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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19세기 초, 정조(正祖)가 돌아간 뒤 순조가 즉위하면서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다. 김대왕대비는 집권하자마자 천주교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5가작통법"을 시행하였다. 서학의 책만 읽어도 사상범으로 중형을 내렸다. 결국 권철신, 이가환, 이승훈이 처형되고 정약용은 11월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이것이 곧 신유교난이다. 19세기는 태풍을 안고 그렇게 험난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2
여기는 전남 율치(栗峙) 고개. 한 젊은이가 나귀를 타고 남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귀 위에서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천천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남원부사 이등(李登)의 아들 몽룡(夢龍)이다. 전주 감영에서 실시하는 소과 생원시의 복시(覆試)에 합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과거에는 일차 시험인 소과와 본고사격인 대과가 있다. 소과에는 철학을 주로 시험 보는 생원시와 문학을 시험 보는 진사과가 있는데 소ㆍ대과 모두 초시와 복시의 2차 고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대과 복시를 합격한 사람 중에서 임금이 친히 시험을 보이는 전시(殿試)에서 수석인 장원급제가 결정된다.
남원 시내가 저만큼 보이기 시작한다. 교룡산(蛟龍山)은 우뚝하고 요천(蓼川)이 말없이 흐른다. 번화한 저자 거리를 지나 나귀는 남원부사의 정당이 있는 성안 길로 접어든다. 홍살문, 다락문을 거쳐 내삼문의 솟을대문으로 들어서자 육방관속들의 향청, 질청들이 좌우에 늘어서 있었다.
아전들이 몽룡을 알아보고 급히 정당에 아뢴다.
"소자, 이제 귀가하였사옵니다."
"오, 장하다. 소식은 미리 들었느니라. 수고했다."
평소 근엄하던 부사 이등도 오늘은 얼굴 가득히 웃음이 돈다.
"평소 가르침대로 하였을 뿐입니다."
"복시는 이제 시작이다. 아직 대과가 있지 아니하냐.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조금도 일이 그르침이 없도록 하라. 그래 그 뒤 여러 날 여행길은평안하였느냐?"
"예, 다산(茶山) 선생께서 안부를 전하더이다."
내아(內衙)에서는 어머니가 반겨 나와 손을 마주 잡는다.
"어이구, 몽룡아, 어서 오너라. 많이 피곤하지? "
"어머님, 잘 다녀왔습니다. "
"그래 그래, 어서 씻거라. 저녁을곧 차리마."
몽룡이 동헌과 내아 사이에 있는 자기 책방(書室)으로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한 식경 지나서였다. 역시 집은 평안하였다. 낯익은 문갑과 사방장. 피곤이 온몸을 엄습하였다.
3
자다가 몽룡은 잠이 깼다. 강진에서 벌였던 토론 내용이 머리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귀양 가 있는 곳이다. 몽룡은 복시를 보고 난 뒤,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전주에서 곧장 강진에 들렀던 것이다.
만덕산(萬德山)에 들어서는 오르막길에는 대나무 뿌리가 발에 채이고 동백, 비자, 후박나무 등 활엽 상록수가 어둡도록 울창하였다. 그 속에, 초가로 해 이은 다산초당이 있었다. 동암(東庵)은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곳이고, 책이 천정까지 쌓인 서암(西庵)은 다산이 늦도록 불을 켜놓고 집필을 하는 곳이다.
다산의 눈은 한 곳을 쏘아보고 있었다. 목민관의 자세에 대하여 말할 때는 기가 뻗혀 있는 듯하였다.
"백성이 있고 나서 목민관이 있는 것이다. 백성이 나라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형편을 보면, 아전들은 백성들의 살가죽을 벗기려 하고 수령들은 아전들의 녹을 가로채고 고관들은 뇌물을 받고 벼슬까지 팔지 않느냐. 이건 완전히 뒤바뀐 사회다. 이러다간 남의 침략을 받기 전에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이런 사회는 단연 바로잡아야 한다.
"백성이 근본이 되려면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해야 한다. 선비는 손발을 안 움직이면서 어찌 백성이 생산한 것을 삼키는가? 선비라 해도 독서만 하면서 노동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농사짓는 사람에서 선비도 나오고 목민관도 나와야 한다.
"백성이 근본이 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백성이 차례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이상적 군주제라야 하겠다.
" 우리 사회에서는 실제적인 것을 중시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가져야 한다.
" 토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살아난다. 모든 사람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공동으로 경작해야 한다. 1/10세를 제외한 모든 생산물은 노동력에 따라 공동 분배하는 토지제도, 곧 여전제(閭田制)를 실시해야 한다.
다산의 말은 하나하나 오랜 사색을 거쳐 논리가 명확하고 힘이 있었다.
몽룡이 물었다. "선생님은 20대부터 30년 동안 중용(中庸) 강의를 고치고 매만지고 계시는데 거기선 종래 주자학과 다른 해석을 하시던데요. 음양은 그저 빛 그늘같은 형식이지 무슨 원리가 아니고, 오행(五行)도 만물 중 다섯 가지 물질일 뿐이며 이(理)와 기(氣)도 사람의 영명(靈明)이 인간 행위로 나타난 것일 뿐 그 자체가 실체가 아니라고 하셨지요? 그건 주자학의 기본 사상을 뒤엎는 것 아닙니까?"
"잘 보았네.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려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유학 사상의 근본 틀을 바로 세워야 하네. 유학의 근본은 상대(上代)의 유교철학에서 찾아야 하네. 주자학이 생기면서 유학은 이론은 있으나 생명력을 잃었네.
"상대 유교와 요즘 들어온 서학하고는 희한할 만큼 비슷한 점이 있지. 예를 들면, 요즘에는 하늘을 추상적인 이(理)니 푸른 공간으로 보고 있지만 그때는 만물을 주재하는 신령하고 밝은 인격으로 보고 있었거든. 또 사람에게는 그 상제와 통하는 영명(靈明)이 있다고 보아. 서학서는 영혼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중용에는 "삼가고 두려워 할 상제가 우리를 보신다"라고 해석되는 구절이 있네. 사람의 근본은 이렇게 사람이 상제 앞에 서서 그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지.
" 그러면 상제 앞에서 삼가며 우리가 힘쓸 덕목은 무엇인가? 효(孝)ㆍ제(悌)ㆍ자(慈)일세. 효는 어른에게, 제는 형제간에, 그리고 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거지. 그렇게 될 때 아래에서 위로만 올라가는 일방적인 도덕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도덕이 되는 거야. 상제의 신령하고 밝은 인격이 우리 영명과 통하여 행하는 것이 이(理)일 뿐 우리 속에 이가 다 갖추어진 것은 아니야. 또한 세상에는 하늘의 상제, 사람의 영명만 있을 뿐이지 무슨 땅의 기라는 것은 없다고 보네.
" 나는 이렇게 상대 유교와 서학을 종합 보충하여 새로운 사회의 바탕이 되는 정신의 틀을 만들려고 하네. 여기 내 평생의 몸과 목숨을 걸 것이야."
4
날이 밝았다. 벌써 사또는 동헌에 나와 아침 정무를 보고 있었다. 아전들이 아침 공무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몽룡도 고달픈 학과 공부를 시작하였다.
목민관의 일은 자질구레한 것이 날마다 한없이 많았다. 이등은 선정에 힘썼다. 예부터 수령칠사(守領七事)라고 하여, 농상에 힘쓰고 군정을 수비하고 부역을 균등히 하고 향리의 부정을 엄정히 처단하며 공부를 상납하고 징수하는 것 등이 다 수령의 할 일이다.
