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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의 시 이론 연구
농투성이 부부의 너른 마당
신 진
근대 미래학의 창시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미래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그의 제3의 물결에서는 문명의 발전 단계를 세 가지의 물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1의 물결은 수렵과 채집 생활에서 농경 문명으로의 혁명적인 발전, 제2의 물결은 대량생산, 대량교육 그리고 관료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표준화, 중앙화, 효율화의 고도 산업사회, 제3의 물결이란 제2의 물결을 지역화, 개별화, 다양화로 변화시키는 포용의 물결 즉, 사소한 것들끼리 충분히 소통하는 정신적 네트워크의 물결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더불어 상생하는 제3의 물결이 나아가는 사회–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을 지속 가능한 속도로 조절해 나가는 상생의 사회를 그는 프랙토피아(practopia)라고도 불렀습니다.
제3의 물결에 이르기 위해서 개인은 물질적인 희생을 감수할 수도 있습니다. 일시에 모든 사람이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으니, 이를 먼저 깨달은 이들은 따지자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갈등과 소외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이고 반전의 행복을 예비하고 있을지라도. 제3의 물결이 갖는 포용의 따뜻함은 그의 인내와 헌신을 여유와 즐거움으로 어루만지고, 상생의 행복감이란 새로운 희열에 젖게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 땅에서 프랙토피아를 실천하기 힘 드는 건 사실입니다. 촌사람들조차 고도산업사회의 표준화, 효율화, 대량화의 물결에 매료되어 이기적인 권위의 울타리에 갇힌 까닭입니다. 어정쩡한 새 귀촌인한테 인사 받기, 내 편 만들어 마을의 중앙이 되기, 촌마을 개발비, 복지비 이기적으로 집행하기, 일 적게 하고 큰돈 벌기, 아무도 몰래 저물녘에 비닐 태우기 등등 부지중에 생명의 포용성을 잃은 욕망들을 관습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촌 생활 30년에 내가 만나고 목격한 이 중에서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소통하며 상생하고자 하는 이, 사실 몇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삼랑진 산골에서 만난 장성옥 씨 부부는 내게 감동을 준 이들이고, 비슷한 또래이기도 해서 보지 않으면 이따금 생각이 나고, 가끔 만나면 장터 음식이나 아귀찜을 함께 사 먹는 벗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준 몇 안 되는 토박이입니다. 인사를 건넸을 뿐 아니라, 노동에 서툰 내가 흙을 파고 나무를 심는 꼴을 보고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뭐 좀 도와드릴까요?” 하는 선린의 참견까지 건네주었습니다. 별거 아닌 듯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네 머릿속엔 마르크스가 열망했던 ‘원시공동체’마저 들어앉아 있으니까, 웬만한 미담엔 감동이 따르기 어렵지요. 하지만 우리네 삶에서 선린의 참견, 나의 능력을 나누려는 자발적인 우의란 얼마나 결여된 것이며 귀한 것일지?
그의 말마따나 중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한 짧은 가방끈, 곰 발바닥같이 굳은살 박인 손바닥, 하지만 그의 무표정 속의 다정함, 남을 배려하는 소박한 언행이 깊은 산에서 만난 옹달샘같이 느껴졌습니다. 요샛말로, 갑의 위치에 있는 이가 을에게 먼저 친절을 보이는 드문 사례가 그에게는 드물지 않는 일 같아 보였습니다.
여러 해 전에 그에 대해 쓴 이야기 시가 있습니다. 내가 쓴 시 중에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는 처음이었지 싶습니다.
우곡마을 새마을 지도자 장성옥(남. 58) 씨-. 식구 많고 농사 없고 술 좋아하는 농투성이의 맏아들. 농사일 집안일에 가방끈 일찍 잘랐지만, 재주 많고 몸 가벼워서 제 이름 한방딸기 백화점에 출하하는 딸기 연구가.
먹는 둥 마는 둥 끼니 때우고, 나락 지게에서 똥장군까지, 키 키울 새도 없이 노총각 되었다가 오촌 당숙모 덕에 여섯 살 아래 꽃보살 정삼자양을 맞게 되었는데
첫날밤– 막상 볼 일을 볼 수 없더란다. 싫어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고 마음 너무 벅차서였단다. 배추 속 같고 가오리연 같고 수밀도 복숭 같은 선녀가 날개옷 벗어들고 굴러왔으니-, 벅찬 만큼 걱정도 많아 불면 날아갈 것 같고 귀신이 채갈 것 같고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겠고 그래 볼 일 볼 수 없더란다.
