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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행복†충전소 원문보기 글쓴이: 행복충전소
(말씀의 도움을 위하여)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 치신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고전 2:13)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권능을 힘입기 위해서는 “신령한 것” 곧 성령께서 가르치신 지혜가 필요 합니다.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지혜나 이성적 판단이나 경험이나 학식이 그 통로를 가로 막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릴때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히 마음문을 여는 자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합니다.여기에 여러분의마음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여러분이 그동안 잘못 알았던 것이나 잘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1.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자세
1.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때문 입니다.
1)고정된 종교 관념 (religidusly brainwashed)때문 입니다.-지식, 경험,전통
마태복음 15장 ,마가복음 7장을 참조 하십시요
2)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면 의심 부터 하기 때문입니다.(롬 14장23절)
3)철저한 회개가 없기때문 입니다.(마 3:9-11;행 2:38)
4)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딤후 1:7;요일 4:18)
5)하나님 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기때문 입니다.(갈 1:10)
6)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기 때문 입니다.(갈 2장20)
7)하나님의 응닫만을 기다리는 시간을 갇지 않기때문 입니다.(행1:4; 유1:21)
8)영이 육과의 싸움에서 패하기때문 입니다.(롬7:25;고루 12:7)
2.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 합니다.
1)은혜를 깊이 사모하십시요 (시 107:9; 고후 8:12)
2)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 십시요.(눅21:33;눅 16:17)
3)말씀에 따라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십시요.(막11:23;빌 4:6-7;요14:12-13)
4)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의 시간을 가지 십시요(시 1:2-3;막 8:22)
5)하나님이 주신 내모습대로 주님을 섬기 십시요(약 4:1-3;롬12:3-4)
6)안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전달 됩니다(행 8:15; 14:8-10; 10:6)
7)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구하십시요 (고전 14:1)
♠ 2.찬양을 부를 때에 손뼉을 치고 손을 들고 춤을 추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읍니다.
1)우리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것입니다.그러한 마음의로 찬양하고 또 손을 들고 기도 할떄에 하나님꼐서 우리의 찬
양과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성령의 은총과 은사를 부어 주십니다.성경에는 손뼉을 치며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성령이 우리에게 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과 기쁨 가운데 나도 모르게 또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1.손뼉 치는 것
시 47: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꼐 외칠 찌어다.
시 98: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찌어다.
이사야 55: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 닥을 칠 것이며 예레미야애가 3:41-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2.손 드는것
열왕시상 8:54 -솔로몬이 무릎을 끓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앞에서 일어나 시편 134-성소를 향하여 너의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41:2 -나의 기도가 주앞에 분향함 같이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디모데 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3. 춤 추는 것
사무엘하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베 에봇을 입었더라.
시편 149:3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의 이름을 찬양 할찌어다.
시편 150:4 -소고치며 춤추며 찬양하고 현악과 퉁소로 찬양 할찌어다.
마태복음 11: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 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15:25 -맏 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대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참고:예레미야애가 5:15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토이 되었사오며
♠3.성령의 권능이임할때 나타나는 현상들
성령의 권능이 임할때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 납니다. 이에는 방언 ,방언 통역 ,예언 현상 뿐 아니라 신령한 노래 ,신령한 춤,웃음과 기쁨 ,진동이 있고 성령의 권능의로 쓰러지는 현상도 일어 납니다.
1. 방 언
사도행전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고린도 전서 14:18 -내가 너희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말하므로 하나님께 말하노
라.
고린도 전서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2,3 방언 통역, 예언
고린도 전서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린도 전서 14:3-5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우ㅣ하며 안위 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 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 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 하지 아니하면 말하는 자만 못하니라.
4. 신령한 노래
고린도 전서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의로 기도하며 내가 영의로 찬미하고 또 마음의로 찬미하리라.
에베소서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
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
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5.웃 음
창세기 21: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욥기 8:20-21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웃음으로 내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리니
시편 126:2 -그때에는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
다.
누가복음 6:21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6.기 쁨
시편 68:3 -의인은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 할찌어다.
전도서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의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 로다.
이사야 55: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느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빌립보서 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데살로니가 전서 5:16 -항상 기뻐하라.
7.진 동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히브리서 12:27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듣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 내심이니라.
8.쓰러지는 현상들
이 부분에 대한 오해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설명을 요합니다.
1)이것은 최면술이 아닙니다.-최면술로는 결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수 없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잘믿게 할수도 없읍니다.
2)쓰러지는 현상은 성령이 권능의로 임할때 그 사람의 육신적인 것을 결박 시킴의로 일어 나는 것입니다.
3)쓰러지는 현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도 일어날수 있고 ,찬양을 하는 중에도 일어나며 ,특히 안수기도를 받을 때 많이 일어 납니다.이것을 일반적으로 입신(入神)이라고도 합니다.
*안수 기도의 성경적 근거는
마가복음 16:18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사도행전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하니 .
사도행전 19:6 -바울이 그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
‘
사도행전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매
디모데후서 1:6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위하여 너로 생각 하게 하노니
*쓰러지는 현상(입신 ) 에 대하여 아래에 따로 취급 하고자 합니다.
♠4.입 신 (쓰러지는 현상)
1.용어 설명
쓰러지는 현상을 영어로는 slain in spirit (성령 안에서 죽어짐,살해당함),또는
resting in the spirit (성령 안에서의 안식)이라고 하며 그 원인을 overcome by
spirit (성령에 의해 정복 당함)으로 말하고 있읍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예
성경에는 입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는 않지만 이것은 어떤 영적인 현상을 표현한 용어입니다. 마치 삼위 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지만 신학적 술어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 하시면 됩니다.
◆ 구약성경: 다니엘 10:1-10 --힛데겔 강가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다니엘에게 임하는 순간 몸에 힘이빠졌고 ,깊이 잠들었다고 했읍니다.
*참고 (에스겔 1:3,28 ;2:1-2 ;3:12,14.23-24 ;8:3)
사무엘상 19:24 --하나님의신 (성령) 이 사울에게 임하시매 그가 예언을 하며 종일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있었읍니다.
◆ 신약 성경 :요한복음 18:3-6
3절- 유다가 군데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둘을 데리고 등과 회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 지라.
4절- 예수께서 그당할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찿느냐
5절-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그를 판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절-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때에 저희가 물러 가서 땅에 엎드러 지는지라.
* 예수께서 자기를 잡으로온 군대들과 하속들에게 자신을 밝혔을때 그들은 예수님안에 있는 성령의 권능에 앞도 되어 땅에 엎드러 지고 말았읍니다.
사도행전 10:10-11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때에 비몽 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
고린도 후서 12:1-4 --사도 바울이 고린도 후서를 쓰기 14년전에 성령의 권능에 휩사여 (입신 상태) 세째 하늘까지 가서 낙원으로 이끌려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사실을 말하고 있읍니다.
마태복음 28:1-4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울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히거늘 수 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태복음 17:1-6 ...말할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속에서 소리가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 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사도행전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 하느냐’”하시거늘
사도행전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요한계시록 4:1-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입신(쓰러지는 것)의 역사적 배경
성령의 권능으로 쓰러지는 현상은 위에서 본바와 같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읍니다.단지 근세에 이르기지 자주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뿐입니다.마치 전기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을때 부터 있어 왔으나 그것을 발견하고 에너지로 사용하기 시작한것은 최근의 일인 것과 같읍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러 및 그의 동역자죠지 휫필드는 18세기 미국 유럽의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이끈 지도자 들입니다.이들이 기독교에 끼친 공적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후세의 비 기독교ㅕ 역사 학사들 조차 이들이 사회적 위기를 극복해낸 공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분들 뿐아니라 당시 유명한 부흥사나 목사들의 집회시에 성령의 권능의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회개로 울부짖는 현상들에 대한 기록은 그들의 일기 ,자서전 및 저서들에서 상당히 발견되고 있어 묻혔던 보화가 이제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읍니다.
1)요한 웨슬레 (john wesley,1703-1791)
근세 교회사를 통해 볼때 두드러 지게 넘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요한
웨슬레로부터 시작 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레가 집회할 때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 아래 쓰러지곤 하였읍니다.
맨 처음 넘어진 것은 그가 설교하는 도중에 앞줄의 복도 옆에 앉았던 한 여인이 자리에서 갑자기 앞으로 곤두박질 하면서 바닥에 쓰러진 일이었읍니다.웨슬레는 그여인이 기절한줄 알고 설교를 멈추고 “이집에 의사 있습니까?” 하고 물었읍니다. 45분이나 기다린후에 그 여신도가 한 첮마디는 “주님 찬양 합니다.하나님께 영광 /“이었읍니다.(kenneth e.hagin. why do people fall under the power?,pp3-4)
R.A Knoxs는 1739년 1월 21일자 일기에서 1월 4일에 있었던 웨슬레의 집회 에서의
일을 다음과 같이 술회 하고 있읍니다.
