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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와 천수답
(신11:1-32)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근거로 <아전인수와 천수답> 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아전인수와 천수답. 여러분 다 아시는 말입니다.
아전인수라고 하는 것은 논쟁이 일어났을 때 결론을 이미 낸 상태에서, 자기의 논증에 결론을 이미 낸 상태에서 그 결론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사물을 자기가 유리하도록 끌어오는 것을 아전인수라고 말하는 거 우리 다 알고 있습니다.
또 천수답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바라기를 말하잖아요. 그렇죠?
이 아전인수라고 하는 말의 본래의 뜻 내게 유리하도록 논증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마음, 그 마음을 조금 더 포괄적으로 생각해서 진짜 자기 밭에다 물을 대고 있는 농부의 모습과 또 다른 농사짓는 모습으로서 천수답으로 우리가 생각합니다.
천수답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는 것만을 바라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논과 밭을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아전인수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조금 뜻을 바꿔서 좀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관개용수[灌漑用水]식 농사짓기다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다는 것이에요.
근데 신앙의 삶,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세가 자기의 설교 가운데서 아주 극명하게 하나님의 선민이 가나안 땅에서 사는 삶의 모습과 그전에 가나안 땅 바깥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며 살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0절을 보면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이게 인제 애굽에서는 관개용수식의 농사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발로 물대기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물레방아 같은 만들어서 사람이 그 물레방아에 올라가서 계단을 밟듯이 계속 밟으면 이게 돌아가는데 저 아래에 있는 물들을 그 물레방아가 퍼서 올려서 밭을 향해서 나있는 물고랑을 타고 물이 내려가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물레방아 형태의 펌프를 만들어서 사람이 그 물레방아의 계단을 이렇게 밟고 있으면 이제 물이 퍼올려지는 그런 방법을 동원해서 그 넓은 정말 나일강변에 있는 밭에다가 물을 대주었던 그런 농사짓기 방법이 이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동거하는 가나안 땅 이전의 삶이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 어떻게 사느냐? 거기에는 11절에 보면,
「산과 골짜지가 있어서」- 그러니까 관개하기도 쉽지가 않았겠습니다. 이집트의 평야는 평평하니까 물을 대기가 쉬웠겠습니다만, 반면에 이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완전히 계곡에 있는 계단식 천수답과 비슷한 그런 말씀을 지금 모세가 해주고 계시지 않아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그러니까 하늘만 바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그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천수답의 형태를 가나안 땅의 삶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한심하잖아요. 여러분? 이 천수답이라고 하는 것이 비유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도 많이 사용이 되잖아요. 활용되고 있는 단어인데 어떨 때 사용되냐 하면,
예를 들면,
2007년 4월 달에 산업연구원에서 중소기업의 생존여부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FAT 자유무역협정이 확산됨에 따라서 중소기업의 기업활동의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는데 중소기업들은 그 바뀌어가는 기업환경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이전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답보하고 있는 그런 상태를 유지한다면 정말 확실하게 생존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기존의 중소기업의 21%밖에 안 될 것이다 라고 하는 보고서를 산업연구원에서 발표를 했다는 겁니다.
이때 결론적으로 이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기업방식을 천수답식 기업방식이라고 결론을 내리더라는 것이에요. 그에 반해서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그런 기업경영의 방식을 관개수로를 만들어내는 그런 개척자적인 기업경영방식으로 이 변화하는 환경에 더 맞는 것으로 추천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된다 라는 것이에요.
이처럼 증권 같은 것에서도 보면 전천후식 관개수로가 준비되어 있는 어떤 투자방식을 찾아내느라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제가 기사를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증시에 어떤 외부적인 변화에 맡겨서 그 변화만을 하늘바라기 식으로 바라는 천수답식 증권투자를 벗어버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증권의 어떤 이윤을 좀 창출해내자 라는 그런 경영방식 아니면 그런 투자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애를 쓸 때도 천수답식과 관개용수식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얘기를 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 모세가 얘기할 때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할 뿐이지 이집트에서 발로 물레방아를 돌려서 관개용수를 하는 그런 적극적인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떤 차이가 있느냐?