당시는 백성이 크게 시달린 것으로 황구첨정(黃口僉丁)이니 백골징포(白骨徵布), 환곡(還穀)이니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는 아전들이 수령과 결탁하고 백성을 쥐어짜는 짓거리들이었다. 당시 16세부터 60세까지의 백성들은 병역에 나가지 않는 대신 포 2필이나 쌀 12말을 세금으로 냈다. 이것이 곧 인두세인데, 그것도 양반은 내지 않고 양민만 낸다. 그런데 세금을 더 걷어들이기 위해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장정으로 쳐서 군포를 걷는 것이 황구첨정이요, 죽은 사람도 산 사람으로 쳐서 군포를 물리는 것이 백골징포인 것이다. 환곡이란 지방 수령이 봄철 춘궁기에 관곡을 꾸어주고 가을에 거둬들이어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나라의 시책이다. 그런데 환곡의 이자는 지방 관아의 수입이 되기 때문에 지방 향리들은 별의별 구실을 다 붙여 농민들을 뜯어먹으려 하였다.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고리대금을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등은 수령칠사에 충실하고 호적을 바르게 정비하며 민정을 살피고 백성 편에서 산송, 제송 등 송사를 공정히 처리하며 아전의 횡포를 막아 엄중히 다스리고자 온힘을 다했다. 대부분의 부정한 아전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백성을 괴롭혀 사리를 도모하는 남원 부근의 현감들까지 아전들과 가세하여 남원 부사를 질시하고 배척하여 이 등 주변에는 늘 불안한 세력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등은 늦게 둔 외아들에 기대가 많았다.
5
며칠 뒤 모처럼 화창한 봄날이었다. 개나리 진달래의 원색과 종다리 제비 등 생동감 넘치는 소리로 자연은 움직이고 있었다. 몽룡은 노복과 함께 광한루(廣寒樓)에 갔다. 몽룡에게는 "할아범"이라 불리는 충직한 노복이 하나 딸려 있었다. 마당을 쓸고 나무를 해다 방에 불을 지피고 심부름을 하기도 하였다.
단오 때라 광한루에는 사대부 집 여자들이 그네를 타는 것이 보였다. 이때쯤이면 남정네들은 용마놀이를 한다. 광한루에 온 여자들은 푸른 저고리 붉은 치마로 차려입고 자기 차례를 기다려 그네를 타고 있었다. 발을 굴러 하늘을 날 때는 치마가 펄럭거렸다.
한 여자가 밤색 옥양목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고 짚신을 신고 그네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네를 타던 여자들이 서로 아는 듯 그네 타기를 권했다. 옥양목 여자는 몇 번 사양을 하다가 마지못한 듯 그네를 탔다. 두어 번 하늘을 가르더니 그네를 멈추고 땅에 내렸다. 그리고 입에 손을 대고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광주리를 들고 지나갔다. 댕기 딴 검은머리와 기품 있는 허리가 뒤에서 보였다.
몽룡은 그 여자를 어디선가 본 듯했다. 기억을 더듬으니 전에 지필전(紙筆廛)에서 그리고 저자에서 한번 만난 일이 있었다. 저자에서 본 날은 장날이었다. 부근에 인월, 함양, 운봉장도 있었으나 남원의 5일장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지리산에서 캔 산나물이며 약초, 농기구, 옷감, 잡화, 목각, 부채, 어물 등을 사고 팔았다. 지필전에서는 건강한 피부의 그 여자가 붓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번은 저자 어귀에서 어떤 장사꾼이 한 아낙네를 붙들고 그 아낙네가 가지고 온 물건을 억지로 싸게 사려는 것을 보고, 그 여자가 장사꾼을 조근조근히 말리는 장면을 보았었다.
"도련님 어디를 보시어라우? "
노복의 물음에 몽룡은 번쩍 정신이 든 듯
" 아니. 그저…"
하고 말문을 흐렸다.
"해가 중천이니 어디서 간단히 점심이라도 드시지라우. "
"그럴까, 어디 잘하는 데가 있나? "
"하먼이라우."
그 집은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르고 큰길에서 곧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버드나무가 있었다. 대나무 울타리 뒤는 안채와 후원인 듯 싶었다. 노복은 주모와 잘 아는 사이 같았다. 국밥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그네 타던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노복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광주리를 전하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능숙한 도마소리가 났다.
"저 처자는 누군가? "
"이 집 딸인데 춘향이라고 하는구만이라우. 본관이 창령 성씨제라우. 어미를 도와 텃밭도 가꾸는데 지금 저자를 보고 오는갑네요. 즈이 어미에게 길쌈질을 배웠고, 시화(詩畵)도 좀 하는 모양임갑써라우. 어머니는 이름이 월매(月梅)라고 거 머시냐, 원래 기적에 올랐는데 전임 사또 성계진(成溪鎭)의 총애를 받아 저 여식을 보았지라우."
"뭐야? 그럼 을유년 대과 전시에 급제하고 전라우도 암행어사로 시폐를 바로잡고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와서 북학을 일으킨 선각자가....? "
노복이 말없이 끄덕거리자 몽룡은 갑자기 흥미가 동했다. 몽룡은 다시 집을 둘러보았다.
국밥이 나왔다. 남도 풍습으로 정갈하고 반찬 가짓수도 많았다.
"음, 춘향이라"
몽룡은 말없이 국밥을 들었다.
그날 밤 몽룡은 춘향의 꿈을 꾸었다. 춘향은 지혜롭고 단정하며 국화 같은 청초함과 보석 같은 모습, 온몸에 부드러운 생명과 영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6
다음날 몽룡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노복은 마당을 쓸고 있었다
"여보게, 할아범"
"네, 도련님"
노복은 이 도련님이 점잖고 생각이 깊은 것이 정말 좋았다.
"부탁 좀 하나 들어주겠나? "
"아, 그저 분부만 하시씨오."
"이 서찰 좀 전해주게나."
몽룡의 말이 약간 떨리는 것을 세상 물정 많이 겪은 노복은 금새 느낄 수 있었다.
" 퍼뜩 댕겨오겠구만이우."
춘향에게 보내는 서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화창한 봄날 그네 타는 아가씨
몇 번 망설이다 하늘을 날았네.
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대 모습에
혹 생각하노니 나의 비익조인가.
비익조(比翼鳥)란 중국 백거역(白居易)의 시 장한가(長恨歌)에 나오는 새 이름이다. 눈과 날개가 각기 한 개씩이어서 또 하나의 눈과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 둘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금슬 좋은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다음날 노복이 회답을 가지고 왔다. 예쁜 행서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본부(本府) 도련님은 온 부성(府城)이 알지마는
반서(班庶)와 신분은 우리 사회의 제도니
돌이킬 수 없는 시작은 괘념이 마땅하겠지요.
극결(郤缺)을 바라며 분수를 지키고자 합니다.
춘향은 기생의 딸이다. 기생의 딸은 사회적 신분이 낮았던 것이다. 극결이란 중국 기(驥)나라 사람이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구계(臼季)가 기 땅을 지나다가 극결이 밭에서 김을 매고 아내가 밥을 해 왔는데 부부 사이가 손님을 대하듯 공손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본 구계가 극결을 진의 문공(文公)에게 천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춘향의 시는 서로 자기 분수를 알고 다른 생각은 말자는 뜻이다.
몽룡은 다시 이렇게 써보냈다.
본래 제도는 사람을 위하여 만든 것이거늘
어쩌다 거꾸로 사람을 누르는 방편이 되었는고.
같은 부모, 하늘에 남녀나 반서 구별 우스워라.
아무리 제도가 눌러도 사람은 사람이로다.
이렇게 해서 몽룡과 춘향의 서찰 교환은 시작되었다. 어떤 때는 길게 써 보냈으나 바쁠 때는 짧게 써 보내왔다. 가끔 노복은 하루에 몇 행보를 하는 수도 있었다. 서찰의 내용도 일상생활과 계절이나 자연에서 인생과 사회문제까지 다양하였다. 어느 쪽도 편지를 거르지 않는 것이 서로의 기쁨이었다. 때로는 몽룡의 공부에 지장을 줄 때가 있었으나 지성과 감성을 열어주는 아름다운 친구로 여겨져 마음이 평안한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서 몽룡은 서찰 주고받기가 일상생활의 중요한부분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춘향도 몽룡의 준수함과 생각하고 꿈꾸는 눈과 신념을 보이는 입술, 많은 것을 속에 감춘 소박함과 예의,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신이 눈에 어른거렸다.
7
한번은 여름 저녁 몽룡 혼자 춘향의 집에 갔다. 식당은 이미 손님이 끊기어 문을 닫은 뒤였다. 춘향의 어머니 월매가 알아보고 뒷채로 안내하였다. 춘향은 밭에서 일하고 나서 방에 걸레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당황했으나 곧 침착해졌다.
