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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신들의 고장이며 호서지방의 중심지 홍주를 가르는 정맥 === | ||||||||||||||||||||||||||||
★.구 간 종 주 개 요 생미고개에서 달빛을 받아가며 어둠을 뚫고 산행을 시작하는 길은 시멘트 도로이다. 정맥에 시멘트 도로가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시멘트 길을 따라 한동안 걸어가야 한다. 우마로를 따라 걸어가지만 닭과 소를 키우는 거대한 축산단지가 있기 때문에 정맥은 냄새가 진동한다. 겨울에 지나가는 길도 이렇게 냄새가 고약할 지경인데 여름에 지나간다면 정말로 답답한 마음으로 지나가야 할 것이다. 낮은 정맥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맥과 함께하는 곳이 많은 곳이다. ★.구 간 산 행 일 지 01:05 포항 지곡동 출발. 점점 추워지는 겨울이 다가온다. 새벽 1시에 떠나려니 날씨가 추위를 더해간다. 이병목회장님이 가지고 온 차량에는 네비게이션이 부착되어 있었다. 어제 새로 구입하셨다는 이회장님.. 덕분에 오늘은 길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먼 길 가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길잡이가 없기 때문이다. 05:13 생미고개 도착. 네비게이션으로 장곡초교를 입력하니 정확히 초등학교 근처까지 안내해준다. 생미고개의 농협창고가 있는 공터에 차량을 주차하고 추어탕을 끓인다. 서리발이 하얗게 내려서고 새벽 달빛 교교한 가운데 손을 후후 불어가면서 먹는 아침밥은 정말로 맛있다. 이렇게 먹는 아침밥은 든든한 산행의 기초가 된다. 기온 영상 2도. *생미 : 오미(梧尾) 서남쪽의 마을을 성산(城山) 산양(山陽)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에서 쌀 이 잘 되고 땅이 기름져서 좋은 쌀을 생산하는 마을이라 생미라고 부른다 한다.05:55 생미고개 출발. 신동마을 시멘트 도로 따라서 들어간다. 달빛이 밝은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니 그야말로 달빛산행이 된다. 이렇게 새벽에 달을 보면서 걷는 길.....새벽의 상큼한 달빛을 머금으면서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운치를 더해간다. 주변의 많은 사물이 달빛에 반사되어 분간하기 어렵지만 그 가운데 보이는 작고 큰 사물들의 형태를 파악하면서 새벽은 조금씩 조금씩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06:00 3.1운동 기념비와 애국지사 김동하 추모비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도로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금방 눈에 띄고 보기 쉽다. 예전에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도 많은 만세운동이 있었던 것 같다. 어두워서 비문의 내용은 알 수가 없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 06:12 약 1km 정도 진행했을 때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편의 우마로를 향해 진입한다. 우마로의 길을 계속 따라 약 8분여를 진행하면 오른쪽에 닭을 키우는 계사가 있고, 왼쪽으로는 가족묘지가 있는 곳이 보인다. 달빛은 지금도 교교히 빛나고 있고, 새벽의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06:24 냄새가 많이 난다. 원형으로 된 막사가 있는 곳의 4거리길에서 직진을 한다. 달은 아직도 서쪽에 떠 있고, 동쪽에서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06:28 좌우 갈래길이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우측편으로 소 사육장이 있다. 한우가 보이더니만 젖소들도 새벽의 불빛 속에 젖을 짜는 모습이 보인다. 좌측으로 눈을 돌려보니 오서산이 성큼 가까이 다가와 보인다. 06:35 흥성축협이 있는 큰 마을과 도로가 나오고, 미생물환경자원연구(주)를 지나가게 된다. 지도상에서는 붉은색 포장도로이지만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계속 시멘트 도로를 따라 아홉골 원천리 중원마을까지 진행하면 된다. 06:54 아홉골 원천리 중원마을의 고개까지 왔다. 2차선 포장도로인 이곳 고개는 버스 정류장과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밭이 있는 작은 집의 뒤로 올라서서 아홉골 좌측편 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 능선으로 올라서면 폐가된 집이 보이면서 능선에 길이 보인다. 이제는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기 보다는 산길의 형태를 띤 우마로길을 걸어간다. 오서산이 보이는 능선 위에서 약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07:17 열녀 난향의 묘지를 지나간다. 난향은 평양기생으로 황규하의 애인이었다는 비문이 있다. 오서산을 바라보면서 남향으로 자리잡은 묘지와 비석은 단아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이 묘지에서 우측편의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능선을 따라가면 작은 가건물의 집과 소나무가 있다. 