세상에서 말하는 천수답은 분명히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선민들의 삶도 자기의 삶을 잘 농사를 짓고 잘 살기 위해서 하늘을 바랄 수밖에 없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이 신앙인의 천수답은 하늘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히 신앙인도 천수답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천수답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관개용수식 삶을 살아가는 아전인수, 내 밭에 물을 대기 위해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세 가지 방식에 차이가 무엇이냐를 오늘 우리 한번 대비를 시켜보는 겁니다.
아전인수식의 삶의 방식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삶에 대한 결론을 내가 내립니다.
예를 들어 대학은 들어가야만 된다 라고 이미 결론이 나 있어요. 대학은 들어가야 한다 라는 말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결론이 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결론에 맞추어서 내 삶을 꿰맞춰가는 것이에요.
대학을 들어가야 된다. 그러려면 학원을 가야 된다. 그러려면 선생을 구해야 된다. 어떻게 해야 된다. 또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사업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 결론을 내립니다.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위해서 내 삶을 꿰어 맞춥니다. 이게 뭡니까? 아전인수입니다. 내가 내린 결론을 위하여 관개수로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관개용수식 삶의 경영방식을 채택하는 겁니다. 이게 좋은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되려면 이렇게 관개수로를 내야 된다. 이게 아전인수식의 삶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결론 내린 것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삶을 꿰맞추는 거 아닙니까. 내게 유리하도록 삶을 이끌어가지요.
그 유리하라는 게 뭐예요? 결론에 유리한 거. 결론이 유리해지기 위하여 유리한 방식으로 삶을 끌어가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해보는 겁니다. 맘대로 안 돼서 그렇지 마음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이게 아전인수격 삶이고, 또 하나 세상적 천수답의 삶은 어떤 삶이냐? 똑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다를 게 없어요.
아전인수식 삶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똑같이 결론을 내린 다음에 이 사람은 인수에서 차이가 있는 거예요.
아전인수(我田引水)할 때 인수라는 게 뭡니까? 물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에요. 물을 끌어들여 인력을 작용한다는 것인데, 세상적 천수답의 차이는 똑같이 세상을 좋아하고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것이 아이고~ 요행을 바란다는 거예요. 하늘의 힘이 내려와서 자기가 결론을 내린 것을 어떻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인들끼리 이런 싸움 많이 해요. '도만 하면 돼냐? 사람이 말이야 그래도 자기가 할 도리는 최선을 다해야지. 기도만 하고 있다고 일이 이루어지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뭐 어쩌구 하면 하나님의 뜻이지 뭐 합니다. 그러면 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 돼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의 서클 안.서도 세상적 천수답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정말 말이 맞지 아니 자기가 원하는 게 진짜 세상에서 이런 일이 이렇게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결론을 갖고 있다면 기도만 하면 됩니까? 차라리 세상 사람들 식으로 인수의 작업이 있어야지요. 그 결론에 유리하도록 삶을 용의주도하게 바꿔가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추진하는 그런 노력이 있어야지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됩니까?
그러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약속된 복지의 땅에 들어와 사는 이 신앙인들의 천수답은 어떤 것이냐?
오늘 모세가 말한 걸 보면 세상의 천수답하고 똑같은 거 같아요. 하늘의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 러나 여러분 뭐가 다릅니까?
제가 자꾸 제로 되라고 얘기하면 꼭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뭐라고 질문하느냐 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느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손 다 놓고 손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어서 손 떼면 가만히 있어야 되느냐? 세상 일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어야 되지요. 이게 세상 천수답과 다른 것이에요.
세상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손 안 댑니다. 그렇다고 가만 있는 거냐?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 천수답은 아전인수 식으로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천수답 식으로 사는 사람들도 세상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자기 결론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하늘에서 능력이 내려오기를 바라는 거예요.
근데 신앙인의 참다운 천수답식 삶의 방식은 무엇이냐?