“마이너리에서 설교하던 어느날 밤 깜짝 놀랄 일이 발생 했다.잘차려 입은 중년
부인이 갑자기 죽을 듯한 괴로움으로 울부짖기 시작 했다....(웨슬레의 친구)뮬더
씨와 허튼씨는 웨슬레에게 진정한 회심은 완전히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라
고 설득했지만 ,웨슬레가 브리스톨에서 설교 할때에도 사람들 이 죽을 듯이괴로워
통곡하며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가운데 눈에 띄게 사단의 권세에서 놓인 표적이
역력했다”.(R.A .Knox,enthusiasm).
☆ 웨슬레의 일기를 좀더 살펴봅시다.☆
1762년 리메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거듭났다. 모두가 바닥에 슬어져 울부짖고
기도하고 고성을 질렀다.”
1772년 뉴 케슬에서 “악명높은 백 슬라이더 (backslider:믿다가 실족 한 사람)가 생각나서 나는 갑자기 외쳤다....“여기 제임스 왔슨씨 있소 ?있다면 주님이여 능력을 나타내소서 ” 그러자 제임스 왓슨씨는 갑자기 돌짝 처럼 스러졌다.
1784년 코올 포드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자 불길이 일었다.많은 사람들이 크게울부짖고 많은 사람이 바닥에 쓸어지고 많은 사람이 심하게 떨었다.”
2)죠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1703-1770)
그는 영국인으로서 웨슬레와 동시 시대에 미국의 제1차 영적 대부흥 운동을 주도한 인물 입니다. 초기에 그는 웨슬레의 집회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을 보고 웨슬레에게 즉시 항의 편지를 보냈으나 다음날 휫필드 자신의 집회 에서 네 사람이 동시에 자기 쪽으로 쓰러지면서 진동과 울부짖음과 죽은 듯이 창백하게 누워있는 현상들이 일었났읍니다. “한 사람은 쥐 죽은듯이 조용히 누워 있었고 ,둘째는 심하게 떨었고 ,셌째는 몸 전신에 발작 증세를 일으키며 간간히 괴로워 울부짖었고 ,넸째는 똑같이 발작했으나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불렀다.”
어느 목격자는 그의 집회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 했읍니다.“더러는 죽은듯이 창백하게 쓰러져 있었고 ,더러는 손을 마구 돌리고 있었고 ,더러는 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었고 ,더러는 친구들의 품에 안겨 있었다.”
헨리 벤이란 사람은 1757년 휫필드의 집회시 일어난 일을 이렀게 기록 했읍니다.
휫필드가 설교를 시작하자 공원 묘지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넋을 잃고 더러는 울부짖고 더러는 흐느꼈다.더러는 울움을 참다 못해 방성 대곡 했다. 나(헨리)는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자제하시오/”하고 외쳤다. 이후 두번이나 더 자제를 촉구 했다. 설교가 끝난후 사람들이 포승줄로 묶인듯이 즐비하게 쓰러져 있었다.
3)죠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1703-1758)
에드워즈는 미국 대각성운동의 선구자로서 위대한 설교가일 뿐아니라 우수한 형이상학적 철학자요 문학가였읍니다.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신학자 이기도 합니다 .그의 집회에서도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났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너무 강하게 임함으로 집에 갈수가 없어서 교회당에서 밤을 지세기도 하였읍니다. 에즈워즈는 휫필드를 자기교회에서 네번이나 불러서 부흥회를 가졌는데 그때 일어난 놀라운 역사들를 기록했읍니다. “교회당 전체가 울부짖음과 쓰러지는 현상으로 가득 찼다.소문을 듣고 마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보고 듣고는 심령들이 크게 동했다. 사람들은 몇시간 동안 계속하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상담 하였다.그결과 참석자는 물론 마을 전천에 유익을 가져왔다.”
에드워즈는 이와 같은 현상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가진 이같은 편견은 이런 성령의 현상들에 대해 제대로 소개를 받지 못했거나 잘못된 외부의 일방적인 견해를 받아들였기 때문 이라고 본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분 나빠한다.또 자기들의 교리와 맞지 않아서 반대하는 이들도 있는데 ,반대하는 이들 스스로 그교리를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실상들이 그 교리를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Jonathan Edwaards, The Distinguishing H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p.83)
4)찰스 피니 (Charles Finney, 1792-1875)
찰스 피니는 장로교 목사로서 19세기 미국의 미국의 제 2 차 영적 대 각성운동에서 떼놓을수 없는 분입니다. 유명한 변호사였던 그는 논리 정연한 설교로 이름을 높였는데 휫필드처럼 처음에는 집회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읍니다. 그러나 그가 어느주일 오후 뉴욕주의 유티카시에서 약 15분 가량 설교를 하고있을때에 사람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마루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 하더니 이내 400명이나 되는 불신자들이 쓰러졌으며 이들 모두 그날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었났읍니다.피니는 일년 사이에 교회 역사상 유례없이 십여만 여명을 그리스도께 인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읍니다.
이밖에도 미국의 제2차 영적 대각성 운동 기간에는 많은 유명 무명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성령이 강하게 임하여 쓰러지고 울부짖으며 회개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고 있읍니다. 1801년 캔터키주 케인 러지시의 야외 집회에 참석한 1만 내지 2만5천명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당시 켄터키주 최대도시인 멕싱톤시의 인구가 1800명 이었음 )어느 장로교 목사가 안도하는 집회에서 3000명 정도가 쓰러져서 흐느끼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어느 목격자의 기록에 의하면 “소음은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 소리 같았다.쓰러진 사람들은 인산 인해를 이루었으며 마치 폭풍우에 강타당한듯 했다. 더러는 찬송가를 부르고 더러는 기도하고 더러는 처절하게 울부짖었고 더러는 목청을 높여 외쳤다....내 눈에 펼쳐진 광경은 ...
마치(모두들)기관총 사격을 받은듯이 쓰러져 있었으며 하늘 이라도 찢어질듯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5)마리아 우스워쓰 -에터 (Sister Maria Woodworth-Etter,1844-1920)
20세기초 오순절 운동 초기의 순회 부흥사인 그녀는 십대에 환상 중에 주님을 보았으며 30대 중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 하였읍니다. 집회를 통하여 그는 주평균 500명을 예수께 인도 했고 20세기 초기의 오순절 성령 운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읍니다.
집회중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은 미국 오하이주 월쎠에 있는 감리교-성공회에거 부흥 집회를 인도하던 중에 처음으로 일었났읍니다.3일간의 집회중 15명이 자비를 구하며 울부짖으며 강대상 앞으로 나왔을때 그들은 죽은 사람들 같이 쓰러졌읍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쩔줄 몰라하는 우드워쓰 -에터에게 주님이 환상을 보여주시며 말씀 하셨읍니다.
“네가 이전에 성령의 이끌리어 밀과 짚단이 쓰러지는 들판을 보지 않았느냐? 밀밭
은 네가 복음을 전해야할 사람들이고 쓰러지는 짚단은 네가 오늘 여기서 목격 하
는 “하나님의 살인적인 권능”(the Slaying power of God)이다.이는 나의 권능이
다.죄인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이끄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
능과 지혜이다.(Maria Woodworth-Eyyer,A Diary of Signs and Wonders).
1920년 이전의 어느날 그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70대의 고령에 사람이 가득한 천
막 안에서 설교를 하다가 ,한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표현하며 입을 벌리고 있는
채 성령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여 그 자세로 3일간을 동상처럼 얼어붙어 있었읍다
당시 신문의 기록에 의하면 십오만 이상의 인파가 그모습을 보려고 몰려 들었는
데 3일째된 밤에 하나님의 영이 그를 풀어주자 전혀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설교
를 계속하였읍니다.
1885년 1월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시의 어느 감리교회에서 있은 5주간의 부흥의
동안에는 수많은 남녀 노소들이 집이나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큰 길위에서 죽은
듯이 쓰러져 많은 불신자들이 신기한 환상을 보고 회심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려
읍니다.또 인디아나주의 코코모시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이 사방 80키로 미터까지
쳤읍니다”.
6)캐쓰린 쿨만 (Kathryn Kuhlman,1907-1976)
쿨만 여사는 중학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졌으나 그녀가 행한 무수한 신유의 은사와 아울러 “성령의 권능의로 쓰러지는 현상 ”이 당시 교계의 화제거리였읍니다. 쿨만 여사는 당시 “마녀” “사탄 숭배자”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읍니다.케이 목사는 보수 복음 주의자로서 엄격한 청교도적 신앙훈련의 전통과 남침례교의 교리에 입각하여 말씀 중심의 사역만이 성경적이라고 철저히 믿어 왔으나 쿨만 여사의 집회 현장을 목격하고자신이 믿어왔던 이론들이 이론들이 얼마나 허구였나를 깨닫게 되었읍니다.
쿨만 여사는 집회중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그이유를 묻지만 저는 흡족한 설명을 할 도리가 없읍니다.제가 믿는것은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감당 하기에는 너무나 미약 하다는 것입니다.우리가 그큰 능력과 접할때에 우리의 육신은 견더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성령의 고압 전류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7)케네스 헤긴 (Kenneth E .Hagin ,1917-)
헤긴 목사는 15년간 불치의 병의로 투쟁하면서 지옥의 환상을 여러번 보았읍니다.그는 1974년 오클라호마주에 레마(Rhema)성경 학교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일만 여명의 교역자를 배출 하였읍니다. 그는 지금도 전국에 걸쳐 T.V라디오및 문서선교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읍니다.
