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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집의 열쇠를 가지라(2018.2020.3.15)
사22:15-25
할렐루야
코로나19로 인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속히 코로나19가 멈추도록 전 국가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도 예배실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라이브 방송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라이브 방송을 보시는 분들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실에 참여한 성도여러분에게도 비록 마스크를 쓰고 드리더라도 정성으로 드려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촬영하고 있는 도경군 감사를 드리면서 방송 보시는분들 누가 들어와 있는지 댓글로 표해주시기를 바랍니다.(네. 많이 들어와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인격은 두리뭉실해도 무방하지만 신앙생활은 두리뭉실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확실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타협을 몰랐습니다. 신앙이 확실 하려면 말씀에 확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아담과 하와가 왜 무너졌습니까? 말씀에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30년을 넘게 예수믿어도 말씀 한구절 모른다면 걱정입니다. 한 말씀은 다 알고 게실줄 믿습니다. 같이 외워보겠습니다. 외우는 것이 어려우면 노래로 해 봅니다. 요3:16절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라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에수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새을 얻으리리로다’할렐루야 말씀에 확실하지 않으면 신앙의 기초가 다 무너지고 맘니다. 그러나 성경도 두리뭉실하게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말씀이라도 내 인생 가운데 정확하게 붙드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진 분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과 심령에 확실히 박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씀하신 성경이 어디인가? 계3:7절 말씀처럼‘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을 붙들고 기도하라’ 말씀이 확실치 않으면 집안도 교회도 쑥대밭으로 만들게 됩니다. 확실한 말씀이 나를 주장하고 다스리시는가? 내 인생을 주장하는 말씀이 있는가? 기도할 때도 정확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입으로만이 아니라 나를 주장하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암송하시기를 바랍니다. 길을 갈 때, 기도할 때, 여러 가지 일을 만날 때 말씀을 붙들어야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 내 길을 인도해 주소서’라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다가도 꿈속에서라도 내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검진 하다가 보면 수면 내시경을 합니다. 깨어날 때 조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큰일 납니다. 여러분은 경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번 병원에서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깨어날 때 아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고생하고 있으니 아내이름 ‘정경희 어디있어’하고 이름을 불렀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다른 것을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이 소리를 계속 반복적으로 하더랍니다. 그래 간호사가 이분은 목사님인가보라고..깨어나니. 목사님이세요 해서..네.. 상주감리교회 목사입니다. 왜요. 했더니 계속해서 ‘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이 소리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목사 맞지요. 여러분의 다임목사가 그랬답니다.
마16:16절‘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합니다. ‘주님, 그동안 제가 스스로 왕 노릇 하며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주로 모시며 살지 못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내 맘대로 살아왔습니다. 요나 같은 죄인임을 회개합니다’,‘내 안에 주님이 사십니다’,‘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주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주님은 나의 왕이십니다’,‘나는 주님의 통치를 받습니다’,‘나는 이제 주님으로 삽니다’,‘주님으로 사는 나는 더 이상 염려 근심하지 않습니다’,‘주님으로 사는 나는 평안합니다’,‘주님으로 사는 나는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1.우리가 가져야 할 그 열쇠가 무엇일까요?
천국 열쇠입니다. 마16:16절‘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말씀이 바로 천국의 열쇠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열쇠는 천국 열쇠입니다. 다른 열쇠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천국열쇠를 가지지 못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한 부자처럼 꿈속에 큰 창고의 열쇠를 쥐고 눅12:19절‘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의 열쇠입니다. 잠3:6-8절‘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했습니다.
몸이 불편하십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의 열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열쇠는 바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고 그것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나님께서 내신 의학이나 상식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악을 떠나는 것이 건강의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내시니 육신의 약이 되고 악을 떠나면 영혼에 성령이 임하시니 영혼의 약이 됩니다.
성공의 열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열쇠가 무엇일까요? 마6:33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이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도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돌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머리 좋고 재능 있고 배경 있고 여건이 좋은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 나는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낙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시되 염려할 것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는 성공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열쇠가 있습니다. 마7:7-8절‘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요즘 열쇠는 참 신기한 것이 많습니다. 비밀번호만 누르면 열리는 것은 보통이고, 주인의 음성을 인식하여 문을 열어 주거나, 손만 대도 주인의 지문을 인식하고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기술은 태초부터 있던 것들입니다. 마인드 컨트롤이 되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생각만 해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응답하십니다. 요즘 핸드폰이 발달되어 있지만 전자파가 얼마나 강합니까? 그러나 기도는 전자파도 없습니다. 핸드폰은 마음의 소리는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께 열납이 됩니다. 하나님과 통화는 비용조차 들지 않습니다.