이 세상에 대해서는 손 떼는 겁니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에 결론을 안 내리는 거예요. 그 대신에 오늘 본문 보니까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 아전인수 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내린 결론을 성취하기 위하여 들이는 그 어떤 노력보다도 더 많은 치열한 마음을 가지고 뭘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세상에 대해서 손 떼세요. 그건 하나님이 하십니다 라고 말하는 중간에 뭐가 들어 있느냐? 세상에 대해서 손 떼세요. 그리고 뭐 하느냐? 하나님께 손 대세요. 그러면 당신이 손 뗀 이 땅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십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적당히 내리십니다. 이거에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근데 왜 이렇게 듣느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고백하고 제로되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걸 보라. 이렇게 얘기할 때 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냐 라고 질문을 하느냐 하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생각이 아예 제로이기 때문에. 엉뚱한 것에 제로가 되어 있는 것이에요. 세상만을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세상에 손 떼라니까 아무 것도 안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세상만을 사랑하던 그 마음을 다 옮겨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서 섬기라는 거예요. 뜻과 목숨을 다해 섬기라는 겁니다. 왜 아무 것도 안 하냐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인의 천수답은 어떤 천수답식 삶이냐?
이런 것이라는 거예요. 세상에 대해 손 대는 걸 다 뗍니다.
그러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한 거예요.
자식에 대해서 손 댑니다. 자식이 밭이에요. 내가 경영해야 될 밭이란 말입니다. 농사지어야 돼요. 그러면 그 밭에 대해서 손 떼는 겁니다. 관개수로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자식에 대해 내린 결론을 위하여 세상에서 필요한 물줄기를 대느라고 애쓰지 말고 손 떼라는 겁니다. 과외 선생 뭐 장가보내고 시집보내기 위해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들 다 손 떼고, 그러면 자식에 대해 아무 것도 안 하느냐? 자식에 대해 아무 것도 안 해요.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자식에 대해서 쓰던 마음을 다 하나님께로 쓰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해라. 그러면 자식이라는 밭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내리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식으로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게 믿는 사람들의 천수답이라는 것이에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천수답은 뭐라구요?
안전인수 식의 삶의 방식과 똑같이 이 대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함으로 이렇게 돼야 된다는 결론을 자기가 내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세상 식 천수답입니다. 아전인수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가 물줄기를 대는 거예요. 사람들의 인맥을 만들고, 백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수로를 대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아시잖아요. 이 정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내가 아전인수로 내 삶의 밭, 즉 내 기업이라는 삶의 밭, 자식이라는 삶의 밭, 부부라는 삶의 밭, 동네 이웃과의 삶의 밭에 아무리 아무리 풍성한 열매가 맺혀지기를 바라도 하나님 뜻이 아니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세상 원리거든요.
근데 우린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는데 이게 안 되니까 어떻게 합니까? 천수답 식으로 바꿔보는 거예요. ‘아, 하나님!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려오시옵소서. 내가 결론을 다 내렸으니까 이 결론을 위해서 하나님이 내려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세상 식 천수답으로 사는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하는 것은 기우제를 드리는 거랑 똑같아요. 이게 기우제를 드리는 거예요. 내가 내린 결론, 내가 내린 삶의 밭에 내가 내린 결론을 위해서 ‘하늘이시여 비를 내려주시옵소서’ 기우제와 똑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온 교회 안에 기우제를 드리면서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가득 차 있는 거예요.
그럼 교회라는 데가 뭐하는 데냐? 선민들의 모임이 어떤 데냐? 뭐하는 데입니까?
이 세상의 관개용수를 위해서 노력하는 마음을 다 떼어버리고, 럼 어디다가 내 마음에 물줄기를 댑니까?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향하여 모든 마음을 다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책임지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은 이 땅을 사랑하고, 사랑이 교차되는 거 이것이 바로 선민들의 천수답 식 삶이라는 것이에요. 언제까지 기우제 드리고 살겠어요...
이 문제를 도데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될지를 몰라요. 이 기우제 식의 기도, 기우제 드리는 단체로서의 교회. 야, 이거 문제 아닙니까?
여러분!
이게 믿음이에요. 뭐가 믿음이냐?
하나님이 내가 마음을 다해 사랑할 만큼 최고 최상의 좋은 분이다. 하나님만 있으면 난 산다. 이게 믿음이고, 두 번째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느라고 손 못 대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내리셔서 하나님 뜻대로 하실 것이다. 내가 결론이 없다. 그러니까 요번에 내 자식들이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다. 하나님 뜻이면 내 자식 놈이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우리 꿈을 꾸다 보면 개꿈을 많이 꾸지 않습니까? 꿈을 꾸다 보니까 우리 아이의 이름이 불려지면서 누가 불렀는지 모르겠어요. 무진이가 정말 말하기도 불길한 그런 병에 걸렸다 이런 말이 들린 것 같아요. 깜짝 놀랐지요. 식은땀이 흐르잖아요.
