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day 8"
오늘의 암호는 5,6,7. 한시간씩 빠르다.
4,910m의 밤은 고도탓인지 추위 탓인지 억지로 겨우 잠들었으나 얼마 못자고 깨곤 한다. 기침이 간간이 나고, 한번씩 가슴이 답답해지면 심호흡도 해야하고, 잠이 깨니 화장실도 가야하고,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어 춥고, 에고고 고달프다.
오늘은 한 시간씩 당겨 일정을 시작한다.
대망의 5,364m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정날이다.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 될것이다.
05시 모닝콜 따뜻한 레몬 꿀차 한 잔을 마시고, 보온병 물 한잔으로 양치하고 물티슈로 얼굴 닦고 끝.
방이 너무 추워 후다닥 카고백 정리해 내어 놓고 로비로 간다.
06시 이른 아침 식사. 메뉴는 뭇국에 계란프라이, 햄구이와 김, 멸치볶음.
다들 고산증세로 입맛이 없다. 억지로 밥 조금 국에 말아 먹는다.
차가운 아침 설산은 역시 신비롭고 아름답다. 어제 두분이 헬기로 내려 갈때 선두 가이드가 따라 갔다. 이제 후미 가이드 두명중에 한명이 선두를 보고 나머지 한명은 후미를 본다. 국내가이드와 메인가이드는 앞뒤로 오가며 힘든분들을 살핀다.
준비체조하고 07시에 출발한다.
롯지 주변에 헬기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트레킹 중에 헬기가 무수히 왔다 갔다 하더니
물자 수송도 있었겠지만 이렇 듯 고산증이나 부상으로 중도 포기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날씨가 좋아야 헬기도 가능하지 날씨가 안 도와주면 곤란한 상황이 될수있겠다.
오전은 5,180m의 고락셉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는 5,364m의 EBC 등정을 한 후 다시 고락셉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빙하지대라 아침 해 뜨기 직전이 무지하게 춥다. 걷다보니 서서히 열이나고 햇살이 비치니 추위가 조금 가신다.
계곡 능선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정면에 우뚝 솟아 있는 푸모리설봉을 이정표 삼아 무념무상 하염없이 걷는다.
고산증으로 거의 못드시는 룸메 언니의 동창분은 포기 않고 근근히 가이드랑 다른 분들 도움 받으며 걷고 계신다. 안쓰럽다.
그런데 룸메 언니가 앞에서 걷다가 자꾸 옆으로 슬며시 쓰러지는걸 몇번 붙잡았다. 에고고 고산증의 일종이란다.
고산증약 꼬박꼬박 챙겨 먹고 계속 수면제 먹으며 잠도 잘 자던데 언제 고산증이 저리 심하게 왔는지 모르겠다.
현지 메인 가이드가 우리 옆에서 걸으며 밀착 방어를 한다.
11시50분 5,140m에 위치한 고락셉에 도착한다. 살다살다 5,000m 이상의 고지를 다 올라본다.
걸어 오는 동안 명치가 아프고 숨쉬기가 힘이 들어, 더 힘들어 하는 룸메 언니 쉴때 마다 잘됐다 하며 곁에서 쉰다.
18명중 고속 적응 못한 두분이 포기하고 내려갈때 선두 가이드도 같이 갔는데 그 빈자리가 크다. 후미가이드 한명이 선두를 보는데 마음이 약한것 같다. 서너명 선두 팀이 빨리가자가자 뒤에서 밀어 부치니 떠밀려 가버린다(알고보니 선두팀은 고산 경험 많은 사람들인데 고산증 약 3,000m 부터 미리 챙겨먹고 있었고, 매일 밤 수면제 먹으며 나름 잠도 잘자고 그랬단다).
이제부턴 뚝뚝 떨어져 걷는다. 뭔가 리듬을 못타니 더 힘들다. 포기하고 내 나름대로의 리듬을 찾아 비스따리 비스따리 걷는다. 몽롱하다. 그동안 타이레놀 먹다가 고산증 약 어제 밤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다행이 두통은 없다.
속이 울렁울렁 거려 먹기 힘들고, 숨가쁘고 답답한건 누구나 다 그런거 같고, 기침이 조금씩 더 심해지는게 힘들다.
고락셉 롯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메뉴는 카레라이스. 억지로 몇술 뜬다.
점심식사 후 룸메 언니 동창분은 더 이상 못걷겠다 하셔서 롯지에서 쉬기로 하고 나머지 15명은 출발해 EBC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길이 아니다. 바위 자갈 너덜겅을 오르락 내리락 걷는데 고도차 300이지만 5,000m에서의 고도차 300은 정말 정말 힘이든다.
고산 등정 팀들이 정상을 100m 앞에 두고 포기했다는 소식에 겨우 그걸 못참고... 그랬었는데 걸어보니 알겠다. 5000m 급에서 이 정도인데 6,7,8000m급에선 어떠했을지...
말타고 가는 분은 계속 말을 타고 가고 있다.
죽을 힘을 다해 걷고 걸어 드디어 나의 버킷리스트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고 바위 전면에 붉은 페인트로 "EBEREST BACE CAMP 5,364m" 라고 써놨다. 제일 늦게 도착해 대기 줄도 없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끙차 올라서 벅찬 마음으로 인증 샷을 남긴다.
아~ 내가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꿈은 아니지!!
뒤에는 순백의 눈더미가 시커먼 암벽을 뒤덮은 거대한 에베레스트가 있고, 그 앞에 작디작은 내가 서있다.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늦었다. 하산길은 더 집중해야 한다. 너덜길을 역시나 오르락내리락 힘들게 걸어 어둑어둑해서야 다시 고락셉에 도착한다.
오늘이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였다. 몸은 너덜너덜하나 마음은 너무나 뿌듯하고 기쁘다.
저녁메뉴는 꽁치김치찌개. 속이 울렁울렁 거리고 영 입맛이 없다. 몇술 뜨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마지막에 나오는 물누룽지를 미리 달라해서 식힌 후 후루룩 마시고 식사를 끝낸다.
룸메 언니 포함 일행 세분은 내일 아침에 헬기로 하산한단다. 아픈분이 넘 심각하고 언니도 꽤 심각하고 한분은 괜찮지만 혼자 남기 그래서 세분이 같이 가신다고 한다.
내일 부턴 하산이다. 8일 걸려 올라온 거리를 3일만에 내려가야 한다. 거리는 길지만 고도를 낮추기에 컨디션이 좋아지겠지 희망을 가진다. 열악한 롯지 차가운 방에서 핫 물주머니 물병을 꼭 끌어 안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진다. 룸메 언니 깰까봐 신경이 쓰인다.
-24.10.13.일요일-
푸모리봉
눕체
고락셉(고락셉은 네팔의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 위치한 마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의 중간지점이다)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발도장 쾅 찍다!!
"꿈은 이루어진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다녀오고
딱 10년 만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황혼에 저물어 가는 눕체
첫댓글 일정중 오늘이 가장 긴 거리를 걸었군요.
발도장 찍는 그 순간에 벅찬 감동의 눈물이... ㅠ
꿈은 이루어졌다!
노을 진 황금설산이 또하나의 장관입니다.
선두 가이드의 공백이 바이오리듬에 큰 영향을 끼쳐 더 힘들었을 거라 짐작됩니다.
일행 대부분이 등정에 성공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리 릴리 고생 많았습니다.(토닥토닥)
가장 힘들었고
가장 기뻤던 날이죠
언니의
토닥임이
많은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