이곳을 지나 또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무서리가 내린 배추밭을 지나 공수마을로 향하게 된다. 07:26 공수마을 고개 도착(쪽나무쟁이라고 마을주민이 말씀하신다. 예전에 이곳에 쪽나무가 많아서라고 - 지도상에서는 갈마이고 공수는 저 아래 남쪽에 있는데 표기의 오류인 것 같다.) 이곳은 2차선으로 포장된 도로이다. 이 마을에서 마을길을 따라 올라간다. 아침에 마을사람들이 장작불을 지피고 불을 쬐고 있다. 우리처럼 걸어서 지나간 사람들을 많이 보아서인지 낮선 이방인들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마로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갈래길이 많이 있는데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가면서 6km 지점으로 방향전환해야 하는데 자연적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07:35 포장도로를 지나간다. 2차선쯤으로 보이는데 중앙분리 표시가 없는 포장도로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07:57 161.9봉 삼각점 발견하였다. 동쪽의 햇빛이 따스하게 비치니 이제 조금 땀이 나는 것 같다. 5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모두들 자켓을 벗고 산행을 한다. 이제 산행다운 산행을 하는 느낌이 드는 장소이다. 161봉을 내려가면 우측편으로 벌목이 되어 억새가 햇빛에 반사되어 멋진 광경을 만들어 낸다. 또한 좌측으로 21번 국도가 멀리 보인다. 전신주를 지나고 임도따라 계속 내려간다. 08:15 나주김공지묘가 보이면서 소독철저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 짐승을 키우는 장소를 완전히 벗어났는지 의문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철도가 보인다. 이 철도를 어떻게 통과해야 하나...갑자기 난감해지는 공간이다. 08:18 신성역 역사 통과. 장항선 철도가 통과하는 이곳 신성역을 통과하려면 역사 가까이에 건널 수 있는 건널목이 있다. 울타리 사이로 역사로 향할 수 있는 나무 건널목을 건너서 역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역무원도 우리같은 사람이 많이 지나간 것을 아는지 그냥 못본체 한다. 역사를 지나 밖으로 나와 논을 바라보니 벌써 얼음이 얼었다. 밤새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었는가 보다. 마을 시멘트길을 따라서 진행하면 원형 반사경이 있는 4거리에서 빨간 2층 벽돌집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 집의 뒤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선답자들의 리본이 군데 군데 보이지만 잡목이 많은 구간이다. 08:32 밀양박공과 전주이공 합장묘지가 있는 가족묘가 있는 장소이다. 길에 가시덤풀이 많아 여름철에는 이곳을 지나가려면 정말 힘들게 지나가야 할 장소같다. 내려서다가 아파트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08:40 꽃조개고개. 새로운 홍성 남부 우회도로 건설현장을 만난다. 맥을 사정없이 절개하여 흉물스럽지만 문명의 이기는 길을 이런식으로 만든다. 차라리 터널을 뚫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면서 꽃조개고개와 남산쪽을 바라보고서 한숨을 쉬어보지만 어쩔 수 없다. 절개지를 내려가 공사장을 건너 꽃조개 방향으로 내려간다. 모텔과 식당가의 뒷편으로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의 동상이 있다 08:53 만해 한용운의 동상이 서 있는 곳...그 옆에 국가유공자 충혼탑이 있는 충령사가 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소나무가 도열된 듯 멋지고, 등산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 수 있다. 또한 쉼터 의자도 많아 쉬어가기 좋은 장소이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韓龍云:1889-1944)은 고종16년(1879)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굴 이라는 곳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 방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 동상은 1985년 12월 2일 만해 한용운 선생의 훈업을 새시대 민족정신의 지표로 삼고 홍성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홍주혼의 구심점 강화를 목적으로 건립하였다.09:06 팔각정 올라가기 전 정맥길의 분기점. 팔각정까지 약 100m 남겨놓은 곳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분기한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길은 계단과 흙길로 되어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등산로이다 09:08 남산(222m) 팔각정 도착. 홍성읍과 용봉산과 더 멀리 수덕산까지 보인다. 이 남산은 홍성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산이라고 부른다. 홍성은 옛날 홍주성(洪州城)의 줄임말로 충청남도 호서지방의 주요 읍성이었다. 