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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재~월출산천황봉~미왕재~도갑사
목포-광양간 고속국도상의 강진 나들목을 빠져나와 강진군
성전면 소재지 한복판을 경유하여 13번차도로 접어든다.
그런 뒤,13번 차도를 따라 영암과 광주 방면으로 이십리쯤
가면 만나게 되는 고개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 불티재다.
불티재 고갯마루 좌측 어름에서 기맥은 이어지는데,기맥의
산길이 꼬리를 보이는 곳에 월출산국립공원에서 세워놓은
'출입금지'입간판이 기맥의 산꾼들을 주뼛거리게 한다.
출입금지를 고수하고 있는 국립공원과 금지의 명분이 희박하니
무슨 수를 사용해서라도 통행을 하고야 말겠다는 등산인들
사이의 해묵은 숨바꼭질인 술래잡기 놀이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거다.
이런 경우에 술래는 당연직인 국립공원이 아니겠는가. '술래'는
원래 순라(巡邏)가 원어인데,술래잡기 놀이에서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차례를 당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술래잡기 놀이는
술래가 숨은 아이를 찾아내면 그 아이가 거꾸로 술래가 되는
놀이다.숨바꼭질 놀이도 이와 흡사한 놀이인데,출입금지구역을
드나들며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과 국립공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행태는 술래잡기나 숨바꼭질과 어슷비슷하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술래잡기처럼 술래를 찾아내면 찾아낸
아이는 거꾸로 술래가 되는 게 아니고, 술래 대신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 다를 뿐이다.
술래치고는 굉장한 권력을 갖춘 술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술래가 들킨 아이에게 술래의 기능을 건네 주어야 합당한 일인데
말이다.벌금이 미약한 탓인지 숨바꼭질은 쉴사이 없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이를 어길 경우에는 징역이나 금고에 처 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그러한 구역의 산길을
보면 누구든지 다 아는 사실이 있다.'자연탐사'라는 명분으로
누구누구들은,누구누구들은 그곳의 술래와 잘 알고 가깝다고
해서 거리낌없이 드나든다고, 바람 결을 타고 이런 소문들이
허공을 떠돈지는 꽤나 세월이 흘렀다.
통천문(通天門)
어쨋든 자정이 다 된 무렵에 버스에 올라 고양이나 노루처럼
깊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자주 뒤척거리며 깨기도 하고, 앉은 채로
자는 말뚝잠 속에 네 시간 동안 옴나위없이 시달렸으니, 사지는
뻐근하고 묵지근 한 것이 찜질방에서 두어 시간 땀이나 좋이 흘
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어섯눈을 비벼가며 산행채비에 나선다.
기맥의 산길은 뚜렷하고 번듯하다.그러나 잡목과 넝쿨 등이
다소 거추장스럽게 이동을 거스른다.어제 내린 비로 초록의
잎새들은 물기를 잔뜩 움켜쥐고 희번덕거린다.
들머리를 들어서면 곧바로 이동통신탑을 지나가게 되고, 아직도
미몽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잠시잠깐 기맥의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을 겪는다.렌턴의 하얀 불빛이 산길을 따라 줄을 잇는다.
머지않아 기맥의 산길은 기맥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들어서게 된다.
하치마을(좌측1.4Km)과 천황사 주차장(우측2.4Km) 사이에
닦여진 노루재라고 불리기도 하고 누릿재라고도 일컫는 임도의
고개다.그런데 임도 건너 편의 기맥의 산길을 가로막은 구조물이
앞을 가로 막아서고 있다.그 구조물은 굵직한 대나무를 격자무늬로
다그지게 엮은 목책이다.
대나무 방책을 뒤로하는 산길은 뚜렷하게 이어지지만, 잡목들의
잔가지들과 키가 사람 허리춤까지 무성한 조릿대들이 드리워진
산길은 겉으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게다가 모든 이파리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서 그들을 헤치며 산길을 이으려는 기맥의
산꾼들은 자연스레 찬물로 뒤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잡목들의 잔가지와 무성하게 우거진 조릿대 숲 속으로
숨어버린 산길을 좇는 일이 시급하다.겉으로는 눈에 띠지 않으니
일일이 헤치고 젖혀야 하는 성가심이 보태진 거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 속에 묻혀버린 기맥의 산길은
겉보기와는 달리 뚜렷하고 온전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 치받이 오르막을 올려치니 작으마한 헬기장 분위기의 공터로
들어서게 되는데,가로70~80cm에 높이가 2m쯤되보이는 동글동글한
잿빛의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있는,검버섯 같은 얼룩의 비석이
하나 우뚝 서 있다.비석에는 한자로 글이 세로로 새겨져 있는데,
무슨 내용이 새겨져 있는지는 알아보기가 쉽지않은 상태다.
