 40km까지 가는데 어찌나 힘이 들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지 그 때의 생각에 완주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데 어쩌자고 가당치도 않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 벌써 무너져 내리는가 후회 막급이다. 지금 이 순간 물릴수있는 일이라면 열 번이라도 물려 버리고 싶다 출발 할때 준비한 물2병은 날도 밝기 전에 동나버리고 3명의 주자와 같이 가는데 그 들도 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가는 길에 민가가 있어 여기저기 물을 찿아 보지만 끝내 찿을수 없었고 날이 밝아서야 어느 시골 마을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를 만나서야 물 문제를 해결 할수 있었고 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 할수 있었다. 밤새 달려 왔으니 식당에 들러 배고픔을 해결 하고 소화제와 진통제 근육완화제를 먹어 밤새 좋지 않았던 컨디션 회복을 기대해 본다. 나를 포함해 4명의 주자가 식사를 같이하고 서서히 출발 하는데 한 사람이 우리 3대1 주법으로 가잔다 3대1 주법이란 전봇대 간격 3개를 달리고 1개를 걷는 주법을 말 한단다. 그 대로 했더니 오랜 시간을 달려도 다리가 별로 피로 하지 않고 괜찮았다 그런식으로 우리 4명의 주자는 109km c.p를 향하여 꾸준히 가지만 앞서 가는 주자도 뒤 따라오는 주자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초반 오버페이스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컨디션이 회복되어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던 지리산 자락 큰 고개도 별 무리 없이 넘어 109km c.p까지 17시간 30분 만에 도착 제한시간 보다 1시간30분 정도 여유 있게 4명의 주자가 동시에 들어 왔고 3명의 주자가 아직 도착 하지 않았단다 많은 주자들이 식사한 다음 식당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다 나도 식사한 다음 오후6시쯤 한쪽을 비집고 누워 잠 들었다 일어나니 6시40분이다. 행사 요원과 포기자 몇 명만 있을뿐 주자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서둘러 짐을 찿아 챙길것 챙기고 하다 보니 7시쯤 출발이다. 앞서간 주자를 만날까 싶어 1시간쯤 부지런히 달려 보았지만 아무도 만날수가 없어 난감 해지기 시작 한다. 날은 어두워졌는데 손전등을 준비 하지 못한 것이다. 손전등을 비춰 길 안내도를 읽고 이정표를 비춰 가야할 방향을 알아야 하는데 깜깜한 밤에 장님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두운밤길 한참을 가다 보니 불빛이 환한 작은 동네가 나타난다 바로 길옆이 아니라 500m쯤 들어가 작은 손전등이 없어 할수없이 커다랗고 무거운 손전등을 사들고 나오니 1km를 헛 고생 했으나 이제는 안심이다.서산에 잠깐 걸려 있던 초승달도 이내 사라져 버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거창의 깊고 깊은 산골자기 길을 나홀로 가고 있다.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고 2차선 좁은 도로를 자동차 만이 가끔씩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지나갈 뿐이다. 또 지방의 경찰 차량이 주자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싶어 몇 번의 순찰을 돌아 주는 고마움을 보여 주기도 했다. 깊고 깊은 산골짜기 길을 오르고 오르니 휴게소 같은 규모가 큰 식당에서 낮에 동반주 했던 한 사람을 만날수 있었다. 그 사람 저 체온증으로 몸이 떨려 큰일 날번 했었다며 식당 주인에게 바지 하나를 얻어 입고 같이 길을 나서 또 다시 동반자가 되었다. 두번째의 밤을 보내고 다시 달리고 달리니 낮12시 쯤에는 190km쯤을 가고 있었고 완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 났다. 그사이 주자는 5명으로 뭉쳐 있었고 꼴찌 주자는 여기 다섯명중 한사람일것 같은데 내가 꼴찌로 이름을 올리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혼자 치고 나가 쉬지 않고 5km 정도를 계속 달렸더니 뒤따르는 주자들이 보이지도 않는다.남은거리 22km 남은 시간은 5시간30분쯤 충분히 완주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김춘규 회장님께 전화하고 또 다시 3km를 계속 달렸다 남은 거리는 19km 이제는 됐다 싶어 식당에 들어가 밥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몸 상태가 이상하다 졸음이 몰려오고 물먹은 솜마냥 몸이 무거워 지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버린것 같다. 발바닥은 여러군데가 물집이 생겨났고 허벅지는 수많은 마찰로 해서 벌겋게 달아 올라 쓰라려 오고 발등은 마비되어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온 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19km가 다시 아득한 거리로 느껴져 심신이 따라 주지 않으니 상처진 이 몸 끌고 어이 갈거나 걱정이 태산 같다 밥이 나와 한 숟갈 떠 넣으니 속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켜 먹지 못하고 국물만 조금 마시고 식당 밖에 나와 시원한 바람 쐬고 있는데 어지럽기 까지 하다 뒤처진 주자들이 다시 나를 앞질러 가지만 온몸이 상처투성이 이고 체력은 소진 되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의욕을 상실해 버린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빨리 가야겠다는 과욕이 또 화를 불러 일을 그르치게 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수개월 동안 힘들게 했던 훈련의 성과로 이틀 밤낮을 달려 200km 까지 왔는데 고지를 눈앞에 두고 접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아깝다 마음 같아선 이 힘든 고통의 순간을 지금 당장 벗어나 버리고도 싶지만 여기에서 이대로 주저 앉을수는 없다 기어서 라도 가는데 까진 가야 한다 몸을 추스리고 정신을 가다듬어 걸어 보지만 속도는 나지 않고 쓸어질것만 같으니 괜히 부질없는 오기를 부리나 싶어 슬퍼지기 까지 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힘든 길을 가는데 오늘 월드컵마라톤클럽 창립5주년 기념 행사 도중 김춘규 회장님이 다시 전화하여 잘 달리라는 격려와 꼭 완주하라는 여러분들의응원 메시지 전화를 통하여 들려오는 월마클 동지 여러분의 힘찬 박수 소리와 화이팅은 다시 힘을 얻게되고 내 능력의 한계점을 수없이 넘나들면서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광주 에서 대구까지 머나먼길 215km를 완주 할수 있었던건 월마클 가족 모두의 큰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한 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