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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참가자들. 김녕 부근 바닷가.
하야랑 림이는 둘쨋날부터, 나는 닷샛날 밤부터 행진에 참가했다.
각종 캠프를 섭렵한 녀석들이라고는 하지만 무더위와 땡볕을 견디며(올 여름 무더위가 얼마나 맹위를 떨쳤는가) 5일을 쉬지 않고 걷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 더위도 더위지만, 풍찬노숙을 감내하는 일이 또 만만치 않았을 게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어른들 틈에서 자기들도 뭔가를 해야하고 그래서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녀석들의 마음을 넉넉히 읽을 수 있었다. 귀여운 녀석들…….
하야와 림이. 포즈 취하느라 대오에서 멀어지면 열나 뛰어야 할텐데…
마지막날 출발은 조천체육관에서부터이다. 아이들만 험한 곳을 보내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아빠의 걱정이 기우였음이 증명되었다.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딸아이들을 칭찬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씩씩하고 인내심이 강할 수 있느냐며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을 빌리면 어떤 부모인지 이런 험한 곳에 보냈는지 그 무책임한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더라.
부끄러워 해야 할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지 대략 난감이다.
그리고 마지막날은 우리집 막내 강아지 '은비'도 함께 했다.
은비가 이제 겨우 2개월 된 녀석이라고들 말하니 사람들은 '역시' 하며 혀를 내둘렀다.
조천체육관 앞. 대행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해야 한다는 일념에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조천 부근.
조천 부근. 림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우리 게스트하우스 단골(아니 거의 영업 부장 수준이다) 손님 손창모 씨와 대만에서 와 참여연대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윌리엄(자기 말로는 조상들이 대만의 왕족이랜다. 알게 뭐야).
은비를 걸리고 힘들면 안고 걷는 것은 거의 하야 몫이었다. 하야의 동물 사랑이나 동물에 대한 책임감은 분명 남다른 면이 있다.
"아빠 물 마실래?"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아이들에게 이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반가웠고 이분과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힘이 났다. 김 위원은 한참 동안 은비 목줄을 쥐고 걷기도 했다.
대오 속에 김진숙 위원의 뒷모습.
점심 시간. 사라봉 올라가는 공원에서 맛있는 주먹밥을 먹었다. 아빠가 곁에 없는 동안 하야랑 림이를 살뜰하게 보살펴 주신 홍채진 씨 그리고 윌리엄.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가운데)과 강정마을 회장님 강동균 씨(왼쪽).
대낮에 웬 꿈나라? 그것도 외간 총각 처녀가 말이다.
목마른 개는 컵도 든다?
행진 중에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은비. 많은 행진 참가자들이 은비가 혀를 할딱거리는 모습을 보고 물을 먹여주고 안아주고 했다. 수많은 카메라 세례도 받았다. 이날만은 상근이 부럽지 않았다.
덥고 목마르고, 다리도 아프고 슬슬 집 생각이 났다. 하지만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한 사람들에 비하면 내 고생은 조족지혈일 따름이고, 그리고 닷새 동안 고생한 딸 아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 그냥 걸었다. 일행들과 담소도 나누며, 하야가 힘들어 하면 은비를 안아주고, 딸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고……. 그러나 보니 꿀같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고,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식사가 공수되었다. 식사는 강정주민들이 정성껏 만들어 행진 참가자들에게 공수해온 것. 어찌 음식 투정을 할 수 있겠는가. 모두들 그릇 바닥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이 먹어치웠다.
행진의 대미는 탑동 해변 공연장에서 마무리되었다. 제주 시내에 각각 진입한 동진과 서진은 구세무서 사거리에서 감동적인 상봉을 했다. 그리고 길다란 대오를 이루어 제주 시청을 거쳐 탑동 공연장으로 향했다. 가끔 박수를 쳐주고 화이팅을 연호하는 시민들도 보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었다. 제주도식으로 "저거 뭐?" 정도라고 할까. 그래도 이번 행진으로 냉소가 미소로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들국화 리허설 모습. 낭중지추라고 전인권의 카리스마는 나이와 무관한 것 같다.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원무를 추고 있다. 근데 웬 녀석이 우리 딸 손을 덥석 잡고 있네?
사회자 김미화. 띨띨한 국회의원 한 다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안치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만 하는데…
문정현 신부님. 안치환의 기타반주에 맞춰 '부용산'을 열창하고 있다. 테크닉을 떠나 가슴을 파고 드는 진정성 어린 목소리에 닭살이 돋았다.
마무리 구호를 마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소셜테이너(수구언론들은 그녀를 폴리테이너 또는 좌파연예인으로 분류한다)로 거듭난 개그우먼 김미화가 사회를 봤다. 팟캐스트 나꼽살에서 목소리만 듣다가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보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예의 거침없는 입담을 쏟아냈다. 이를테면, 동진, 서진이 모이니 탈진. 안치환, 킹스턴루디스카, 사이밴드('싸이'가 아니다) 등의 오프닝으로 공연장은 한껏 달아올랐다. 그리고 강정과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아티스트.
드디어 오늘의 해드라이너 들국화의 등장. 그들이 누구던가. 한국의 비틀즈, 대한민국 대중 음악의 지평을 바꾼 위대한 밴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유일한 락밴드. 온갖 수식어로도 그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재결합에 성공한 들국화다. 이제 노익장이라는 말을 써야 하나? 해변 공연장에 도착하니 막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원년 멤버들 그대로다.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 막내 허성욱은 이미 불귀이 몸이다. 그립다. 일행이 도착할 즈음 The Hollies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인권이 형의 카리스마 작렬하는 목소리에 숨이 턱 막혔다.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예외인 것 같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매일 그대와' 등을 더욱 농익은 솜씨로 연주했고, 들국화를 잘 모르는 청중이 절반을 넘었지만, 다들 몰입했고 감동했다.
모두들 엿새 동안 행진했고, 들국화도 행진을 불렀고, 강정도 평화를 향해 행진할 것이다.
강정평화대행진에 참여하면서 문뜩 '공감'과 '연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공감과 연대에 대한 강한 열망이 이땅의 뜻있는 사람들을 제주로 불러모았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성별도, 세대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한 곳에 한 가지 생각만으로 모여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겠는가. 힘들면 서로 보듬고, 뒤쳐지는 이가 있으면 기다려주고 하면서 그들은 쉽지 않은 일정을 결국 소화해냈다. 그들을 공감하고 연대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평화'다. '평화'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구월에는 한반도대행진이 이어진다고 한다. 강정마을에 평화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우리는 오늘도 행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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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꾸는것! 세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 그것은 불평등과 억압에서 적극적인 평화로 세상을 나아가게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