그의 집회중에도 쓰러지는 현상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읍니다.한 미군 장교였던 알콜 중독자는 젊었을때 조용하고 보수적인 교회를 다녔는데 헤긴 목사의 집회때의 일을 이렇게 술회 하고 있읍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치유의 기도를 받기위해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해 주기 시작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손을 올려 안수하는 사람마다 거의 모두 바닥에 쓰러졌읍니다. ...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 내가 절망적인 상태에서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나도 가서 기도를 받겠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넘어 지지 않을 거야./ ...그 다음에 제가 기억 하는것은 제가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읍니다.저는 제가 넘어지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두 가지 분명한 일이 저에게 일어났어요
첫째는 목사님이 저에게 안수를 하셨을때 전기와 같은것이 나의 전신으로 흘렀어요.따뜻함이 나의 전신으로 흘렀지요 .그것은 위대한 영적인 경험이었어요.저는 예수님께로 더가까이 갔어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요 둘째로 그토록 수년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던 그 술귀신이 나를 떠났읍니다.그후 저는 다시는 술을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읍니다.다시는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어요/”(케네스 헤긴 .예 태해옮김,성렬의 기름부음 .보이스사,pp158-159).
* 헤긴 목사는 자기에게 임한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술회 하고있읍니다.
내가 강단 의자 위에 앉아 있었을때 마치 누군가가 내 위에 무엇인가를 던지는 것처럼 느꼈다.나는 그것을 나의 전신 속에서 느낄수 있었다.그것은 내몸의 모든 부분을 통해서 진동하고 있었다.나는 그것을 나의 영으로 알수 있었다.또한 그것이 오래 지속 되지 않을것 이라는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그 이유는 내가 신체적으로 그것을 그렇게 오래 감당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강단에서 뛰어 내려와 안수기도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옆으로 달려 가면서 그들의 이마를 툭툭 쳤다.
나는 성령에 너도 압도 되었기 떄문에 그때 했던 일에 대해 나중에 목사님이 이야기 해주어 알게 되었다. 내가 뛰기 시작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내가 두눈을 크게 뜨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 것도 볼수 없었다.(위의책 p.172).
8)죤 윔버 (John Wimber,1934-)
윔버 목사는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 (Pasadena, Califonia)에 있는 풀러 신학교 (Fuller Theological Seminary)교수로써 (Sings and Wonders) 아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분있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소재 (비냐드 크리스찬 교회 )(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개척자로써 1980년초에 시작한 그의 교회는 소속 교회가 500여개에 이르러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수 있읍니다.미국내의 쟁쟁한 보수 신학자들 및 목사들이 친구의 권유로 윔버 목사의 집회에 마지 못해 참석 하였다가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오늘 날도 동일하게 역사한다는 “능력 전도 ”(Power Evangelism)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되었읍니다.
그는 과거 어느 교회를 담임하고 있을때 청소년 부흥 집회중에 초청 강사가 느닷없이 “성령이여 오소서 /”하고 외치자 청소년들이 여기저기에서 쓰러지는 현상들을 목격 하였읍니다. 그러자 거기 참석 했던 회중의 일부는 성경책을 획 덮어 버리고 집회장을 떠나갔고 보수 복음주의 교리로 훈련된 윔버 목사도 아수라장이된 상황에 노기가 등등 했지만 통제 불능 이었읍니다.회주의 반발을 생각한 윔버 목사는 정신이 아찔 했읍니다.집에 와서도 그는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채 잠자는것을 포기하고 성경을 뒤졌읍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라는 구절은 없지만 성령의 권능의로 사람이 떨고 쓰러지는 구절을 몇 개 찾았읍니다.그는 교회사 중에서 에드워즈 휫필드및 웨슬레 등이 묘사한 집회 광경을 어렴풋이 생각해 냈읍니다.
새벽 6시 30분경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사는 친구 목사가 장거리 전화를 해왔읍니다.친구 목사는 주님께서 윔버에게 주시는 세단어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전화 했다고 하였읍니다. 그가 간밤에 윔버에게 무슨일이 일이 일어났는지 알리가 없었읍니다. 그메세지는 “내였느니라”“(The Was Me/)하는 말씀 이었읍니다.윔버 목사는 망연 자실 하였읍니다. 물위를 걸어오신 주님이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 “(마14:27)하셨던 것이 생각 났읍니다.윔버는 “초 자연적인 능력 ”을 누구보다 부정하던 사람이었읍니다. 이후 그는 하나님의 능력의 주창자가 되었고 그의 집회에서는 지금도 쓰러지는 현상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읍니다.(John Wimber With Kevi Springer,power Evangelism,Harper and Row,1986, pp.23-26). 이밖에 현재 살아있는 목사들 중에서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는 분들이 많이 있읍니다.찰스 헌터 ,모리스세룰로 ,밥 위너 ,베니힌,데몰라 ,노라 램 ,아나콘디아 목사등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은 분들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쓰러지는 현상들이 일어 나고 있읍니다.
4. 입신 현상의 세 가지 구별
1)육이 무감각한 상태에서 영이 하늘 나라로 가는 상태
2)육의 모든 감각과 생각이 있는 상태에서 하늘의 오묘한 신비를 체험하는 상태
3)아무것도 보지 못하나 심령의 평안을 누리는 상태
사도 바울은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도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2-3)라고 말했읍니다.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천지에 충만 하시고 (예레미야 23:24)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5.입신의 유익한 점
육이 잠깐이라도 약해지는 순간 영이 승리 하므로 마음의 평화를 맞보게되는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롬 8:1-7 ;고전 2:10-13 ;마 12:22-23 참조 )즉 육의 소욕이 감소 되고 성령의 소욕이 성장되는 증거가 됩니다.(갈 5:16)이때에 심령의 치유와 육신의 질병의 치료를 받을 때도 많읍니다.
1)세상의 근심이 없어짐 -마 6:34 ;요일 2:15-16 ;약 3:15-18 ;고후 7:10;벧전 5:7
2)마음이 깨끗해짐 -막 2:5 (예수님과 중풍병자);약 5:14-16
3)마음에 평화가 옴 -롬 14:17 ;요 14:26-27; 눅 17:20-21
4)회개가 된다. -롬 8:16; 요 16:8;행 2:37-38
5)기쁨이 솟아남. -요 7:37-39 ;시 68:3 ;빌 4:4;살전 5:16
6)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남 -요 14:26-27 ;요일 2:27
7)영이 육을 초월 ,혹은 이김 -롬 8:13-17
8)방언의 은사를 받음 -행2:1-4
9)전신갑주를 입으며 소명감을 받음 -고후 6:2; 골 4:3;엡6:12-13
10)웃음의 기쁨이 넘침 -욥 8:20 ;시 126:2;전 2:2,24;눅 6:21
11)춤의 기쁨이 있다. -삼하 6:1-2 ;시 130:4; 마 11:17
12)환상을 보게됨 -고후 12:1-3
13)입술에 말씀을 넣어줌 -겔 2:8 ;계10:9 ;시 81:10
14)말씀이 들려옴 -단 10:8-21
15)전류가 흐르며 힘이 생김 -단 10:19;행 4:29-31
16)불이 내림 -행 2:1-4; 마 3:10-11
17)변화가 생김 -롬12:2 (심령의 치료로 생활과 성품에 변화 )
18)육에 힘이 없어질때 질병이 없어진다. -막 9:17-21
19)귀신이 성령의 힘에 숨어 있지 못한고 발작 한다. -마12:28
20)주님 일에 충성심이 생겨난다 -고전 4:1-2
21)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갈 5:22-23
6.입신 상태에서 주의할 점
1)입신한 분 옆에서 대화나 소음은 금하며 ,몸에 손을 대는 것도 금합니다.대신 조용히 찬송을 부러 주어야 합니다.
2)넘어지게 될 때나 누워 있을 때에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말고 날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그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로 회개 할때가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역사하는 것이며 우리가 연약할때 친히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롬 8:26)
4)몸에 새힘이 생길때까지 주님을 생각하고 ,일어날수 있을때에 조용히 일어나는
것이 좋읍니다. (단 10:18-19)
5)안수 받아보니 별것 아니더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일을 비난 하는것이 됩니다. (엡 4:30)
7.누가 입신의 체험을 잘할수 있습니까?
1)하나님의 주권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자 .
2)마음이 순결하고 청결한 자 (마 5:8)
3)사모하는 영혼 (시 107:9)
4)하나님과 기도해주는 자와 기도 받는자의 영적 체널이 맞을때 (행 19:6)
*주의 :넘어지는 것은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구원은 믿음과 관계가 있읍니다.)
♠5.성령의 역사와 성령 세례를 받은 자가 주의 하여야 할일.
