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법당<如如法堂>
고전<古典>에서 배우는 지혜<智慧>
형차포군<荊釵布裙>
12, 가시나무 비녀 꽂고 작수성례,
형차포군(荊차釵布裙)은 후한서(後漢書) 일민전(逸民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시대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의 처(妻) 맹 광(孟光)의 이야기다. 맹 광은 얼굴도 새까맣고 몸도 뚱뚱하여 못 생긴 추녀였다고 한다. 그런데 힘은 엄청나게 세어서 큰 돌절구도 번쩍 들어 올렸다고 한다. 얼굴은 못생겼어도 마음이 상냥하고 언행도 나무랄 데가 없어서 마을에서 평판이 좋아서 혼담이 들어올 때마다, 거절을 하여 나이가 서른 살이 넘었다. 맹 광의 부모는 과년이 된 딸이 시집을 가려고 하지 않아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런데 혼담이 있을 때마다 퇴박을 놓던 맹 광이 양홍(梁鴻)이라는 돼지 기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맹 광의 부친이 양홍을 찾아가서 청혼(請婚)을 하였다. 양홍도 댁의 따님이 그렇게 원한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다. 양홍과 맹 광은 결혼을 하였는데, 양홍은 7일이 지나도록 잠자리를 같지 하지 않았다.
맹 광이 어느 날 자신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연유를 물었다. 양홍이 말하기를 내가 바라던 여자는 비단옷을 입고 분이나 바르는 여자가 아니라, 함께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여자였소“ 이 말을 듣는 맹 광은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을 따르겠소. 하였다, 양홍은 맹 광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녀에게 덕요(德曜)라는 호를 지어주고 둘이서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도 짖고 베도 짜고 하였다. 양홍은 농사 짓은 틈틈이 시(詩)를 지어 친구에게 보냈는데, 그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발각이 되어서 쫓기는 몸이 되었다. 양홍은 오(吳)나라로 도망가서 고 백통(皐白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 지기가 되어서 근근이 생활을 하고 살았다.
양홍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맹 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치마를 입고도 남편을 따뜻하게 맞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올려 공손하게 식사를 올렸다. (常荊釵布裙 每進食 擧案齊眉)허술한 차림으로 부인의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겼다는 고사(故事)가 형차포군(荊釵布裙)과 거안제미(擧案齊眉)이다. 맹 광이 남편 양홍과 함께 가난하고 구차한 생활이지만,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치마 차림으로 갓 지은 밥상을 들고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이 고사는 담고 있다. 고 백통은 이런 양홍의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 양홍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 가 있었다고 한다. 맹 광의 형차포군(荊釵布裙)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 사한바가 크다고 본다. 요즈음 젊은 남녀의 결혼 조건을 보면 잘못 되어가고 있다. 남자나 여자나 똑 같이 조건을 따진다. 남자가 사(師)자라면 열쇠가 5개정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딸 결혼에 열쇠가 5개라면 그 부모는 등골이 빠지고, 남는 기둥이 없을 것이다. 여자 쪽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너무 조건을 따지다보니 그런 호화사치 결혼 악습이 생겼다고 본다. 조건이 안 좋은 남자는 장가가기가 정말 힘든 세상이다. 혼담이 오고가고 남녀가 만나 묻는 말이 사는 아파트는 몇 평정 도냐? 자가용은 무슨 차냐? 직장은 무슨 직장이냐? 연봉은 얼마나 되느냐? 모든 것이 물질적인 조건들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아닌가? 사람 인품 하나만 족하면 되는 것이 결혼이다, 그런데 무슨 조건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식 때 호박 반지 하나 겨우 집 사람에게 해주었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부모로부터 받지를 못했다. 오늘날 결혼식이 물량 위주로 잘못 되어도 너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맹 광(孟光)의 형차포군(荊釵布裙) 거상제미(擧案齊眉) 고사(故事)로 오늘날 결혼관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행복은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족(知足)하는데 행복은 있습니다.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옷 속에도 행복은 있습니다. 작년 8월부터 특급호텔 결혼식이 허용될 모양인데 허례허식 사치성 호화 결혼식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할 것은 뻔한 일이다.