밤이 깊어 달빛 잦아들 즈음 어깨를 찔러보고 머리 갖다대보고 가까스로 소매 채를 당겨보다가 손안에 손이 들고 손바닥에 손바닥이 닿게 되었다나. 그러다가 아차 눈앞에 불이 번쩍 이게 내 사람이구나 부리나케 대어든 사유 있으니, 신부 손바닥에 까칠 까칠 굳은살 도탑더란다. 날아갈 선녀 아니고 복사꽃 속잎도 아닌 일하는 각시 손이더란다. 이제 되었구나, 내 사람이로구나 싶으니, 그때서야 몸과 마음이 한데 모여 기운 불끈 볼 일 거푸 보게 되었고 날 밝자 코피 필필 나더란다. 여물고 도타운 각시 손바닥에 사내 뺨 문질러대며 내 할 일 하마, 내 할 일 하마, 다짐하였더란다.
(「농업인 장성옥 씨의 첫날밤」 전문)
그는 가족 부양을 위해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해왔습니다. 자랑거리가 있다면 학벌도 인맥도 투기사업도 아닌, 땅에서 딸기농사 하며 흘린 땀, 동생들 교육에도 한몫하면서 한몫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인생입니다. 이제 “이게 내 연금”이라며 애써 가꾸고 세운 펜션을 보여주기에 이르렀고 마을 이장을 맡게도 되었습니다.
제2의 물결이란 효율적 산업화의 격랑이 이른바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나라는 세대교체도 더디거니와 좀처럼 계층 이동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가진 게 없고는 정보 선점(先占)이 이루어질 리 없으니, 교육 시스템부터 계층 이동을 더욱 가로막고, 편법과 특혜와 탈법에 의해 이른바 금수저 물고 나온 애는 금수저질을 하는 어른이 되고, 흙수저 물고 나온 애는 더 오래 흙수저질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장성옥 씨처럼 소같이 일을 해 낼 이도 찾기 어렵겠지만, 있다 해도 펜션 연금 마련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세대는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죽자고 땀을 흘린 산업화 세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세상을 오염시키고 마음의 타락을 초래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오염은 전통의 파괴, 생태의 파괴, 인간성 파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습니다. 세상은 비열한 탐욕을 갖은 명분으로 위장해왔습니다. 외국 유람, 외국 유학이 국민문화가 되고, 수단 불구의 쟁취와 치고 빠지기의 한탕주의 패덕이 능력으로 둔갑하였습니다. 사회적 책임은 회피하면서 단맛만 빨아들이는 상업주의가 권장되고 현명한 처세로 행세하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좀 까칠까칠한 데가 없지 않은 장성옥 씨가 내 일상에 불쑥불쑥 생각나는 건 어디까지나 상식선을 지키고자 하고 남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며 힘을 보탤 줄 아는 미덕, 스스로의 한계를 알듯 남의 한계도 쓰다듬어줄 줄 아는 솔직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늦게서야 가난한 집 셋째 딸, 가난하지만 얼굴 맑고 손바닥 두터운 정(鄭)모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다음은 졸시, 「정삼자 여사의 마당 깊은 집」 전문.
수산리 반마을 언덕배기 작고 낡은 초가 흙벽이 우리 집이었지. 마당이라 해야 있으나 마나 해서 거적 하나 깔고 짚단 쌓아 놓으면 툇마루며 안방이 맨발에 통했지. 동네 마실이라도 갈라치면 쐐기풀에 다리 베면서 휘 휘 휘추리 흔들면서 아래로 독사 쫓고 위로 땡벌 쫓았지.
그래도 어째 맨날 웃고 살았나 몰라. 땅 없고 돈 없고 내세울 거 없고. 있다고 해야 보름달 같은 어미 이마빡 아래 박꽃 같은 딸 셋 늘 발갛게 익어 있던 뽈때기.
달빛 아래 호롱불 아래 식구대로 마주보고 손바닥 발바닥 비벼대면서 가마니 짜기, 지금도 왜 웃음 피는지 몰라. 찐 강냉이 삶은 고구마 향에 달님도 늦도록 가마니에 머물다 갔어.