크게 되는 열쇠가 있습니다. 막10:43-44절‘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크게 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쇠를 많이 가질수록 좋습니다. 무슨 열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성경 속의 이 열쇠로 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의 문이 열리고 건강하고 성공하고 능력 받고 크게 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과 견주려 하였던 셉나를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히스기야 왕과 관련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정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우상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회복시킨, 정직하게 행하는 훌륭한 왕이었지만, 교만이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벽을 향하여 기도하자 여호와께서는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히스기야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남 유다와 동맹관계에 있던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보냈습니다.
바벨론은 원수의 나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되는 나라였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방 종교와 우상숭배자들과 이단들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벨론과 평화를 유지하려는 목적은 사람의 목적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당시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산헤립 왕과의 전쟁에서 하루 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시체가 되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는 여호와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앗수르 군대를 치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히스기야 왕에게 교만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에게 죽을 병이 찾아왔고 통곡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로 생명을 15년 연장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겸손하게 여호와께 감사하고 여호와를 의지해야 하는데, 바벨론 사신들이 왔을 때, 마치 자기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앗수르를 이긴 것처럼, 무기를 보관해 두는 창고와 보물과 모든 재산을 보관하는 내탕고까지 다 보여준 것입니다. 한 마디로 무기와 돈을 자랑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만한 교회가, 세상 힘 자랑 돈 자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열국에 대한 심판 중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후반부입니다. 22장 1-14절에서 예루살렘에 대해 경고한 다음에 15-25절에서 예루살렘의 지도자 셉나와 엘리야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적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섭다고 합니다. 전쟁에 패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안에 배반자가 있다는 겁니다. ‘나라보다 자기를 생각하는 자’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를 사랑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자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운동경기를 할때에도 마찬가지로 팀을 생각해서 자신을 희생한다고 합니다만 그렇치 않고 팀 보다는 자신을 더 생각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일 때도 배반자 가룟유다가 있었습니다.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도 어김없이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본문에 기록된 당대의 지도자였던 셉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의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두 인물, 셉나와 엘리아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남 유다의 13번째 왕인 히스기야 때, 국가의 돈을 맡아 관리했던 셉나에게서 그 관직을 빼앗아 엘리아김에 맡기고, 엘리아김에게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두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런 구약성경을 읽을 때 꼭 기억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눅24:27절‘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이 말씀대로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의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일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겸손한 사람은 없습니다. 셉나는 유다 왕국의 나라 살림을 맡고 궁전을 관리하던 국가 경제 책임자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으로 말하면 기획재정부 장관 혹은 국무총리 격입니다. 그런 자리에 오른 걸 보면 틀림없이 유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유능함은 성실함이 아니라 약삭빠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릇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그 점을 망각하고 교만해지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셉나는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이 죽은 뒤에 묻힐 명당자리를 알아보고 왕의 무덤에 버금갈 정도의 호화분묘를 준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치 좋은 곳에 별장까지 지었습니다.
빛나는 수레도 타고 다녔습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권력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는 능력은 있을지언정 믿음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여 자신의 사후 를 도모하고 현세의 즐거움을 추구한 셉나를 사정없이 심판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셉나는 결국 관직에서 쫓겨나고 타국으로 피난 가서 객으로 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기가 미리 준비한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악인이 욕심으로 마련한 재산은 그 자신이나 자손이 누리지 못하고 남의 것이 되어버린다는 시가서의 말씀이 딱 맞습니다.