그곳을 벗어나는 산길도 이전의 산길이나 다름없이 무성하게 우거진
조릿대의 숲 길이다.이제 온 몸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물로 뒤발을
한 꼴이 되었다.
잡목들의 무수한 잔가지, 그리고 키를 덮을듯한 무성한 조릿대들을
헤쳐나가기도 버겁게 느껴진다.이제는 발걸음을 떼면서 손으로
헤쳐나가는 방식대신 앞 발로 한차례씩 더듬거리며 기맥의 산길을
좇는 행위가 손쉽게 느껴진다.크고 작은 바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너럭바위와 마당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멧부리를 슬쩍
내놓기도 한다.암릉의 치받이 오르막이 시나브로 가파르게 이어진다.
치받이길은 벼랑에 어렵사리 마련한 잔도처럼 꼬리를 잇는다.
먼동이 틀 무렵이 되었는지 사위는 분명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파른 비탈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다.그들 사이로 치받이
오르막 산길은 미로처럼 꼬리를 잇는다.어둠이 가시면 밝은 날이
오게 마련인데, 밝음은 짙은 운무의 등쌀에 범접을 못하고 있다.
입때껏 어둠의 뒤편에 있었던 사위는 이제부터는 짙은 운무 속에
갇혀 버리게 되었다.시야 확보가 불과 몇 십미터에 불과한 숲 길이
꼬리를 보이지 않고 이어진다.낡은 고정로프의 도움으로 바위
절벽을 올라서고 축축한 물기가 번질거리는 바위들을 넘어선다.
바람의 결이 좀더 세차게 느껴진다.그리고 산행시간과 치받이
오르막의 경사각으로 가늠해 보건데, 사자봉 삼거리가 턱밑으로
다가온 게 틀림이 없어 보인다.
월출산 흔들바위
사자봉 삼거리로 올라서는 기맥의 오르막 산길을 목책이 가로막아
선다.목책너머에는 천황사 방면에서 출발하여 구름다리를 건너
천황봉으로 향하는 길목이 기다리고 있는 거다.천황봉을 0.8km쯤
남겨둔 지점이다.운무의 농도가 더욱 짙어진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의 기맥의 산길은 국립공원의 적극적인 관리를 받는
산길이 된다.가파른 경사의 산길에는 어김없이 계단이 마련이
되어있으며 고정로프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경포대(좌측2.6km)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경포대능선
삼거리를 지나면 산길은 더욱 가파른 행색을 띠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긴 오르막 계단이 손짓을 한다.천황봉 정상을
0.4km가량 남겨둔 지점이다.긴 오르막 계단이 다하면 통천문이
산객을 기다린다.통천문은 깎아지른 바위절벽에 집채만한 바위가
바위절벽에 기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제풀에 벼랑의 바위절벽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로 인하여 생긴
틈바구니는 사람 한 두 명이 드나 들 만한 자연스런 석문의 꼴을
하고 있는 거다.
남근바위
이 통천문은 천황봉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100m쯤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데,천황봉을 오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통천문에 들어서면 드넓은 영암 고을과 산야, 그리고 구불거리며
유유자적하는 영산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의 전망처
이기도 하다.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화려한 경색은 수 차례 올랐던
기억의 저편의 추상에 불과하다.짙은 운무가 스크린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통천문을 빠져 나가면 치받이 산길은 더욱 가풀막
진다.가풀막진 치받이 오르막 계단을 다 오르면 너른 마당바위와
너럭바위들로 뒤덮혀 있는 널찍한 멧부리에 오르게 된다.
해발 809m의 월출산의 정상 천황봉이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 달이 뜬다
에헤야 데야 에헤야 데야
에헤야 데헤야 어사화 데야
달이 뜨는 아리랑 님보는 아리라~앙
우리처럼 달(月)을 그렇게 좋아하고 가깝게 여기는 민족도
세상에 흔치않다.모든 행위와 정서까지 온통 달로 시작을 하여
달로 마감을 하곤 한다.해로도 한 번쯤은 해볼 만 한데 그럴
틈을 남겨두지 않는 매정한 구석도 보인다.한낮의 햇살이
만건곤 할 때는 기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해(太陽)
처럼 더 긴요하고 밀접한 관계가 없으련만 정감을 쏟는 상대는
해가 아니고 달로 기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덕과 혜택은 해에게서 뻔질나게 받아가면서 정과 사랑은 달에게만
쏟아붓고 있으니 해가 생각하기에는 환장하고 복장이 터질 일
아닌가.