그래서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이건 마귀가 주는 소리입니다. 없애주시옵소서.’
마귀가 주는 소리라 할지라도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필요하시다면 뜻대로 하시옵소서.’
마귀가 주는 소리면 그런 일이 안 될 것이고 정말 하나님이 그 일이 꼭 필요하시다고 생각한다면 그 병을 주실 것이고. 어쩌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보다 자식을 먼저 가까이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먼저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내 자식에 대해서 뜻을 갖고 있다. 그 뜻이 뭐예요? 늦은 비와 이른 비라는 거예요.
병에 걸릴 것이다. 하나님 뜻이면 어찌하겠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해주시옵소서. 그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 아이가 20살에 죽는다.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이 늦은 비와 이른 비를 그 아이에게 내리시는 형태가 다 그런 것인데 내가 결론을 내리겠어요?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된다 그런 결론을 내리겠습니까? 무슨 수로 그런 내려요. 그게 기독교인 입니까? 결론이 없어요. 결론 내리면 아전인수 아니면 세상 식 천수답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뜻이 최고지요.
나는 모르지마는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지마는 왜 내 자식이 20살에 죽어야 됩니까? 나는 이해가 안 가지마는 하나님 뜻이 최고지요. 하나님이 자식보다 먼저에요. 이른 비와 늦은 비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몰라요. 그럼 난 뭐하냐? 그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그 사업에게 뺏길 수밖에 없는 마음 인지상정 아닙니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뺏길 수밖에 없는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로 차단하는 겁니다. ‘나는 죽었다. 내가 죽은 사람이 무슨 사업을 새로 하겠다는 것이냐.’그 마음을 다하여 다 모으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가 일어난 게 다 그거 아닙니까? 세상에 대해 흩어져 있던 마음을 다 모으라는 거예요. 이것에 대해 죽고 이것에 대해 죽고 이미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마음을 다 모아서 하나님께 드리느라고 24시간 그 일만 하는 거예요.
사업장에 왜 나가냐? 사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식을 왜 기르냐?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왜 새로운 일을 주시냐? 그 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래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왜 돈 문제가 생기냐? 돈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마음을 돈 문제 아닌 하나님에게로 돌리라고.
이게 바로 이 세상을 선민의 천수답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다 드리는 거 이게 믿는 거예요.
하나님께 마음을 다 드리자. 그러면 하나님이 알아서 당신의 늦은 비와 이른 비, 당신의 뜻대로 하시겠지. 하나님이 뜻대로 하세요. 하나님의 뜻이 이기세요. 내 인간적인 소원을 이기시고 내 인간적인 욕망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소원이 이기세요. 하나님의 뜻이 이기세요. 그것이 최상인 것으로 믿습니다. 병이 나든 병이 낫든, 사업이 잘 되어 돈이 잘 벌리든 돈이 안 벌리든 내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하나님이 세상을 알아서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천수답 식의 삶의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2007.10.03)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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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는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뿐 나는 사라지고 나보다 앞서서 나의 죄를 지고 가신 주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은 진리의 빛이십니다. 아멘...
어머니 병세가 좋지 않아서 지금 병원에 입원하러 갑니다. 제가 병 간호를 계속 해온 터라 당분간 말씀 녹취는 힘들 것 같네요. 기도해주시고 퇴원하시는 대로 전심하겠습니다. 주의 평강이...
indeedpapa님의 어머님께서 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모쪼록 하늘의 평안이 병실에 가득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가득하기를... 또한 간호하시는 님의 마음에도 천국의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님의 어머님께서 아직도 병원에 계시는듯 하여 잠시 기도하는 마음 됩니다. 모쪼록 님의 어머님과 님께서 마음의 시선이 하나님께 향하므로 하나님께서 님의 어머님과 님의 삶을 대신 해결해 주실줄 믿습니다. 부족하지만 함께 기도하오니 힘 내세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제 퇴원하셨고 3월4일 재입원하시게 됩니다. 치매가 진행이 되어 입에서 음식물을 넘기지 못해 3월4일 재입원, 배에 관을 삽입해야 할 것 같네요. 입으로는 식사를 못할 것 같은데... 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마음을 다시 잡고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그러셨군요...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