1. 받은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것 (갈 5:13)
2.영적 훈련이 있으니 함부로 자랑하지 말것 (시 17:3-5)
3.모든 것을 질서대로 하고 적당히 할것 (고전 14:40)
4.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가? 없으면 조심할 것( 14:17)
5.말씀과 기도로 재 무장할 것(엡 6:12-20)
6.교회 일에 말없이 기쁨으로 봉사하라 (벧전 4:7-10)
♠6.이상과 같은 성령의 권능이 임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함부로 비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22-37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회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1)-성령 훼방 죄를 짖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며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 (마12:36-37)
함부로 말하여 범죄 하지말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대한 예수교장로회(개혁) 목포노회의 질의에 대한 응답
팜플렛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고찰과 비판
1992년 10월 19일
*첨부물 : 목포 노회의 질의 내용 1 부
대한예수교 장로회 광 주 개 혁 신 학 연 구 원
KWANG JU REFORMED THEOLOGLCAL SMINARY
* 목 차 *
l.성경신학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1
1.1.은혜를 받는 자세에 관한 팜플렛의 입장에 대한 고찰과 비판..................1
1.2.으혜를 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료하다는 팜플렛에 대한 고찰과 비판.2
2.“찬양을 부를때 손뼉치고 손을 들고 춤을 춘다.”는 것에 관한 고찰과 비판.......3
2.1. 손뼉치는 것..............................................................3
2.2. 손을 드는 것.............................................................3
2.3. 춤을 추는 것.............................................................4
3.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관한 고찰과 비판.................4
*웃음.........................................................................5
*기쁨.........................................................................5
4. 저자가 팜플렛에서 열거하고 있는 현상들중에서 입신(쓰러지는 현상)에 관해서
중점적으로 고찰하고 비판...................................................6
4.1. 구약 성경 인용에 대한 비판...............................................6
4.2. 신약 성경 인용에 대한 비판...............................................7
4.3. 신,구약 성경 인용에 대한 결론............................................8
2.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개혁 주의 성령의 역사와 기적에 대한 요약)..9
1. 성령의 역사................................................................9
2. 기적의 역사...............................................................10
3. 성령의 역사와 악령 역사의 구별............................................11
4. 입신이라는 용어에 대한 신학적 고찰........................................11
3.교회사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13
1. 요한 웨슬레 감리교 운동 평가..............................................14
2.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70)...................................15
3.성령운동(POPULAR Penyecostal Movement).....................................16
3.1.마리아 우드위쓰-에터(Sister Maria Woodworth-Etter,1884-1924).............17
3.2.Kathryn Kulman ,1907-76..................................................17
3.3.Kenneth .E hagin, 1917- .................................................17
3.4.JOhn Wimber,1934-........................................................18
4.교회사적 관점에서의 결론 ..................................................18
3.입신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요약적
결론.................. ................................18
팜플렛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고찰과 비판
본 광주 개혁 신학 연구원에서는 목포노회의 요청에 의하여 위 문건을 성경 신학적,조직 신학적 ,교회사적인 입장에서 고찰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l.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1.1.은혜를 받는 자세에 관한 팜플렛의 입장에 대한 고찰과 비판
팜플렉 1쪽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고정된 종교 관념(Religiously Brainwashed)때문 입니다.-지식,경험,전통
마태복음 15장 ,마가복음 7장을 참조 하십시요.
2)알지못하는 일이 일어나면 의심부터 하기때문 입니다.(롬14:23)
3)철저한 회개가 없기때문 입니다.(마 3:9-11; 행 2:38 ).
4)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딤후 1:7; 요일 4:18 )
5)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기때문 입니다.(갈 1:20).
6)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기때문 입니다(갈2:20).
7)하나님의 응답만을 기다리는 시간만을 갖지 않기때문 입니다(행1:4;유1:21).
8)영이 육과의 싸움에서 패하기때문 입니다.(롬 7:25; 고후12:7)
“1)”에서 (고정된 관념)때문이라고 하는것은 잘못된 것이다.왜냐하면 고정된 관념이란 부정적인 면이 있음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모튼 고정관념을 배격할수는 없다.
하나님은 역사를 섭리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당신의 선하신 섭리로 다스리신다.과거 역사와 지식과 경험과 전통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있기에 이것은 우리가 잘 보존 및 계승 해야 하며,과거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배격 해서는 안된다.또한 본 팜플렛 저자가 “Reliously Brainwashed"라는 단어를 마태복음 15장,마가복음 7장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으나“Brainwashed"라는 단어는 과거 공산당이 사사을 세뇌 시킨다는 의미에서 쓰는 것이지 성경적인 용어가 아니다.
“2)”에서 모든 의심을 정죄하고 있는데 ,모든 의심을 부정적인 시각의로 보는것은 옳지 않다. 이는 정당한 기독교 공동체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전통에 어긋나는 일에는 의심하는 것이 가하기때문 이다.성경에는 베뢰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의면서 성경에 그러한가 상고 했다.(행 17:11하).
또한 저자가 의심의 예로 열거한 롬 14:23에서의 “의심”이라는 말도 성경의 본문 의미와 전혀 다르게 인용하므로 자기의 견해에 짜맞춤의로서 성경의 본연의 의미를 왜곡 시키고 있다.
“3)”에서 철저한 회개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이다.인간편에서 회개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강조함이 개혁주의 사상이나 물론 회개는 필요하다.그러나 회개가 공덕이 되는 것은아니다.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보다 인간의 회개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알미니안주의 이다.
“5)”에서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갈 1:10)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것인가 사람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양자택일의 경우는 하나님을 먼져 기쁘시게 하는것이 성경적이다.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있는 범위 안에서는 사람도 기쁘게 해야한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명목아래 방약무인한 행동을 해서는 않된다.그리스도인은 규모를 가지며 염치와 정절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4)”,“6)”,“7)”,“8)”에 인용한 성구를 전반적인 문맥속에 살피지 않고 자기 견해 에 유리하도록 짜집기 함의로 아전인수 격이다.
1.2.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팜플렛에 대한 고찰과 비판.
팜플렛 1쪽에서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열거 하고 있다
1)은혜를 깊이 사모 하십시요(시 107:9; 고후 8:12)
2)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의 십시요 (눅21:33;눅 16:17)
3)말씀에 따라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의 십시요 (막11:21;빌 4:6-7;요 14:12-13)
4)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 시간을 가지 십시요 (시1:2-3;막8:22).
5)하나님이 주신 내모습대로 주님을 섬기 십시요 (약4:1-3;롬12-3-4).
6)안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전달됩니다.(행8:15;14:8-10;19:6)
7)하아님의 사랑을 따라 구하십시요 (고전 14:1).
*이중에 특별히 문제되는 것은 “6)”항이다.
“6)”은 안수지상주의와 기복 신앙에 기인 한다.예수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은혜와 병고침을 주실때 ,안수만을 통해서 이루어진것은 아니다.
2.“찬양을 부를 때 손뼉치고 손을 들고 춤을 춘다”는 것에 관한 고찰과 비판
찬양을 부를 때에 손뼉치고 손들고 춤추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에 의한 특수한 현상의로서는 인정될수는 있으나 ,성도들을 의도적으로 신비스러운 정신 상태로 이끌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그리고 이러한 현상들도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절제 되어야 한다.
2.1.손뼉치는 것
시 47:1- 하나님을 찬양키 위해 손뼉을 치는 것이며 ,입신을 위해 하는것이 아니
요,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의 위엄과 지존 하심을 찬양하는 때 한 행위
이고 입신과는 관계 없다.
시98:8- 만물의 찬양이 그 표제이다.시인은 “큰물이 박수”하며 하였는데 ,이는 만물을 의인화 한 것이고 입신키 위해 박수 하라는것은 아니다.
사 55:12-역시 만유를 의인화 한 것이며 입신한 모습과 관계 없다.
예레미야애가 3:41 인간인격 전체를 주님을 향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의 간곡한 메세지이며 인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며 언약 백성의 특성
을 회복 하자는데 있다.
2.2. 손을 드는 것
왕상 8:54 -솔로몬의 경건하게 기도하는 자세이고 인신하기 위함이 아니다.
시 134:2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종함과 순종의 표현으로 기도하는 자세일 뿐이다.
시 141:2 -이 말씀은 손을 드는것이 “저녁 제사 ”와 같이 되게 해주십사함이요 ,입신케 해 달라함이 아니다.
2.3 춤을 추는 것
삼하 6:14 -문맥의 흐름에 의하면 여호와의 궤과 다윗성의로 돌아오게 되매 기쁘고 즐거움으로 충만한 이스라엘과 다윗이 축제 분위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고 정규 예배의 현상은 아니다.
시편 149:3 -여호와의 백성의 삶은 여호와 앞에 기쁨과 즐거움이다.춤추고 즐거움이 잘못이 아니다.이는 어디까지나 심미적임이 중심이 아니고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림이 축제의 중심이고 가장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중에 자연스럽게 감성이 살아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입신 중의 황홀한 상태가 아니다.
시편 150:4- 이스라엘의 예배 의식이고 입신을 위함이 아니다.
3.1.“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 ”에 관한 고찰과 비판
3.1 본 팜플렛의 저자는 성령의 권능의 임할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8가지로 나누는데 ,그 나눔의 근거가 확실지 아니하다.
