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북촌-서촌 벨트, 전주 한옥마을처럼 역사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에 지역마다 열을 올리고 있다. 계획도시인 강남권 가운데는 유일하게 500년간 백제의 수도라는 역사를 간직한 송파구도 최근 들어 한성백제 브랜드 만들기에 나서는 중이다. 매년 열리는 한성백제문화제를 비롯해 풍납토성부터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을 잇는 관광도보코스를 선보였고 풍납토성에 역사공원도 조성중이다. 볕 좋은 가을날 서늘한 바람 맞으며 고즈넉한 백제 왕도길 걸으며 10월의 낭만을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풍납토성에서 석촌동 고분군을 잇는 10km 구간의 도보관광코스 ‘한성백제왕도길’은 지난해 선보였다. 서울시가 ‘스토리가 있는 관광매력도시 서울사업’의 5개 대표지역 중 하나로 한성백제문화유적을 선정하고 풍납토성에서 한성백제박물관까지 관광코스를 개발했다. 뒤이어 송파구가 잠실관광특구 활성화를 위해 석촌동 고분군까지 코스를 연장해 지금의 한성백제왕도길이 탄생했다.
특히 롯데월드타워 개장 후 몰려들 국내외 관광객들을 겨냥해 석촌호수 서호에 한성백제를 상징하는 배 모양의 전망데크도 별도로 제작했다. 석촌호수와 이국적인 매직아일랜드, 롯데월드타워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야경이 특히 멋지다.
풍납토성
한성백제시대 왕이 살던 곳으로 추정되는 왕성은 어디일까? 정답은 풍납토성. 천호역 10번 출구를 나와 걷다보면 초록빛 잔디로 뒤덮인 야트막한 토성이 눈에 띈다. 전체 둘레 3.5km로 흙으로 쌓은 고대 토성 가운데는 최대 규모지만 모진 세월을 겪으며 군데군데 유실됐다.
오늘날의 풍납동은 오밀조밀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찬 조용한 서민 동네지만 2000년 전에는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를 호령하던 백제 권력의 핵심이었다. 경당역사공원은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천지신에게 제를 올리던 신성한 제사터다. 그 당시 제사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말머리 뼈, 깨진 토기를 비롯해 우물과 궁궐 창고가 발견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매년 한성백제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혼불 채화식이 경당역사공원에서 열린다.
몽촌토성
야트막한 자연구릉지대를 이용한 토성. 일부 필요한 구간만 흙을 쌓거나 목책을 설치하고 경사면을 깎아 완성했다. 1980년대 발굴조사가 이뤄지면서 삼국시대 전기 유물이 출토됐다.
발굴 당시 4곳의 건물터와 12곳의 움집터, 음식과 그릇을 보관하던 저장 구덩이 30여 곳이 확인됐으며 구덩이 안에는 원통형그룻받침 등의 토기와 철제 무기, 뼈로 만든 갑옷이 출토됐다. 인근의 움집터 전시관에는 당시 백제인의 의식주를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잘 가꾼 올림픽공원 안에 있기 때문에 산책 코스로도 좋으며 종종 몽촌토성 성곽돌기 이벤트도 열린다.
한성백제박물관
2012년 개관한 한성백제박물관에는 백제 최고의 전성기였던 근초고왕 시대를 포함해 5백년 왕도의 면면을 보여주는 4만2311점의 유물이 선보인다. 풍납토성,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유물을 비롯해 칠지도, 미륵보살반가사유상처럼 진품은 일본에 있지만 당대 백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 복제품도 있다.
특히 높이 11m, 너비 4m 규모로 실제 풍납토성의 일부를 절개해 그대로 박물관으로 옮겨온 성벽 단면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건물은 해양강국이었던 백제를 형상화한 배 모양으로 건축한 것이 특징.
석촌동 고분군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80여기의 무덤이 있었고 서울이 개발되기 수십년 전만해도 석촌동, 가락동 일대에는 백제 무덤들이 떼를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단 5기밖에 남아있지 않다.
백제 초기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돌무지무덤을 만날 수 있는데 한국의 피라미드라고도 할 만큼 납작하고 네모난 모양의 돌을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쌓았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돌무지무덤으로 고구려의 장군총보다 크며 근초고왕의 무덤이란 설도 있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파괴됐다. 고구려 무덤 형태와 흡사해 고구려 이주민이 백제를 건국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움무덤, 독무덤 등도 발견됐다.