마당 없는 집 딸에게 제일 부럽던 것이 마당 쓰는 일. 어른이고 아이고 억센 대빗자리로 쏴아 쏴아 저그 집 마당쓰는 것 보면 근지럽던 등떼기조차 시원해져서 남의 마당 앞에 등짝 갖다 대고 마당 쓸기 구경삼기도 했어.
스물셋에 나중에 시숙 되는 어른이 총각 선보일 때까지도 남자 중에 별 남자 있는 줄 몰라, 그저 마당 깊은 집 사내이기를, 쏴아-! 대빗자리질을 하면 말짱 웃어재끼는 너른 마당 있는 집 사내이기만을 바랬지.
그리 될라 하니 눈에 콩깍지가 쓰였던지, 농토 없는 농투성이 시부모 밑에 줄줄이 잔식구들 딸린 집 맏이 노총각. 그래도 정말이라, 마음에 들데. 마당 하나 너른 거 보니 시원타 싶고 할 일 하겠다 싶고 시집식구 대번에 한식구거니 여겨지데.
누가 뭐라 해도 내 생각이 맞았어. 노타리 치고 거름 넣고 모종 심고, 몸 세우다 눈앞이 어질어질 뼈마디 쑤시는 순간에도 깊은 마당 우물 속 물 익는 냄새가 나를 건지고, 쏴아쏴아 비질소리 바람마다 차랑차랑 예쁜 등불 걸어주었어.
동네서는 모질고 빡새다는 장서방이지만 천만에, 내 동네고 남 동네고 노는 땅만 보면 모 내고 딸기 내고 수박 내니, 속에까지 크고 깊은 마당 하나 안고 있는 기라. 남몰래 한없이 속이 널러서 긁어도 시원코 갉아도 내내 말짱하던 것을.
이제 아들 딸 다 커서 대처에서 제 입 벌이 하고, 새벽 이슬 밤 이파리 묻히는 일 없이 밤이고 새벽이고 빗자리질 해온 마당에 때때로 까투리도 내려와 앉고 놀갱이도 기웃거리고 마당 널러 일하기 싫증나는 때 없다.
오늘도 설날 청마루 닦듯 마당 딲는다. 그래 누가 마당 이고 도망갈까 표시를 한다.
나는 중국 최고의 시 「귀거래사」, 「도화원기」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을 존중하지만 그와 관련한 일화 중, 팽택현령이 된 지 80여 일 만에 관료생활을 마감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유명한 일화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말단 관료가 “순찰관이 순찰을 온다고 하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하십시오” 하자,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 : 월급) 때문에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 굽혀가며 섬길 수 없다”라며 사임해버렸다는 일화. 후세인들은 여기에서 고고한 자연인의 모습과 선비정신을 찾기도 합니다만 나는 이 일화에서 직책의 높낮이에 대한 편견과 추상적 자기중심주의가 읽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대표적인 자유의 시인의 자유 속에 직위에 대한 당대의 인위적 관습과 추상적인 선비상에 길든 모습 같아서입니다.
장성옥 씨 부부가 가끔 생각나는 것은 그들에게서는 구체적인 행복과 긍지의 향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만나고 나면 몸이 가난해야 마음이 부유하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들의 당당한 일상에는 불법과 탈법이 들어서지 않고, 소중한 생명들을 담을 논과 밭, 웅숭깊은 행복의 마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부가 그냥 그대로 곁눈질을 배우지나 않기를 몇 번이고 기원했습니다.
초고령 사회로 치달으면서도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 기록적인 경제성장 속에서 기록적인 실업률과 빈부 격차에 미래가 두렵고 불안한 나라. 뒷배경과 금력이 정의에 앞서는 나라.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으로서의 할 일을 찾는 일입니다. 황량한 사막 속에서 나만의 오아시스를 찾는 어리석음을 박차고 서로 배려하고 상생하는 프랙토피아. 모래사막을 가로지르는 도전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계속하다 보면 나만큼 소중한 것이 남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남처럼 소중한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신 진 산문집 <촌놈 되기>)
|작법공부|
이야기 시
필자가 이 작품에서 공부한 것은 에세이(산문) 작법이 아니고 <산문의 시> 이론공부다. 이 작품에서 공부한 <산문의 시 이론>은 다음 문장과 두 편의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 작품이다.
‘여러 해 전에 그에 대해 쓴 이야기 시가 있습니다. 내가 쓴 시 중에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는 처음이었지 싶습니다.’