"워따메에, 귀한 몸이 갑자기 어인 일로..."
"바람 쐴 겸 들렸네."
"잠깐 걸터앉으시지요."
평상에 걸터앉아보니 정원에는 매화, 치자, 금잔화가 심겨져 있었다. 뒤꼍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감, 배, 자두, 복숭아 같은 과수를 심고 아래 대나무 울타리 속에 닭을 놓아먹이고 있었다. 밭에는 아욱, 상추, 감자, 고추, 콩, 고구마, 열무가 가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호롱불에 보이는 춘향의 방은 순창의 설화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문갑에 책이 쌓여 있고 시를 써 둘둘 말아놓은 두루마리(詩軸), 비단보로 싼 거문고 갑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옆방에는 길쌈하는 베틀이 놓여있었다.
차가 나왔다.
벽에 야생초와 곤충의 그림이 붙여 있었다.
"그림의 뜻(畵意)보다 모습(畵形)을 중시하는군요."
"예, 여기 흔치 않은 사군자보다 집 주변의 자연이 더 아름답고 귀해 보여서요. "
벽에는 초서로 " 다만 얽매이지 않으므로 언제나 즐겁구나" 라고 쓰여 있었다.
"저 시는 누가 쓴 것이지요? "
" ........ "
춘향은 갑자기 말이 없었다.
"이전 사또 양반이 남기신 거라우. 저 서책과 함께.. "
월매가 끼어들어 대답하였다.
"훌륭하신 분으로 경모해 온 분입니다. "
"그분을 만난 이후로 나도 그 세계에서 발을 끊고 요로코롬 밥집을 해오고 있지라우. 그 어른이 한양에 같이 가자는 것을 내가 억지로 거절했다마시. 그 뒤로 저 애와 서로 의지하고 지나지라우. "
그녀의 마음에는 세월이 가도 더욱 사또가 살아있는 듯하였다.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거문고를 탈 줄 아시오? "
잠시 머뭇거리다 몽룡이 물었다.
"잘은 못합니다."
"좀 들려줄 수 있겠소? "
춘향은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허락을 얻자 수줍은 듯이 계면조(界面調)를 탔다. 거문고 소리는 어두워지는 마당을 건너 대나무 숲으로 퍼져나갔다.
"천지 사이에 화기를 이루는 것으로 음악만한 것이 없소."
몽룡이 말하자
"음악이 없으면 형벌이 무겁고 전쟁이 일어나고 원망하는 마음이 일고 속임수가 늘어간다고 하더이다."
라고 춘향이 대답하였다.
8
몽룡이 엄한 사또의 눈을 피하여 저녁 무렵 춘향의 집에 다니는 횟수가 늘어갔다. 어떤 화제고 한번 말이 시작되면 끝없이 술술 이어졌다.
한번은 몽룡이 불평등한 신분 구조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면서 언젠가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정다산의 이야기를 들면서 역설하였다. 춘향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씩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말하였다.
"신분 차별의 고통은 당하는 사람만이 알지요. 나와 같은 처지의 모든 사람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텃밭을 잘 가꾸는군요." 몽룡이 말머리를 돌렸다.
" 농사는 중요하지요. 여자는 평생 어떤 험악한 경우를 겪을지 몰라요. 자립해서 살아가려면 밭일을 알아야지요."
이것이 춘향의 말이었다. 밭은 소가 갈아야 한다. 여자 힘에는 부치다. 그래서 잡초를 낫으로 곡식보다 낮게 베어 작물 밑에 편다. 그러면 흙이 부드러워져 밭을 갈지 않고 땅만 호미로 파서 씨앗을 넣으면 된다. 게다가 풀은 거름이 되며 흙으로 그 위를 덮으면 다른 잡풀이 나지 않으니 세상에 버릴 것이 없고 농사는 모든 것이 순환되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임을 터득했다고 했다.
춘향의 서고에는 성계진이 전해 준 유학 책 외에 서학 책도 여러 권 있었다."천주가사"니 "성경직해" 같은 것이었다.
"이것 재미있겠군요. 내 좀 빌려다 보리다."
"그러세요."
그러나 그 책이 뒤에 어떤 파탄을 불러올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한번은 이야기에 빠져 밤이 깊어졌다. 월매가 넌지시 물었다.
"너무 늦었으니 여기 어디서 눈을붙이고 가면 어떨랑가요....."
" 엄마는 .... " 춘향이 정색을 하였다. 몽룡은 황급히
"아니오. 가겠습니다."
하고 일어섰다. 그러자 월매는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아니어라. 난 그저 벨 뜻 없이 말한 거랑께."
춘향의 집 앞에는 다리가 있고 버드나무가 잎을 늘이고 있었다. "버드나무는 뿌리가 태산과 같고 부드러운 가지와 잎으로 덮어주는 덕이 하늘과 같지요." 거기까지 배웅을 나온 춘향에게 몽룡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양쪽에 견우 직녀가 걸려 있었다.
"보세요, 하늘에서도 신분은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 않아요?"
춘향이 말하였다.
"아니지요. 옥황상제의 부당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넘었고 그러기에 미물인 까치까지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있지 않소? 그래서 옥황상제의 잘못을 온 세상이 다 보게 하는 거지요." 몽룡의 말이었다.
그 뒤 몽룡이 춘향의 집에 갔을 때, 월매는 춘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렇게 말하였다.
"저 애는 내 속에서 낳았어도 묘하당만요. 여느 때는 다소곳하지만 강한 데가 있당개요. 또 마음이 맑아서 그런지 꿈을 잘 꾸는구만요. 때론 영판 신기하게 맞추는 경우도 있지라우."
"요샌 어떤 꿈을 꾸었나요? "
"글쎄, 말하기는 어렵지만도 도련님과 춘향이 그리고 이 늙은 것이 들판을 가는 데 갑자기 먹구름이 지고 천둥번개를 치더라 함씨롱 뭘 생각하는 기색이드만요. "
9
그 일이 사실로 일어났다. 춘향의 꿈이 적중했던 것이다.
몽룡의 아버지 이등은 원래 남인 소속이었다. 남인이 몰락했지만 전주 감영의 김대감이 애써 그를 두둔하여 남원부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복을 채울 수 없게 된 아전들의 음해가 잇따르며, 남원 주변의 순창, 운봉 현감들이 연합하여 이 청렴한 부사를 무고하고, 그들과 줄이 닿은 한양의 관리들까지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트리며 맹공을 늦추지 않았다.
한번은 남원 지역에서 아전의 수탈을 고발한 농민 반란이 있었는데 이등은 오히려 그 대표자의 용기를 치하하여 방면하고 아전을 힐책한 일이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모든 반대파들이 한데 뭉쳐 이등 배척 운동을 펼친 것이다.
결국 부사는 봉고 파직의 명이 떨어졌고 급거 가솔을 거느리고 서울에 올라와 벌을 기다리라는 이조좌랑의 명령이 내렸다. 그것도 내일 당장 출발하라는 명령이었다. 파직 아니면 원격지 좌천이 분명하였다. 전라감영의 중간 비호도 소용없었다. 명령에는 지체할 수 없다. 내일이면 몽룡은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몽룡은 밤에 춘향의 집에 달려갔다.
10
소문이 춘향 집에 먼저 와 있었다.
월매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인간 세상에 이별은 언제고 있었지만 이렇게 속히 서로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정말 저 애의 인생이 가여운 생각이 든단마시. "
하고 고름으로 눈물을 찍었다.
그러나 그동안 말이 없던 춘향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왜 도련님 마음을 심란하게 하세요. 도련님, 서울로 가세요. 어차피 인연도 이것으로 다했나 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서의 운명을 피치 못해 생고통을 겪었어요. 나만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도련님의 앞날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일생 기억할 좋은 분을 만난 것으로 족합니다."