이 고을을 중심으로 발전한 홍주는 서쪽에 일월산(백월산-월산) 북쪽에 용봉산 등이 있어서 홍주(홍성)를 서로 사방에서 호위하는 형국이었던 것 같다. 이 산의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으며, 주민들의 운동요람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우리들도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주민들과 재미있는 환담도 가졌다. 경상도 말씨를 쓴다고 벌써 경상도 사람임을 알고 농을 주고 받으며 한바탕 재미있게 웃었다. 09:15 남산 출발하여 내려간다. 수리고개를 향하여 내리막길로 향한다. 3~5분 내려가면 안부가 있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각도를 약 312도로 잡아 가면된다. 좌측으로 갈래길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09:27 수리고개 넘어간다. 길이 잘 안보이는 곳을 통해 내려오면 왼쪽으로 은뱀이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남부 우회 순환도로가 보인다. 정맥은 수리고개를 넘어서 올라가게 된다. 소나무 3그루가 있고 공동묘지가 있는 곳을 통해 올라간다. 기온은 영상 6도까지 올라갔다. 09:35 맞고개 도착. 10분간 휴식. 1차선도 안되는 경운기 한 대정도 지나갈 수 있는 시멘트로 형성된 도로이다. 포도밭에 아직도 남아있는 포도를 성대장님이 따온다. 벌써 겨울의 문턱이기 때문에 포도의 당도도 높고, 건포도로 변형되어 가는 중간의 형질인데 아주 맛있다. 09:52 전의 이씨 무덤을 지나가면서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진행한다. 길이 희미해서 여름에는 길을 찾기가 어려운 구간이다. 10:03 29번 도로 하고개 공사장에 도착하여 내려간다. 터널을 뚫는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 공사를 마무리 하는 것인지 큰 공사를 하고 있다. 하고개를 내려설 때에는 좌측편의 능선으로 방향을 잡으면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다. 하고개에는 해태상이 있고, 도로가 두 갈래로 기존의 도로와 새로 길을 뚫는 두 개의 도로가 존재한다 홍주병오의병 주둔기념비가 있는 곳에 기념비와 안내판이 우리를 반긴다. 홍주의병은 1906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에 결성되었으며, 당시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의 봉화가 홍주의 하우고개에서 맨 처음 올라, 의병들이 홍산, 서천, 남포, 보령을 거쳐 광천에 와서 대부대가 되었으며, 이 주력부대가 광천에서 구항 마을과 신당곡을 거쳐 하우고개에 당도하였고, 천북, 결성, 서부에서 궐기한 의병들도 서산도로로 따라 하우고개로 집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홍주성 탈환의 진군 나팔이 울리어 1906년의 병오의병 거사가 발족되었다고 한다.
10:18 삼각점(136.3) 발견. 하고개의 유적지를 살펴보고, 주둔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만 길이 있다. 이곳을 통해 올라선 후 좌측의 산길로 접어들면 삼각점과 좋은 길이 보인다. 10:42 살포쟁이 고개 우마도로가 있는 13.5km 지점에서 10분간 휴식 후 출발. 10:59 산 능선으로 올라가다 보니 올망졸망 바위들이 보인다. 일월산(백월산)으로 올라갈수록 바위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오늘 산행중 진짜 산행다운 산행을 하는 시간이다. 올라갈수록 조망도 더욱 뛰어나게 보인다. 11:05 백월산과 구황리의 이정표 있는 곳...조금 더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젠 백월산의 정상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또 헬기장이 나온다. 조금 더 시멘트 도로를 걷다가 산길로 접어들어 올라간다. 11:14 백월산(일월산393.6m) 정상의 원형 돌탑..이 돌탑은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곳이다. 동쪽으로 홍성읍과 운동장까지 멋지게 내려다 보이고, 서쪽으로 서해바다까지 보일 정도로 근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삼각점이 안보인다. 아니다 내가 못본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정상석도 없어서 조금은 아쉽다. 다만 산불감시 무인 카메라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 여운을 남긴다. 북쪽으로 암반과 건물이 있다. 이 높은 바위산에 웬 건물인가??? 팔각정도 보인다. 백일 기도하는 바위(코끼리바위)가 있다. 기도한 흔적도 남아있고, 계속 걸어가면 홍성청난사중수비와 사당이 있다. 사당의 주인은 홍가신으로 홍주목사로 있을때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였고, 그 공으로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 청난사중수비와 사당 뒤쪽의 바위봉우리에 玉皇主前上書(옥황주전상서)'라 음각된 비석과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모두들 같이 모여 단체사진 한 장 찍고 팔각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높이 3백94m로 일명 백월산, 일월산이라고 하는 이 산은 홍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4㎞떨어진 곳에 위치한 홍성의 진산이다. 산정에 오르면 서해가 눈앞에 펼쳐지고 동편으로는 멀리 합덕평야와 봉수산을 지척에서 보는 듯 바라볼 수 있으며 홍성읍을 품안에 품듯이 위치하고 있다. 홍성버스터미널에서 군도 5호선인 홍성공설운동장을 지나 월산파크가 있는 좌측진입로를 거쳐 1㎞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 홍성읍 홈페이지 인용 -
