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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여행을 다녀와서-
(09.7.24-7.30)
어릴 적에 버스만보면 가슴이 설렌 적이 있었습니다.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나는,
당시에는 차가 귀해서 버스뿐만 아니라 어떤 차종이든
구경하기가 힘들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유독 버스만 보면 가슴이 더 설레었고,
그러다보니 버스를 실컷 타는 것이 어린 저의 소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어두운 밤에 실내등을 환하게 켜놓고
빠앙˜ 경적을 울리면서
고개를 올라가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 들어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답니다.
그 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소원은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우연히 방송통신대학의 7월호 학보를 통하여 소개 된
시내버스 여행의 안내를 보고,
지난 7월 24일 아침 대천을 출발한 저희 부부는 7월30일까지
6박7일 동안 우리나라를 4등분으로 나누었을 때
동북부 방향의 25개 중소도시를 다니면서 약1200km의 길을
버스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2년 전 이맘때 다닌 국토횡단 도보여행에 이어서
이번 여행도 새로움을 추구하기 보다는,
특정한 가치나 일상화 되어버린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첫날, 대전에서 신탄진으로 가는 시내버스 안에서
배낭을 가슴에 안고, 무표정한 얼굴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를 고생시키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번 여행의 깊은 의미와 이로 인한 행복은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 했습니다.
그다지 늙지도 않은 중년의 부부가
조그만 배낭을 하나씩 등에 메고는
요즘 누구나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없이
시내버스 노선을 묻는 모습과,
가끔 지친 모습으로 아무 곳에나 펑퍼짐하게 앉아 물병을 입에 대는 모습은
우리에게 눈길을 주는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오히려 우리는 또 한 번의 자유를 만끽하며
하나님께 모든 현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을 해본 여행 중에서,
승용차를 이용한 여행과 도보여행 그리고 이번의 시내버스 여행을
소요된 시간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면
차를 운전해서 바로 가면 30분(35km) 정도 걸리는 거리가
도보여행 할 때는 하루가 걸렸고,
이번 시내버스 여행에서는 다음 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 뮤직페스티벌 무대를 배경으로)
집을 나와서 8시간 후, 여섯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오후 5시경에
첫날의 숙박지로 정한 충북 진천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진천군에서 오후 7시부터 개최하는 healing music festival을 보기위해
참석한 많은 사람들과 넓은 잔디밭에 자리를 차지하고는
평화로운 전경을 마음껏 음미하면서 옥수수와 떡볶이를 먹었고
오직 이번 여행만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은
평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실감했지요.
음악회가 시작되자 우리에게 익숙한 클래식 연주를 시작으로
티벳의 국민가수이며 전 티벳 국무총리 부인이라는 겔상츄키의
달라이라마에 관한 노래 ‘다와돌마’와 ‘옴마니반메홈’등
티벳의 전통음악을 통하여 유구한 티벳의 문화적 아름다움과 역량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목소리를 통하여 느끼면서,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이번 여행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답니다.
저녁10시가 넘은 시간에 진천시내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비교적 가격에 비하여 시설이 좋은 모텔에서 여행의 첫날밤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8시 30분경에 다시 계획된 여행을 시작 했습니다.
둘째 날은 진천을 출발지로 광혜원, 죽산, 장호원, 감곡, 백운, 제천
그리고 영월까지 일곱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 동안
충북 백운면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박달재 고개를 약간의 가랑비 속에 다녀왔습니다.
(천둥산 박달재에서)
또 그날 면단위의 소도시를 지나면서 모든 소도시들이 공통적으로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20-30년 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걱정스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밤은 2년 전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
영월의 한 모텔에서 지냈습니다.
셋째 날, 이제는 제법 여행에 익숙해져서 여유를 찾은 우리는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평생 여행만 하면서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더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근거지인 대천이라는 장소와
여기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아스라이 멀리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평소에 우려하던 우리들의 노후 문제와 아이들의 결혼문제 등등의
모든 문제들이 순번 밖으로 밀려나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처럼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여행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부부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영월을 기점으로 태백을 경유하여 삼척까지 가는 동안
여섯 번의 버스를 갈아 탄 우리는
영월에서는 강가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선돌이라는 곳과,
방랑 김삿갓이 방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발점이 되었던 장소로
당시 과거를 치루 던 장소요,
또 단종이 그곳에서 사약을 받음으로
불귀의 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관풍헌(觀風軒),
그러나 지금은 모든 역사적 사실을 뒤에 감추고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觀風軒을 숙연한 마음으로 지나서
(관풍헌) (황지연못)
태백에서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황지(黃池)연못과
최고로 오래된 석회암 동굴로 알려진 용연동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태백에서 삼척까지는 버스 편이 마땅하지 않아서
기차로 동해까지, 다시 버스로 삼척까지 이동하였고
아들 홍민이가 2년 동안 군복무를 하는 동안
두 차례정도 방문한 적이 있는 이곳 삼척에서
그 당시 애틋했던 아들에 대한 감정을 되살려 보면서
여행의 세 번째 밤을 보냈습니다.