먼저 방언과 방언 통역과 예언은 그 신약 성경적 증거가 고린도전서 12-14의 은사론에서 기초하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되어서 바울이 처방을 내렸던 주된 문제는 방언과 통역과 예언이었지만 (고전 12-14장),그러나 바울은 그것들만 “성령의 권능이 임하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정의 하지않고 “지혜”,“지식”.“믿음”,“치유”,“영분별”등에 대해서 동일한 것으로 언급한다.이들중에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들을 구하라 하면서 가장좋은 것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특히 고전 12:39에는 모든 사람이 가진 은사가 동일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여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곘느냐 ,....다 방언을 말하곘느냐,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 하므로 방언과 통역과 예언에 대해 다른 은사보다 나은 특권을 부여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3.2.팜플렛의 저자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과 고린도전서 12장의 방언은사를 동일한 방언이라는 범주에 둠으로 두 성경간의 큰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있음을 본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오순절때 ,사도들의 전도를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말하여진 것으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이해가 가능한 복음전파를 위한 종말론적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행 1:8,그리고 2:17의 요엘 예언).이러한 사도행전 방언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일어남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사도행전이나 고린도전서에 나타나는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계시적 은사로서 오늘날의 방언이나 통역의 은사와 내용이 다르다.예언의 은사는 계시가 충족되었음으로 다시는 예언의 은사는 없고 오늘의 설교와 말씀 전파로 대체 되었다.
3.3.팜플렛 4-8번에 나오는 신령한 노래 ,웃음,기쁨,진동,쓰러지는 현상 등을 성령의 권능이라고 분류한다면 ,성령의 은사는 「 Χαρλσματα 」와 「εξουσλαλ」를 구별해야 된다고 보여진다.즉,성령이 임할때 “기쁨” ,“찬양”,“웃음”등이 나타나는 것은 특별한 은사 (방언이나 통역 등)로서가 아니라 우라의 감정이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도구로서 사용되어지는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7번의 “진동”은 행 4:31에서 근거를 취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은 진동의 목적을 전도와 선교를 위한 외적 증거로 하나님이 주신것 이라고 표현하며 “모인곳이 진동했다.( )”고 언급하므로 요즈음 신비적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진동의 은사와 ”는 완전히 다른것을 보여 준다.아울러 “진동”에 대한 신구역으 모든 성경 구절은 사람이 진동한다는 표현이 발견되지 않으며 ,모든“진동”이라는 단어는 땅,산,혹 나라들이라는 무인격적 존재에 사용되며 그것을 진동 시키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낸다.사람이 떨며 진동 했다는 표현은 성경에 생소하며 혹 그러한 경우 떤다는 표현은 두려움의 상징적 표현이다.(사 21:4내마음이 진동하며 .......).
그들의 성령의 임재 현상의로 듣고 있는 웃음과 기쁨도 다음과 같이 고찰된다.
*.웃 음
창세기 21:6-,창 18:11-12에는 말씀과 관계가 있다.사라가 믿음으로 이삭을 낳음으로 그에게 기쁨을 주셔서 웃게 하셨다 함이다 .어떤 황홀경에서 무의식 상태로 웃음을 머금은 것은 아니다.
욥 8:20-21-하나님이 주신 복이다.웃음은 고악으로 이한 탄식과 비교 되는 개념으
로 욥의 고통은 불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빌닷의 설론으로 욥을 곤혹케하는 말이며 ,문맥상 종교적 전술로 그 백성을 괴롭히는 말이다.
시 126:2-포로에서 귀한한 유내 백성의 환히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상의 인용한 성구들이 입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 쁨
이 항도 입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성구를 인용한 것이다.
시 68:3-의인의 기쁨이다.
전 2:24 -전도인이 무엇이 행복이냐 함에 대한 답일 뿐이다.신령한 낙은 좋은 것이다.
사 55:12 -메시아의 예언 중 그분앞에 나아가는 백성의 시적 상태를 계시함이다.
4.저자가 팜플렛에서 열거하고 있는 현상들 중에서 입신(쓰러지는 현상)에 관해서 중점적으로 고찰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4.1. 구약 성경인용에 대한 비판
단 10:1-10 몸에 힘이 빠지고 깊이 잠이 든것은 입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그가 계시를 수납한것은 문맥을 깊이 살피면 입신중에 받은것이 아니고 의식이 있을때 받았기에 그가 잠들었을 때에 무의식 상태로 계시가 전달된 것이 아니라고 볼수있다.“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깊이 잠든 것 ”이고 ,잠들었을 때에 그 말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다.그러나 입신을 주장하는 자들은 입신자가 잠든것 같은 상태에서 말을 한다고 하며 ,입신자는 무의식 중에 의식 있는자와 대화 한다고 하니 ,이것은 비성경적이다.
겔 1:3 -에스겔에게 주신 계시 사역이 기록된 것이며 입신 상태가 아니다.
겔 1:28-계시를 수납하는 자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 의식이 분명한중에 나타나 느끼게 한것이지 할홀경에 진입 했거나 입신 상태가 아니다.“엎 드리어”는 경외의 자세이지 입신의로 쓰러진것이 아니다.입신자는 자기 정 신없이 쓰러지는 것이다.
겔 2:1-2,1:28- 말씀과 그 개념이 일치되는 것은 눕게하거나 쓰러져 있는 자가 어
떤 계시를 받게 한 것이 아니고 본절의 요의는 엎드린 자를 이르켜서 그에게 말씀 하신 것이므로 본절이 입신 곧 쓰러지는 현상이라고 함은 잘못된 해석이다.
*몸에 새힘이 생길 때에서 인용한 성구 즉 단 10:18-19은 전혀 입신과는 관계 없는 말씀이고 다니엘이 계시를 수납 하던중에 일어난 일인데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환상을 의식중에 접하고 “근심이 더하여 몸에 힘이 없어졌고 ”인위적으로 최면상태에 빠져서 무엇을 토로한것이 아니라 함을 확언하고 있고 ,다니엘이 무의식 상태에 있을떄에 (호흡이 남지아니한때 )는 계시를 수납하지 못했음은 “내 몸이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 했음으로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수 있으리까?”(17)하였음을 보아 혼수 상태 또는 최면 상태에서 말하는것과는 전혀 다르다.이것은 입신으로 쓰러진 상태가 전혀 아니다.
*사모는 영혼 :입신을 사모하는 영혼이 아니다(시 107:9).
시 107편은 광야 40년의 방황하던 때와 그 피곤함을 상기하면서 그 곤고한 중에도 바른 길로 인도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체험케 하신 일을 감사 하면서도 지금도 살아계신 여호와께서는 주리고 목마름 같이 주님을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그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함이며 입신케 한다는 말은 아니다.입신을 주장하는 자들이 성경을 인용한것은 성경 해석의 방법과 학리를 무시하고 이에 전혀 무지 하므로 아전인수격으로 편의 하게 인용한 것임으로 교인들을 오도 (誤導)함에 방편이 되고 있는 듯하다.
4.2.신약 성경에 인용에 대한 비판
본 팜플렛 저자는 성경에서 입신이라는 단어를 찾을수 없다고 하면서 5쪽에서는 입신과 비슷한 단어나 어귀를 그것과 대조하여 <이것이 입신이다.>라는 논조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일차적 의미인 문자적 의미를 뛰어넘어 은유적 상징을 먼져 찾으려는 방법이므로 만일 이것이 가능 하다면 영적 해석에 의한 단어의 의미전환이 모든 성경에서 가능하다는 원리가 나올 위험이 있다.
A.입신이라는 단어를 저자가 주장 하는대로<하나님이 신자에게 주는 은혜스러운 현상이다.>라는 의미로 정의 한다면 요 18:3-6의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때에,저희가 물러 가서 땅에 엎드려 지는지라 ”라는 말은 입신 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사용된다면 이는 잘못된 성경인용 이라 보여 진다.왜냐하면 예수를 잡으로 온자들은 그의 말씀의 권능 앞에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죽은 자 ,권능 앞의 완전한 굴복을 의미)라는 표현은 은혜나 성령충만 과는 상관없는 표현 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예는 마태 28:1-4,마태17:1-6에 인용된 성경 귀절도 동일한 원칙에서 조명할수 있읍니다.마태 28:4의 “죽은 자들과 같이 되었다 .”의 뜻은 죽은 자처럼 의식적 활동이 정지된 것을 가리키지 아니한다.성경은 오히려 “저를 무서워하며 떨며 ”라고 언급하므로 그리스도의 권능앞에서의 인간에 모습에대한 상징적 표현의로 보아야 한다.그래서 요 18:3-6,마 28:1-4 ,17:1-6 등의 성경 인용은 저자 자신이 11페이지에 분류한 입신의 3가지 형태중에 아무것에도 속하지 아니한다.
B.특별히 하나님은 자신의 특별 계시를 꿈이나 환상의로 전달하시는데 ,이러한 방법은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는 신약새대까지 어느 정도 이어 내려왔다.행 10:10-11에 인용된 베드로의 <비몽 사몽>이라는 단어는 입신상태의 쓰러짐이 아니라 환상을 통한 계시 전달 수단인 것이다 .이 “비몽 사몽 ”이라는 < >라는 헬라어는 환사의 상태나 놀래거나 경악의 상태에 이른 것을 표형하는 용법이었다.
