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산행참가자는 김호경, 윤건수, 윤한근, 이성렬, 이종원, 한경록, 배진한의 7명이다.
윤신한 동문이 잠깐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다른 팀에 참가하기로 했다며 양해를 구하고 사라졌다.
윤동문의 손이 필요한 곳이 많은 모양이다. 지난주 지리산 종주 등산 때문에 체력이 소진되어 그랬는지 참석이 다소 저조한 듯하다.
지방에서 살아 자주 참여하지 못하는 본인으로서는 오래된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등산해보는 좋은 기회를 접하는 셈이다.
우리도 모두 이제는 많이 늙었다. 본인은 전날 학회가 있어 서울 왔던 김에 참가한 것이다.
교수는 누군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족속들’이라 했던가.
게다가 시간에 쫓겨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우연히 산행기를 쓰는 영광까지 잡게 되었다.
송추 가는 버스가 지난 번 참석 때에는 옛날 공릉동 가는 버스정도로 복잡했으나
오늘은 리더를 잘 만나 버스를 먼저 탄 탓인지 그런대로 여유가 있어 앉아갈 수 있었다.
09:40 :
송추 쪽에서 오봉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여 등산을 시작하였다. 여성봉까지는 1.9km 정도라고 한다.
등산경로는 여성봉-오봉-도봉서원-도봉탐방지원센터(북한산 도봉지구)로 정했다.
(지원센타 앞)
(여성봉을 향하여)
많은 등산객들이 자주 다녀 산길이 아주 대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무들이 우거져 상쾌하다.
도심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여성봉이 가까워지니 길이 갑자기 가팔라진다.
10:45 :
여성봉에 도착했다. 오봉까지는 약 1.2km 정도 남았다. 여성봉 봉우리가 절묘할 뿐 아니라 매우 사실적이다.
사실 여근 모양의 봉우리 외관에 비해 이름은 상당히 절제된 수준이 아닌가. 現毛良處(賢母良妻가 아니다)다.
산행기록자도 젊었을 때 도봉산에 더러 왔을 터인데 이 여성봉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울 사는 동문들이 여성봉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고 있다.
(여성봉에서 음기서린 산우들)
변함없는 매력을 자랑하기 때문인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등산객들이 바글거리고 있었으며 사진들을 많이 찍고 있다.
그동안 많은 등산객들의 내왕으로 훼손정도가 심하여 출입을 제한하는 금줄까지 설치되어 있었는데
남자등산객들은 나보란 듯이 제집처럼 들락거리고 있다.
국립공원 측의 보존노력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여성봉의 백미인 윗부분의 잔디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자그마한 소나무 한 그루가 대신하고 있다.
김호경 동문은 이렇게 쓰고 있다.
‘30도가 웃돈 날씨였지만 그늘엔 여전히 凉氣가 넉넉한 날, 여성峰의 음기를 쐰 것은 출현한 우리 7명 精銳(!)만의 특혜일 수밖에’ 라고.
괴테도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읊지 않았던가. 사실 남자들을 살맛나게 만드는 것이 여성인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
(여성봉 아래 이정표)
11:10 :
여성봉을 지나 오봉으로 가는 길에 잠깐 휴식을 취한다.
산행대장 김동문은 걷은 약간의 자금으로 언 서울장수생막걸리를 사 넣고 왔다.
상점주인이 막걸리병을 신문지로 싸서 주었는데 그것이 체온으로 적당하게 녹아 막걸리 샤베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막걸리 샤베트 한 잔 맛이 환상적이다.
(오봉가는 길에)
(오봉밑 이정표)
11:30 :
오봉에 도착했다. 다소 가파른 부분이 많아서 윤건수 동문이 많이 힘들어하면서 오른다.
알고 보니 윤건수동문도 지난주 지리산 종주에 동참한 듯하다. 그래도 힘이 드나 보다.
여성봉에서 오봉에 오르는 등산로는 도봉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들 중의 하나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오봉은 제1봉에서 제5봉까지 다섯 형제자매들이 나란히 예쁘게 늘어서 있는 봉우리다. 형제가 많다.
소나무 숲에서 예쁘게 생긴 바위들이 어찌 그렇게 사이좋게 늘어서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제4봉은 다소곳하게 숨어 있어서 전통적인 누이 같은 분위기이다. 이 봉우리들은 모두 산 아래에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산 아래에서도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을 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봉우리들이었다.