몽룡은 격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왜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용감한 첫 사람이 되려 하지를 않소? 그간 하지 못한 말을 여기서 하리다. 아직 그럴 자리가 없어 부모님께 상의는 안 드렸으나, 그대를 생애의 반려로 삼고 싶소. 나의 아버지도 막힌 분은 아니니 종당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더니 몽룡은 말없이 횃대에 걸쳐진 치마를 내려 바닥에 펴고 연적의 물을 따르고 벼루에 먹물을 갈아 치마폭에 이렇게 썼다.
하늘과 땅에 약속한다. (與天地約)
춘향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몽룡의 얼굴을 보고 글자를 보다가 결심한 듯 다시 그 옆에 나란히 썼다.
해와 달과 같이 오래리. ( 如日月久 )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은 손을 잡았다. 춘향의 눈에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안타깝게도 오래 더 있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예전의 그 돌다리 앞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작별을 하였다.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며 춘향은 버드나무 그루 아래서 무너져 내렸다.
다음날 아침 안개 속에 이등의 가족이 남원을 떠나고 있었다. 힘없는 행렬이었다. 이등의 돌연한 떠남을 애석해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리정까지 배웅을 나왔다.
" 도련님. 이별주 한 잔 받으씨오." 길섶에서 미리 와 기다리던 노복이 행렬 뒤에 가던 몽룡에게 한 잔의 술을 따라 올렸다. 춘향이 보낸 것이다. 몽룡은 침통하게 잔을 비웠다. 그리고 생각 난 듯이 짐을 뒤져 춘향에게 돌려줄 책을 노복에게 전했다. 숲 속에 춘향의 옷자락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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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까지 마중을 간 고을 아전 수십 명이 깃발을 들고 호기 있게 남원부에 당도하였다. 원래는 신임사또가 임지까지 오도록 각 역에서 음식과 잠자리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지만 새로 오는 사또는 그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이 도중에 먹고 쓰는 모든 돈을 추가해서 백성에게 뜯어내는 것이었다. 사또가 부임 할 때 그가 앞으로 선정을 베풀 것인지 여부를 미리 가늠할 수 있었다. 아전들은 사또를 서울에 마중가면서 추가 비용을 뜯어내는 데서부터 사또를 자기들 뜻대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새로 부임한 변 사또는 천성이 비루하여 상관에 아첨하고 아랫사람의 뇌물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호남 지역과 주민에 대한 편견이 노골적인 사람이었다. 아전들은 겉으로 복종하는 척하면서 만만하게 이용할 그런 사또를 속으로 좋아하였다. 그런 사또는 자기들의 사복 채우기를 눈감아 주기 때문이다. 신임 변사또는 처음 큰소리를 좀 쳐보다가 이내 모든 업무를 아전들에게 다 맡겨 버렸다. 그는 지방 실정이나 실무를 아무 것도 몰랐다.
기껏 이등의 노력으로 자리를 잡았던 삼정(三政)은 다시 문란해져 창고는 나날이 축이 났다. 백성들은 수군거리다가 원성을 터뜨렸으며 앞으로 지낼 일을 걱정하였다.
사또가 한 가지 눈을 밝히고 한 것은 멋대로 기호(畿湖) 남인시파(南人時派)로 딱지를 붙인 이등의 공적을 깎아 내리고, 전관 사또의 신임을 얻던 사람들의 퇴출 인사를 단행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공무에 매일 일이 없게 되자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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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사또가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단신 부임을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시골 향청의 임기 단축 혜택을 보려는 것은 드러난 이유로되 남도 기생의 고장에서 관권을 이용해 여색을 마음껏 탐하려는 속내가 그 뒤에 있었다. 이 낌새를 안 아전들은 사또에게 춘향의 자색에 대하여 귀띔을 했다. 춘향의 자색이 곱고, 축출된 정치 맞수인 전관 사또의 아들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춘향을 자기 것으로 함으로써 원수를 누르는 것으로 생각하니, 변 사또는 더욱 흥미가 동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세요?"
"신관 사또의 명이시다. 가보면 알거랑께. "
밭에서 일하던 춘향은 포졸들의 억센 팔에 다짜고짜 붙잡혀 사또에게 왔다.
"네가 춘향이냐?"
사또의 느물거리는 눈이 춘향의 몸을 더듬었다. 탱자나무 가시와 관청은 귀신도 무서워한다고 했다. 춘향은 몸서리를 쳤다.
"내가 고을에 부임한 이래 꽃 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에 술을 권하려 해도 상대가 없었다. 네가 내 곁에 있어주면 이 특별한 만남이요, 인생의 기쁨이 아니겠느냐? 오늘부터 너는 내게 들라.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인은 이미 선임 사또의 자제와 3생의 인연으로 백 년을 기약했습니다. 이별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어찌 두 마음을 품겠습니까?"
사또가 말했다. "어허, 아침에 눈물을 뿌리며 이별하다가 저녁에 새 사람이 오면 웃음 짓고 맞는 것이 기녀의 세계거늘 어찌 풋내기 도령의 하룻밤 약속 같은 걸 믿고 지금 무슨 꿈결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 "
"백성 다스리는 신하와 여자의 도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법도를 아는 어른이면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고 하늘 아래 해가 둘이 없듯이 아녀자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못함이 지당한 도리임을 알 것입니다. 어떤 충신이 세상이 바뀌면 무릎을 꿇어 두 임금을 섬기려 하나이까? 어떤 군사가 외적이 온다고 성이 함락도 되기 전에 항복의 깃발을 세우겠나이까?"
여기서 사또의 노염이 폭발하였다. "발칙하게 함부로 입을 놀리는 계집이로고. 관기의 자식이면 관기이니 반상이 유별하여 신분을 뛰어넘을 수 없거늘 지금 어디다 대고 관장에게 설유(說諭)하고 더구나 국법에 반항하는 것이냐! 어험, 국법을 어기고도 네가 몸이 성할 줄 아느냐! "
춘향의 슬프도록 긴 속눈썹이 조용히 감겼다.
"부디 형벌을 내리시어 공강(共姜)의 맹세를 저비리지 말고 심하게는 영녀(令女)와 같은 지경에 이르더라도 그의 혼에 부끄럽지 않게 해주시면 은혜를 받은 것으로 알겠사옵니다"
하고 입을 다물었다. 공강이란 위나라 공백의 아내고 영녀란 위나라 문숙(文淑)의 아내인데 둘 다 남편이 죽자 개가를 하지 않고 정절을 지킨 사람들이다. 춘향은 형벌을 받고 죽음에 이를지라도 그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사또가 발악을 했다. "저런 무엄한 년이 있나. 여봐라, 형틀을 끌어내라"
관장의 말이면 꼼짝을 못하는 형리들의 매는 사정이 없었다. 춘향은 비명을 안 지르려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카락이 흩어지고 형장엔 여름 흰 눈이 날리고 동백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 뒤 춘향이 처절한 얼굴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하늘이시여, 사람을 어찌 욕망으로 보며, 인생을 신분에 따라 억압하나이까?"
사또가 소리쳤다. "저 년이 하늘을 들먹거리고 아주 환장을 했구나."
사또 옆에 있던 관기(官妓)가 그 장면을 보며 비쭉거렸다.
"흥, 열녀가 났구만. 열녀가 났어. 눈 앞의 복을 생각 않고 휴지 같은 맹세에 매달린단 말이시? 저러다 한 떨기 꽃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지 않겄능가? "
그때 아전이 급히 사또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아주 그러코롬 물고를 내면 워처커지라우? 여자의 성정(性情)은 물과 같은 거인디 처음엔 저러다가도 미안타 함씨롱 잘 타이르면 숙어지지 않겄능가요. "
사또는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머리를 끄덕이고 춘향의 하옥을 명했다.
옥리는 춘향이 옥에서 낮게 읊조리는 말을 들었다.
옥사에서 바라보니 휘영청 달 밝은데
그리운 임, 지금은 그 어느 곳 계시는가.
서러운 마음 안고 달려갈 수 없는 신세
저 달아, 내 심정 받아 임의 얼굴 비추소서.
기약 없는 기다림에 밤새 잠 못 이룰 적에
나타난 임의 모습, 다정한 예전 얼굴
어찌하여 반가움은 눈물 되어 흐르는고.
이윽고 성(城) 쇠북소리 새벽을 알리누나.