‘이야기 시’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시는 삶의 이야기를 시(詩⋅poetry)하는 문학이었다. 오랜 서사시 역사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시가 이야기를 버리고 시인 개인의 감정⋅정서에 파묻히기 시작한 것은 자유시(서정시)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산문의 시> 이론은 ‘산문의 시는 이야기를 버린 현대시에 대한 반성으로 일어난 삶의 이야기를 시(詩⋅poetry)하는 문학이다.’라는 데서 출발한다.
필자가 이 작품 중에서 ‘이야기 시’라는 말을 발견하고 마치 서정시 시인 중에서 ‘이야기 시’를 쓰는 시인을 처음 발견한 듯 반가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의 느낌(시 감상)에 현대 시인들은 마치 이야기를 하면 큰일 나는 줄로 아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상섭 교수가 정확하게 짚어 준 대로 독자는 알아먹을 수 없는, 자기 자신만 아는, 심지어 자신도 무슨 소린지 모를 소위 ‘시어’라는 것을 만들어내야 시인 자격, 시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필자의 느낌에 그런 현대시는 그 시인 개인의 ‘감정⋅정서 무덤’ 같다는 느낌이 든다. 누가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할 것인가?
필자의 이 같은 느낌(시 감상)이 현대 시인들에 대한 비난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는 ‘시를 읽고 싶어 시집을 샀다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책상 위에 던져두고 말았다.’는 이 시대 수많은 <시詩 실망 독자>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 시 독자들은 무식한 것 같다. 시를 해설하고 있는 시론이 시보다 더 어려운 것을 보면 우리 독자들이 무식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사랑하고,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사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무식해야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무식한 독자들이 되기를 선택할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산문의 시>의 ‘의’ 자는 산문의 시의 발생, 출처, 내용, 작법, 존재 양식 등 산문의 시 이론의 지표가 된다. 그중 하나가 <산문의 시>는 ‘삶의 이야기’를 시(詩⋅poetry)하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 한대로 ‘이야기 시’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랜 서사시 역사가 말해 주는 대로 시의 본래 모양이다. 다만 필자가 말하는 <산문의 시>는 서정시가 이야기를 버리고 있는 이 시대에 튀어나온 2백자 원고지 2장∼5장 내외의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이야기 시’라는 점에서 장편 서사시와 개념을 달리한다.
<산문의 시> 출처는 운문시론에 있지 않다. 찰스 램에서 비롯된 ‘순문학적 산문’(백철)이 창작문학 쪽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적 산문’(이상섭)을 거쳐 ‘20세기 이후 서정시를 방불케 하는 현대 에세이’(공정호) 변화를 거치면서 최남선, 이양하, 한흑구 외 적지 않은 현역 작가들의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산문’ 작품으로 변모되다가 마침내 2백자 원고지 2장∼5장 내외 ‘산문의 시 형식’이 탄생하게 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산문의 시> 출생 내력 전부가 아니다. 산문의 시가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 시’라는 이론을 앞세워 세상에 태어나 보니 이미 <운문시론의 산문시>에 수없이 많은 ‘완전한 산문문장의 산문시’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었다. 본래 산문시 출처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대로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 산문시론은 이 점에서 분명치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산문체로 쓴 시’라는 논조는 마치 ‘산문시는 운문시의 산문체 변형’이라는 뜻으로 읽히지 않는가? 산문시를 처음 썼다는 보들레르의 산문시론에 의하면 산문시는 ‘운문시의 산문체 변형’이 아니다. 보들레르의 산문시는 자유시보다 먼저 나온 독자적인 양식이다.
필자가 이 작품에서 공부한 <산문의 시 이론>은 위에 언급한 <산문의 시> 출생 내력 외에 ‘이야기 시’ 개념의 시문학이다. 신진 시인은 한국 시의 이론 등 시론을 저술한 바 있고, 현재 시 전문지 <시문학>지에 <차이나는 시 쓰기 강의>를 연재하고 있는 시 전문 이론가이다. 그런 분이 쓰신 산문 작품 중에 나오는 ‘이야기 시’라는 용어는 그냥 읽어 넘길 일이 아니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야기 시>라는 말과 함께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라는 말이다. 두 개념 다 필자가 지난 10여 년 동안 <산문의 창작적 진화 현상>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되풀이하여 온 작법 관련 용어들이다. <산문의 시> 창작개념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가 그것이다.
