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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신(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가무(歌舞)와 음주(飮酒)를 즐겼다는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한전(韓傳)[마한(馬韓) 기록]>의 기록을 보면 농경(農耕)의 풍작(豊作)을 기원(祈願)하는 풍속으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는 '수리'를 '거(擧: 수레)'의 의미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단오절 시절음식(時節飮食)의 하나인 쑥떡을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들어 먹기 때문에 수릿날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단오절(端午節)이 대표 명절이 된 것은 좋은 기후의 계절에 양수(陽數) 중복의 날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굳어진 것으로 봄이 마땅할 것이다.
단오날에 지방에서는 그 지방 향토신(鄕土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는 풍속이 있습니다.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과 삼척(三陟)에서 행해지는 단오제(端午祭)가 가장 유명한데, 특히 강릉의 단오제는 커다란 축제(祝祭) 형태로 여러 날 행해진다. 수많은 군중(群衆)들이 보는 앞에서 40-50여명의 무격(巫覡)들이 모여서 제사(祭祀)를 지내는데, 대관령(大關嶺)의 성황신(城隍神)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고 가면(假面) 놀이와 유희(遊戱)를 즐기면서 그 해의 풍년(豊年)과 대관령의 산행(山行) 안전(安全)을 기원한다.
삼척에서도 오금잠제(烏金簪祭)라는 단오제를 지내는데,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유물(遺物)이라고 하는 비녀[잠(簪)]를 함(函)에 모시고 무당(巫堂)의 가무(歌舞)로 화(禍)를 물리치고 복(福)을 부른다.
[제화초복(除禍招福)]는 의미로 기원하는 의식을 여러 날 축제를 행하였다.
단오절(端午節) 풍속(風俗)
단오부채[단오선(端午扇)] 궁궐 내 공조(工曹)에서 여름철에 사용할 부채를 만들어 단오절에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임금은 그 부채를 재상부터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그림을 그리지 않고 주는 것을 백첩(白貼)이라 하고 혹 옻칠을 한 것은 칠첩(漆貼)이라 한다.
부채를 받아 그림으로 주로 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봉을 그려 넣었다.
영호남의 감사나 통제사(統制事)도 부채[절선(節扇)]를 진상(進上)하며, 조정(朝廷)의 신하나 친지(親知)들에게도 선사한다.
최고의 부채로 꼽는 지방은 전주(全州), 나주(羅州) 등지이고 부채의 종류로는 재질과 모양, 문양(紋樣) 등에 따라 다양하다.
관상감(觀象監)에서 천중절(天中節)의 붉은 부적(符籍)을 궁중으로 올리는데, 대궐 문설주에 붙여 액운(厄運)을 막는 방도로 사용한다.
또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단오 부적을 붙인다.
그 내용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5월 5일 천중절(天中節)에 위로는 천록(天祿)을, 아래로는 지복(地福)을 얻어 치우(蚩尤)의 신(神) 구리 머리, 쇠 이마, 붉은 입, 붉은 혀에 404병(病) 일시에 없어져라. 빨리빨리 율령(律令)대로 시행할지어다.
차륜병(車輪餠 :쑥떡) 쑥을 뜯어서 멥쌀가루 속에 넣고 찧어 쑥 색이 나오게 하고 수레바퀴 모양으로 둥글게 만드는 떡이다.
이 떡으로 인해 수릿날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으로 볼 때 단오절의 가장 대표적인 절식(節食)으로 전해온다. [ 輪(륜)바퀴, 돌다 ]
익모초(益母草), 단오일 오시(午時)에는 쑥과 함께 익모초(益母草)를 뽑는 풍속이 있는데, 이 날 뽑는 쑥과 익모초가 가장 효능(效能)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말려 약재(藥材)로 사용한다.
모체(母體)를 이롭게 한다는 익모초는 여름철에 즙(汁)을 내서 마시면 식욕(食慾)이 난다 해서 농촌에서 상용(常用)하는 약재다.
단오장(端午粧)
어린 이이들이나 여자들이 나쁜 액(厄)을 없앤다는 뜻에서 단오절(端午節)에 하는 치장(治粧)을 단오장(端午粧)이라 한다.
창포(菖蒲)를 삶은 물에 머리 감고 붉고 푸른 새 옷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창포뿌리를 잘게 잘라 만든 비녀를 꽂았는데, 비녀에는 수(壽), 복(福) 두 글자를 새기고 끝에 연지로 붉게 칠을 했다.
곧 붉은 색은 양색(陽色)이므로 액(厄)을 가져오는 마귀(魔鬼)를 물리치는[축귀(逐鬼): 귀신을 물리침] 액막이 풍속으로 전해 온 것이다.
- 또 다른 액(厄)을 쫓는 풍속으로 호리병박이나 작은 인형(人形)을 만들어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나쁜 역질(疫疾)을 쫓는 풍속이다.
- 농촌의 단오절 액막이 풍속으로 이른 아침에 쑥을 베어다가 단으로 묶어서 문 옆에 세워두는데, 역시 액(厄)을 물리치는 용도로 행하는 풍속이다.