11:27 팔각정 아래에서 점심식사. 12:05 점심식사 후 출발. 팔각정을 지나 큰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장군과 보살의 상이 놓여있었다. 아마도 바위신앙과 민간 무속신앙에 근거한 두 개의 상이었으며, 민간 무속신앙인들이 이곳에서 어떤 의식을 치루는 장소인가보다. 나중에 차량을 회수하기 위해 생미고개까지 오면서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를 빌린다면 --무속인들이 계룡산에서 수도하고 이곳에 와서 또 어떤 인증을 받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또한 홍성군수가 맨 처음 부임해서 이곳에 와 재를 지내고 홍성의 안녕을 기원해야만 좋다고 하여 홍성군수는 항상 이곳에 와 어떤 의식을 치르는 모양이다. -- 내 육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장군의 형상은 최영장군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최영장군이 이지방 출신이기 때문이다. 12:27 교회 종각같은 곳을 지나간다. 철조망이 있는 능선길을 지나니 차량의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12:30 까치고개 도착. 2차선 포장도로이며 삼거리길이다. 쉼터도 있는 장소이며, 삼거리길에서 능선으로 가는 길은 쓰레기매립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정맥은 쓰레기 매립장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접어들어 매립장 철조망 담장을 경계로 하여 계속 진행하게 된다. 기온 11도. 13:07 고개 좌우 길이 양호하다. 13:16 홍동산 올라가는 구간인데 길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구간이다. 산불이 난 이후로 싸리나무와 잡목이 우거졌다. 여름에는 이곳을 통과하기 정말 어려운 구간이다. 낙엽이 진 지금도 통과하기 어려운데 정말 길이 보이지 않아 난감하다. 얼굴에 계급장을 만든다. 이 구간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얼굴에 다섯 개 이상의 계급장(상처)을 만들어야 했다. 13:20 능선 오른쪽으로 방향전환하면서 마의 구간을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산불이 난 곳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홍동산 바위에 올라서니 저수지도 보이고 백월산도 보인다. 잡목도 많이 사라져 한결 수월하다. 13:40 홍동산(弘東山 308.9m) 정상 10분간 휴식. 홍동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보이지 않아 내가 찾지 못한 것인가??. 빨간색으로 홍동산이란 팻말이 붙어있을 뿐이다. 아직도 불타 버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이 산불 때문에 홍동산은 홍역을 치루는 것 같다. 14:02 작은 산봉우리 통과한다. 이제부터는 홍성군을 벗어나 예산군으로 접어든다. 까치고개에서 이곳까지는 예산군과 홍성군의 경계지점이었다. 수많은 유적이 있는 홍성군을 뒤로하고 수덕사가 자리잡고 있는 예산군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기온 12도. 14:08 21km지점 묘지 두기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전환해서 내려가야 한다. 자칫 그냥 직진하여 내려가면 정맥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조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다음 다시 직진해야 한다 조금만 신경쓰면 된다. 14:19 육괴정까지 오는 길은 고속도로 같다. 오른쪽으로 저수지보이고 앞쪽으로 수덕산도 보인다. 또한 수덕사의 주차장도 보이는 능선이다. 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육괴정이 가까워진다. 14:24 수덕고개(육괴정) 도착. 노거수 6그루와 정자가 존재한다 하여 육괴정이라고 한다. 정자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상가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면나무들이 있다. 수령은 약 300년 되었다. 14:50 수덕사 주차장. 도착. 동네 차량 한 대 빌려서 차량회수하러 생미고개로 떠난다. 이분의 이야기로는 금북정맥을 찾는 많은 분들이 이분의 차량을 이용했다고 한다. 금북정맥의 홍성과 예산의 고개 이야기를 하면 손금보듯 잘 아신다. 더불어 홍동산 불탄 이야기와 백월산의 무속인 이야기 및 군수가 맨 처음 찾아와 안녕을 기원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많은 정보를 알려주신 분이다. 비록 수고비를 주었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15:57 수덕사 주차장에서 포항으로 출발. 예산을 경유하고 아산을 경유하여 천안으로 가는 길은 신호등과 차량이 많이 정체되는 곳이었다. 어느길로 가든 먼길 나들이가 된다. 21:30 포항 도착.