이 작품에는 두 편의 ‘이야기 시’가 삽입되어 있다. 「농업인 장성옥 씨의 첫날밤」과 장성옥 씨 부인 정삼자 여사의 결혼 전말기 소재 작품 「정삼자 여사의 마당 깊은 집」이다. 두 편 다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이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대로 두 작품 다 ‘이야기 시’ 작품이다. ‘이야기 시’란 무엇인가? 서사시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일리어드가 생각날 것이다. 현대의 ‘이야기 시’가 일리어드 같은 장편 서사시인가? 필자의 <산문의 시>는 일리어드 같은 장편 서사 개념이 아니다. 2백자 원고지 2장∼5장 내외의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아주 짧은 삶의 이야기’를 시(詩⋅poetry)하는 문학이다. 신진 시인이 ‘이야기 시’라고 하는 두 편의 작품이야말로 필자가 말하는 <산문의 시> 그것이다. ‘이야기 시’라는 용어가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이 시대에 마치 새로운 시 양식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 그 점이야말로 현대의 서정시가 얼마나 ‘이야기’에서 멀어졌는가를 극명하게 말해 준다.
신진 시인만 이 같은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아주 짧은 삶의 이야기 시’를 발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정시가 이야기를 버리고 있는 대신 천만다행하게도 오늘날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아주 짧은 삶의 이야기 시’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표되고 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산문의 시>와 <운문시론의 산문시>는 그 출생과 발전 역사는 다르지만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이야기 시’라는 문학의 변화(진화)라는 한 솥 안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필자가 아는 운문시론에는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라는 개념이 없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은가? 시론의 역사는 운문시론 한 줄기뿐이다. 마치 ‘흰쌀밥’의 역사는 ‘흰쌀로만 된 밥’ 한 개념뿐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흰쌀밥에 콩을 넣으면 더 이상 흰쌀밥이 아닌 ‘콩밥’이 된다. 그러니 운문시론에 어떻게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라는 개념이 들어설 수 있는가? 만약 운문시론에 ‘완전한 산문문장의 시’라는 개념이 발을 들여놓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운문시론이 아닌 다른 이름의 시론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문시론이 ‘산문체로 쓴 시’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산문체로 쓴 시’와 ‘산문의 시’는 본질과 성격이 다르다.
<산문의 시>는 처음부터 콩밥이고, 팥밥이며, 좁쌀밥이고, 오곡밥이다. 즉 <완전한 산문문학 형식의 ‘산문 의 시’이다.> 그러나 ‘산문시’는 ‘산문체로 쓴 시’라고 한다. 쌀밥은 쌀밥인데 콩 몇 알이 섞여 들어갔다는 식이 아닌가? 그러나 <산문 의 시>와 <산문시>가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이라는 한 솥 안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운 문학의 진화 현상인가!
이 작품 작법공부에서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또 다른 한 가지는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라는 말이다. 우리가 ‘문학’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장 창작문학을 의미하고, 창작문학이란 곧장 허구창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작문학의 본체는 본래부터 시문학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라는 말이 어떻게 허구창작 작품 중에 들어설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 신진 시인도 이 사실을 지적한 듯 “내가 쓴 시 중에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는 처음이었지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는 이 작품뿐만이 아니다. 이미 시 독자들은 적지 않은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 작품들을 읽고 있을 것이다. 이시영 시인 작품에도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시> 작품이 있다.(금호 이시영 시 <덕담> 참조)
필자에게 <타인의 성명>이란 ‘사실의 소재’를 의미한다. ‘사실의 소재’는 <산문의 시론>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산문의 시>의 뿌리는 몽테뉴의 (비창작)일반산문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몽테뉴의 에세이가 242년 후에 태어난 찰스 램을 만나 ‘순문학적 산문(창작적 산문)’(백철)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문학이 <산문의 시>이다.
일반산문은 본래부터 <구체적인 사실>을 직접 작품의 제재로 삼는 양식의 문학이다. 그것이 창작적인 변화를 한 후에도 여전히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아서 어떻게 허구적 창작을 하는가? 그 작법을 맨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이야말로 문학의 영혼이라고 극찬하였다. 그 까닭이 플롯은 ‘이미 있었던(과거) 사실’을 ‘있을 법한 개연성(蓋然性 probable)’의 이야기로 변화시켜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개연성에서 오늘의 찬란한 상상적⋅허구적 문학예술이 꽃피게 된 것이다.