C.사도행전의 바울의 소명 가운데 9:4과 26:14의 “땅에 엎드러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빛과 음성 앞에선 인간의 당연한 결과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 부르시는 특별계시의 일환인 것이며 ,본문에세 이야기하는 안수시 은혜의 방법의로서 쓰러짐과 는 전혀 상관없는 성경 본문인 것이 증거가 된다.어느누가 바울의 소명과 같은 상황앞에서 따에 엎드려지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팜플렛 본문에 기록된 쓰러짐은 이러한 소명이나 직접 계시와는 상관없는 안수시 쓰러지는 현상들을 설명하여 바울의 엎드림을 그것의 증거 귀절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인용에 있어서의 원칙적이지 아니하다.
D.11쪽의 “입신의 유익한 점(넘어짐의로 유익한점 )”이라하여 1-21까지 열거된 성경구절들은 물론 입신과 특별히 관계되어진 것은 없다 .대부분의 인용된 신약 성경들이 저자의 주장과 관계없이 인용된다. (예 팜플렛의 2번의 막 2:5,약5:14-16,3번의 롬14:17 은 안수나 입신의 결과로 평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약 30여개의 성구들이 인용되어 졌지만 그 성경들이 모두” 입신의 유익“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아나한다.단순히 본 성경들은 전후의 문맥과 관련되어 성도의 삶과 생활,은혜의 기쁨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며 ,본 팜플렛의 저자가 자신의 의도하는 제목들을 위해 한귀절,한귀절을 뽑아 인용하므로 원성경 저자의 의도에서 빗나가고 있는 인용이라고 보여진다.
4.2 신구약 성경인용에 대한 결론
입신을 주장하는 어떤분이 인용한 성구를 살펴본 바 구약성경의 어느한 구절도 바르게 인용한 절이 없고 편의상 인용한것임을 알게 하였고 성겨의 근거를 찾지 못했다.
신약성경 내에서 입신이라는 단어는 본 팜플렛의 저자가 인정 하는 대로 (팜플렛 5쪽 )나타나지 않는다.그리고 안수라는 방법을 통해 쓰러지는 현상도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없다. 역시 사도나 그리스도에 의해 안수등의 해함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은혜를 받았다는 언급도 발견되지 아니한다.신약 성경에 쓰러졌다는 혹은 엎드려졌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권능앞에 설수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예수의 권능 ”에 촛점이 맟추어져야 한다.
신약 성경에있어 성령의 역사는 은사나 성령충만 자체 보다는 늘 교회의 덕을 세움에 있으며 그것을 통한 복음전도에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의 방언도 그렇게 방언자체보다는 방언을 수단으로 오순절에 모인 천하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하는 전도의 사명에 중점이 되어있고,고린도 교회에게 통역이 없는 방언을 금한(고전 14장)바울의 권고도 그렇게 이해된다.
입신은 기독교 신앙계의 현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무속계에 퍼져있고,또 철학에게도 Plotinus와 같은 신 플라톤 철학자들이 친히 체험이 있다는 이원론적 사상에 기인한다. 입신은 성경적인 기독교의 사상이 아니다. 기독교인에게 임하는 성령의 역사는 인격적인 감화와 중생과 성화를 체험케 하며 하나님 앞에서 또 사람앞에서 인격적이고 의식적인 교호관계(交互關係)로써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변화 성장케 하시는 주님의 절대주권적 사역의 결과인 것이다.
2.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개혁주의 성령의 역사와 기적에 대한 요약)
1.성령의 역사
성 어거스틴을 은혜의 신학자,루터를 칭의 신학자,칼빈을 성령 신학자라고 한다. 그래서 벤자민 B.워필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 칼빈의 전 생애의 2대 원리라고 한다. 이 두 원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며 또한 성령을 통하여 하시기 때문이라.1)
칼빈은 성령과 말씀을 분리시키지 아니했다.참으로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다.그는 성령의 역사를 말함에 있어서 조직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령의 주된역사가 무엇인가를 아주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설명했다.그에 의하면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결 시키는 띠”라고 했다 .2) 환언 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객관적인 구속의 역사가 주관적으로 신자에게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역사는 “믿음을 일으키는것 ”이라고 칼빈은 말했다.2) 환언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의로 신자는 중생되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것이다.이것이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이다.이 말은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향을 잡아주는 말이다.요즘 성령운동 이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막상 성령운동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신유 은사 ,방언 예언 ,병고침을 말한다고 한다.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성령의 역사의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소치라고 할수있다.왜냐하면 진정한 성령운동은 예수믿게 하는 역사가 진정한 성령의 역사이며 기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이루시는 기적중의 기적이시기 때문이다.따라서 입신을 성령의 권능의 표현으로 이해하며 그것이 성령의 권능을 받은 것인양하는 사람은 누가 되었던 간에 성령 역사의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적어도 개혁주의적 칼빈주의자는 아니다.
칼빈의 신학에 의하면 성령의 중심된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3) 성령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씅\ㅁ을 올바로 이해하고 선포하고 가르치도록 도우시는 내적인 선생이다.따라서 성령의 중심된 사역은 방언이나 신유가 아니다.
칼빈은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 하신다. 그래서 개혁주의 는 성령의 역사는 말씀이 없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주의도 아니며 말씀만을 지나치게 강조 함으로 지적으로 흐르는 주지주의도 아니다. 성령은 인격적으로 일하신다. 왜냐하면 성령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입신은 인격적으로 일하시는 성령을 망령되게 일컬음을 받게 하는 행위이다.
성령은 한분 이지만 은사는 다양하다(고전 12:4-11).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은사들을 준 목적은 교회를 소란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도록 함에 있다.
그 섬기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교회에 덕이되지 못하게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은사를 준 목적을 잘 이해 하지 못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비 성경적인 행위이다.
2. 기적의 역사
성경에 보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은사를 주시고 ,사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했다.이 기적의 행위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의 역사이다.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권위를 부여하여 임명하신 대리인 들로서 사도들이 지닌 신임장의 일부였다.그러므로 이와 같은 기능은 그 은사들을 분명히 사도들의 교회에 한정 시켰으며 ,당연히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신임장이며 성겨의 종료와 함께 기적의 은사는 종료 되었다고 본다.
성경의 기적의 은사는 분명한 이유 없이 여기 저기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기적의 은사들은 “계시 시기에 속하며 (나타나며),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사자를 통해서 자기의 은혜의 목적을 선포 하시며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실때만 나타난다 ”4) 따라서 기적은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를 의미한다.
아브람 카이퍼도 기적과 계시를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를 나타내는 유기체적이라고 비유했다.따라서 하나님의 계시 능력의 표적인 기적의 은사는 그본체인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후에는 계속 되리라고 기대할수 없으며 ,실질상 그렇게 되지도 않다고 했다.5)헤르만 바빙크도 성경 계시의 종료로 말미암아 이 재 새로운 계시는 없으며 사실상 기적의 은사도 종료 되었다고 본다.6)
이 점에서 볼때 ,성령의 역사와 기적의 은사들은 성경의 종료와 함께 사라졌다는 견해이다. 오늘날의 기적은 기도 응답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이며 ,사도들 수준의 것은 아니다.따라서 입신의 성령님의 능력의 표현으로 보는 것은 개혁주의 견해는 아니다.
3.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의 구별점
3.1. 성령의 역사는 인격적이며 악령의 역사는 비인격적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다.
3.2. 성령의 역사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입신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3.3.성령의 역사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반 면 악령의 역사는 인간의 영광을 구한다.예를 들면 입신하면 능력있는 목사가
되고 못하면 능력 없는 되는것 처럼 생각하는 것.
3.4.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때 나타나는 현상은 입신이 아니라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며 복음을 증거하며 경건한 생활을 하게된다.이러한 생활이 뒷받침 되지 못할 때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4.입신이라는 용어에 대한 신학적 고찰
팜플렛의 저자가 말했듯이 입신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그러나 입신 이라는 말이 신들린 자라고 한다면 신명기 (18:11)에 나오는 신접자라는 말과 비슷한점이 있다.신명기에 나오는 신접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yiddeoni 라는 말로서 KJV 에서는 wizard 로 SPiritist 로 RSV는 wizard로 영역 했으며 한글로는 신접한자 마법사 주술사로 번역할수 있다.또한 yiddeoni라는 항상 히브리어 ob의 병행어로 나타난다고 한다.7)하나님은 성경에서 신접한 자에게 문의 한것을 금하고 있다.(레 19:31;,20:6,7, 신 18:11).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 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던 사울왕이 극도의 불안과 절망 가운데서 신접한 여인(ob)을 찾아갔다. 이점에서 볼 때 입신이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라기 보다는 악령의 역사이며 성령의 능력의 표현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비 성경적이며 입신을 주장하는 사람의 종교 심성은 심리적 불안이나 절망 가운데 있는자가 그것을 극복하가 위해서 무당을 찾는 무속적인 종교 심성과 비슷하다.따라서 팜플렛 저자가 입신이라는 용어는 “성령안에서 죽어짐 ,살해당함 ”(Slain in the Sprit) 또는 “성령안에서 의 안식” (resting in the Spirit)이라하며 그 원인을 “성령에 의해 정복 당함”(overcome By the Spirit)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SPirit" 을 성령의로 번역 하는것은 의역을 감안 한다고 해도 언어에 없는 의미를 첨부한 오역으로 해석 되며 차라리 성령안에서 죽음이라고 하기보다는 무당이나 주술자에 의해서 죽어짐으로 번역하는 것이 입신의 본의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 되어진다.