며칠 뒤 사또는 춘향의 몸단장을 하기를 명했다. 그리고 하졸들을 시켜 저녁에 사또 방에 들이게 했다. 병풍 앞에 술과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사또는 모를 꺾고 구석에 앉은 춘향에게 아무 말 없이 음흉하게 웃으며 어깨에 손을 뻗쳤다.
"안 돼요!" 비명을 지르며 춘향은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사또의 눈은 이미 짐승의 그것이었다. 번쩍! 촛불이 무엇인가 춘향의 손에 있는 것을 비쳤다. 그것이 아래를 내리치는 순간 치마에 붉은 점이 솟더니 방바닥에 번져갔다. 피였다. 은장도로 허벅지를 찌른 것이다.
"에이, 지독한 년! 감옥에서 죽어나가라."
사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뱉어져 나왔다. 춘향은 하졸들에게 팔을 잡혀 방에서 질질 끌려나갔다.
13
이등은 워낙 강직하기로 유명하여 참소자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적소에 유배되지는 않았다. 대신 형이 일등 감하여 함경도 벽지로 좌천이 되었다. 산도 설고 물도 설은 그곳은 서울과는 거리가 멀어 생활과 교통이 크게 불편하였다. 기후도 겨울을 맞아 추웠다. 역대의 누정(累政)이 겹쳐 여기저기서 민란의 조짐이 보여 불안한 공기가 감돌았다. 더 힘든 것은 사방에서 그를 감시하는 보이지 않는 눈길이었다.
몽룡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춘향과 헤어진지도 어느덧 반 년. 다시 북녘에도 날씨는 쌀쌀하지만 얼음이 녹는 골짜기에서부터 봄은 찾아오고 있었다. 몽룡은 창밖에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남쪽 하늘에서 춘향의 모습이 하루에도 수없이 눈에 어려, 몇 번이고 깜짝 놀라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대과 시험 날짜가 공고되었다. 몽룡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과거를 보느냐 마느냐.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하는 학문이 실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수가 없다. 실제적인 것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전에 둘러 싸여 백성의 짐만 된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남의 글 암기나 해서 모방이나 하고 말재주나 부리는 것이지 고상한 인격을 닦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정치가들이 패거리를 이루어 서로 자기편을 합격시켜놓고 지연과 학연 따라 끼리끼리 나쁜 짓을 눈감아주며 천하를 주름잡고 있다. 한번 뛰어든 이도 거기 들어가면 수렁 속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과거를 보지 말아야 하나, 보더라도 백지를 낼까 비판적인 내용을 쓸까, 어느 쪽을 선택할지 몽룡은 고심하였다. 요즘 따라 아버지의 깊게 패인 주름이 몽룡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걸 생각하면 과거를 보는 게 효도도 하고 범굴에 가야 범을 잡듯 맘을 독하게 먹고 개혁을 하는 길인 듯도 하였다.
결정을 하지 못한 채 그는 차비를 차려 부모에게 하직하고 허위허위 집을 나섰다. 함경도에서 한양까지는 먼 길이었다. 개성에 이르러 어느 주막에서 하루 밤 묵게 되었다. 과거 보러 가는 어떤 젊은 사람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몽룡은 말이 없었으나 무슨 서슬에 서로 이야기 실마리가 풀려 담화를 나누었는데 동갑이고,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통하여 서로 말을 놓게 되었다.
"노형은 공부를 많이 한 것 같구만. 이번 대과에 응시하는 거자(擧子)가 아니신가?"
그 젊은이가 물었다.
"나는 과거 길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오면서 곰곰 생각하고 나서, 보지 않기로 작정했다네."
몽룡의 말을 듣던 그 젊은이는 많은 부분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거에 꼭 응시할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그 젊은이는 한양으로 갔다. 몽룡은 과거를 포기하고 강진으로 내려갔다.
14
영암의 월출산에서 풀티재(草峴)를 넘어 몽룡은 강진에 갔다. 낯이 익은 만덕산이 반기는 듯하고 탐진강의 물은 초여름 볕을 받으며 강진만에 흘러들고 있었다. 초당으로 오르는 귤동 입구에는 토담 위로 동백 잎이 검푸르게 싱싱한 빛을 품어대고 있었다.
그새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건만 다산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따금 산정에 올라 바다가 보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흑산도에 있는 형님 정약전을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살펴도 이 나라 구석구석털끝만 한 것까지 병들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곧 개혁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인데… 그럼에도 무릇 관리니 학자니 하는 무리들이 한번 정한 법을 조상의 것이라 하여 영원히 변동해서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관과 백성, 지역과 지역이 쪼개져 서로 싸우고 파당의 이익이나 좇고 있으니 … "
다산은 이런 말도 하였다.
"서울에서 먼 농촌사회의 밑바닥에서 보니 우리나라가 보이는 것 같더군. 이곳 한촌의 빈가에 아들이 태어났다네. 3일만에 군포(軍布)에 편입되더군. 허나 어디 내놓을 군포가 있나. 관리에겐 이치나 이유는 통하지 않네. 이정(里正)은 군포 대신 소를 끌고 가버렸다네. 소가 없어지면 농사를 지을 수 없지 않은가? 농부는 이것이 있으니까 아들을 낳았고 아들을 낳았으니까 이런 꼴을 당했다면서 날카로운 칼로 자신의 그곳을 끊어버렸다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다산은 목이 메이고 입은 오열을 참느라 실룩실룩하였다. 눈에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요즘 따라 다산은 앞마당의 다조(茶 ) 앞에 앉아 차를 끓이며 깊이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이 많아졌다.
몽룡은 다산을 따라 무위사(無爲寺)에 들렸다. 다산은 몽룡에게 무위사의 내력을 알려 주었다. 무위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극락보전 후불벽 뒷면에는 관음보살이 버들가지와 정병을 들고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벽화에는 악기를 연주하며 천인들이 나는 그림도 있었다. 얼굴과 몸의 고운 흐름과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진선미가 하나임을 알리고 있었다.
"자네 이 벽화의 전설을 아는가?"
다산이 물었다.
"예전에 옷이 추레한 화공이 이 절에 찾아와서 법당에 벽화를 그리기를 자청하더라네. 다만 앞으로 49일 동안은 안을 들여다보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했다네. 그동안 한번 법당 밖을 나오지도 않고 음식을 찾지도 않아 49일이 되는 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주지가 문틈으로 법당 안을 엿보았는데 화공이 관음보살을 거의 완성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막 눈을 그리는 찰나였다네. 그러나 인기척을 느끼자 화공은 간데 없고 관음조(觀音鳥) 한 마리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네. 어쩐지 나의 일은 그 화공의 그림과 같아. 눈알이 없는 그림은 소경, 아니 죽은 그림이지."
다산의 얼굴에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 무엇이 눈알에 해당합니까? "
" 아전들은 백성들의 살가죽을 벗기려 하고 수령들은 아전들의 녹을 가로채고 고관들은 뇌물을 받고 벼슬까지 파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근본을 밝히는 사상과 목민관과 왕과 백성을 위한 삼정의 확립에 관한 완전한 사상의 틀과 세밀한 법을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였지. 나는 학문으로 차근차근 그 길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어. 그 이론이 체계가 서면 우리나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네.
" 그런데 알고 보니 법이 없는 게 아니야. 법이 지켜지지 않아 그게 문제지. 도덕이란 그걸 지키는 게 중요하지. 지키지도 않으면서 이론만 가지고 서로 기선을 잡으려 내가 옳다 넌 그르다 죽자살자 대립만 점점 더 격화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 역시 근본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내 이론은 눈 먼 관음이야. 아무리 다른 부분을 그려도 관음이 눈이 멀면 무슨 소용이 있나. 내 사상엔 생기와 따뜻함을 주는 하나의 핵심이 빠져있는 것 같아. 상제 앞에 두려움으로 서면 어떻게 푸근하고 반가운 맘으로 서로 덕을 실행하고 온 사회를 화합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도덕의 담을 높이 쌓고 그 속에 들어앉아 서로 남을 손가락질하는 이 단절의 담을 허물 수 있단 말인가 ? 도대체 상제는 어떤분인가? 거기 이르면 나는 한계를 느끼네.
