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더 가혹하고 무서운 불행이 먹장구름처럼 이장댁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장댁과 그 딸이 그렇게 서서히 지쳐갈 동안 자리에 누워 대소변을 내놓았던 두남자의 가슴도 아마 갈갈이 찢어졌을게다. 의식이 멀쩡한 아버지와 아들이 한쪽은 신경이 마비되어 축 늘어진 사지로, 또 한쪽은 강직으로 손발이 비틀려진 사지로 자리에 누운 채 똥오줌을 누어야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이제 초등학교 5,6학년 나이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뒤틀어진 손으로 자신의 입에 죽을 떠넣어주는 것을 받아먹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말 그렇게는 살아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들의 사고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아저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해 겨울에 눈을 감았다. 남들은 하기 좋은 말로 "그럴바에야 산사람이라도 살게 차라리 잘 가셨다."라고 했는지 몰라도, 이장댁 아주머니의 가슴은 이제 더이상 태울 숯덩어리조차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자기가 죽인 남편이었다.
자기가 부엌에서 직접 간만 봤어도 그냥 자기가 죽고 말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아들까지 병신을 만들었다,
이장댁은 상여에 얹혀 떠나는 아저씨의 혼백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 동안 그저 꺼억꺼억 울기만했다. 안방 아랫목에 자리를 깔고 그래도 일 나갔다 돌아오면 눈을 껌뻑껌뻑하며 맞아주는 아저씨의 자리가 비어버리고, 이제는 그 자리에 허리와 등을 새우처럼 잔뜩 웅크린 13살만 아들만 혼자 누워있었다.
이제 아들을 두고 나가기도 어려웠다.
비록 눈만 껌뻑이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아버지 옆에 아들을 남겨두고 일을 나갈 때는 마음이라도 편했지만, 이제는 차마 아들하나 달랑 남겨두고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얼마지 않아 이 아들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맞아 불구가 된 충격에, 하루 종일 아버지와 같이 똥냄새로 가득한 방안에 누워 지낸 아들이, 그나마 아버지가 하루를 같이 보내며 위로를 주고받던 아버지가 죽자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자기가 싼 똥을 집어 먹거나, 아니면 며칠씩 아예 똥오줌을 참는 바람에 방광염과 변비가 생겨 손가락으로 똥을 파내기가 일쑤였고, 어떤 날은 풍선처럼 부풀어진 방광 때문에 아이를 들쳐 업고 동네병원에 가서 오줌을 빼내는 일을 거듭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행동이 점점 더 이상해졌다. 그 총명하던 아이가 하루 종일 이상한 소리를 하고, 대소변에 대한 집착이나 혐오가 짙어졌다. 때로는 자기 손가락을 아예 없애기라도 하려는 듯 하루 종일 이빨로 열 손가락을 물어뜯거나 입술을 깨물어 피를 줄줄 흘리기도 예사였고, 때로는 머리를 땅바닥이나 벽에 쾅쾅 찢는 바람에 방바닥과 벽면을 전부 스티로폴로 깔아야했다.
이제 식구들이 전부 미쳐나가거나 아니면 전부 죽기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 상황에 이장댁 아주머니를 붙들어 둔 유일한 힘이 신앙심이었다. 아주머니는 삶이 몸서리쳐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모당을 찾아 기도했다. 또 하루가 고달프고 그야말로 숨을 한번 내쉬기도 힘이 들 때면 예수의 고난을 되새기고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걸었던 그 십자가의 길을 되밟았다.
이것은 과연 신의 시험이었을까? 아니면 악마의 저주였을까?
그것은 아마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에 답이 있었을 것이다.
이장댁에게 그것은 신이 자신에게 내린 시련이었고, 말하기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묘를 잘못 썼거나, 집터가 나쁘거나, 그것도 아니면 살이 낀 악마의 저주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장댁을 걱정하는 친정 오빠는 이장댁 몰래 부적을 붙여 살을 풀려고 했고, 본당 수녀님은 늘 그런 이장댁을 위해 같이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그러나 기도도 응답이 없었고, 액막이도 효험이 없었다.
아들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가는데, 원래 말수가 적었던 딸이 결단을 내렸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이다.
원래 신앙심이 깊었던 딸은 성년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었다. 늘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그만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었다.
이장댁은 딸의 수녀원행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평상시였다면 믿는 집안에 은총이라 받아들일 일이지만, 지금 딸의 출가는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없었다. 혹시 딸의 흉중에 집안에 일어난 일련의 일에 대한 보속의 의미나 희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 된 일이었다. 또 설명하기 어려운 집안의 우환들을 막아보기 위해 신에게 귀의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일이었다. 혹은 사는게 힘들어서라면 그것은 더욱 잘못 된 일이었다. 더우기 그것이 응답하지 않는 기도에 지친 것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딸아이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남편과 자식을 그렇게 만든 죄인은 스스로 입회를 하고 하느님의 딸로 살겠다는 딸을 말릴 수가 없었다. 이장댁은 딸을 믿었고, 딸 역시 그만큼 신중한 사람이었다.
