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다.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 과천국립현대미술관, 2013년 9월1일. 생명평화결사 식구들과.)
내가 살고 있는 울산은 선사시대 유물 중에서도 특히 청동기 시대 유물유적의 발견이 잦은 곳이다. 오래 전 아파트공사 현장 유물 발굴 작업 현장을 보러간 적이 있다.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까마득한 세월. 그때 발견된 것이 주거지였다. 이천 년 전의 주거지가 지금도 가장 각광받는 주거지로 존재한다. 그뿐 아니라, 공간 배치까지 현재 우리의 주거양식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그 현장에서 나는, 이미 수천 년 전 인류는 자기 삶을 영위하던 공간을 자기 손으로 짓고 살았다는 것. 까마득한 시간이 흘러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오늘 날의 우리는 어쩌다 그 능력을 잃어버리고, 남이 지어준 자기 집 하나 장만하는데 온 신경을 기울이고 살아야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하는 충격 아닌 충격으 받았다. 그 후 내 인생의 목표는 내 손으로 내 살 집을 지어서 살다가는 것이 되었다.
지금 과천현대미술관에서는 건축가 정기용의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비움”이 열리고 있다.(결사 모임에서 이 전시를 단체관람한다는 공지를 보고, 어찌 동하지 않을 수 있었을가) 그림일기라는 제목은 그의 저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생전의 작가가 남긴 드로잉과 글이 마치 풍경을 저장하는 길처럼, 건축과 삶에 대해 새긴 일상의 보고라는 점에서 붙였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전시실을 들어서면 금방 알 수 있다. 공부하는데 재료비가 적게 들 것 같아서 진학했다는 서울대 공예학과 시절부터 말년의 작업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드로잉과 글들이, 혹은 둘이 뒤섞인 흔적들이 방문객들을 향해 말을 걸고 있다 .
그에게도 어김없이 초기 해외 유학생들에서 자주 목격되는, 이식된 지식을 강요받았던 식민지 지식인의 혼란과 기존의 지식과 제도에 대한 반란, 그리고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의 과정은 있었던가 보다. 젊은 날 어떤 힘에 이끌리듯, 서양으로 서양으로 가다 보니 그 끝에는 동양이 있더라고 누가 말했던가. 여튼 정기용은 프랑스에서 건축의 뿌리 ‘흙’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건축가로서 ‘집의 가치’에서 ‘거주의 의미’로 고민은 이어진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내가 머무르는 장소에다 내 삶의 과정을 새기는 일’이 그에게는 ‘거주’로서의 집이다. 그래서 우리가 집에서 거주할 수 있을 때 ‘집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관계의 시작’이 되고 삶은 역사가 된다. 따라서 집은 단순히 부를 창출하는 수단에서 개인의 내밀한 사적 공간과 도시의 공적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형태의 공간으로 재탄생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은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기억될 추억도 없고, 엄밀한 의미에서 고향도 없어졌다. 그렇게 기억할 것이 없어진 우리는 아무리 부를 쌓아올리고 올려도 늘 공허한 시지프스적 노동만이 공허롭게 남았다. 그 공허는 거대한 도시의 허기가 되어 결코 삼킬 지 못하는 아귀처럼 떠돌고 있다.
그래서 정기영의 건축에서 빼놓을 없는 것이 공공건축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몇 개의 기적의도서관도 그 중의 하나다. 그에게 이런 배움의 공공건축은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고 회상할 가치가 있는 기억의 보고’ 이며 ‘아이들이 장소와 교감하면서 만들어지는 아늑하고 풍요로운 감정’ 그것이 정기용이 성장 공간(배움터)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아름다움이었다고 적혀있었다. 그에게 건축은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고, 인간의 삶이란 결국 기억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인간은 기억함을 통해서 사자와 산자가 이어지고, 그 이어짐이 역사가 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역사를 기억하는 장이면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전시장에 가면 ‘추모의 풍경’이라고 이름 붙여진 죽은 자를 위한 공간, 즉 그가 생전에 작업했던 4.3제주추모공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에게 그곳은 전쟁기념관처럼 ‘단순히 죽은 자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아니라 기억을 주제로 하는, 건축 공간만으로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우리가 남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산 사람을 위한 것이며 기억을 위해서는 내면의 감동의 다이너미즘을 유발시키는 그 무엇.’이었다. 인간에게는 잃어버림으로서 비로소 보여지는 그 무엇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인간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랑. 희망. 이별 같은 깊은 기억으로 이어져 있다. 그것이 슬픔으로 여겨지는 것은 거기에 잃어버린 자신의 삶터, 가족의 초상, 고향의 풍경이 파편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깊은 슬픔이란 다름 아닌 죽음이이 아니겠는가. 부재. 영원한 부재. 그래서 정기용은 기념관을, 우리 내면에 단 한순간이라도 죽음을 삶의 경건한 부분으로 조용히 맞이하게 하는 것, 그것이 또한 우리가 죽음을 이 땅에 거주시키는 일, 공간이라고 했는 지도 모른다.