(오봉에서)
(오봉능선의 이정표)
11:55 :
점심도시락을 위한 휴식장소에 도착했다. 산에 물이 별로 없었지만 시원한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산행기를 쓰는 본인은 전날 친구들을 생각하여 마오타이주를 한 병 미리 준비해왔는데
골뱅이무침 안주로 잘 마셔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오타이주는 기름진 안주가 있어야 제격이었을 것인데.
삶은 계란도 나오고 골뱅이무침, 김밥, 유부초밥 등 먹을 것들이 모두 나열되었다.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땀들을 식힌다.
(즐거운 시간)
식사 후에는 흘러간 우스갯 소리들이 등장했다.
해군병사들이 장기 해상근무 후 귀가할 때 부인에게 귀가소식을 6자로 축약하여 보내는 문자메시지가 뭔지 아나?
답은 간단히 ‘X출발 X대기’라는 것이란다.
남편이 부인에게 야간서비스를 잘 했느냐에 따라 남편의 물음에 대한 부인의 대답이 ‘고추장 뜨러 간다 왜?’나 ‘된~장 뜨~러 가~요♬’로 달라진다는 얘기나,
그 다음날 아침 쌀 씻는 소리가 ‘처먹거나 말거나’나 ‘국끓이고 밥하고’로 달라진다는 애기 등등.
아무 부담 없는 친구들과의 농담과 대화가 재미있다. 이런 재미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겠지.
결국 가져간 마오타이주는 다 마시지 못했다.
12:43 :
이종원동문과 이성렬동문이 개인사정으로 조기 하산하기로 하여 먼저 떠났다.
13:30 :
점심을 마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 동안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알 수 없는 길이 계속되다가 드디어 편안한 하산길이 지속된다.
두 개의 지팡이로 무릎도 보호하고 하산을 돕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지금 집에 지팡이가 하나 있긴 하나 두 손에 들자면 하나를 더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의 곳곳에 ‘이곳은 군시설물입니다’이라는 참호들이 자주 보인다. 과거 군인들이나 예비군들이 훈련을 받거나 보초를 서던 곳일 것이다.
기억이 되살아난다. 과거 냉전시대의 유물들이지만 지금도 그 망령들이 살아 있어 생전에 멋진 통일을 볼 수 있을지 걱정된다.
14:40 :
북한산 도봉지구 입구에 도착하였다.
(하산완료)
15:10 :
열무국수집 도착하여 5명의 친구들은 열무국수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국수 뒷풀이)
개울가에는 ‘더존소리’라는 밴드가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곡들을 연주하고 있었다.
한경록 동문의 끊임없는 얘기도 재미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일체유심조론’, ‘각 자는 이제 신이다’,
‘주식투자론’, ‘내 몸을 제대로 사랑하면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식의 인생경험을 살린 강론이 나름대로 흥미롭다.
김호경 동문의 동화같은 행복한 ‘결혼성공담’도 재미있다.
초등학교 학예회 짝을 20대 후반에 우연히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소설같은 얘기다.
그런 인생의 행운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하고 아무에게나 오지는 않을 것이다.
(산행완료)
대전 촌사람의 도봉산행기는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한 가지 덧붙일 얘기는 지금까지 세 번 참석한 상산회의 매력에 대해서이다.
과연 지금까지 창립 후 한 번도 산행을 거른 적이 없다는 상산회의 매력과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필자 생각에는 첫째, 헌신적이고 스마트한 리더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힘든 산행 중에 귀찮을 만도 한데 조금 가다 보면 또 사진들을 찍는다.
나중에 보면 사진 찍은 장소들이 대부분 중요한 이정표가 나타나고 기억의 랜드마크가 되는 곳들이었다.
이를 잘 포착하는 사진박사 김호경 동문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산들 등산로의 핵심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또한 동문들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부지런하다. 집단이 움직일 때마다 힘들고 귀찮을 일도 먼저 나서서 해결한다.
둘째,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참여를 유도하는 분위기가 또 한 가지이다.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출내기에게도 산행기를 쓰라고 한다.
그리고 상산회에 관심 있는 동문들에게는 누구든 가입도 자유로운 것 같다. 배타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셋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분위기도 또한 중요한 비결로 보인다.
각 방면에서 잔뼈가 굵어진 동문들의 구수한 경험담들은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사실 옛날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이라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데에도 거리낌들이 없을 것이다.
같이 유쾌하게 늙어가는 것이다.
2 0 1 1 . 7 . 7 .
글쓴이 : 배 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