한성백제 왕도길 도보 코스
풍납토성 - 풍납시장 - 경당역사공원 - 몽촌토성 - 몽촌역사관 - 움집터전시관 - 한성백제박물관 - 롯데월드타워 - 삼전도비 - 서울놀이마당 - 석촌호수 전망데크 - 석촌동 고분군
입이 즐거워야 눈도 즐겁다! 어디서 뭘 먹지?
·풍납시장
40년 역사의 전통시장으로 명물 어묵과 핫바, 빵집, 떡집 등이 곳곳에 있다. 시장 구경 삼아 이것저것 군것질할 먹거리가 다양하다.
·올림픽공원 주변 맛집 거리
브런치 카페, 이탈리안 레스토랑, 한정식 등 송파·강동구 일대 이름난 맛집들이 즐비한 곳이다. 가격대는 만만치 않지만 다들 특색 있는 맛과 분위기를 선보인다.
·석촌호수 카페거리
석촌호수 서호, 동호를 따라 대로변에만 30여개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치열하게 맛 경쟁을 하는 곳. 상점마다 호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넓은 야외 테라스가 마련돼 있다. 카페거리 뒤편으로도 크고 작은 식당들이 많다.
풍납토성 미래마을 역사문화공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1호로 지정된 미래마을은 현재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역사문화공원으로 최종 결정되기 까지 주민 대표, 서울시와 송파구청 관계자, 문화재위원, 국회의원과 시의원, 구의원 등이 수차례 협의 끝에 올초 최종 결정됐다.
미래마을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2000년대 초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땅 주인들은 미래지구 조합을 결성해 이곳에 아파트를 신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낡은 건물을 허물고 공사를 하던 중 한성백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아파트 공사는 중단됐다. 그 뒤 정부는 2만955㎡(약 6400평) 부지를 매입한 뒤 2011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조사를 실시해 각종 토기와 건물터, 내성벽을 발굴했다 오랫동안 사유재산권 제한을 받아왔던 풍납동 일대 주민들은 정부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45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초 완공될 공원에는 한성백제 시절의 도로유구(道路遺構), 내성벽(內城壁), 건물터 등의 매장문화재를 재현할 계획이다. 송파구는 잠실관광특구와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문화제 발굴 체험과 백제마을 체험부스 운영, 문화재 해설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그동안 사유재산권 제한을 받아왔던 이 일대 주민들을 위해서 공원 안에는 체육시설, 쉼터, 주차장이 마련된다.
가회동 성당, 한옥을 입다
가회동 성당은 2013년 11월 재건축 준공 이후, 성당 건축양식과 한옥의 조화로 북촌 방문객들 사이에서 이미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성당답게 입구에 들어서면 한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성당 건물이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다. 전면부에 배치된 한옥이 주변의 마을경관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성당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배롱나무와 돌담을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성당건물을 만난다. 넉넉지 않은 대지면적에 공간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성당건물은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로 건축되었다.
성당의 옥상으로 올라가면 북촌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성전의 앞과 뒤쪽에 있는 한옥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성당이 북촌의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북촌에서 성당 옥상만큼 더 좋은 전망대가 없을 것이다. 성전은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고도제한 12m로 제한된다. 종교시설이 아니면 이렇게 높게 지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성당 옥상보다 더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건축법규가 바뀌지 않는 한 영원히 조망권이 확보 된다. 남쪽으로 남산이 있고 첨단의 현대식 건축물이 보이지만 북쪽으로는 옛 건축물이 고풍스럽게 보존되어 현대와 과거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하늘정원은 전망대로도 손색이 없다.
종탑의 종은 1958년도에 독일에서 주물로 제작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종으로 아주 작게 손가락으로 쳐봐도 소리가 얼마나 청아한 지 알 수 있다. 이 종은 예전 성전에 있던 것으로 종탑의 붕괴 위험이 있어서 타종을 중지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서 녹이 많이 슬어 파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버리지 않고 잘 손질을 해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냈다. 1959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었던 노기남 대주교가 축성 했다는 사인이 종안에 기록되어 있고 이 자체가 골동품이다.
단아한 한복의 선비와 파란 눈의 외국인 사제의 어깨동무
새롭게 지어지는 가회동본당은 우리나라 첫 미사가 봉헌되었고, 박해가 시작된 지역이며, 마지막 황실에서 모두 세례를 받은 역사적 의미와 선교본당으로서의 역할을 담아내야 했다. 또한 북촌에 위치하였기에 장소적 정체성을 반영하여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선비와 벽안의 외국인 신부님이 어깨동무하는 형상”을 콘셉트로 잡았다. 또한 북촌한옥마을에 어울릴 수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였다.