" 듣자 하니, 자네 사는 남원 어디에 일원(一源)이라는 사람이 있어 이런 모든 문제에 해답을 하더라는 소문을 들었네. 나는 매인 몸이라 할 수 없지만 한 번 그 사람을 만나고 싶네. "
15
몽룡은 강진에서 여러 달 있었다. 이제는 가을이 되었다. 탐진강 포구에 갈대가 수걱거리며 하늘을 빗질할 때쯤 몽룡은 다산과 작별을 하고 발길을 남원으로 향했다. 시골 길가나 숲 속 바위에는 소박하게 만든 미륵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서민들의 소원이 깃든 평범한 돌들이었다. 구원을 바라는 소박한 서민들의 소원. 그들을 달래주었을 있는 듯 없는 듯한 표정, 그렇게 표현이 된 하늘의 원 모습들을 생각하며 몽룡은 자신도 알지 못하게 땅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강진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에 곡성의 지리산 자락에 들어섰다. 길가 나무 아래 너럭바위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까 갑자기 그림자들이 다가섰다. 얼떨결에 올려다보니 험상스럽게 생긴 도적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보아 하니 양반 나부랭이인 것 같은데 어디 사는 누구랑가? 거두절미하고 목숨이 아까우면 가진거 몽땅 내노라우 잉 "
몽룡은 그때 지쳐있었다. 작은 괴나리봇짐을 벗어 그들 앞에 던져주었다.
"당신들 말대로 나는 별 볼일 없는 양반 나부랭이요. 사는 데나 이름은 무에 중요하겠소. 당신들이 유민이 될 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있소. 가진 건 이것뿐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도적들은 양반의 횡포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라, 목숨을 구걸해야 하거늘 몽룡의 태도가 건방지다면서 몽둥이로 때렸다. 살이 찢기고 땅에 쓰러졌다. 생명의 위협을 순간 느꼈다. 핏물 흐르는 눈에 언뜻 춘향의 웃는 모습이 어렸다. 몽룡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양반 신분으로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나 평소 양민들을 이해하는 편으로 생각해 왔소. 양반의 소행을 생각하면 이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오. 다만"
몽룡이 입에서 피를 닦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는 큰 덕이 있는 쪽이 이기는 법이오. 이렇게 하면 서로 똑같아지는 것이 안타까을 뿐이오. "
"어쭈, 작것이 주제에 우릴 훈계까지 하네. 이걸 그저. "
또 몽둥이질이 시작되려는 찰나 도적 중의 하나가 일행을 말리며 몽룡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전임 남원부사 이등의자제가 아잉가? "
그 사람은 남원에서 주민을 대표해서 죽기로 각오하고 군포 징세의 부당함을 호소하던 사람이었다. 양반으로 태어나서 정의파로 일했더면 훌륭한 일을 했을 그도, 새로 신관 사또가 부임하자 위험을 느껴 미리 산중에 피신하여 유민(流民)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몽룡의 봇짐을 돌려주게 하고 날도 어두워 산채에서 하루 쉬어가게 했다. 모닥불 앞에서 그는 도처에 민란의 조짐이 있고 그들과 힘을 합쳐 반드시 신분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몽룡은 민란은 내전이 되고 외적을 초래하여 국가를 도탄에 빠뜨릴 것이니, 결국 국민의 정신적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적은 못마땅해 했으나, 그런 대로 아침 요기까지 시켜 내려 보냈다.
거기서 그는 춘향이 그동안 신관 사또에게 당한 억울하고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몽룡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때는 늦가을 농민들은 들판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다. 봄가을 바쁜 때면 농부들은 서로 품앗이를 한다. 지금은 한가을 논에서 벼를 베면서 한 농민이 농요를 선창하면 다른 농민들이 "얼럴럴 상사디어"라고 후렴을 부른다. 그리고 음식을 서로 나누고 벼 거둠 뒤엔 동네 동제(洞祭)를 같이 지낸다. 참을성 많고 착하고 정이 많은 백성들. 그들을 바로 이끌어주면 정 많고 베푸는 훌륭한 백성의 나라가 되련마는. 피땀 흘려 가꾼 농사는 또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몽룡은 흠칫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가련하다, 춘향이 우리 백성 신세일세.
얼럴럴 상사디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낭군님이 야속쿠나.
얼럴럴 상사디어
새 사또가 와서 그런지 남원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쭈뼛거렸다. 저녁 무렵 남원 시가에 드니 성에 노을이 깔리고 요천(蓼川)에서 저자로 푸른 안개가 끼었다.
몽룡은 파립을 눌러쓰고 골목으로 돌아 월매의 집에 이르렀다. 무너진 담장, 떨어진 사립문. 집은 그동안 쇠락하고 손님도 없어 폐가와 같아 쓸쓸하였다. 월매가 옥리들에게 돈을 집어주고 옥바라지를 하느라 집을 손볼 틈이 없었고 손님도 뜸해졌으리라. 텃밭에는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닭집도 텅 비어있었다.
몽룡이 넋을 잃고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있는데 호롱불만 켜 있던 방에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월매가 문을 열고 나왔다. 처음엔 때에 절고 상처 입고 옷이 찢긴 채 마당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고메, 이 서방이 아닝가? "
월매는 몽룡을 반기면서도 그의 초라한 모습을 염려하기보다 춘향 걱정으로만 마음이 쏠렸다.
"다시 보니 반갑네만 이를 어찌하면 조탕가. 우리 불쌍한 춘향이, 신임 사또는 남인을 눈엣가시처럼 미워하니, 자네가 이 신세로 나선대도 뾰족한 수가 있어야 말이제라. 이를 워처케 할까나."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도 부엌에 들어가 찬 보리밥 덩이를 풋고추장과 함께 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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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읍성 민가의 객사의 담벼락에 괴괘서(怪掛書)가 붙었다.
현 남원부사 변사또는 치민에 관심 없이 좌수 이방 호장의 농간에 놀아나 백성들을 쥐어짜기를 일삼는 사람으로서 삼정의 문란이 더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주 감영은 나라에서 정한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큰 법에 따라 엄중히 죄를 물어야 할 것이오, 전기 죄수 등은 법에 따라 하옥이 마땅하다. 특히 사욕을 위해 무고한 춘향을 옥에서 사경을 헤매게 하니 입 가진 군민마다 분개하지 않는 이가 누구랴? 우리는 이것을 전라 감영과 그 윗줄인 나랏님에게 격쟁(擊錚)으로라도 직소하고자 하는 바, 그 이전에 우선 사또의 태도를 주시하고자 하는 바이다.
헐레벌떡 괘서를 뜯어 사또에게 드리는 아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또의 얼굴에 백치 같은 웃음이 얼굴에 스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머리회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감사에게 서신을 썼다.
요즘 백성 다스려 먹기가 어렵습니다. 좋지 못한 무리가 군민을 충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수의 무리에 불과한 것은 그간 부민들 스스로 본인의 치정을 칭송해 세운 선정비(善政碑)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일일이 제 정신으로 대하다 보면 관의 위엄도 안 서고 상부에 바칠 세금도 걷어들일 수 없습니다. 전에 어디어디 현에서도 같은 곤욕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그리고 입막음으로 후한 뇌물을 봉송하였다. 감사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회시를 보냈다. 다녀온 아전이 암묵의 보장을 전하자 사또는 즉시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 방을 붙인 자가 자진해 신고하면 죄를 묻지 않을 것이오, 목격했거 나 그와 관계된 어떤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 후한 상을 내리리라."