카니발 차량에 6명이 앉으니 정말로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회장님이 밤새 운전하시고, 산행하셨기 때문에 산행 중에 졸면서 산행하는 것도 보았다. 정말 아찔하였다. 장거리를 무박으로 운전하면서 산행한다는 것이 조금 위험을 내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별 탈없이 포항에 도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불어 만해 한용운선생을 비롯하여 백야 김좌진장군 등 많은 선현들이 이곳 홍성에서 태어나 이름을 날린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홍성의 진면목을 이제야 알 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홍주의병 등 홍주의 반일 분위기를 잠재우고, 같은 충남지역에 위치한 <공주>와 일본어의 발음구별이 어려워 행정적 불편을 피하기 위해 1914년에 군.면의 통폐합령에 따라 일제에 의하여 홍성으로 개칭되었다. 이렇게 개칭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역사적인 도시 비록 읍이지만 시와 같은 도시 홍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또한 사면으로 확트인 벌판에 조성된 홍주성과 동서남북에 있는 산들이 서로 조응하는 홍성은 예로부터 호서지방의 중심 도시였으며, 지금도 검찰청 등 많은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는 도시이다. 백제의 부흥기치를 내걸고, 임존성(지금의 홍성군 금마면과 예산군 대흥면의 군계를 이루는 봉수산)과 주류성(서천 비인설, 연기설, 부안설이 있으나 홍성설이 유력)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전개, 부흥군은 한때 20여성의 호응을 받았으나 전세가 점차 약화되어 662년 12월 주류성이 함락되어 부흥군은 피성(피성 역시 여러 설이 있으나 홍성군 장곡면의 석성산성을 주류성으로 보았을때 당진군 일대로 추정)으로 거점을 옮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에도 이곳은 예전에 군사 전략상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홍성을 조금 더 알아보는 공간 (홍성군 홈페이지에서 발췌) ▲ 용봉산 기기묘묘한 봉우리의 연속, 용봉산 !!충남 홍성군 홍북면 용봉산은 높이 3백81m로 큰 산은 아니며 험하지도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주변의 모습이 수백장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이다. 이 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鳳凰)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인 데서 유래했다. 남방향 중턱과 서편 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요소요소에 소나무 군락이 자연발생적으로 있으며 장군바위등 절경과 백제때 고찰인 용봉사와 보물 제355호인 마애석불을 비롯한 문화재가 곳곳마다 산재하여 있다. 야영장등 18동 28개소 휴양시설, 청소년수련시설(홍성용봉산청소년수련원)이 함께 하고 있어 홍성읍내 홍성온천과 연계하여 가족등반 휴양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경치도 일품이다. ▣ 금마총 고려말의 충신이요, 명장이었던 최영장군이 무예를 연마할 때 백월산 정상에서 금마천을 향해 쏜 화살과 장군이 말을 타고 경주하였으나 말이 늦게도 착하였다. 하여 말을 죽이자 바로 그 때 화살이 도착하여 본인의 경솔함을 꾸짖으며 사랑하던 말을 정성껏 이곳에 묻어주었으니 "금마총" 이라 한다.
※ 교통 밎 접근로 ※ ▶호남고속도로 유성 I•C 대전 WORLD CUP 경기장 좌회전 32번도로 => 청양 36번도로 => 96번도로 생미고개 ▶육괴정(수덕고개) => 45번국도 덕산 => 예산 21번도로 아산 =>천안 인터체인지 => 경부 고속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