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르투 여정이 불요하다는 생각을 수정해야겠다. 어제 하루를 온전히 길 위에서 보내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대자연을 관측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자연에 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짧은 성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칠라스에서 스와트까지의 위험했던 여정이 그런 나의 생각을 더욱 굳게 해주었다. 3월31일 메모 정리에 시간을 들이는 바람에 아침 식당에 늦었다. 감자와 란과 잼과 요구르트를 담은 접시를 들고 김경희 곁으로 갔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전공이 궁금해요. 철학과 아니면 국문과?” “아니요.” 그는 내가 단톡방에 올리고 있는 시의 열혈 독자이다. 그는 간간이 마주칠 때마다 내게 시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했다. 나는 속으로 그를 내 시의 우호적인 평론가로 여겼다. 하기야 초면의 면전 비판이 어려워서일 것이다. 오늘부터 박물관 순례가 시작된다. 여정은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동한다. ‘자연스러운’이라고 쓰며 글을 이어가려는데 자꾸 ‘자연’이 눈에 밟힌다. ‘자연’이므로 ‘자연’스러운 거겠지. 문명은 자연에서 꽃핀다. 이제 문명 탐방이다. 오늘 이후 차례로 스와트, 페샤와르, 탁실라의 박물관 그리고 간다라 미술의 보고인 라호르 국립박물관을 간다. 9시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에스코트 차량이 호텔 정문에 대기 중이다. 호위 군인들이 총을 어깨에 메고 있다. 나는 길 너머 스와트 강의 물결에서 평화를 찾는다. 강물은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물실 급하게 흐르고 있다.
스와트 박물관. 간다라 미술의 유적이 발굴된 현장에 세운 박물관으로 전시물은 주로 불교 유물이다. 알다시피 간다라 양식은 인도 불교 미술이 헬레니즘 조형 양식을 받아들여 형성된 동서양이 결합된 양식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묘사한 부조가 있다. 눈이 번쩍했다. 내 눈에 역대급 미남 석가모니 상을 만났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명상에 들며 두 손을 배꼽 앞에 겹쳐 엄지를 맞대고 있는 선정인(禪定印)의 자세였다. 불상의 손동작을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용모는 인도 중국 한국에서 각각 저마다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오늘 부처님은 서구 미남형으로 조각처럼 빚어놓았다. 나는 인도 부다가야의 마하보드 사원의 최고 미남 석가모니를 마음속에 떠올렸다. 신가르다르 마을에 있는 스투파에 도착했다. 도로에서도 금방 눈에 띌 만큼 규모가 컸으나 녹야원의 스투파보다는 작은 규모다. 부처가 이곳에서 옷을 말렸던 자리(또는 옷을 갈아입었던 자리)여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현장법사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나는 스투파 안내판을 살펴보았다. 스와트 왕(Uttara Sena, 연대 기록 없음)이 흰 코끼리를 타고 부처 유물(사리)를 찾아 떠났다. 그런데 코끼리가 갑자기 쓰러져 죽어 바위로 변해버렸다. 왕은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 중국의 불교 순례자(Riuko Sang)가 7세기 경 이곳을 방문하여 위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는 안내판을 읽으면서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 설화를 떠올렸다. 비슷한 전개가 흥미롭다. 누런 황소가 배에서 부린 석경을 지고 가다가 멈춰 죽었다. 그 자리에 절을 세웠는데 절 이름이 ‘미황(美黃)사’다. 이 설화는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의미한다. 실제 미황사의 대웅전 주춧돌에는 게와 거북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오늘 일정은 비교적 한가하다. 점심 후 오후 3시 탁티바히 유적지에 도착했다.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간다라 건축양식의 불교수도원이었다. Takht는 왕좌를 의미하고, Bahi는 샘이다. 수도원이 샘을 가진 왕좌의 모습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 정부는 이럴 수가 없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들어가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고, 길가의 쓰레기와 먼지와 오물은 좀 치워야 할 거 아닌가. 아니 그런데 한국의 ‘종묘’ 논쟁이 또 어쩌고? 심란한 마음으로 언덕길을 올랐다. 태양빛이 흐트러져 뒹구는 벽돌조각에 쏟아졌으므로 나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비교적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스투바 중심의 학습실, 명상실, 생활관 등을 둘러보면서 나는 쉽게 인도의 나란다 대학을 떠올렸다. 5세기 불교 번영 시대의 중심이었다. 수도원은 그 일부를 모방해 지었을 것이다. 편도 3차선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앞자리의 일행이 120킬로미터를 가리키는 속도계를 보고 신나서 중계를 한다. 주행선 제한속도 90킬로, 추월선은 100킬로이다. 버스는 신바람을 내며 달렸다. 페샤와르까지 67킬로미터였으니 눈 깜빡할 사이에 도착했다. 카불 강을 건넜다. 카불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로 여기서 멀지 않다. 자국 영토 내를 흐르는 강에 타국의 수도 이름을 붙였다? 더구나 지금은 전쟁 상대국이다. 호위 차량의 에스코트가 계속되고 있다. 페샤와르는 지금까지 지나온 여느 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현대적인 도시건물에 교통체계도 질서가 잡혀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수준인데도 신호등과 차선이 없는 곳만을 다니다가 와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신호등이 없으니 건널목이 있을 리 없다. 보행자가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고, 차량이 보행자를 피해 돌아간다. 엉망진창 도로인데도 접촉사고 현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신기한 노릇이다. 버스전용도로가 도로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누가 그걸 보고 감탄하며 지하철을 지상으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도시다운 도시에 오니 칭찬할 거리가 하나 생겼다. 시내를 통과해서 셀턴 하우스에 도착했다. 일정이 끝난 상태에서 해가 아직 창창한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세련된 호텔 이름과는 달리 호텔방에서 곰팡이 냄새가 심했다. 사원이 이웃해 있는지 기도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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