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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 12차[수레티고개(보리고개) - 도고리봉 - 걸미고개-칠장산]
산행일시 : 2013년6월22일 토요일
수레티고개 도착[08:58]-출발[09:10]-황색골산(도고리봉)[09:30~09:35]-겨티고개(저티고개)[09:43]-삼박골산[09:57]-당목리 고개[10:21]-진천두교리간 신설도로[10:37]-도솔산비로봉[10:58]-도솔산 보현봉[11:09]-바가프미산 갈림길[11:20] -바가프미산 정상[11:27]-점심 및 휴식[11:32~11:52]-바가프미산 갈림길[11:55]-걸미고개[12:07]-좌벼울고개[12:33]-산불감시초소(376m)[12:48]-신대마을갈림길[12:54]-바사리열두고개[13:03]-3정맥 분기봉[13:24]-칠장산[13:29~13:48]-칠장사[14:06~14:18]-칠장사 상가지역 주차장[14:20]
수레티 고개 (182m / 화봉육교, 車峴) : 경기 안성시 일죽면과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경계로 583번 도로가 지나는 다리로 중부고속도로를 넘는다. 수레티 고개라고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보리고개라고 부른다.
수레티고개(차현고개) : 고문서/기록들을 보면 車峴 지명이 있는 곳은 평북 정주시,평양시 순안구역,황해도 은율군, 漢城府 車峴大路,충북 음성군,충남 연기군,경남 산청군이고 車嶺 지명이 있는 곳은 평북 초산군,충남 천안군,강원도 정선군이다. 그중 충북 음성군의 차현고개(수레티고개라고도 하며 한자로 표기하면 車峴고개)는 지금도 사용되는 지명으로서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사이에 있다. 지금도 차현고개 표식이 남아있으며 차현고개 주변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산성,사찰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궁예는 변란을 피해 차현고개 인근의 칠장사에서 유아때부터 10여세까지 보냈다. 그런 연유로 청주지방 일대는 궁예의 고향으로서 정치적 기반이 되었으며 궁예가 청주출신 사람들을 각별히 신임하여 중용하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청주사람들을 철원으로 이주시켜 왕조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왕건일파에게 억울하게 나라를 빼앗기고 통합되어버린 궁예의 추종세력들은 크나큰 분노와 반감을 가졌고 궁예의 정치적 고향이자 왕조의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중심으로 임춘길,이흔암,선장형제 등의 반란이 끊이지 않아서 왕건이 그지방 호족들에게 동물의 성씨를 내리면서까지 탄압하였고 일부 세력은 후백제에 투항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청주위쪽 차현고개 아래의 진천은 고구려/백제 멸망에 앞장선 김유신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도고리봉(황색골산 ; 352.9m): 충북(음성군 삼성면)과 경기(안성시 일죽면) 도경계에 있으며, 삼각점이 있다. “황새골”이란 골짜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 한다.
저티고개 :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와 안성시 일죽면 용설리를 잇는 고개인데 돌탑이 있으며, 겨티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산밭골산(305m)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05m이다.
당목리 고개[182m] : 당목리와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로 9번 지방도로이다.
도솔산 :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이 되는 곳에 있는 천계(天界)인 도솔천(兜率天)에 빗대어 산 이름을 명명한 것 같으나 뚜렷한 유래가 없어 추측할 따름이다.
바가프미산(332m) : 경기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32m이고,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다.
걸미고개 : 경기도 안성과 충청북도 진천이 갈라지는 도경계에 있으며, 안성컨트리클럽 진입로와 17번 도로가 만나는 곳이다. 안성컨트리클럽 주차장까지 오른쪽 위로 정맥 길이 동행한다. “걸미고개”는 장을 보러갈 때 짐을 걸머지고 다녔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농사가 잘 안되는 척박한 땅이라 주민들이 거지가 되다시피 했고 곡식조차 맛이 없어 “걸미”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한다. ‘긴 고개’ 혹은 ‘진 고개’라고도 했고, 채표노름을 많이 했던 곳이라서 ‘채팻골’, 비석이 있던 자리라고 해서 빗돌골, 4월 초팔일 날 음성에서 칠장사로 가는 사람들로 붐벼 큰 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좌벼울 고개 : 죽산면 장계리와 칠장리를 잇는 고개이다. 남쪽능선에 있는 제비월산으로 이어진 고개이름이 이상하게 變音이 되어 좌벼울이라 불려진다고 한단다. 지금은 우측에 안성 컨트리 골프장이 생겨서 넘을 수 없는 고개가 되었다.