4.1.팜플렛 저자는 입신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것은 성경
의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지만 신학적 술어로 사용하고 있는 예와 같다고 했는
데,이 말은 잘못된 비유를 사용한 예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나오며 예수도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주라고 명
령했다. (마28:19).성경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심을 말하고 있다.(요 1:1) 또한 정통주의 신학자든은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나옴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없어도 성경은 그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교리사가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임을 반증하고 있다. 입신이라는 말은 위에서 논증했듯이 비 성경적인 말이다. 그래서 입신이라는 말이 성경에 없다는 말과 삼우ㅏ일체가 성경에 없다는 말은 두개의 다른 논리를 하나의 의미로 이해하고자 하는데서 오는 논리적 혼돈에서 기인한다.
4.2.팜플렛 저자는 “쓸어지는 현상” 에서 “성령의 능력이 임할때 그 사람의 육신 적인 것을 결박시킴” 이라고 했는데 성령의 역사는 육신과 영혼을 조화시키는 것이지 결박시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육신의 결박이라는 사상은 영지주의에 서 처럼 영혼은 육신의 감옥에 있다는 사상과 같으며 결국은 영과영혼을 분리 시키는 이원론적인 사상에 기인되지 않았는가 생각되어진다.
4.3.입신을 주장하는 견지에서 입신의 유익한 점을 마음의 평화나,은혜의 체험이 며 치유와 질병의 치료로 보는 팜플렛 저자의 견해는 입신하지 않는 사람은 성 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는 자라고 인정할 수 있는 논리가 합축되어 있으며,이와 같은 체험들은 입신을 통한 체험이라기 보다는 성령님을 통한 성화의 과정에서 체험되어 지는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4.4.팜플렛 저자가 “입신 현상의 세 가지 구별”에서 쓰는 언어를 보면 “육이 무감각 상태에서 영이 하늘 나라를 가는 상태” “하늘의 오묘한 신비를 체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나 심령의 평안을 누리는 상태” 등의 언어가 시사해 주는 바는 다분히 신비주의 적이며 무속에서 말하는 황홀경을 투영하는 심리적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4.5.입신은 체면술이 아니라고 팜플렛 저자는 말하지만 체면술이 인위적으로 황홀경을 유도하는 것이고 보면 입신이란 체면술과 비슷한점이 많다고 생각되어진 다. 왜냐하면 입신은 성령의 감화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 인 손으로 신자를 처서 넘어뜨리게 함으로 황홀경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신자들을 손으로 처서 쓰러진는 악령늬 현상을 성령의 능력의 표현의 하나로 보는 것은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또한 입신의 개념에다 성경을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서 입신을 성령의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신인협동설을 주장한는 알미니안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이와같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은 올바른 개혁주의 성령의 역사와 기적에 대한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기인함이 크다고 사료된다.
3.교회사적 관점에서의 고찰과 비판
팜플렛은 기독교역사에 영향을 끼친 요한 웨슬레,죠지 휫필드,죠나단 에드워드등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신학적 견해를 정당화하려 한다. 우리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일어났던 종교운동의 한 단면을 보고 그 단면을 마치 그 운동의 전체인 핵심인체 과장 확대 해석하는 역사 서술의 위험성을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다시 말하자면 요한 웨슬레 운동의 극히 미세한 부분을 이용하여 마치 웨슬레 신앙은 “쓰러지고 떠는 것이 모두” 인양 하면서 웨슬레 신학을 왜곡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웨슬레는 “이산한” 성령운동의 원조인양 부각시키는 방법은 올지 않다. 역사는 총체적인 시각에서 보아야함을 다시 강조하면서 팜플렛에서 열거하고 있는 신앙인들의 영성운동의 핵심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요한 웨슬레 감리교 운동 평가
요한 웨슬레 (John Wesley, 1703-91)는 18세기에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설교가요 ,감리교도 입장에서 보면 그는 감리교의 창시자가된다.명문옥스포드(oxford university)
의 출신임에도 서민층과 잘 어울렸고 ,나중에는 잘 훈련된 옥스포드 동역자들과 제자드를 믿바닦에서 신음하는 노동자 ,농민의 목자로 세워 경건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서민층과 중산층을 묶고 연결시키면서 폭력을 평화로 ,갈등을 조화로 ,체념을 희망으로 바꾸는 영적인 작업을 쉬지않고 전진하였다.8)성령운동 하는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령의 권능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회개로 울부짖는 현상”은 웨슬레 집회시에 사실로 나타났다.웨슬레 자신도 1738년 5월 24일 오후에 이상한 뜨거움 체험 (I felt my
stran-gely warmed)을 했다.9)웨슬레는 심령의 부흥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웨슬레가 “쓰러지는 것 ”에만 초점을 맟추는 열광주의 일변도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웨슬레 운동의 핵심은 변화 받은 자들 ,그리고 회개한 자들이 하나님과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복음의 향기를 들어내는 것이다.말씀을 깊이 영접하여 회개한 영혼들이 마치 환각제로 취한것 같이 매일 악쓰고 뛰며 ,기독교 공동체를 교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화되어 주님께는 충성하고 이웃에게는 참된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팜플렛의 저자는 이 점을 잘못보고 있다.성령 받으면 “죽을듯이 괴로워 통곡하며 바닦에 쓰러져 신음하는 가운데 눈에 띄게 사단의 권세”를 과장스럽게 열거 하면서도 ,또 비슷한 내용을 순진한 양떼들에게 주입시켜 필요이상의 공포증을 유발시키면서도 성도들의 “삶”에 대한 영적 ,도덕적 ,윤리적 의식을 고양하는 구체적인 방향제시는 없던가 아니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웨슬레는 칼빈 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신학을 믿었기에 칼빈의 예정론 (Predestination)을 부정한다. 무엇이 선제적 은총인가?이는 예수님의 구속적 은혜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예수님 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사람들이 이 빛가운데서 비췸을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사람들은 이 빛가운데서 비췸을 받아 자비를 사랑하고 ,옳은 일을 분별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따르는 선한 소원(Good Desire)을 가지게 된다.웨슬레는 이러한 선한 소원을 생리적 양심 (Good Desire)또는 선행적 은총 이라 부른다.10) 따라서 칼빈이 말하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의 예정론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의 귀결점은 인간이 예수님의 은혜 아래서 구원을 자기 스스로 성취 시킬수 있다는 알미니안적 구원관에 들어 가는것이다.즉 “구원이 하나님에 의해 주도 되지만 제시 되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기에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이 협동함으로 ”신인 합동설(synergism)이 되는것이다.11)웨슬레의 구원관에 따르면 성령운동도 “모두가 바닦에 쓰러져 울부짓고 기도하고 고성”만 지르는
것이 니라 ,이런 체험받는 사람들의 의지적인 결단과 윤리적 성화 (sanctification)
를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것이다.웨슬레의 인간 책임성을 부정하거나 악화시켜 성령논만 내세우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웨슬레의 사상을 이해 하지 못한 자들이다.이런 자들은 왜 웨슬레가 빈민층 (the lower classes)을 상대로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켰으며 ,빈민계통의 소외된 농민 ,산업 공장직원들의 웨슬레의 영향을 받고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살았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웨슬레는 20세기 이상한 성령파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한 대중운동 (a genuinely popular mdvement)을 일으켰다.그의 운동은 농촌의 촌락 ,산야의 광산촌 ,도시의 빈민가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소외된 곳에 사는 빈민들에게 인생의 존재 의미를 주고 ,방향을 찾지 못하는 자들에게 영혼을 각성 시키며 사회 윤리및 도덕을 갱신 시키는 놀라운 정화 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로는 팜플렛이 말하는 성령운동은 결코 웨슬레와 같은 고원한 윤리관과 역사관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웨슬레의 철야기도 ,새벽기도 ,속회 모임,(class meeting),사경회 형식을 배우면서도 웨슬레의 참사상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형식을 충분한 사유없이 무분별하게 도입하면서도 형식 속에 감추어진 신실한 사상을 못보고 있다.이러 므로 웨슬레를 이용만하지 웨슬레를 모르고 있지 아니한가 ?죽은 웨슬레를 마음껏 사용해서 성령운동을 운운 하고 ,성도를 모우고 ,성령받고 회개하라는것은 정말 이상하지 아니한가 ? 팜프렛의 저자가 칼빈 정통보수 신학을 따른다고 하면 서 웨슬레의 복음적 신인합동설을 수용한다면 그가 따르고 믿는 성령론은 칼빈주의적 성령론은 분명히 아님을 밝혀야 할 것이다.
