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쯤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내리는 빗속에 버스에서 내린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사이요"宮殿(Palais de Chaillot)이라고 하는데 가까이 서니 너무 크고 어두워 카메라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이요"宮殿(Palais de Chaillot)은 나폴레옹이 만들기 시작했으나 그가 몰락하면서 건축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후 방치되었다가 1937년 博物館으로 完城되어 1991년 世界文化遺産으로 등록되었단다.
"에펠탑"(Tour Eiffel)
조금은 거센 비가 내리고 있지만 볼 것을 봐야 하니 부지런히 이동을 한다.
우리가 가는 곳은 宮殿옆의 "트로카데로"(Trocadero)廣場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장소다.
빗속에서도 사진 촬영하는 觀光客들과 戀人, 家族들로 가득차 무척 시끌벅적하다.
"에펠탑"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잠깐이지만 "에펠탑"을 구경한다.
애초에 에펠탑을 오르는 것은 일정에 없으니 오히려 밑에서 쳐다 보는 것보다는 이게 더 좋다.
에펠탑 밑으로 끝에 보이는 건물은 "나폴레옹"이 다녔던 陸軍 士官學校 건물로 현재는 國防大學 이라고 한다.
"에펠탑"(Tour Eiffel)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革命 100周年을 紀念하여 開催된 世界 博覽會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博覽會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단다.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만든 이 塔은 原來는 博覽會때만 전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당시 파리 市民들은 都市와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고철덩어리"가 美觀을 해친다고 반대했기 때문이였단다.
특히 파리의 藝術과 文學界의 名士들의 反對가 심해서 1909년에 撤去하기로 했지만 電波技術의 발달로
最新 送信 안테나를 세우기에는 이곳이 제일 적합하여 철거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단다.
에펠탑이 당시에는 世界에서 가장 높은 建築物이였기 때문에 送信 안테나를 세우기에는 最適이였기 때문이다.
건물 全體가 鐵骨 構造로 되어 있어서 강한 바람에도 13cm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앵발리드 성당"(Église du Dôme). 또는 "생루이 데 앵발리드 성당"(Église St-Louis des Invalides)
"세느江"(Seine River)의 夜景을 보러 가는 길에 화려한 建物이 보인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나폴레옹"의 무덤이란다.
잠깐 차를 세워 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니 가이드가 말을 하여 운전기사가 기꺼이 建物 正面에 세워 준다.
알고보니 그냥 "나폴레옹"의 무덤이 아니다.
화려하게 지어진 이 "돔"(Dôme) 聖堂은 17世紀 프랑스 建築을 代表하는 建物이라고 한다.
"앵발리드"(Invalide)는 "프랑스語"로 負傷者나 傷痍軍人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聖堂의 이름이 "앵발리드"인 것은 부근에 있는 軍士 博物館이 부상한 軍人들을 위한 병원이었기 때문이란다.
"세인트 헬레나 섬"(l’ile de Sainte-Helene)으로 亡命한 나폴레옹이 죽자 그의 유해와 유물들을
이 성당의 지하에 안치시키기로 하고 1840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운구를 해 왔다.
그러나 棺과 "돔 성당"의 地下에 記念館을 짓는 데 약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1861년 4월 2일이 되어서야 皇帝의 遺骸는 "비스콘티"(Visconti)가 設計한 7重의 棺에 入棺되어 안치되었다.
관 주위에는 "프라디에"가 製作한 나폴레옹이 치룬 戰鬪의 象徵인 12명의 勝利의 女神들이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돔 聖堂"의 1층에는 歷代 有名 프랑스 將軍들도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배가 출발하는 시각이 夜景을 보는 첫번째 배라고 한다.
바또 무슈 (Bateaux Mouches) 夜景 튜어 표.
하도 한국인이 많이 오니 안내지도도 한글로 만들어 놓았다.
선착장에서 기다렸다가 배를 탄다.
"에펠탑" 上流쪽으로 멋진 聖堂의 尖塔이 보인다.
아무리 찾아 봐도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나중에 검색을 해 보니 "아메리칸 처치" (American Church)라고 하는 초교파(超敎派)의 敎會란다.
요즘 日本의 젊은이들이 新婚旅行겸 해서 유럽 聖堂에서 멋진 結婚式을 하는게 流行이라고 한다..
그런 것을 겨냥해 結婚專門 旅行社들이 "유럽 결혼 旅行 商品"을 팔고 있단다.
