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준익 35대 , 호 : 금하(錦下)
3형제 중 에서 둘째입니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두 형제분을 두셨습니다.
자는 중선(仲善) 호는 금하(錦下)이며 부모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를 다하였고 형제간에 정을 고루 살펴 나누니 가정이 화목하여 모든 사람이 칭송하였다. 가업을 계승하여서는 학문에 힘쓰고 근검절약하여 300石(섬 : 1섬이 쌀 2가마니이므로 600가마니이다.)을 하며 가난한 고을 사람에게 도조(賭租 : 남의 논밭을 빌어서 부치고 그 세로 해마다 내는 벼)를 해주는 부농(富農)이며 선비였고 면사무소 회계업무를 담당했었다. 고종11년 1874년 음력 12월 4일 충북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에서 출생하여 1951년 음력 6월 17일에 78세로 졸(卒)했으며 묘소는 충북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 율목곡(栗木谷)에 후배(後配) 김씨와 계좌(癸坐) 연좌이며 율목곡 맨 아래는 부(夫)의 묘(墓)이고 위의 묘(墓)가 후배(後配) 김해김씨 이다. 영산김씨(永山金氏) 춘정(春汀) 김윤기(金潤基)가 비문을 지었다.
❏ 금하 안동권공 휘 준익 지 묘(錦下 安東權公 諱 濬益 之 墓) 해석문
안동권공 휘는 준익 자는 중선 호는 금하이니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 태사 휘 행은 시조요. 조선 중종조 자헌대부 이조판서 경연의금부사 춘추관사 세자좌부빈객 휘는 예, 자는 경신 호는 마예이니 14대조요.
선묘조 임오식년 무과에 급제 적량만호로 갑오년 이충무공 아장으로 종군역전 중 무술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같이 산화하니 49세라. 그 후 을사년 4월 16일 논공에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로 추증되신 휘 전 자는 중겸 호 병암은 12대조요. 효종조 효행과 문학으로 저명한 성균 진사 휘 순은 9대조요. 고조 휘는 홍중이요. 증조 휘는 순기요. 조는 용손 호는 노곡 이니 상주에서 보은으로 이우(이거)하였고 고(부친)은 휘 종영 호는 사봉이니 헌종 계묘생으로 계승선업 극근극검(노력하고 절약하다)하니 세칭 덕망지사라. 고종 정해년에 졸 하니 유 3남을 두시니 장자 준희 계(동생)는 준옥이고 공은 차남으로 고종 갑술년 12월 4일생으로 청풍온후(맑고 따뜻하다)하고 효행이 출범하고 순교지성과 우애지정은 만인지 규범이요. 일향지 선망이라 78세로 단기 4284년 신묘년 6월 17일 졸하다.
묘재 장산후로 율목곡 계좌요 배는 금령김씨요. 단종조 충의공 휘 문기지후(문기의 후손)요. 순영의 딸이라 고종 무인년 생하여 요조현숙(심성이 어질고 정숙하고 깨끗함)하고 부덕겸비(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를 갖추다)려니 단기 4251년 무오년 2월 17일 졸하고 묘재 옥천군 청석면 거포 앞산 병좌요. 계배 김해김씨는 성종조 문민공 휘 일손지후(일손의 후손) 용호지여(용호의 딸)니 고종 임진년 생후 법가에서 한아정숙(조용한 품위와 행실이 곱고 마음씨가 맑다)하니 범백지검(상례를 벗어나지 않는 언행)이 무위규범(부녀자가 지켜야할 도리나 범절이 어긋남이 없음)이라. 단기 4272년 8월 24일 졸 묘재 장산후로 부군 묘후 자좌라. 공은 서거 후 여풍잉복(향기가 남아있다)이 상무편각(꾸밈없이 나타나게 새기다)하니 현윤(어진고 현명한) 문혁보(이름아래 붙이는 미칭이다)이 모성지성(옛날이 그리워 정성으로)으로 벌석이비(돌과 글을 갖추어)하고 내천기명(굽어 청하여 근본을 새기다)하니 자불감당(마탕히 헤아려 하지 않겠는가)하니 사이불핵하여 약서여우하니 명왈 지근 예원이 기리부득(변하지않는다)이라 심성후인 가엄선덕(살아온 덕)은 구묘신갈이 천추불불륵이라 초봄 영산인 춘정 김윤기
단기 4326년 계유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