하나님은 셉나의 자리에 엘리야김을 세우셨고 엘리야김은 단단한 곳에 박힌 못처럼 잘 섬겼지만 그의 단단함도 영원히 가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삭은 못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도 족벌주의에 빠져서 타락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 지도자의 근본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가족을 포함한 백성들이 그에게 거는 너무나 큰 기대로 인해 지쳤는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포함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게 한 오류를 범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겸손한 사람은 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는 환경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패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겸손한 분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서운 진노가 예고된 것입니다. 셉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느 나라나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입니다. 셉나는 국고와 왕궁을 책임지는 궁내대신으로 왕을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 나라의 대표로 세 사람을 앗수르로 보냈는데, 그들은 엘리아김과 사관 요아와 셉나였습니다. (왕하18:18,37 ; 사36:3). 그만큼 셉나는 국가의 막중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이런 셉나에게 가서 책망의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22:15절‘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왕하18:17~18, 왕하19:1~2, 사36:3, 사37:2 등에는 셉나를 서기관이라고 말씀하며,사22:15에서는 셉나는 국고(시중들다, 친숙하게 되다,창고, 곡간)을 맡은 자라고 합니다. 이로 보아 당시 셉나라는 인물이 둘이었거나 셉나가 서기관과 국고를 지키는 직분을 겸한 자로 보는 것이며, 후자가 옳다고 보며, 직위의 기록에서 대신 엘리야김을 먼저 기록한 것으로 보아 셉나는 이보다 아래의 직분에 있는 자, 곧 왕족이 아니나 궁내대신으로 출세가 빨랐던 자이며 아울러 국고를 책임진 재무대신, 곧 왕궁의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관 겸 국고를 책임진 막강한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직분 상으로는 엘리야김의 지휘를 받는 자이나 권력은 엘리야김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권세를 소유한 자입니다.
셉나의 죄입니다. 사22:16절‘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했습니다. 셉나는 왕의 다음 가는 권세를 가졌으나, 그 권력으로 자기 배만 불리려던 어리석은 지도자였습니다. 지금 나라와 백성이 얼마나 곤란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셉나는 자기가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무덤을 왕들의 무덤에 자신의 무덤을 미리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교만합니까?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나라는 망조가 든 겁니다.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자’입니다. 셉나는 유다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 출신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셉나와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부름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사용하도록 지혜와 지식과 건강과 물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일,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가족의 화목을 위한다고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양보한다고 화목이 오는 것이 아니고, 순종하여 행할 때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위와 같아지려는 죄입니다. 셉나의 죄는 평민으로 최고의 축복을 받은 자이나 그는 이도 부족하여 다윗의 후손들은 장사하는 산 중에서 가장 높은 곳, 가장 좋은 자리를 취해 묘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처를 삼으려 한 죄입니다. 셉나는 최고의 자리에 무덤을 만들고 그곳에 기념비를 세워 자신의 치적을 다윗과 같이 후대에 높여 보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셉나는 주인의 집에서 길게 끌리는 옷을 입고 있던 자입니다. 사22:17절‘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 하심은 셉나의 화려함 추구를 말합니다. 그는 일개 대신에 불과하였으나 그의 영화는 히스기야를 능가하였습니다. 그는 유다라는 이름에 모욕하는 자입니다. 사22:18절‘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 했습니다.
셈나가 받는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셉나를 어떻게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사22:17-19 세 가지로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단단히 묶어서 내 던져버리겠다’,두 번째는‘공처럼 돌돌 말아서 광막한 광야로 내던질 것이다’,‘광막한 곳’은 앗수르를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죽게 할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셋째‘네 관직을 빼앗을 것이다’결국 그는 그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위하여 준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셉나는 광막한 지역으로 던져집니다.하나님은 셉나를 단단히 결박하고 모질게 감싸서 장사가 공을 던짐 같이 광막한 곳에 세게 던져서 그곳에서 죽게 하실 것입니다. 사22:17-18절‘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 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하나님이 던지시니’이는 하나님의 분노가 심히 크심을 표현하는 모습이라 봅니다.
광야에 팽개쳐 집니다. 광막한 지경에 던져짐으로 그의 처지가 가장 불쌍한 지경에 이르게 됨을 말합니다.‘분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진노로 그를 던졌던지 마지막에는 크게 분리된다고 합니다. 아마 셉나는 하나님의 저주대로 광야 적막한 곳에 던져졌고 시체를 찾을 수 없이 되었을 것입니다. 셉나의 지위를 파괴하셨습니다. 사22:19절‘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히스기아는 셉나의 권세에 눌려 그를 어찌 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여서까지 그의 지위를 가장 천하게 만드셨습니다.
3.불평없이 충성을 다한 엘리야김이 받은 축복은?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불평 없이 충성한 엘리야김에게 셉나가 얻으려한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셉나가 판 묘실을 엘리야김에게 셉나가 가졌던 모든 권세를 엘리야김에게 허락하여 주셨으며, 심지어 그를 유다왕국의 왕위를 계승하는 자로 만드십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더하는 축복을 하십니다. 엘리야김은 부하의 잘못된 것을 알았으나, 하나님께서 엘리야김을 축복하심을 보아 그는 불평한마디 없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김을 축복하시되 그를 분에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니 그는 유대 25대왕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왕하 23:36).