이곳에 있는超敎派 敎會인 "아메리칸 처치" (American Church)에서도 結婚式 主禮만하는 목사들이 있단다.
배가 움직여도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여 좋은 사진을 찍기는 틀렸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
"세느江"(Seine River)에 있는 37개의 다리 중에 이 다리가 제일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센江"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옛날 학창시절에 들었던 노래에서는 분명 "세느"라고 발음한 것으로 안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
"콩코르드 다리"(Pont de la Concorde)
"레지옹 도뇌르 박물관"(Musé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
"레지옹 도뇌르 박물관"은 "오르세 미술관" 옆에 있는 박물관으로 "레지옹 도뇌르"훈장에 관한 것을
무료로 전시하는 곳이라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
폴 세잔의 "석류가 있는 정물" 등 많은 名畵를 볼 수 있는 곳이란다.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다리"(Pont du Carrousel)
이어서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 우리가 다녀온 루브르 박물관이란다.
이 다리가 루브르 박물관과 직접 연결된 다리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과 카루젤 다리.
멀리서 보는 루브르 박물관.
아름다운 프랑스 학사원 "앵스티투트 드 프랑스"(Institut de France)
1795년 출범한 프랑스 最高 學術機關으로 프랑스 전역의 모든 학술기구와 박물관들을 직간접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퐁네프다리"(Pont Neuf)
"퐁네프 다리"는 몰라도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 Neuf)이란 映畵는 대부분 알고 있다.
그 映畵의 現場이랄까?
"네프"(neuf)는 새로운(新)이라는 뜻으로 ‘퐁네프’는 "새로 지어진 다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1578년 ~ 1607년에 完工되었는데 이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세느강에 목교(木橋)만 있었다고 한다.
이 木橋들이 낡아 새로 石橋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石橋가 "퐁네프"라고 한다.
그후 다른 다리들도 모두 새로 만들었지만 이 다리는 이름과는 달리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었다.
길이가 총 238m이고 12개의 아치가 있는데 시테(Cité)섬을 지나 건너간다.
각 아치에는 마스카롱(Mascarons)이라 불리는 285개의 조각들이 있다.
"퐁네프다리"(Pont Neuf)
우리가 탄 배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쁘띠다리" (Pont Petit)
"쁘띠 다리"는 세느 江의 다리 중 길이가 두 번째로 짧은 32m의 다리란다.
로마 시대 때부터 시테 섬을 연결하는 최초의 木橋로 수차례 적의 침입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1186년에 파리 主敎에 의해 石橋로 재건축 되었단다.
"노트르담 성당" (Notre-Dame de Paris)
조금 더 올라가면 "노트르담 대성당" (Notre-Dame de Paris)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트르담 성당" (Notre-Dame de Paris)
"노트르담 성당" (Notre-Dame de Paris)
"노트르담 성당" (Notre-Dame de Paris)
"쉴리 다리"(Pont de Sully)
이 다리도 중간의 섬을 통과하므로 "파레젤 다미에뜨"와 "파레젤 드 콩스탕티느"로 나뉘어 불린다고 한다.
원래 이 다리는 懸垂橋로서 步行者를 위해서만 쓰였는데 老朽하여 새로 만들은 다리라고 한다.
우리가 탄 배는 여기서 돌아 내려간다.
"파리 市廳舍 ("Hôtel de Ville Paris)
"콩시에르주리" (Conciergerie)
"콩시에르주리" (Conciergerie)
파리 法院의 一部인 "콩시에르주리"는 元來는 宮殿이었는데 "프랑스 革命"때는 監獄으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루이 16세의 王妃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등 4,000여명의 수감자가 이곳에서 처형되었단다.
지금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內部 修理를 하여 監獄의 모습을 再現해 놓았다고 한다.
당시 감옥으로 쓰였던 내부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던 방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학사원 "앵스티투트 드 프랑스"(Institut de France)
잠시 주춤하던 비가 갑자기 폭우로 변한다.
배는 선착장을 지나 더 내려간다.
배를 돌려서 오기 위함인듯하다.
덕분에 빗속이지만 에펠탑을 가까이서 선명하게 찍을 수가 있었다.
"비르하켐 다리"(Bir-Hakeim)
"비르하켐" 다리는 映畵 "리셉션"에 나오는 다리로 有名하단다.
2층구조로 되어 있는 다리로 위로는 전철이 다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일하게 내가 아는 "미라보" 다리를 못봤다.
오는 길에 가이드에게 물으니 생각을 해 보더니 내일 볼 수 있을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