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사호입니다.
승모호라고 부릅니다.
승모는 스님의 모자를 뜻합니다.
스님의 모자를 닮은 호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스님은 삼장법사입니다.
서유기에서 천축국으로 경전을 가지러 떠났던
그 당나라 스님 말입니다.
도대체 어디를 봐서 모자라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뚜껑을 감싸고 연꽃 잎 같은 것이
5장 주두룩 둘러서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장법사가 썼던
모자의 모양이라고 합니다 .
티베트에 가서 보니까
다섯 분의 부처님이 그려진 저렇게 생긴
모자를 법회할 때 높은 스님이 쓰시더라고요.

저 자사호가 본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티베트 오방불관입니다.
오방불관 중에서는 대단히 화려하고
예술적인 관입니다. 제가 봤던 것은
천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위의 자사호는 중국 경매에서 비싼 값에
낙찰된 것인데, 자세한 정보를 적어 놓지
않아서 누구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만,
명나라 때 시대빈이라는 작가의
승모호를 본따서 만든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것이 시대빈이 만들었던 승모호입니다.
위의 승모호와는 몇가지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위의 승모호는 그릇 중간중간에 금빛나는
알갱이가 섞여 있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자사흙에 모래를 섞어 넣는
기법을 처음 만든 사람이 시대빈이랍니다.
시대빈은 자사호의 역사에서 아주
초기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의 앞에 나오는 사람은 공춘입니다.
공춘은 자사호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절에 자라던 혹이 드글드글 달린 나무 기둥을
본따서 자사호를 만들었습니다.
그 자사호는 아주 컸는데,
시대빈은 공춘을 따라서 아주 큰 호를 만들다가
나중에 문인들의 요청으로 작은 사이즈의
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시대빈은 살았을 때 꽤 다작을 했는데
그의 작품은 청나라 건륭황제 때 이미
천금을 주어야 구할 수 있는
아주 값비싸고 귀한 골동품이 되었습니다.
그의 호는 주로 궁정에서 많이 수장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저렇게 독창적인 호를 만들다니,
시대빈은 참 대단하다, 이런 생각을
아주 오래 했었습니다.
뭐 흔한 주전자 모양 아니고
스님이 의식에서 썼던 모자를
차 주전자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독창적인가... 하고요.

그런데 상해박물관에 가서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명나라 영락제 때 만들어진 승모호입니다.
물론 이것은 자사호는 아닙니다.
순백의 백자지요.
이렇게 부드럽고 포근한 우유빛이 나는
유약을 첨백유(甛白釉)라고 합니다.
영락 때의 첨백유는 자기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점의 잘못도 없이
완벽하게 구워진 그릇입니다.
과거 중국의 장인들은 이 흰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 승모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자사호의 세계에서 극품으로 추앙되는
시대빈의 승모호가 시대빈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시대빈은 이 승모호가 만들어진 영락 시대
이후인 만력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초까지 살았습니다.
시대빈은 승모호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처음으로 자사로
승모호를 만든 사람이긴 합니다.
그러면 저 상해박물관에 있는 승모호가
최초의 승모호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승모호가 처음 나온 것은 원나라 때라 합니다.
그후로 중국인들은 앞 세대의 승모호를 따라서
또 만들고 또 만들었습니다.
물론 오늘날까지도요.
이것은 그들의 독특한 전통입니다.
앞 세대의 멋진 작품을 따라 만들고
일정 범위 안에서 개성을 발휘하는 전통.
첫댓글 스토리텔링. 이야기꺼리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도 여러가지 얘기꺼리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승모호는 정말 배신감이 들었습니다만,
시대빈이 다른 승모호를 고대로 카피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개성을 실컷 발휘한 것이니, 그 또한 아름답다는 생각이
충격이 가시고 난 후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