베틀굴(음근바위)
거개의 행위를 양지에서 하는 것보다 음지에서 하는 것을 지향
하였다.그리고 계수나무와 토끼를 가슴 속에 유토피아처럼
깊숙히 새겨놓았으며, 낮의 사랑보다는 달밤의 은근한 사랑에
무게를 싣었던 관계로 남녀의 상열지사도 으레껏 밤에 이루어졌던
거다.가족의 염원을 달에 기원하는 풍속은 원초적인 의례의
마음가짐 이전의 우리 민족의 고유한 유전자 같은 것이다.
달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니 월출산(月出山)이 일출산(日出山)으로
이름이 바뀔 리는 없을 게다.그러나 우리의 달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과 정서는 차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음지에서보다는 양지에서,감추고 숨기려는 사랑보다는 드러내놓는
사랑으로,계수나무와 토끼의 한정된 정서보다는 무궁한 세상으로의
일탈을,은근과 끈기보다는 적극적이고 치열함으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즈음이다.
삼각형 꼴의 커다란 인조석에 월출산 천황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빗돌이 정상 한복판에 우뚝하고, 그 옆으로는 또 다른 매끈하고
기름한 타원형의 비석도 눈에 띤다.'月出山 小祀址(월출산소사지)'
라는 글자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작은 제사 터가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을 기념하는 빗돌인 거다.제사의 대상은 월출산 산신령이었을
경우도 있었을테고, 달을 그 대상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해(太陽)를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으리라는 상상은 꽤
설득력이 있을 게다.
도선국사비를 지고있는 돌거북이
처연하게 운무가 드리운 천황봉을 뒤로하는 가파른 내리받이
산길로 접어든다.구정봉과 향로봉을 지나서 이곳에서 5.8km의
거리에 자리한 천년고찰 도갑사 방면으로 첫 걸음을 떼는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은 계단이 철저하게 안내를 맡고 있다.짙게 낀
운무로 구정봉과 향로봉을 비롯한 화려한 조망은 추억 속에서
꺼내 든 추상으로 대신해 볼 수밖에 없다.
가파르게 내려서는 계단을 200여 미터쯤 내려서면 산길 우측으로
힘이 장사인 사내가 밀어 제끼면 곧바로 절벽으로 구를 듯한
미니 흔들바위가 눈길을 끈다.
미니 흔들바위를 뒤로하면 머지않아 '돼지바위'를 부연설명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짙게 드리운 운무로 가늠은 어렵지만
내리막 우측으로 불쑥 솟구쳐 있는 암봉을 이르는 입간판인데
짙은 운무로 거뭇한 실루엣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겠다.
돼지바위를 지나면 '남근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직전의 장소에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그 내용을 살펴보면,이 남근바위의
끄트머리에는 산철쭉이 생존하고(2008년) 있었는데, 2012년에
고사된 것을 2014년에 다시 복원시켜놓았다는 사실과 구정봉
언저리에 자리한 음근바위(베틀굴)와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 담겨있는 입간판이다.
도갑사의 오층석탑
남근바위 입간판 앞을 지나서 계단의 안내를 받아가며 바위
절벽을 올라서면 곧바로 마주치게 되는 기암이 소위 남근바위
이다.'남근(男根)'이라고 일컬으면 점잖은 표현이고, 소위
'자지'라고 부르면 천박한 표현이 되는지 혼란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자지를 자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보지를 보지로
부르지 못하는 까닭도 기실은 달의 정서가 끼친 부정적 인식은
아닐까.풍향계가 세워져 있는 바람재 삼거리,좌측으로 보이는
산길은 경포대(2.5km) 쪽으로의 등하행 산길이며 기맥의
산길은 맞은 쪽으로 보이는 등성이 길이다.고갑사까지는
4.5km를 남겨둔 지점이라고 산행안내 이정표가 귀띔을 한다.
구정봉(우측)으로의 산길이 나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접어
들면 머지않아 구정봉으로 오르기 전의 우측 어귀의 바위절벽
아래에 거뭇한 행색의 석굴이 눈에 들어온다.베틀굴이다.
임진왜란 당시 가근방의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 따라 생긴 이름이다.안내문을 살펴보면,
이 굴의 깊이는 10m쯤 되는데,굴 속에는 항상 음수가 고여 있어
음굴(陰窟) 또는 음혈(陰穴)이라 부르기도 하여 이는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쪽에 있는 남근바위를 향하고 있는데
이 기묘한 자연의 조화에 월출산의 신비를 더해주고 있다고.
도갑사의 돌확
물기로 번질거리는 비탈진 바윗 길을 오른다.짙은 운무에 보태진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몇 십미터도 가늠이 안 되는 운무가
온 누리를 뒤덮고 있다.거기에 바람까지 한몫을 차지하려 든다.