바사리 열두고개 :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왕후와 영조때 영의정을 지낸 채 재공 등 많은 궁중 사람들과 선비들이 칠장사를 찾아 오가며 넘나 들었다는 바사리 열두고개이다. 칠장사로 들어가는 제일 큰고개로 고갯길이 갈 “지(之)”자 형태로 열두번 꾸부려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칠장산[七長山 ; 492.4m]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금광면·삼죽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가 492.4m이다. 산기슭에 있는 칠장사와 칠장사 주변의 울창한 숲으로 유명하다. 덕성산(519m)·칠현산(516.2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칠현산의 일부였으나 조선 후기에 세도가의 사유지가 되면서 독립된 산이 되었다.
혜소국사비(보물 488호) : 이 비는 1060년(문종 14) 혜소국사가 입적한 뒤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써, 글은 김현(金顯)이 짓고 글씨는 민상제(閔賞濟)가 썼다. 비신(碑身)은 흑대리석이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귀부와 비신 위에 놓이는 이수는 화강암이다. 전체높이 496㎝, 비신높이 348㎝, 너비 128㎝. 보물 제488호이다. 비문의 내용은 이곳 죽산에서 태어나 고려 초의 유명한 고승이 된 뒤 이 절을 대대적으로 중창했던 혜소국사의 일대기를 적은 것으로서, 비문 끝부분에는 스님을 기리는 추모의 글이 있다. 글자의 크기는 약 2㎝이며 구양순체의 굳센 필력이 넘치고 있어 고려 초중기의 훌륭한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비신은, 이수는 용과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비신의 맨 윗부분에 마치 접시가 엎어져 있는 듯한 모습의 둥근 보주가 있다. 귀부에는 정육각형의 거북등무늬가 2중 음각선으로 처리되어 있고 그 둘레를 빗살무늬와 구슬이음무늬 등으로 장식했다. 또 머리와 꽁지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얼굴에는 긴 수염이, 그리고 목에는 비늘무늬를 새겼다. 몸체 양 옆에는 쌍룡이 매우 화려하고도 길게 조각되어 있다. 비신은 예전 어느 때부터인지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하게 잘려있던 것을 1976년 비각복원 공사 때 보수했다. 그런데 이 비신의 파손에 대해 혜소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의 하나였던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이곳 칠장사에 침입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수염이 하얗고 송라(松蘿)를 걸친 한 노스님이 나타나 그를 꾸짖었다. 이에 화가 치민 가등은 당장 갖고 있던 장검으로 노스님의 목을 내리치니 노스님은 간곳 없고 가등의 팔만 아팠다고 한다. 잠시 후 비전(碑殿)에 올라가보니 혜소국사의 비가 부서져 있어 그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한 가등 일행은 서둘러 칠장사를 떠났다고 한다.
칠장사 대웅전 : 칠장사는 칠장사 칠현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가 세웠으며, 고려 현종 5년(1014)에 혜소국사가 다시 지었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절이 불에 타 숙종 30년에 석규대사가 대웅전을 옮겼다. 영조 12년(1736)에 설영대사가 고쳤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칠장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져 여러 차례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양식으로 각 칸마다 2개의 공포를 설치했다.
칠장사는 유난히 도둑과 인연이 깊다. 임꺽정이 나라를 훔치는 데 실패한 도적이었다면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한 궁예는 나라의 절반은 훔친 도적쯤 되겠다. 궁예는 열살 때까지 여기서 활을 배웠다. 경부선이 들어앉은 20세기부터 역사의 외곽으로 밀렸지만 죽산은 장호원 음성 문경새재 문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가려면 여기를 통해야 했다. 돈이 오가는 길목에서 고을은 번성했고 빈부의 양극화도 활발했을 것이다. 마을에서 한 건 한 뒤 한달음으로 달리면 반나절 만에 닿을 법한 거리에 칠장사가 있다. 잠깐 숨을 은신처로는 제격인 셈이다. 나한전에 봉안된 7인의 아라한 역시 본래 산적이었다. 사찰을 중수한 혜소(慧炤) 국사의 교화로 도를 깨쳤다. 스님은 고려 제9대 임금 덕종의 왕사(王師)였다. 어느 날 이들의 산채 인근인 칠장사에 스님이 부임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을 염려한 도둑들은 스님의 동정을 살필 요량으로 한 사람씩 뽑아 칠장사로 올려 보냈다. 절에 당도한 첩자들에게 염탐은 뒷전이었다. 약수터에 놓인 금바가지에 혹해 물을 마시는 척하고는 바가지를 훔쳐 돌아왔다. 이상한 것은 빼돌린 바가지를 아지트에 갖다놓기만 하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도둑 중 한 사람이 이 일을 고백하니 나머지 여섯도 괴이한 현상에 관해 실토했다. 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여긴 패거리는 그 날로 머리를 깎고 국사의 제자가 됐다. 스님이 입적하자 이들도 사람의 형상을 한 7개의 돌만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후문이다. 칠장사(七長寺)와 칠현산(七賢山)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칠장사 당간 : 주차장에 내려오니 우측 옥수수밭에 칠장사 철당간이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에 세개밖에 철당간 지주로 사찰에서 부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각색 깃발을 게양하던 곳으로 대개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공주 갑사에 있는 것과 청주의 한곳에 있다. 칠장사 철 당간 지주는 제조연대가 확실치 않아 유형 문화재 34호로 지정되어 있다.