<산문의 시>는 태어나자마자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산문시’와 만나게 되었고, 또다시 ‘구체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내세운’ 즉,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산문시> 작품과도 만나게 된 것이다.
신진 시인도 많은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산문시’ 작가들처럼 이 작품을 <산문시>로 발표하였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같은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를 <산문 의 시>라 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시’ 개념은 운문시론에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산문 의 시>는 ‘흰쌀밥’이 콩밥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콩밥이고, 팥밥이고. 좁쌀밥이며, 오곡밥이다.
<산문시>도 휜쌀밥이 아닌 콩밥이고 팥밥인 것이 맞다면 이제부터라도 독자적인 <산문시론>을 펴 가야 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운문시의 서자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참조 : 금호 <산문시는 운문시론으로부터 독립해야 된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독자적인 산문시론>을 발견하지 못한 필자의 무식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발견한 <운문의 산문시론>은 단편적이고, 내용도 운문시론의 연장선에 그치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디엔가 <독자적 산문시론>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좀 더 충분히 찾아보지 못한 점 독자에게 죄송하다. 앞으로 <산문의 시론>을 펴 가면서 더 찾아보고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신진 선생은 “시인이 시를 쓰기 전에도 세상은 이미 시입니다. 하늘과 구름, 바람과 별, 흙과 사람, 모두가 이미 시이기에 시인은 허리를 굽혀 풀꽃의 속살을 만져보고 고개를 들어 바람 한 줄기의 자취를 느낍니다.”(<소박한 신성(神性) 정지용의 시 「향수」 중에서)라는 시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인용문 전문이 그대로 <산문의 시> 사상이다. 신진 시인은 운문시론자 이시다. 이러고 보면 <산문의 시>는 더욱 새로운 것이 아님이 밝혀진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서정시가 이야기를 버리고 있는 시대에 그에 대한 반성문으로 ‘완전한 산문문장 형식의 삶의 이야기를 시(詩⋅poetry)하는 문학’이라는 깃발을 들고나온 그 점 하나일 것이다.
<산문의 시> 이야기 개념은 현대문학 이론에서 말하는 각양의 서사⋅담론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진 시인이 말하는 ‘하늘과 구름, 바람과 별, 흙과 사람, 모두가 이미 시’인 그 천연의 삶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풀꽃과 바람은 몇억 년이 흘러도 천연의 시詩 그대로다. 삶의 이야기도 그렇다.
이 작품이 게재된 신진 시인의 산문집 촌놈 되기는 수록작품 25편 모두가 <시 + 산문> 양식의 작품들로 편집된 작품집이다. 시중에서 발견되는 <시 + 산문> 양식은 거의 다 개별 작품으로 발견된다.
우리 문단에는 산문에 관한 연구가 없다. 필자가 처음으로 <산문의 창작적 진화 현상>을 공부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자료 부족(산문연구가 전무하다 시피 하므로)에다 본인의 학문적 깊이마저 얕은지라 큰 성과는 없다. 그러나 우리 문단에 산문연구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산문연구가 없다는 것은 곧 산문작품에 대한 비평활동이 없다는 뜻이다. <시 + 산문> 양식의 산문작품은 사실은 매우 놀라운 산문의 창작적 변화(진화) 현상이다. 산문 중에 시 작품을 삽입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문학양식의 변화다. 그 같은 변화는 다양한 문학 논의를 이끌어낸다. 먼저는 이 작품은 산문인가, 창작인가 문제가 나올 것이다. 그에 따라 다양한 논의들이 갑론을박하게 될 것이다.
<시 + 산문> 양식은 그동안 필자가 공부해 온 <산문의 창작적 변화 현상> 가운데서 대표적 양식 가운데 하나다. <시 + 산문> 양식의 시산문 특징은 ‘창작’과 ‘문학에세이(산문)’ 중간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신진 시인은 촌놈 되기를 ‘30년 귀촌 생활 비록’이라는 부제를 달아 내놓았다. ‘비록’은 산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촌놈 되기 전체가 (비창작)일반산문 작품이란 말인가? 누가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거기 삽입된 시 작품들은 다 어떻하고? 이것이 <산문의 창작적 진화 현상> 공부 주제다. 필자는 이 같은 작품을 <문학에세이(창작적 산문)>라고 일단 분류하고 <시산문> 쪽에 무게를 둔다.
<시 + 산문> 양식의 <시산문>에 관심 있으신 분은 1독하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특별히 <문학에세이>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신진 시인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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