2.죠지 휫필드(Georgewhitefield,
1714-70)
성령운동을 주장한 사람 중에서 휫필드를 인용한다.휫필드가 집회를 인도하자 “네사람이 동시에 자기 쪽으로 쓰러지면서 진동과 울부짖음과 죽은 듯이 창백하게 누워 있는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떤이는 “손을 마구 돌리고 있었고 ,더러는 바닦에 쓰러져 누워 있었고 ,더러는 친구들의 품에 안겨 있었다.” 쓰러진다 그리고 죽은듯이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것이 죠지 휫필드의 각성운동의 참 모습일까?
미국의 부흥운동과 각성운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윌리암 맥로그린 (William G. Mcloughin)은 말한다.:휫필드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보다 개인의 영적 책임을 강조 하였다 12) 그리고 각 개인은 설교자들의 일반성 (THE generality of preachers)때문에 그리스도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목양을 잘못하는 영국과 미국교회 성직자들을 질타하고 많은 책임을 성직자에게 돌렸다.13)이러한 각성운동은 개교회 보다 개개인을 하나님앞에서 일깨웠으며 개개인이 먼져 하나님께 충성하는 법을 배우도록 했다.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회개하는 운동을 벌릴 수 있었다. 영국교회 (Church of England)에서 173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던 휫필드는 웨슬레의 감리교도나 미국의 장로교회 등 교파를 초월 회개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휫필드의 공적은 요즘 일부인사들이 말하는 “성령운동”을 한것이 아니라 교파를 초월한 복음 운동을 해서 유럽과 미국을 그리스도에 인도하고자 했음이 초점이 되어야지 ,울부짖고 쓰러지는 특정 현상만을 장황스럽게 나열해서는 안될 것이다.14)
여기 첨언 해서 알아 두어야 할것은 미국의 부흥운동이 초교파적으로 되어 감에따라 지역교회 성직자들이 휫필드나 죠나단 에드워드 때문에 막심한 인신 공격을 당하거나 목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이다.
3.성령운동
20세기 성령운동은 미국을 빼어 놓고 설명하기는 어엽다.보통 성령운동은 펜티코스탈(Pentecostal)과 은사주의 (Charismatic)로 대별될 수 있는데 ,은사주의 운동은 장로교나 침례교,천주교 등 이미 알려진 교단이 성령세례 ,즉 예언 ,방언,치병 등을 새롭게 도입 적용할때 ,그 교단은 “은사주의 ”운동에 가담 했다고 말할수 있겠다.펜티코스탈은 기존 교단이 아닌 본래부터 성령운동을 하는 기독교 교단을 지칭한다.여기에서는 한국교회가 특히 영향을 받고 있는 몇몇의 미국 성령운동가들을 거론 하기로 한다.
3.1.마리아 우드 위쓰-에터(Sister Maria Woodworth-Etter,1844-1924).
마리아는 한번 이혼한 경력으로 두남편의 이름을 쓰고 있다.첫 남편 우드위드
(P.H.Woodwrth)는 간음했다는 명목으로 마리아에게 ㅡ이혼 당하고 두번째 남 편은 사무엘 에터(Samuel Etter)가 된다.
리스본 오하이오 (Lisbon, Ohio)에 태어나 13살때 목회자의 부르심을 받았
다고 생각했으나 ,여자 성직자가 없었던 때이라 35살이 될때까지 사역자로 일 하지 아니했다. 1884년에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에서 일하다가 1885년부터 대중전도에 (Mass evangelism)에 나서고 ,영적인 경험을 보여주기 시작 했다.이 경험은 그가 능력(the power)이라고 늘 이야기 하곤 했는데 ,신 비경(trance)에 빠져 하늘의 환상(vision)을 보았다는 것이다.우리가 확인 할 수없는 그녀의 경험들은 성령파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마리아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나이 68세일때 (1912)부터 성령운동에 가담하여 달라스(Dallas)에서 사역에 나선다. 6년후인 1918년에는 인디아나 폴리스 (Indianapolis)에 교회를 세워 성령운동을 주도 했었다.그녀는 독창적인 성령 운동의 신학을 만들지 못하고 각성 운동가들의 신학을 절충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대중운동에 적용했다.15)
3.2.캐더린 쿨만 (Kathryn Kulman, 1907-76)
중학정도의 학력(미국학교 10학년)으로 16세에 사역을 시작 ,특히 라디오를 대중매체로 지혜롭게 사용하여 청중을 사로잡았다.한 전도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란은 쿨만과 결혼 하기위해 자기 본처와 특별한 이유없이 이혼 하였 다.1948년에 피츠버그(Pittsburgh)에 가서 제일 장로교회 (THE FIRST PRESBY- TENIAN CHURCH)에 사역 하였다. 이곳에서 은사주의 (Charismatic)영향력을 발 휘했다. 키가 날신한 그녀는 값비싼 옷을 즐겨 입고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단 장 했으며 ,최고급 호텔과 일등석 여행을 했다고 한다.16)그녀의 성령 체험을 리가 과학적으로 증명할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히 증거 할수 있는 것은 도덕적 으로 문제가 많고 성직자가 지녀야 할 겸허한 사생활을 그녀에게서 찾기가 어 렵다는 점일 것이다.
3.3.케네스 헤긴 (Kenneth E. Hagin,1917-)
성령파 사역자로서 성령세례를 1937년에 받았다고 한다. 예수에 대하여 8 번의 환상(8 Visions of Jesus chist)를 보았고 ,영을 분별하는 은사 (Gift of discerning of spirit)을 받아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등지에서 사역 하고 있다.
3.4.쟌 윔버(JOHN Wimber, 1934-)
캘리포니아 주 플러 신학교 (Fuller Theological Seminary)교수를 하다가 그만 둔후 포도원 (The vineyard)사역을 창립하여 현재 세계 총제를 겸하고 있다.광 주 신학교 교수중 한분이 시카고 지역 빈야드 지역 모임에 참석해 보았는데 , 참석자들은 학생,청년들이 많았다.키타,드럼,등 악기를 사용하고 예배시 평상 시 입는 작업복이나 운동복등을 그대로 입고 와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찬송시 간이 많고 설교는 복잡하지 아니하고 간결하다.예배 분위기가 너무 방만하여 집중할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새롭게 성장하는 미국 청소년들에게 호소력이 있 다.
교회는 특별히 없고 ,대학 강당을 빌려 예배를 본다.그러나 사역자가 매우 단합된 소수의 모임을 여럿만들어 가정예배를 인도하고 이러한 모임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적 성령운동이 번지고있다.
4.교회사적 관점에서의 결론
팜플렛에서 주장하는 상기의 역사적 성령운동은 거의 장로교적인 신학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죠나단 에드워드 ,찰스피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로교 일군들이 아니기 때문에 장로교 신학을 주장하면서 ,위와 같은 신학자들이나 사역자들을 인용하여 자기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은 장로교인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렵다.
또 에드워드나 피니 역시 미국 대 각성운동을 주도 했지만 . 그운동의 성격이 교단이나 교파를 초월하여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듣도록 하는것이 특징이었지 특별히 “쓰러지고 떠는 현상”을 강조함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것이다.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지않고 일부만 끄집어 내서 자기 신학의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볼때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성령파나 은사주의 지도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비 지성주의 (anti- intellectualism)와 마땅히 지킬 사회 윤리관의 결핍 등도 보여 짐으로 이런 자들의 신앙의 스승의로 삼는 것은 문제가 된다.
♠4.입신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에서의
요약적 결론
1.입신이라는 언어는 마술사나 주술사들의 기법을 통해서 신비로운 정신 상태에
이른는 것을 묘사하는 언어로서 악령의 역사를 묘사하는 것이지 성령의 권능이 임할때 나타나는 표현으로 설명하는것은 비성경적이다. 따라서 입신을 성령의 권능의 표현으로 말하는 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2.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때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는 신유 은사나 방언이 아니라 예수믿게 하는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성령의 역사는 예수 믿고 중생하여 성화된
삶을 사는것이다.
3.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은사를 준 목적은 교회를 소란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이다.
4. 입신의 현상은 다분히 신비주의적이며 인위적으로 황홀경에 도달케 하는 무속적인 종교심성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생각 되어진다.따라서 최면술과 비슷한 점이
많다.
5.성령의 역사는 인격적이다.따라서 입신을 성령의 역사로 보는 것은 성령님을 망령되고 망령되게 하는 행위이다.
6.교회사적으로 볼때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서 교회가 일시적으로 부흥된때도 있
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 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성령운동이란 말씀에 기초한 성령감동 감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7.성경에 나타난 사도들의 기적은 성경계시의 종료와 더불어 사라졌다고 본다.이 견해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 시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면 오늘날
에도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실 능력을 갖고 계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계시 의 종료와 더불어 사도들의 기적은 종료 되었다고 보는 것이 개혁주의 입장이 다.
8.교회를 소란케 하는 입신 현상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성령역사의 이해와 기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절감한다.환언하면 말씀에 기초한 올바
른 신학 교육의 절실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