능력 있게 됩니다. 사22:21절‘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더 좋은 것으로 입혀주십니다. 충성하니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무장시켜 주셨습니다. 강하게 하십니다. 주어진 직분에 불평 없이 충성하니 하나님은 그를 더 강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더 귀한 직분을 주십니다. 다윗의 열쇠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22절‘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특히 두리니’하심은 충실하게 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충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엘리아김에게 어떤 일이 주어집니까? 22절‘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가 없으리라’고 합니다. 즉 엘리아김은 천국의 문을 지키는 파수군의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천국의 문이 어디에 있습니까? 천국의 문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천국의 문이 무엇입니까? 마 7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의 문을 어떻게 말씀합니까? 좁은 문이라고 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다고 합니다. 좁은 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결국 지금 천국의 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다윗 집의 열쇠가 주어져 있습니다. 천국은 예수님만이 열 수 있고 닫을 수 있으며 아무도 그 일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보내기 위해서 주님이 부르신 자를 마귀가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쁨을 아십니까? 이러한 기쁨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천국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들은 천국을 이미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고 사는 것입니다. 엘리아김이라는 인간이 다윗 집의 열쇠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엘리아김도 나중에는 결국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 종으로 사는 자에게 다윗집의 열쇠를 맡기십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종의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오직 예수님입니다.
천국의 문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알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의 문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그 자리가 천국의 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만이 이 기쁨을 알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힘으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문을 열어주시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자가 없습니다. 주께서 세상을 어떻게 사셨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못산다 못산다 해도 주님보다는 낫습니다.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주님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무리 애매하게 욕먹고 무시당한다고 해도 창조주이신 주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당한 것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자가 그리스도를 마음에 두고 산다면 못이길 것이 없는데 우리는 자꾸 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살기 때문에 힘들고 억울하고 상처를 입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언제나 겸손의 자리에서 살도록 하십시오. 어떤 일을 당하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며 사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이 살아가는 그 자리가 천국의 문입니다.
충성함은 가족에게 까지 영향을 줍니다. 사22:23-24절‘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충성함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면 가족들에게 본이 됩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가족들이 엘리야김의 변화된 축복을 보고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게 되며 그들도 말씀대로 순종함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도록 다윗의 집의 열쇠(예수 그리스도)를 본문의 엘리야 김에게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이 열쇠를 사용할 때 닫힌 인생이 열린 인생으로, 막힌 인생이 뚫린 인생으로, 묶인 인생이 풀린 인생으로, 쓴 물이 단물로, 마이너스가 플러스로, 적자가 흑자로, 실패를 성공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불황을 호황으로 바꾸어지는 축복(열리는 은혜)을 누리게 됩니다. 다윗의 열쇠를 사용하는 자에게는 진로가 열립니다. 사업의 문이 열립니다. 가족 전도문이 열립니다. 새 해에는 시온의 대로가 열린 인생이 되실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4.다윗의 집의 열쇠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집의 열쇠는 성실한 삶입니다. 성실한 삶이 은혜의 문을 엽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김이라는 평범한 공직자에게 다윗 왕권의 열쇠를 넘겨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엘리야 김은 벼슬이 높은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은 것은 그의 성실한 삶을 하나님이 보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였기에 더 큰 사명(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성실함의 삶이 더 큰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의 이름 뜻 그대로 인생이 놀랍게 풀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시는 은혜가 따라붙기를 축복합니다. 사실 그 당시 유다 국가 히스기야 왕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자는 셉나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신분은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앗수르 제국의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상황인데도, 자신을 위하여 화려한 묘지를 구축해놓는 초라한 모리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분을 강등시키시고(15-9절), 그 대신 신실한 성품의 사람 엘리야 김에게 인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20-24절)
하나님께서 엘이야 김에게‘다윗 집의 열쇠’를 주셔서 사명의 삶을 누리게 하신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꿈같은 축복입니다. 이 열쇠가 계3:7절의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예수님이 가지신 천국열쇠의 축복입니다. 엘리야 김은 성실함으로 하나님 나라 축복의 마스터키를 받았습니다. 20절을 보면 하나님은 엘리아 김을‘내 종’이라고 자랑스럽게 불러주십니다. 이 표현은 성실한 자에게 붙여지는 호칭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신실한 자들에게 거명된 호칭입니다. ‘내 종 아브라함, 내 종 욥, 내 종 모세, 내 종 여호수아, 내 종 다윗, 내 종 엘리야 등’ 엘리야 김과 셉나는 똑같은 공직자인데, 국무총리 격인 셉나는 자신의 안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반면에 엘리야 김은 신분서열이 하급자인데도 나라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목숨 걸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임에 책임을 다했습니다.