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닥아온 문제를 풀어가면서
바뀌고,
자라고,
영글어가는 것을 과녁삼아야 한다고
목 쉬도록 소리쳐왔는데...
모임에서 만나는 이들 마다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깨우쳤다고 여기고,
조금이라도 달라졌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다시 "아직 아니구나!"
"옛날 그대로구나!"
여전히 제자리 걸음하고 있구나!
실망하고,
기운빠져,
그만둘까보다!!!
포기하려 한다.
자람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한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여든 다섯해 넘게 살고 나니까
이제 키가 9Cm 줄어들기라도 했다.
그만큼 줄어드는 쪽으로 바뀐 것이니,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주름살이 늘고,
머리가 파뿌리 되어도,
키와 몸 무게가 줄어도
이렇게 아프고,
바뀐 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보이는 몸만 (줄어드는 쪽으로 라도)
자라고 바뀌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도
바뀌고 자라야
살아 있는 것일지니!
계속 쉬지 않고 숨쉬고,
염통이 뛰고,
아픈 다리를 움직인다.
그 뿐일까?
느낌과 생각,
사랑과 기도하는 마음,
영혼이 바뀌어 새 사람되어야 할지니!
몸을 지키려 "따끔" 예방 주사 맞고,
힘내려 먹이를 움켜 먹고,
배 채우고,
쉬고 꿈꾸려고 불끄고 누워 잠을 청하고,
아픔을 견뎌내면서
진통제 삼키고 몇 발자국이라도 걷는다.
마음과 영혼이 튼튼해지려면 어쩌나?
온실 속 같이 바람 맞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키우면
나무가 튼튼해지지 않는다.
이쪽 저쪽으로 센 바람맞으며,
아플 정도로 폭풍우 쳐오는 데서 버텨내야
그 나무는 단단하고, 곧게 자라 재목으로 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부모가 아이들을 고이고이 길러야 한다는 양육방침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생물보다 어린이 시기가 긴 아이들을 과보호한다.
그래서 인류가 튼튼하지 못하고 실실 약해져간다.
참을 성도 없고,
힘든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걱정, 불안, 우울함이 짜증으로 표현된다.
대여섯 살 겨우 된 아이가
이마에 주름잡고 "아이 짜증나!" 한다.
눈꼽만큼 힘들이기도 참아내지를 못한다.
그런데 엎친데 덥친격
문명의 발달로 더 한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다.
아이들 마다 손에 '스마트 전화기'가 들려 있다.
적어도 열여섯 나이는 넘었으면 어떨까?!
자연스런 또래 벗님네들 사이에서
골목길,
놀이터,
교실과 운동장에서
동무들 사이에
서로 느낌을 주고 받으며
서로 거울되어,
서로 마음을 비춰보며,
서로 익혀가는 놀이시기를 제끼고
괴물 스마트 전화기가 대신한다.
교육 정책도 이제 그 끔찍한 '인공 지능'으로 하려 한다.
세상 살이 몽땅 '사람 내음' 싹쓸이 하려 한다.
엄마가 되어야 할 여자 아이들이 더 냉냉한 존재가 된다.
엄마가 되고 싶어 할 리가 없다.
아빠가 되어야 할 남자 아이들이 더 잔인해진다.
너그러운 마음일랑 찾아보기 힘들다.
엉뚱하게 인구 정책을 "돈으로" 해결해 보려 한다.
"문제는 어디 있는데?!"
이제 장성하였은즉
어린 아이의 일은 버렸노라!
바울 만의 고백일까!
뿌리째 온통,
몽땅 바뀌어야 함을!
전적인 자기 항복이려나!
전격의 자기 혁명이랄까!
자기 안의 천지개벽이라 할까!
쉬운 일 아닌 것만을 확실하고,
참으로 살리게 하는 소중한 선물임에는 틀림 없다.
자기가 갖추고 있는 힘으로,
능력으로 어쩔 수 없어,
겸허하게,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피 땀 흘리면서 기도하며
기다릴 도리밖에...
숨죽이고,
조용히...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