딸이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날, 이장댁의 마음에는 하나뿐이 그 딸이 마치 임당수로 떠나가는 심청이 같은 마음이 들어 밤새 모녀가 붙들고 울었다. 그러나 이장댁의 눈물과 딸의 눈물은 다른 것이었다. 수녀원에 들어가던 딸은 단지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의 고난을 버려두고 떠나는 인간적 정리가 아파서 운 것이지만, 이장댁은 혹여나 자신의 잘못이 하나뿐인 딸이 수녀원에 가게끔 한 것이 아닐까 눈물이났다..
결국 집에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남겨졌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불행의 끝이 아니었다..
내가 진료실에서 이까지 이야기를 듣는데도 심장이 뛰고 입에 침이 마르는데. 여기서 또 더 다른 이야기가 있다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원래 이장댁 아주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진료실을 찾았었지만, 나는 이글을 쓰기 불과 몇 달 전에야 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병원에 오실 때 마다 늘 미소를 머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어떤 작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오셨는데, 내가 우연히 아주머니에게 "근데 이 아이가 친손자에요? 외손자에요? 아이 엄마가 멀리 사나보죠?.." 하고 물었다가, 아예 오전 진료를 전폐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 동네 어른들이 으레 그렇듯이 대처에서 일하는 아들이나 딸을 위해 손자들을 맡아 기르시는 걸로 알았었고, 때문에 이장댁 아주머니가 늘 아이의 손을 잡고 오시는 것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 아이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분의 엄청난 삶의 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 듣고 이장댁 아주머니가 내 방에서 나가시자마자 바로 전화를 들었다. 마침 그때는 지인을 통해서 모 공중파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다는 제안이 왔을 때였었는데, 나는 당연히 그것을 거절 했었다. 그 이유는 그쪽에서 나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경제전문가로 행세하게 된 과정에다, 의사로서 왕진을 가거나, 어려운 분들을 돕는 그림 등을 집어넣자는 콘티를 설정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내가 실제로 어려운 분들을 한번도 변변하게 도운 적이 없는데다가 설령 그런 일이 눈꼽만큼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방송을 통해 노출을 한다면 도움을 받는 분의 인권은 무엇이 되는냐는 문제 하나와, 또 장애로 누워 계시는 분에게 적당히 낡은 왕진가방에 청진기를 목에 걸고 왕진을 가서 슈바이쳐 행세를 하자는 가증스러운 설정도, 그야말로 어쩌다 "마지못해서" 가물에 콩나듯 있던 일을, 마치 일상인양 미화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쪽에서는 그래도 자기들이 잘 설득하면 그분들이 방송에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허락 할 것이라는 것이고(아마 그분들이 허락한다면 그건 그분들이 거절하기가 난감해서 일 것이다), 아울러 실제 촬영하는 동안에는 왕진이 없다 하더라도, 예전에 다닌 적이 있으므로 그런 것은 일부 연출을 해서 꾸며도 문제가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었다. 나로서는 안 그래도 내키지 않는 일을 거절할 뚜렷한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그래서 그쪽에서 제안한 두개의 프로그램을 전부 거절하고, 나중에는 내 지인을 통한 그쪽 간부의 요청까지 어렵게 거절했었는데,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그 프로그램이 생각이 났다.
아주머니가 진료실을 나가시자마자 전화를 한 곳은 바로 방송국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콘티를 제시했던 그 공중파 프로그램의 작가에게 먼저 아주머니의 사연을 소개하고 "나같은 삐에로 의사말고, 이 아주머니 같은 분을 소개하면 어떻겠는가.. 나 같은 광대야 보는 사람들에게 당의정 같은 흥미거리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남길 메시지가 없지만, 이 아주머니의 사연은 아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자고나면 살인에, 강도에, 도청에, 사기에. 심지어 시어머니 뺨때리는 드라마에. 벗고 날뛰는 얼빠진 녀석들까지,, 그야말로 하루종일 짜증나고 기운 빠지는 소식만 가득한 바보상자에 이 아주머니 같은 분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연은 아마도 길고 긴 여운을 남기게 될 것이다,, 아주머니가 허락하실지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이분 같은 분을 세상에 알리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당신들 사명이 아닌가.. 이분은 그야말로 생불이요, 관음보살이다."라고 말했다.
담당작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화로 울먹였다. 나도 전화너머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가슴이 뻐근해져서 한쪽 손으로 가슴을 자꾸 쓰다듬어야 했다.
하여간 방송국에서는 지금 촬영에 난색을 표하시는 아주머니를 설득 중이고, 만약 설득이 성공한다면 (나도 설득 중이라 아마 곧 허락하실 듯하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조만간 저녁 8시 정도에 방송되는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시게 될지 모른다. 어쨌거나 아마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원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왜 필자가 작가에게 아주머니의 이 처절한 사연을 시청자들에게 소개를 해서 작은 경제적 도움이나마 얻도록 하자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빛과 소금이요, 그야말로 생불(生佛)이나 관음보살이라고 말했을까.. 또 그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두고 왜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연이라고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다음 이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