[08:58] : 수레티고개 위 화봉육교 건너기 전에 하차하여 준비운동과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09:10] : 화봉육교 옆 동안성병원 표시판 있는 곳 좌측 숲에 수레티고개라고 쓴 노란색 아크릴 표시판이 있는 곳으로 오른다.
[09:30~09:35] : 완만한 능선길에 '황색골산 352.9m 준.희님'(도고리봉)의 표시가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우측 10여m거리에 삼각점 있고, 정맥 마루금은 좌측이다.
[09:43] : 8분 후 겨티고개(저티고개)에 도착하면 이정목과 돌탑이 있고 정맥길은 직진이다.
[09:57] : 삼박골산에 도착하면 우측 길로 직진한다.
[10:21] : 당목리 고개(음성군 당목리와 죽산면 용설리 잇는 9번도로)에 내려선 후 도로 우측으로 진행하면 하산한 방향쪽으로 철 대문 있는 곳에서 곧 바로 길 건너 숲속 둔덕이 정맥길이다.
[10:37] : 진천두교리간 신설도로 절개지의 좌측으로 내려가서 도로 건너 곧 바로 절개지를 타고 올라가면 지도상의 200m 봉우리에 닿고, 계속 진행하여
[10:58] : 도솔산 비로봉(278.7m)에 도착하면 정상표시지와 삼각점(안성464)이 있고, 마루금은 우측 방향으로 내려간다. 잠시 후 안부에 도착하면 '보현봉 가는 길'이란 팻말에 나무등걸 아랫부분에 기대어 있는 둔덕을 오르고 얼마 안가서
[11:09] : 도솔산 보현봉(260m) 닿는데 마루금 상에 있는 것 같아 봉우리란 느낌이 안든다. 이어서 오름길을 오르면 바가프미산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나뭇 잎에 가려 잘 안보이고 무의식적으로 직진하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좌측으로 가는 길이 장맥길이고, 직진하면 바가프미산으로 오르게 된다.
[11:20] : 갈림길에서 왕복 14분 거리에 있는 바가프미산 정상으로 올라
[11:27] : 장수봉이란 표시와 바가프미산이란 정상 표시가 나무등걸에 매달려 있는 봉우리는 특이한 사항이 없는 평범한 봉우리이다. 갈림길로 가다가
[11:32~11:52] : 평평한 바위에서 점심식사 및 휴식을 취한 후 다시
[11:55] : 갈림길에 도착하여 내림길을 가파르게 내려오면 걸미고개 절개지에 닿는데 좌측의 펜스를 붙잡고 내려간다. 펜스 옆 흙 속에도 철망 펜스가 뭍혀 있어 미끄럽다.
[12:07] : 걸미고개에 내려서고, 길 건너 우측의 안성 컨트리클럽 진입 도로를 따라 오르면 좌측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12:16] : 주차장의 기사 대기실 건물 끝 부분의 산자락에 정맥 길을 알리는 시그널들이 매달려 있는 숲속으로 진입한다. 무명봉울 오르고 내리면 옛길을 만나고 다시 오르내림을 하면
[12:33] : 좌벼울 고개에 닿는데 노란 아크릴판에 '좌벼울고개' 란 표시가 나무 사이에 매달려 있다. 좌벼울고개를 오르면
[12:48] : 산불감시탑이 있는 376m봉우리에 닿는데 감시탑에 '한남금북정맥 376m 대방.안성8광'이라고 쓴 노란색의 아크릴판이 매달려 있다. 이어서 내리 오름을 하면
[12:54] : 봉우리에 쉼터가 있는 신대마을 갈림길(이정목; 칠장산 정상 1.5Km)에 도착한다. 다시 무명봉을 넘나들면
[13:03] : 바사리열두고개에 닿는데 이정목이 사거리임을 알리고 있다. 이어서 계속 진행하면
[13:24] : 3정맥 분기점을 표시한 이정목을 만난다. 여기서 칠장산을 향해 직진하여 오르면
[13:29 ~13:48] : 헬기장이 나오는데 끄트머리 부분에 칠장산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칠장산에서 휴식을 취한 후 칠장사로 하산하기 시작하는데
[14:06~14:18] : 칠장사에 도착하여 문화재와 사찰 경내를 두루 두루 들러 본 후
[14:20] : 칠장사 상가 주차장에 있는 산악회 버스에 여정을 푼다. 이로서 12구간에 걸친 한남금북정맥 마루금 밟기를 끝내고 축제 분위기에 휩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