(왕하 18:18, 37, 19:2)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미래 지평이 새롭게 열리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성실성이 축복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실하게 자기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다윗의 집의 열쇠는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의 삶이 은혜의 문을 엽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김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은혜를 주신 것은 그가 힘든 상황에서도 곧은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제국의 대군이 예루살렘을 완전 포위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이집트를 의존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버리고 세상 나라로 내려갔습니다. 자신들의 미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버리고, 세상나라 이집트에 달라붙었습니다.(왕하18:21,24) 그들은 하나님 대신 세상을 선택했습니다. 신앙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에만 우선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 김만은 신앙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김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미래축복과 영광이 열리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는 아무리 절박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곧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앞날을 열게 하신 것입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것은 하나님을 의존하기보다, 세상나라 이집트를 의지했던 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미래가 풀리기보다는 오히려 묶기고, 앞길이 열리는 대신 닫혔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간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세워주시고 그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22절‘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우리 인생은 결코 닫히거나 막히는 인생이 아닙니다. 열리고 풀리는 인생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면 하늘이 열리고 땅이 풀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업이 아무리 바빠도 예배중심으로 살고, 곧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이 절대 필요합니다.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사는 만큼 하늘이 열리고 땅이 풀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만큼 열립니다.
다윗의 집의 열쇠는 기도하는 삶입니다. 기도의 삶은 은혜의 문을 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현실과 미래가 열리는 또 하나의 축복을 약속해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새로운 길이 열리는 기적을 보장해줍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을 때 히스기야 왕은 신앙의 사람 엘리야 김의 충언을 따라 성전으로 올라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영적 지도자 이사야 선지자를 찾아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사37장. 왕하 19장) 그들은 국가존망의 힘든 위기상황에서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의 종과 함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185,000명의 대군을 몰살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기도전략으로 이긴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깔끔한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미래의 문이 열립니다. 일찍이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완공하고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는 이렇게 봉헌기도를 드립니다. 왕상8:22-66. 역대하 6:12-7:3‘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여, 누구든지 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든지, 아니면 저 멀리서라도 이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에게는 언제든지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축복해 주옵소서’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은혜의 문이 열립니다. 은혜의 문이 축복의 문, 형통의 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기도전략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도로 승부수를 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가기 힘들었던 묵은해를 결산하고 대망의 새 해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결단된 새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의 말씀으로 다윗의 열쇠를 엘리야 김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셨음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요즘 살아가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신앙을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편이 힘들수록 오히려 기도로 승부수를 걸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열리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것은 환경과 사건입니다. 우리가 안주하던 자리, 혹은 타락한 자리에서 쫓겨나 우리의 지위가 낮아짐으로써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폭삭 망해서 코가 납작해져야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힘든 환경과 고통스러운 사건 속에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겸손하게 하는 환경이 없으면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교만해지기 마련입니다. 남이 안 읽은 책 한 권만 독파해도 교만해지는 게 인간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 겸손해질 수 없음을 인정하며, 교만해지기 쉬운 환경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넘어지는 지도자들을 볼 때면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다행히 나한테는 그런 환경이 없어서 안 넘어졌지, 같은 환경이 주어졌다면 나도 넘어졌을 것’이라는 자각을 하고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나한테도 그들과 같은 힘이 있었다면,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나도 자빠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환경과 사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더욱 더 민감해져야 합니다. 나의 높아진 마음과 생각을 공동체에 털어놓고 공동체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날마다 큐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유다 왕국의 권력의 핵심에 앉았던 셉나와 엘리아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라는 강대국 앗수르의 공격 앞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고, 국제적 정세에서 거대한 바벨론 왕국은 점점 세력을 키워 몰려오는 상황에서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일하는 공직자가 국가의 장래와 백성들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영달과 사리사욕만 추구했다는 것은 죽어 마땅한 처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을 주신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권력은 자기 자신의 영달을 위해 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역자요, 일꾼으로서 맡겨준 임무와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시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