한옥에 담아낸 정성과 자부심
가회동 성당의 한옥은 흉내만 낸 게 아니라 진짜 한옥을 짓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공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요즘 한옥은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한 외국산 소나무로 짓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회동 성당의 한옥은 전국을 발품을 팔아 찾아낸 춘양목이라고 불리는 적송(赤松)을 썼다. 또한 송차선 신부는 공사 시작 전 각 분야의 무형문화재들을 모아 브리핑을 열어 ‘대표 작품’으로 불릴만한 한옥을 지어주길 부탁하였다. 무형문화재들은 직접 와서 한옥을 짓겠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공사에 임했다니 그 정성과 자부심이 짐작된다.
한옥의 마루는 대청마루, 쪽마루, 누마루로 되어있다. 길 건너에서 보면 대청마루를 통해서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계단의 느낌을 가지고 성당을 바라 볼 수 있다. 쪽마루는 외부관광객들이나 순례자들이 와서 언제라도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게 했고, 누마루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붕의 암막새와 수막새는 오병이어를 상징한다. 목수들이 얼마만큼 정성껏 만들었는지는 구석구석 드러난다. 예를 들면 목수들은 기둥위의 창방머리를 구름의 형태로 조각했다. 그 구름은 지붕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누마루는 목수의 더욱 섬세한 손놀림을 볼 수 있다. 누마루의 손잡이를 유심히 보면 꽃대 위에 꽃받침을 조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걸터앉는 손님들이 모두 꽃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한옥이 되었다.
나무는 모두 손대패로 치목을 했다. 기계대패는 보푸라기가 생기지만 손대패는 면이 매끄럽고 광이 나며 발수효과가 있어서 내구성을 향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손대패는 한 번에 깎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손이 가는 1m 정도마다 결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가회동 성당의 한옥에는 어떤 나무에도 결이 없다. 그만큼 목수들의 손대패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한다.
가회동 성당 사랑채는 가회동 거리풍경과 연속성을 보여주는 한옥건축의 모습과 전통 기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2014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올해의 한옥상’, 「2014 서울시 건축상」에서 일반부문 ‘최우수상’, ‘시민공감상’, 「2014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민간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한국 천주교회 첫미사 - 성지 가회동
역사적으로도 가회동 성당은 한국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가회동 성당이 위치한 북촌일대는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하여 1795년 4월5일 부활대축일에 최인길의 집에서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이다. 또한 1955년 조선 마지막 황실 가족인 의친왕 이강과 왕비 김숙이 세례를 받은 곳이 가회동 성당이다.
성당 건너편 500m쯤 떨어진 곳에 주 신부가 미사와 세례 때 성수로 썼다는 석정보름우물(계동길 110)이 남아있다. 지금은 우물이 폐쇄됐지만 한국천주교 최초의 성수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다.
오픈된 공간, 소통하는 가회동 성당
가회동 성당의 가장 큰 매력은 외부인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 성당은 모두에게 개방하고 함께 소통하기 위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한옥을 성당 건축양식에 끌어들인 것도 북촌 지역과 잘 조화될 수 있도록 하고, 신자가 아닌 외부인도 가벼운 마음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관광객들은 한옥 사랑방에 걸터앉아 도시락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혼배식이 있는 날이면 마당은 하객들을 위한 연회장으로 쓰인다.
성당을 찾은 날 송차선 주임신부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사랑채로 불러들여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4시까지 문을 여는 한옥카페에서는 송차선 신부가 직접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를 맛 볼 수 있다. 금요일 같은 시간에는 김귀웅 신부의 꽃차가 제공된다. 음료는 모두 무료이며, 자발적인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함을 마련해 놓았다.
또한 매주 금요일 10시 미사 이후에는 성당의 곳곳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해설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가회동 성당 1층에는 역사와 건축 배경을 설명하는 역사전시관을 마련해 놓았다. 또한 가회동 성당의 기념품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한옥 건축 후 남은 적송을 활용한 기념품이다. 여기에는 가회동 성당의 일부를 소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가회동 성당을 방문할 때는 기도하는 곳이라는 점을 유념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을 둘러보는 등 신도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출처 : 가회동성당 홈페이지(http://gahoe.or.kr)
첫댓글 민화..박물관 http://gahoemuseum.org
1779년 이벽을 중심으로 학자들이 천진암에 모여 서학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에서의 천주교 신앙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천주교를 더욱 깊이 알기 위하여 학자들은 이승훈을 북경으로 파견하였고, 그는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서 한국 교회 최초의 정식 세례자가 되었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여러 학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과 함께 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가회동 성당 http://gahoe.or.kr/ 전시관 해설신청 문의 - 02) 763-1570, 070)7010-54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