다음날 저녁 어스름 무렵에 밀고자가 나타났다. 괘서를 붙인 사람은 바로 "할아범"이라 불리던 노복이었다는 것을 귀띔해 준 사람은 뜻밖에 평소 노복과 소원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노복의 집에 형리가 급파되었다. 요즘 노복의 행동이 수상하고 여러 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노복의 집을 수색한 결과 장롱 속에서 당시 금기시(禁忌視)하던 서학 책이 나왔다. 일부 책 속에는 몽룡이 책을 본 소감을 적은 쪽지가 적혀 있었다. 노복이 미쳐 춘향에게 돌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사또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노복이 동헌 마당에 끌려와 마당에 팽개쳐졌다. 사또는 변명도 듣지 않았다. 문초도 없었다. 그저 분기를 참지 못하고 그냥 모진 매질을 하게 했다. 노복은 늙은 몸에 오랜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17
몽룡은 월매와 함께 춘향과 노복이 갇혀 있는 감옥을 찾아갔다. 옥사정의 담은 높고 감옥지기들은 저승사자 같았다. 춘향은 머리를 빗지 못하고 얼굴은 초췌해 있었다. 일어나 앉아있기도 힘들어했다. 겨우 호흡을 이어가고 있을 뿐 누가 오고 가는 것도 잘 알지 못하였다. 몽룡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얘 춘향아, 나다, 에미다. 날 알아 보겄냐? 그리고 여기 이도령이 왔다."
춘향이 눈을 떴다. 그리고 몽룡을 바라보는 눈에 반짝 정기가 어렸다. 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더듬으려는 듯 창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얘야, 니 서방 될 사람은 과거도 안보고 이렇게 파락호가 되었다는그만이라. 그래두 고마울 게 있겄냐? "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언제 과거를 볼 것으로 알고 도련님께 마음을 정했나요? 온갖 고락을 같이할 도련님께 제 단심을 바친 거지요. "
몽룡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 힘도 못되어 안타깝구려." 몽룡이 힘없이 말했다.
" 한 번 바라볼 수만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요." 춘향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 동안 사또는 몽룡의 옥사정 방문을 보고 받고 있었다.
"잘 걸렸다. 제 발로 걸어들어 오는구나. 너 어디 매운 맛 한번 보거라. "
몽룡은 여자의 옥사에서 발을 돌리기도 전에 형리들에게 잡혀 남자들의 옥사에 갇혔다. 어두운 감옥에 눈이 익을 무렵 한쪽 구석에 누워있는 사람이 노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18
감옥은 괴로웠다. 비위 약한 사람은 잠시도 앉아있을 수 없게 악취가 났다. 땀 냄새 피고름 냄새, 걸레질을 해 본 일이 없는 마루바닥은 겹겹이 딱지가 졌다. 때는 어스름 무렵이라 빈대가 떼를 지어 내려왔다.
"할아범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
"도련님 면목이 없어라우."
"하늘이 어찌 이런 일을 방치한단말인가?"
"사람들이 하늘 뜻을 몰라서 이렇게 하는거지라우. "
"하늘 뜻은 무엇인가? "
노복은 잠시 있다가 또박또박 말하였다.
"하나님 뜻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거구만이라. "
"저런 못된 변사또 같은 인간도말인가 ....? "
" 나는 못해도 하나님에게 그렇게빌고 있제라. 그라모 꼭 들어주실 기라 "
노복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理=도덕)의 근본은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은 원수도 자기 자녀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걸 모르면 사람은 자기 이가 전부인 줄 알고 남과 따지고 시비만 한다는 것을 말했다.
" 어린아이가 어메를 믿고 어메가 아이를 사랑하모 아이는 말을 배우고 심성을 기르제라. 그러코롬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으면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천지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구만이라.
" 그러니까 믿음과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지라우"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써만 사람의 일곱가지 죄의 근원을 고칠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의 말씀과 희생 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은 환하게 기쁨에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예전엔 신분에 울고 천대에 몸부림쳤지만 어느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 곧 천자다, 임금과 차이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대소인이 없고 양반 상놈 이 없고 귀인도 천인도 없다, 잘나고 못난 구별이 없고 영혼만 구별된다는 말씀에 나는 새 세상을 맛보았어라우. 나 같은 놈도 인간으로 대접받고 천자로 대접받고 임금님이나 천민이 평등하다는 데 감격의 눈물로 얼굴을 씻었지라우.
" 그리고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이라 하셨으니 이 시상을 사랑과 진리 위에 세상을 세우시지 않겄능기라우. 사랑과 진리가 있으면 무엇인들 못하며 이가 없으면 세상이 어찌 보존할 수 있겠능가여.
" 그란디 나라에서는 천시 당하는 무리 시정의 거간꾼, 베짜는 아낙네들이 모두 평등이라고 풍교를 더럽히고 임금을 거스른다고 분개를하고 책도 못보게 하능구만이유. 주님, 그들을 용서하소사."
여기서 그의 말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도련님, 나는 무식하지만 우리나라가 걱정이 되는그만이라우.... 나라는 사방으로 갈라지고 위아래로 갈라지니... 사나운 외국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그만이라.... 먼저 나라를 세워야 하는디 정신이 서야 하지라우.....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도련님 지는 날마다 도련님과 아씨를 위해 기도해 왔구만이라우. "
"힘들지 않은가? " 몽룡이 물었다.
"도련님, 이 세상은 눈물과 아픔이 있는 곳 아닝기요... 죽음 끝에 새 삶이 시작한다면 마다 할 이가 누가 있겠능기요.... 주님은 생전과 같이 저 세상에서도 나를 따듯이 맞이해 줄 거구만이라우."
처음 들어보는 말에 몽룡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노복의 말에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힘과 진리가 있는 듯하였다. 이따금 밖에서 옥리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으나 둘은그때마다 잠시 잠잠하다가 다시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정이 넘자 노복도 지치고 몽룡도 얼핏 잠이 들었다.
갑자기 몽룡이 깜짝 놀란 듯 노복에게 물었다.
"혹시 할아범이 다산 선생이 찾던일원이 아니오 ? "
노복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창문에 비치는 달빛에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오래 기력을 쏟아 힘들게 이야기해서 그런지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되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 새벽녘에 노복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노복은 몽룡의 손을 더듬더듬 잡더니 목숨을 거두었다. 늙은 몸에 변 사또의 앙심에 찬 몰매의 장독(杖毒)이 그의 뼈와 몸을 망가뜨린 것이었다. 영혼이 떠난 그의 얼굴은 잠든 듯 평안하였다.
19
정당(政堂)에 기생들의 춤과 관현악의 풍악 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지고 주방에 살코기 지지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오늘은 변 사또의 생일날, 부근의 현감들이 초대되어 차일과 병풍을 치고 화문석을 깔아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때 문밖이 소란하면서 각설이 패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얼시구 절시구 돌아간다. (돌아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제때가 되어 또 왔네 ( 또 왔네 )
정당에 술 질펀 부엌에 고기
모두 백성의 피땀 아닌가.
얼시구 절시구 돌아간다 ( 돌아간다 )
작년에 왔던 각설이 할 소리 하려고 또 왔네 ( 또 왔네 )
잔치상 촛농과 노래 소리는
백성의 눈물이오 원성이로다.
얼시구 절시구 돌아간다 (돌아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눈뜨고 보려고 또 왔네. ( 또 왔네 )
변 사또는 아니 저놈들이 간덩이가 솟았나, 겁도 없이 하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그러나 순화군수는 무슨 뒷심이 있어 저 패들이 저러지 않나 의심하는 빛이었다. 그의 관자놀이가 움칠하였다. 운봉 현감은 밭은기침을 하며 무관심을 가장하였다. 아전들이 우루루 몽둥이를 들고 각설이패를 쫓아보내러 나갔다.
갑자기 풍악이 뚝 그쳤다. 모두 대문 쪽으로 시선이 향하였다. 기세 좋게 달려나가던 아전들이 어쩐 일인지 풀이 죽어 문 옆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보라,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마패와 유척(鍮尺)을 높이 든 여섯 명의 관원들이 맨 앞에 늠름히 걸어오는 관원을 둘러싸고 대오를 갖추어 입장하는 것이 아닌가! 암행어사가 출도한 것이다.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고 잔치는 이내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좌수, 이방, 호장, 진창색(賑倉色)이 집합되었다. 어사는 창고를 봉인하고 장부를 가져오게 하여 곧 전제와 세정 그리고 환곡에 관한 조사를 하였다. 족집게 같은 지적에 아전들 말이 앞뒤가 안 맞고, 사정을 파악 못하고 있던 사또는 허를 찔려 어찌할 줄 몰랐다. 조사는 이틀에 걸쳐 단호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증인이 필요할 때는 백성들을 불렀으나 혹 나중에 화를 당할까 대질 심문은 피하였다. 어사는 백성을 모아놓고 지나치게 환수한 세금은 나눠주고 부풀려 잘못 기록된 호적은 앞으로 시정을 약속하였다. 백성이나 아전들이 놀란 것은 젊은 어사가 사전에 귀신같이 정확히 진상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조사가 끝나고 마무리된 뒤 어사는 두툼한 보고서에 붉은 도장을 찍고 봉함을 한 뒤 앞뜰에 엎드린 사또에게 짤막하게 말하였다.
