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투어 여행기] 청와대(靑瓦臺)
나이가 6,7십쯤 되뵈는 두 내외가 주방일을 맡고, 자녀로 여겨지는 중년의 아낙이 홀 서빙을 책임지고 있는 다소 허름한 식당을 찾아들었다.아직은 점심을 해결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모양이다.식당 안의 손님이라곤 우리 일행뿐 아닌가.김치찌게에 제육볶음을 메뉴삼아 배를 채운다.잠시 후,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위해 모여든 이웃한 사무실의 직원들로 식당 안은 왁자한 풍경으로 변한다.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다스리고 보호하는 겨레의 광장이 지근에서 빤히 부감이 되는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한 뒤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위와 데모 등의 격렬한 구호가 무질서하게 난무하곤 하던 광장에는 한낮의 여유를 즐기려는 시민들과 여행객들로 진작에 평정심을 회복하고 있는 거였다.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을 차례로 둘러보고,광화문 앞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사직로 널찍한 도로를 건너가면 바로 광화문 월대(月臺)가 기다린다.월대는 궁전 앞에 있는 섬돌로,왕이 백성을 만나는 소통의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광화문 앞으로 전철 선로가 부설되 완전히 철거되는 우여곡절의 모진 풍상을 겪은 월대다.이러한 팔자 사나운 월대가 얼마 전 복원이 이루어져 작금의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이다.그러나 월대가 복원되는 북새에 광화문 앞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직선 도로인 사직로가 반원을 그리듯이 구부러져 체면을 잔뜩 구긴 모양새다.
광화문& 월대
광화문 앞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사직로의 인도를 따라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곧바로 북쪽 방면인 청와대 쪽으로 향하는 삼청로의 인도를 따른다.노란 은행잎이 인도를 노랗게 물들여 놓았다.문이 닫혀 있는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앞을 지나고 국립민속박물관 앞을 차례로 지나면 삼거리 갈림길이 기다린다.맞은 쪽 도로 건너 쪽으로 청와대의 동문격인 춘추문(春秋門)이 눈에 들어온다.한글 서체로 '춘추문'이란 큼지막한 현판을 내건 춘추문을 들어서면 바로 우측의 건물이 춘추관(春秋館)이다.춘추관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역사를 편찬하던 관청의 유서 깊은 이름, 역사를 올바르고 엄정하게 기록한다는 '자유 언론'의 정신을 담고 있을 테다.
1990년에 지어진 춘추관은 청와대 기자회견장과 출입기자실로 그동안 사용하였던 곳이었지만 이제 역할이 바뀌어 여행객들을 위한 가이드의 일정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전각인 셈이다.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전각 춘추관을 뒤로하면 북악산 등산로가 산객을 맞이하고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다.홀 몸이라면 청와대를 품고 있는 해발342m의 북악산(일명,백악산) 정상을 냅다 올랐다가 오겠지만 일행들과 어긋난 개인행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곧바로 검문소(?) 37문에서 예약자 확인을 거친 뒤 첫 번째로 맞닥드리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침류각
100여 미터쯤 발걸음을 하면 길 우측 2,3십 미터쯤 동떨어진,작은 계류를 낀 산기슭 골짜기에 두 채의 건물이 눈에 띈다.한 채는 3칸에 1칸의 'ㄱ'자 꼴의 팔작지붕의 전통가옥 행색의 건물이고, 다른 한채는 2칸x1칸짜리 아담한 초가의 행색이다.안내문을 살펴보니 침류각(枕流閣)이다.전각 이름을 보면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 집'이라는 뜻이니 휴식의 공간인 모양이다.본래 대통령 관저 자리에 있었던 것을 1989년 관저 신축 당시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이고, 1997년 서울 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전각이다.
침류각을 둘러보고 나면 전통한옥 삼 문 구조로 '仁壽門'(인수문)이란 현판을 내건 관저가 여행객들을 기다린다.'어질고 장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수문을 들어서면 순전히 대통령과 그 가족들만의 공간인 대통령 관저다.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청기와를 얹었으며,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공간인 별채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고, 뜰과 부속 전각 사랑채를 곁에 두고 있다.무슨 영문인지 관저 안은 둘러 볼 수 없게 단속이 되어있어 그저 전각 주변만을 멍청하게 빙 돌아 나올 수밖에 없다.그나저나 관저를 방문하기 전에 오운정과 석조여래좌상을 먼저 거쳤어야 했는데,깜빡했으니 그곳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지 싶다.