넷째 날, 평소와는 달리 이른 아침부터 여행을 시작한 우리는
아침식사를 거른 채 6시 시내버스로 신기군에 위치한
대금굴을 보기위해서 출발하였고,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한 대금굴을 관람하였습니다.
그리고 삼척에서 강릉까지는 바다열차에 탑승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삼척-강릉바다열차)
이어지는 버스 여행 속에서 강릉에서 간성까지 또 간성에서 거진이라는 포구까지,
이 날은 한 번 씩의 기차와 택시 그리고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고
운 좋게도 우리는 누워서 수평선과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민박집에서
여행의 네 번째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다음날, 여행의 다섯째 날에는 숙소를 나와서 통일전망대를 경유하여
진부령고개, 백담사, 원통, 인제, 홍천 그리고 춘천까지
비교적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원통버스터미널)
백담사에서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배지로 알려졌지만,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백담사 경내까지 올라가서
잠시 동안 권력의 허망함과 아울러 우리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였지요.
춘천에서는 시내버스로 약 40분정도 걸리는 소양호에 도착하여
여행의 모든 피로가 마치 소양호에 담긴 물 탓이기 라도 한 것처럼
하염없이 소양호를 바라보며 여행의 끝자락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제는 여행의 마무리 부분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춘천 소양호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춘천 시내로 나온 우리는
역 부근의 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 우리의 여행을 격려하기 위해 온
사촌 동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와 냉면으로 저녁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알던 사람을 여행 중에 만난다는 것!
이것은 여행하는 사람을 너무도 기쁘게 만드는
마약 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입니다.
밤늦게까지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했던 이야기를
아마도 서너 번은 더 반복하면서 헤어지는 아쉬움을 감추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이윽고 여행의 여섯 번째 날 아침에 가평에 있는 남이섬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남이섬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는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도에서의 1박2일
2년 전 도보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신도림역까지,
피로회복에 좋다는 홍삼 달인 물과 과일, 빵 등,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마중 나오신 세명대 박교수님 내외분의 차를 타고
이번에는 대부도로 갔습니다.
여름에는 손님으로 가지도 않고 손님을 받지도 않는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무시한 채 대부도에 사시는 노완우 사장님 댁에 갔지만
노사장님 내외분께서는 우리 모두를 환영해 주시며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셨고
우리부부는 또 한 번의 신세를 마음의 장부에 기록하고는
다음날 아쉬운 작별을 함으로
대부도에서의 1박2일까지 포함하여 모두 6박7일 여행의 막을 내렸습니다.
(**대부도의 노사장님 내외분과 박진서 교수 내외분,
약3년 전 인도여행 때 만나서 지금까지 혈연 이상의
친분을 나누고 있는 분들입니다.)
여행할 때, 비용이나 소요되는 시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시내버스여행의 장점은 경유하게 되는 도시를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과, 거리가 짧은 정류장에서 오르내리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그분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
이번 여행을 통하여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느낀 것은
‘누구의 삶이든 보잘 것 없는 삶이란 없다는 것과
누구나 산다는 것은 슬프고 힘들고 또한 아름답다.
그래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야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중국의 작가 위화(偉和)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09. 8. 4 박 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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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남편이 50넘으면 한다고 약속했어요. 넘 좋아요! 감동감동!!!
멋지다....정말 멋지십니다 한줄의 글을 보고 실행하시는건 낭만을 아시고 삶을 아시는것 같아요 ^^
빠~앙! 하고 길목을 돌아서 나오는 밤늦은 버스를 기다리던 추억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 지는 추억이지요. 멀리 고개 넘어 사라져 가는 버스 뒷꽁무니를 보면서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지요. 그곳엔 분명 멋진 사람들과 멋진 풍경이 있을거라고. 머리속으로 상상만 하던 고개 넘어 마을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같아 보입니다. 두 분의 여행기를 읽고보니 저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분 화이팅!
‘누구의 삶이든 보잘 것 없는 삶이란 없다는 것과 누구나 산다는 것은 슬프고 힘들고 또한 아름답다. 그래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 멋진 말이고요, 멋진 부부네요. 삶을 영위한다는 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런지.. 그런 여유의 근원은 어딜까요? 경제적 풍요? 아님 성격? 아님 삶을 바라보는 방향의 차이? 참말로 부럽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