구정봉을 올랐다가 내려서서 500~600m 거리의 산비탈에 자리한
국보144호 마애여래좌상을 다녀 오겠다는 계획을 접어야 겠다.
길목마다 '출입금지'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자제를 하기로 한 것이다.
마애여래좌상으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갈림길을 지나면
헬기장이 기다린다.
헬기장을 뒤로하면 머지않아 또 다른 헬기장을 가로지르게 되며
집채만한 선바위 형태의 바위가 멧부리를 이루고 있는 향로봉의
우회 산길을 수긋하게 이어 나간다.향로봉을 뒤로하는 산길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그러한 행색의 산길을 줄곧 따르면 세번 째의
헬기장을 또 만나게 된다.그리고 곧바로 만나게 되는 억새밭이
사거리 갈림길이 나 있는 미왕재다.시각은 일곱 시가 채 안 되는
싯점이다.이곳에서 도갑사 주차장까지는 기껏해야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될 뿐인데, 등산을 마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먼젓 번에 올랐던 도갑산을 다시 한 번 더 올랐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오면 될 게 아닌가.
도갑사 광제루
출입금지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으며, 갈색의 통나무로
방책까지 세워가며 막아선 구역을 스스럼없이 타고 넘는다.
억새밭이나 다름없는 헬기장을 지나고 잡풀과 잡목들의
거추장 스러운 기맥의 산길을 한동안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돌연 중동무이를 하고 발길을 돌린다.
핑게라고 해두자.그동안 짙은 운무와 함께 불어닥치는 바람과
천황봉을 지나고부터 그런대로 축축했던 옷가지들이 어지간히
수분제거가 자연스레 이루어져 상쾌한 기분이었는데,
또다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숲 길을 잇는 것에 대한 짜증이
새삼 솟구친 거다.
미왕재 사거리에서 도갑사까지는 2.7km에 불과한 거리다.
게다가 완만한 내리받이 산길이라니.'낙뢰다발지역'이라고
써 있는 입간판을 뒤로하고 도갑사로의 내리받이 계단길로
접어든다.이러구러 구름에 달 가듯이 사뿐사뿐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하다.더 이상의 애면글면하고 기신거리며,
헐떡이고 팥죽땀을 쏟을 만한 산길이 아님을 수 차례에 걸친
기억의 파편들이 깊숙하게 생각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도갑사 일주문
도갑사 경내로 접어드는 어귀에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의
비각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도선국사비는 엄장한 덩치의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돌거북의 등짝에 세워져 있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은 용(龍)이 대부분인데,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이라니.경내의 뒷 편으로 들어서니 팔작지붕의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층하를 두고 2층의 대웅보전이 잇달아
자리하고 있다.그리고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오층석탑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된 시기에 다섯 층으로 돌을
깎고 다듬어서 쌓은 석탑이다. 거개의 석탑들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2층 누각형태의 광제루를 지나면, 사천왕이 수문장처럼 자리한
해탈문을 지나가게 된다.천지사방을 진호(鎭護)하는 네 신(神),
즉, 수미산의 중턱에 있다는 사천왕의 주신인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서쪽의 광목천왕 그리고 북쪽의 다문천왕이다.
여느 사찰의 사천왕 상처럼 무서운 모습이 아니고 비교적 부드럽고
온화한 풍모가 풍겨나는 사천왕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정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근심없는 부처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그러나 속세를 벗어나는 이속의 과정은
사천왕 네 분의 사찰의 과정을 거쳐야 만이 가능하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나 옛 적의 봉건시대에 자행하던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은 아니더라도 회개하고 반성하는 저승의
연옥 같은 과정은 아닌지 모른다.
수령480세의 팽나무
해탈문을 무탈하게(?) 빠져 나가면 곧바로 '월출산 도갑사'라고
써 있는 커다란 현판의 일주문이 기다린다.일주문을 지난다.
그리고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개울에 걸쳐있는 월인교
(月印橋)도 무탈하게 건너간다.오늘 산행의 날머리이자, 잠시
잠깐이지만 속세를 슬그머니 벗어났다가 곧바로 다시 산문을
거쳐 이승으로 안전하게 되돌아 온 거다(8시).
월인교를 건너서면, 길 우측으로 쇠지팡이 십여 개의 도움에
몸을 간신히 의탁한, 키는 8미터에,몸피의 둘레는 440미터에
달하고 나이는 무려 480살이나 걸터듬을 한 팽나무 한 그루가
힘겹게 자리보존 하고 있다.때는 조반을 시작할 무렵이다.
(2017,6/8)
★ 땅끝기맥 구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