대통령 관저 대문
이제 발걸음은 자연스레 청와대의 핵심 공간인 본관행이다.아스콘 포장의 길은 인수문을 뒤로하면 머지않아 구(舊) 본관터와 소공원 사잇길로 여행객을 안내하는 데,길 옆에는 '청와대 구 본관터' 라고 새겨진 검은 빗돌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근처에는 '天下第一福地'(천하제일복지)라고 새겨진 대리석으로 빗은 사각의 말뚝도 우뚝하다.이 주변이 예전의 청와대 터였던 모양이다.그곳을 뒤로하면 이내 청와대 본관 앞이다.본관의 외형은 전통 건축양식의 팔작지붕으로 15만 여장의 청기와를 올렸다고 하며,내부는 현대적인 건축양식과 시설로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고 안내문은 밝히고 있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및 회의 장소로 사용한 집현실,그리고 영부인의 공간인 집무실과 무궁화실,국무회의가 열렸던 세종실과 임명장 수여식 등에 사용되었던 충무실 등이 동서의 별채로 꾸며진 청와대, 본관 현관 앞으로 여행객들이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본관 내부의 바닥은 온통 붉은 카펫으로 단장이 되어 있다.간담회나 소규모 만찬장으로 사용한 인왕실과 무궁화실,그리고 영부인의 공간인 집무실과 무궁화실이 있는 1층을 둘러보고 곧바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금수강산도
2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맞은 쪽 벽면에 거대한 한반도 벽화가 눈길을 끈다.화가 김식(金植,1952~ )이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기본으로 하고 옛 지도들을 참고 삼아 제작한 벽화다.역시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그리고 회의장소로 사용한 집현실이 있다.역대 대통령들과 영부인들의 초상화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임기 내내 이 거대한 전각의 주인 노릇을 한 당사자들이니 관람객들의 관심은 당연하다 하겠다.
4.19혁명으로 물러난 초대 이승만 대통령,측근중의 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진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민주화 운동으로 밀려난 전두환 대통령,국정농단의 여파로 인한 탄핵 심판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한 박근혜 대통령 등 퇴임이 자연스럽지 못한 대통령들과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정권교체를 이룬 윤보선,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등의 초상화도 나란히 걸려 있다.
청와대 본관
權不十年(권불십년),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십년가는 권력 없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역사는 증거한다.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떠날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웠는지, 혹시 납덩이를 발목에 매달은 느낌은 아니었는지.TV화면으로 다소 익숙한 본관 안팎을 두루 둘러보고 상춘재와 녹지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조금 전 지나왔던 구 본관터 쪽으로 이동을 하여 관저 못미처 우측의 비탈길로 들어선다.
작은 계류가 흐르고 계류를 넘나들 수 있는 아담한 돌다리 백악교를 넘어서면 바로 상춘재(常春齋) 우측 편이다.'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상춘재는 'ㄱ'자 형의 전통목조건물로서,청와대를 방문하는 내외빈에게 우리나라 전통가옥을 소개하고 소규모 행사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전방으로 잔디공원이 시원스레 내려다 뵈는 전각이다.그 전각 앞의 공원이 1968년 조성된 잔디공원 녹지원(綠地園)이다.
상춘재
잔디공원 녹지원은 축구장 절반 넓이쯤의 둥그스름한 꼴의 공원으로,공원 한복판에는 170여 년이 되었다는 반송이 자리잡고 있다.반송은 외줄기로 자라는 특성의 여느 소나무에 비하여 둥치 아래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자라 둥그스름한 소반 모양을 만든다고 하여 반송(盤松)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골프장의 그린처럼 곱게 관리가 되어 있는 널찍한 잔디공원 주변에는 잔디공원에는 발걸음을 하지 마시라는 경고가 담겨 있는 작으마한 입간판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꽃밭이라면 몰라도 본디 잔디는 발걸음을 기다리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 식물이 아니던가.잔디가 기다리는 건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인 거다.
녹지원
잔디밭 엄금 입간판은 여행객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청와대 관리측은 헤아려야 한다.녹지원 잔디공원에서 평등과 공정을 열심히 외쳤던 어떤 인물들이 한가하게 노닐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는지,당시의 TV 화면를 하나하나 다시 열어보면 금세 알 수 있을 테다.반송을 가까이에서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녹지원 잔디공원에 한 발자국도 디밀지 못하고 주눅이 든 체 그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청와대 정문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녹지원 잔디공원 앞에는 '청와대 국민품으로'라는 분홍색의 커다란 글씨가 유세를 부리듯이 입간판 행색으로 세워져 있다.
여행객은 그나마 떳떳하게 정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청와대 본관 서남 방향의 영빈관 울타리를 끼고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청와대를 뒤로한다. - 귀갓길의 여정은 시내버스로 서울역 앞으로,서울역 앞에서는 오산시청을 운행하는 광역버스의 신세를 질 셈이고,오산에 도착할 때쯤 되면 출출할 저녁 무렵이 될 터이니, 고깃집에서 넷(필자와 아내& 두 아들)이 배를 잔뜩 불릴 참이다.(2023,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