이 전시장에 가면 생전의 그의 드로잉과 스케치, 그림, 원고 등이 빼곡히 펼쳐져 있다. 내겐, 누군가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는 것, 누군가의 습작 노트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의 삶을 엿보는 것이며, 또한 그의 내밀한 속살과의 만남이고, 또한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드로잉을 하며, 써내려간 메모들, 건축과 삶에 대해서 적은 자필 원고들 곳곳에서 그의 건축과 삶을 대하는 태도들을 만날 수 있다. 생전 그는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것이다’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전시장을 꼼꼼히 둘러보는 사이 저절로 다가온다. 대가의 삶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의 감동이 그곳엔 있다.
내게 건축가 정기용은 노무현대통령의 봉하사저를 설계한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설계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시했던 그의 건축철학에 잘 부합되는 건축물. 그러나, 슬픔으로 기억되는.
하나로 세계를 통한다고 했던가. 그는 건축 하나로 건축과 삶과 지구와 우주를 만났다. 그 경지에 닿기 위한 치밀하고 집요했던 그의 삶의 기록들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돌아나오며 감동이라는 말을 했다. 엿보기의 짜릿함이라니!
(박소정 샘이 보내주신 사진인데, 사진이 눈꼽만하게만 보여요. 제 휴대폰에는)
나는 최근 몇 년간 내 손으로 지은 10평짜리 집을 꿈꿔왔다. 그러다 최근에 들른 어떤 집을 보고는 10평은 내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라에, 세 평이 실현 가능한 행복에 가장 가까운 주거 형태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글을 봤다. 세 평이라. 세 평이란 말이지! 건축으로 우주의 원리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기용은 그의 집 하나 남기지 않은 듯 하다. 그렇다면, 세 평도 내게 과분한 것이려나.
뱀발:
이번 모임에 가기 전에 서울 살이를 하고 있는 나의 사랑스런 제자 하나는,
"아항, 원장니이임 ㅠㅠ 서울 사람들 싫어요ㅠㅠ 너무 못됐어요. 넘 힘들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못된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노는지 보러갔는데,
넘 따듯하게들 노셔서 놀랐구요.
넘 편안하게들 대해주셔서 감사했구요.
그런 모습들 엿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덕분에 자꾸 빈대붙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ㅋ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씀입니다.ㅎ
첫댓글 마당 한 귀퉁이..세평짜리 방 한칸 지어 볼 생각인디..글솜씨에 세상보는 눈솜씨도 탁월..2년안에 득도? 언냐는 고마 몸도 맘도 침묵할껴~~
그 먼길을.. 아침에 나선길 저녁에야 도착하신 연숙님.
함께하여 더 좋았습니다. 먼길이라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기쁨이 더 컸던 만남. 절 올립니다.
글로만 만나다가 실제로 보니,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낯설지 않았습니다.
푸근한 미소와 매력적인 사투리, 글까지 이렇게 잘 쓰시다니! 감동...
캬!!! 같이 전시회를 보고 나왔는데 연숙님은 리포트 작성을 마쳤는데 난 나와서 물은 말 저분은 어디사신데요?
대답 저분 돌아가셨잖아요!! 내 모습 ㅠㅠ 내 배움의 밑바닥은 이것으로 이미 들통남!!!!
그 심정 저도 비슷해요.^^
그날 저는 박물관 정문앞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아이들 셋이 감쪽같이 없어져 혼자 가슴 끓이며 한 30분 동안 헤매고 다녔지요. ㅋㅋ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이미 어린이 박물관 안으로 쏙 들어가 관람 끝내고 나오더라는~!-.-
그후 아그들 델고 들어갔는데 한명은 졸고 있고, 한명은 이리저리 뛰어다닐라카고...ㅎㅎ 저는 아예 차분히 혼자가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볼 생각이예요.
돌아와 일상에 뭍히다 보니 시간에 날개달고 훨훨
ㅎㅎㅎㅎ
먼데서 벗들이 오니 아니 기쁠수가~~~^^
한달음에 오셔서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 반갑고 믿음직하고...
거기다 진솔한 글로 정리까지
고맙고 고마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