" 부사는 이 장계를 바치면 파직을 면키 어렵게 되었소. 옷을 벗고 명령을 대기하시오."
그리고 나서 주민의 동정을 받고 있는 춘향의 건을 힐문하였다. 변 사또는 무어라 변명하였으나 어사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여자를 태형에 처하거나 10일 이상 구금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조항의 추궁에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도가 관복을 벗고 물러간 다음 어사는 춘향과 몽룡을 옥에서 대령시켰다. 춘향의 모습은 사람들이 낯을 돌릴 만큼 참혹하였으나 두 사람은 이미 죽음을 초월한 듯 조금도 비굴한 점이 없었다. 어사는 소리쳤다.
"이 사람들을 보시오. 이들은 신의를 헌 신짝 버리듯 하는 세상에 모든 덕의 기본이라 할 신의를 지켰소. 이들은 사회의 귀감이오, 새 시대의 희망이라 할 수 있소. 이들이 감옥에 갈 아무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크게 표창되어야 하오. 둘은 즉시 방면이오. 그간의 옥고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할 거외다. 나는 춘향의 정절을 가상히 여겨 상감에게 춘향의 구실살이를 면제하도록 주청할 생각이오. "
무리 중에서 월매가 이 갑작스러운 전환과 안도, 감격과 기쁨이 북받쳐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어사에게 큰절을 거푸 하였다.
"이런 경사가 어디 있다야. 고맙그만이우 그저 고맙그만이우."
"그만, 그만 일어서시오. 고마운 것은 우리 모두요."
그리고 어사는 높은 동헌의 자리에서 평지로 내려왔다.
"이제는 관직의 몸이 아니라 사사로운 관계로 말하겠다. 춘향아. 나를 보아라. 너와 나는 선친 휘자(諱字)가 퇴자 진자의 한핏줄이야. 그러니까 내가 네 오빠 준경이다. 성준경. 선친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차례 네 모녀에 대해 간곡히 부탁하는 말씀을 하셨다. 같은 혈육인데 네 구실살이를 벗겨주라는 것이 유언이셨단다. 그 유언을 따르고자 나는 과거를 보기로 결심한 것이지. "
"그리고 몽룡이, 이상한 자리가 되었네만 반갑네 그려. 세상 인연은 참 묘하지? 자네가 내 매제가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나? 그때 개성 역사에서 하룻밤 토론은 즐거웠네. 이제는 내가 과거 길에 오른 것을 이해해 주겠나? 춘향 방면은 가족 일이 아니고 차별 없는 세상 새 시대를 열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 거지. 다행히 선왕 이래로 과거를 자주 보시고 지방의 탐학을 바로잡고자 풋내기 같은 나의 소원을 금상께서 윤허하셔서 전남의 암행어사를 제수 받은 걸세."
"고맙네. 그런데 여보게, 어사 "
몽룡이 말했다.
"동생이 하옥된 것을 언제 어떻게알았나? "
"응, 나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네. 어떤 노인이 이 고을에서 한양 우리 집에 긴급히 장문의 기록을 가지고 찾아왔다네. 그래서 그간 사또의 횡포며 이 고을에 일어난 일을 소상히 알게 되었네. 그는 전에 남원에서 아버지를 오래 모셨던 일도 있다고 하네. 생각해보니 선친도 충실한 사람이라고 자주 언급하셨었네. 선친은 단신 부임을 해서 나는 여기 사람은 모르거든. 그 노인은 아버님이 운명하신 것을 알고 묘소에 가서 울며 참배하고 나에게 달려와 춘향의 일이며 이곳 부사의 비리 기록을 전한 것이지. "
"혹 그의 이름이나 인상을 알고 있나? "
"그럼. 기골이 좋고, 나이는 80세쯤 되었을까? 흰 수염이 났지. 이름은 일원이라든가…"
" 아 "
춘향이 신음하였다. 몽룡은 고개를 떨구었다.
20
몽룡과 춘향은 새로 봉분한 무덤 앞에서 큰절을 두 번 올렸다. 춘향은 아직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무덤 앞에는 들꽃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원의 무덤"이라고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이 동네는 준경의 외가가 있는 동네로 동네에서세 식구가 살 집과 약간의 논밭을 마련해 주었다.
월매 집에 모처럼 화기가 돌았다. 더구나 준경이 직접 주청하여 춘향의 기생 면천을 받았다. 또 몽룡은 변방에 가 있는 이등에게 가서 그간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드렸다. 이등은 몽룡의 굳은 결심과 사돈뻘인 성계진에 대한 존경과 어사의 면천 조치, 그리고 춘향의 정절을 생각하여 두 사람의 혼사에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월매에게 파격적으로 청혼서와 사주보에 고이 싼 사주단자를 동시에 보내왔다. 보통 절차는 신부측에서 허락서를 보내면 사주를 보내게 되어있는 것이다. 춘향은 며칠 신열이 많이 올랐으나 몽룡을 만난 기쁨과 시댁 부모의 예식 승락 소식에 하루하루 눈에 띄게 회복이 빨랐다. 월매가 이 모든 일이 사실인가 살을 꼬집으며 좋아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앞으로 어쩔 것인가? "
위문 온 준경의 말에 몽룡은 대답하였다.
"나는 여기서 책을 읽으며 농사를짓고 훈장을 하겠네. 약간의 의술도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춘향은 나와 함께 텃밭을 일구어 여름이면 수박 참외, 가을이면 집안 떡을 만들어 동네 사람과 함께 나눌 거야. 세상이 바로 되려면 나부터 새로운 길을 찾고 그대로 살아야 할 것일세. 그리고 나는 이 마을에 살려고 하네. 백성들이 사는 마을이야말로 모든 바람직한 일이 이루어질 출발점이고 귀착점이 아닌가?
" 앞으로의 사회에는 차별이 있을 수없지. 그러면 나부터 차별이 없는 사회의 한 사람으로 지금 살아야 할 것일세. 학문이나 제도나 경제만으로는 결코 인간은 사람다울 수도 행복할 수 없네. 행복은 차별 없는 사랑 속에 있을 것일세. 그 사랑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라고 믿네. 서로 갈라서고 흩어진 곳에서는 충실한 삶이 없고 고통과 절망과 고독이 있을 뿐이지.
"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이 진리다. 진리에 바탕둔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주어진다. 그렇게 일원 할아버지는 말했네. 서로 믿지를 못하고 교만하고, 무례하고, 온유하지 못하고, 진리를 싫어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고, 불의를 좋아하는 것은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말이야. 하나님은 사랑이고 예수는 몸소 사랑의 진실과 희생을 보였고, 성령이 그 예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하나가 된다고 하였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아? 내가 일어서고 쓰러지는 진리를 반드시 찾고야 말겠네. 한 사람이 진리를 찾으면 진리는 그 사회에 이미 와 있는 걸세. 아무리 비 진리가 판을 쳐도 이미 그 진리를 어쩔 수 없지.
" 모든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알고 남의 문제로 아는 한 해결은 없지. 인간이 진리를 알고 서로 사랑하도록 누군가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겠나? 나와 춘향은 우리 가정으로, 이 만인을 사랑하는 사랑의 세계를 이루는 첫 바탕을 삼으려 하네. 시골에서 일하며 모든 세상 사람에게 사랑의 새 세상 문이 열리기를 기도 드리면서 말일세."
무덤 앞의 들꽃이 살짝 스쳐 가는 실바람에 하늘거렸다. 툭 춘향이 짚던 목발이 땅에 떨어졌다. 몽룡과 춘향은 일원의 무덤 앞에서 힘껏 끌어안았다.
홍 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