요즈음 톡톡 튀는 혼식도 많은 것 같다. 수목 결혼식, 방생 결혼식, 야간 결혼식, 풍선 결혼식 등 여러 가지 이벤트를 가진 개성이 있는 결혼식을 볼 수가 있어서 좋다. 결혼은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다, 옛날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물 한 그릇 떠 놓고도 작수성례(酌水成禮)를 올리고 살았다. 그러고도 아들 딸 낳고 절약하고 가산을 늘리는 재미로 살았다. 월세 방에서 전세방으로 전세방에서 20평짜리 자기 집 사서 이사 가는 성취감에 행복해 하였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이루어 가는 것이 행복이다, 미리 부모가 다 준비해 준다면 무슨 성취감과 삶의 낙이 있을까요? 삶의 행복은 땀방울로 이루어 가는 것인데, 조건만 따진다면 정말 행복 할까요? 여러분은 조건만 따지는 결혼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조건은 늘 변하는 무상한 것입니다. 조건이 변하면 그 때는 어찌 하시겠습니까? 행복은 각자 자기 몫입니다. 조건의 결혼은 행복도 성취감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됩니다,
고전<古典>에서 배우는 지혜<智慧>
형차포군<荊釵布裙>
12, 가시나무 비녀 꽂고 작수성례,
형차포군(荊차釵布裙)은 후한서(後漢書) 일민전(逸民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시대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의 처(妻) 맹 광(孟光)의 이야기다. 맹 광은 얼굴도 새까맣고 몸도 뚱뚱하여 못 생긴 추녀였다고 한다. 그런데 힘은 엄청나게 세어서 큰 돌절구도 번쩍 들어 올렸다고 한다. 얼굴은 못생겼어도 마음이 상냥하고 언행도 나무랄 데가 없어서 마을에서 평판이 좋아서 혼담이 들어올 때마다, 거절을 하여 나이가 서른 살이 넘었다. 맹 광의 부모는 과년이 된 딸이 시집을 가려고 하지 않아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런데 혼담이 있을 때마다 퇴박을 놓던 맹 광이 양홍(梁鴻)이라는 돼지 기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맹 광의 부친이 양홍을 찾아가서 청혼(請婚)을 하였다. 양홍도 댁의 따님이 그렇게 원한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다. 양홍과 맹 광은 결혼을 하였는데, 양홍은 7일이 지나도록 잠자리를 같지 하지 않았다.
맹 광이 어느 날 자신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연유를 물었다. 양홍이 말하기를 내가 바라던 여자는 비단옷을 입고 분이나 바르는 여자가 아니라, 함께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여자였소“ 이 말을 듣는 맹 광은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을 따르겠소. 하였다, 양홍은 맹 광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녀에게 덕요(德曜)라는 호를 지어주고 둘이서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도 짖고 베도 짜고 하였다. 양홍은 농사 짓은 틈틈이 시(詩)를 지어 친구에게 보냈는데, 그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발각이 되어서 쫓기는 몸이 되었다. 양홍은 오(吳)나라로 도망가서 고 백통(皐白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 지기가 되어서 근근이 생활을 하고 살았다.
양홍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맹 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치마를 입고도 남편을 따뜻하게 맞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올려 공손하게 식사를 올렸다. (常荊釵布裙 每進食 擧案齊眉)허술한 차림으로 부인의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겼다는 고사(故事)가 형차포군(荊釵布裙)과 거안제미(擧案齊眉)이다. 맹 광이 남편 양홍과 함께 가난하고 구차한 생활이지만,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치마 차림으로 갓 지은 밥상을 들고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이 고사는 담고 있다. 고 백통은 이런 양홍의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 양홍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 가 있었다고 한다. 맹 광의 형차포군(荊釵布裙)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 사한바가 크다고 본다. 요즈음 젊은 남녀의 결혼 조건을 보면 잘못 되어가고 있다. 남자나 여자나 똑 같이 조건을 따진다. 남자가 사(師)자라면 열쇠가 5개정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딸 결혼에 열쇠가 5개라면 그 부모는 등골이 빠지고, 남는 기둥이 없을 것이다. 여자 쪽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너무 조건을 따지다보니 그런 호화사치 결혼 악습이 생겼다고 본다. 조건이 안 좋은 남자는 장가가기가 정말 힘든 세상이다. 혼담이 오고가고 남녀가 만나 묻는 말이 사는 아파트는 몇 평정 도냐? 자가용은 무슨 차냐? 직장은 무슨 직장이냐? 연봉은 얼마나 되느냐? 모든 것이 물질적인 조건들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아닌가? 사람 인품 하나만 족하면 되는 것이 결혼이다, 그런데 무슨 조건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식 때 호박 반지 하나 겨우 집 사람에게 해주었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부모로부터 받지를 못했다. 오늘날 결혼식이 물량 위주로 잘못 되어도 너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맹 광(孟光)의 형차포군(荊釵布裙) 거상제미(擧案齊眉) 고사(故事)로 오늘날 결혼관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행복은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족(知足)하는데 행복은 있습니다.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옷 속에도 행복은 있습니다. 작년 8월부터 특급호텔 결혼식이 허용될 모양인데 허례허식 사치성 호화 결혼식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할 것은 뻔한 일이다.
요즈음 톡톡 튀는 혼식도 많은 것 같다. 수목 결혼식, 방생 결혼식, 야간 결혼식, 풍선 결혼식 등 여러 가지 이벤트를 가진 개성이 있는 결혼식을 볼 수가 있어서 좋다. 결혼은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다, 옛날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물 한 그릇 떠 놓고도 작수성례(酌水成禮)를 올리고 살았다. 그러고도 아들 딸 낳고 절약하고 가산을 늘리는 재미로 살았다. 월세 방에서 전세방으로 전세방에서 20평짜리 자기 집 사서 이사 가는 성취감에 행복해 하였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이루어 가는 것이 행복이다, 미리 부모가 다 준비해 준다면 무슨 성취감과 삶의 낙이 있을까요? 삶의 행복은 땀방울로 이루어 가는 것인데, 조건만 따진다면 정말 행복 할까요? 여러분은 조건만 따지는 결혼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조건은 늘 변하는 무상한 것입니다. 조건이 변하면 그 때는 어찌 하시겠습니까? 행복은 각자 자기 몫입니다. 조건의 결혼은 행복도 성취감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