그네뛰기 : 항간(巷間)에서 여성들이 단오날 그네를 걸어 그네뛰기를 하는데, 유래(由來)는 중국 서북쪽 오랑캐인 융적(戎狄)들이 가볍게 몸을 뛰어오르는 연습으로 하던 놀이를 중국여자들이 배운 것이라 한다.
궁중에서도 반선희(半仙戱)라 해서 궁궐 여인들이 단오절 그네뛰기를 했는데, 그네뛰기는 널뛰기 놀이와 함께 과거 다소 속박(束縛) 속에서 생활했던 여성(女性)들의 세상을 그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 씨름 : 단오날 경향(京鄕) 각지(各地)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씨름으로 승부를 겨루는 내기를 하는데, 힘이 세고 손이 민첩해서 재치 있게 기술을 구사하여 많은 승리를 하는 사람을 판막음[도결국(都結局)]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撓 )라고도 하고, 우리 나라는 주로 군사(軍士)들의 힘내기를 조련(調練)시키는 방법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流頭{음력 6월 15일}는 본래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란 말의 준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동편의 맑은 시냇가에서 머리 감고 몸을 씻는다"는 의미인데, 여름철 더운 날씨를 이겨내는 방법이며 동쪽은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곳으로 청(靑)에 해당하기에 '동류(東流)'를 택하여 불길한 것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고려(高麗) 명종(明宗)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의 문집(文集)에 신라(新羅) 동도(東都; 경주)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몸을 청결하게 하고 하루를 맑게 노닐면서 지내면 상서(祥瑞)롭지 못한 기운을 제거하고 여름철의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의미로 행해지는 토속적(土俗的)인 풍속이다.
풍속 가운데 매월 15일 보름날에 행해지는 풍속이 많기 때문에 유두일(流頭日) 역시 정월 대보름과 8월 한가위, 백중절(百中節)[7월 15일], 시월 시제(時祭)[15일 전후] 등과 함께 6월의 큰 명절로 이어오고 있다.
일반적인 유두(流頭) 풍속의 일환으로 문인(文人)들이 유두일(流頭日)에 술과 안주를 마련해서 산천의 계곡이나 정자(亭子)를 찾아 자연을 벗삼아 자연(自然)을 읊으며 풍류(風流)을 즐기는 것을 유두연(流頭宴)이라 한다.
또한 새로 나오는 과실(果實)인 수박, 참외 등과 함께 국수와 떡을 만들어 사당(祠堂)에 제(祭)를 올리는데, 이를 '유두날 새 것을 올린다'는 의미의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 합니다. 이는 조상숭배사상이 강한 우리 민족의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이라 할 수 있다.
- 유두면(流頭麵): 유두일에 특별히 국수를 만들어 먹는데, 이를 유두면(流頭麵)이라 합니다. 특이하게 구슬처럼 만드는데, 유듀면을 먹으면 더위에 고생하지 않고 장수(長壽)한다고 한다. 또한 거기에 오색(五色) 물을 들여 세 개씩 포개어 색실로 꿰어 허리에 차거나 문설주에 걸어놓는데, 잡귀(雜鬼)의 출입을 막고 액(厄)을 물리친다고 한다. [麵(면)국수 ; 본래는 '麥+面'이다.]
- 수단(水團), 건단(乾團) : 찹쌀가루를 쪄서 반죽해 구슬처럼 만들고 얼음물에 넣어 꿀을 타서 먹는 것을 수단(水團)이라 하고, 얼음물에 넣지 않는 것을 건단(乾團)이라 한다.
수단은 보통 사당(祠堂)에 올리는 제사(祭祀)에도 사용한다.
- 연병(連餠): 밀가루를 반죽해서 판 위에 놓고 방망이로 밀어 넓게 만들어 기름에 튀기거나 콩을 묻혀 꿀을 발라 만들어 먹는 것을 연병(連餠)이라 한다. [ 餠(병) 떡 ]
- 상화병(霜花餠): 역시 밀가루를 반죽하여 콩이나 참깨로 소를 만들어 넣어 찐 것을 상화병(霜花餠)이라 한다.
삼복(三伏)- 초복, 중복, 말복은 일년 중에서 더위가 가장 심한{혹서(酷暑)} 시기이기도 하기에 삼복더위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삼복(三伏)은 음력(陰曆)의 개념이 아닌 양력(陽曆)의 개념을 적용한 것으로 초복(初伏)은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돌아오는 경일(庚日)이고, 네 번째 경일(庚日)은 중복(中伏)이며,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庚日)이 말복(末伏)이다.
삼복(三伏)의 풍속은 더운 여름철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주식(酒食)을 마련해서 계곡이나 산을 찾아 더위를 잊고 하루를 즐기는 여유를 지녔던 것이다.
올 양력(陽曆) 1999년의 삼복(三伏)은 초복이 7월 17일이고, 중복은 7월 27일, 말복은 8월 16일{월복(越伏)}이다. 특히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에 원기(元氣)를 회복하는 음식을 마련해서 더위를 이겨낸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삼복(三伏)은 중국 진(秦)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천간(天干), 오행설(五行說)에 기초해서 설정이 되었다.
여름철은 '火'의 기운이고 가을철은 '金'의 기운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가을의 '金'기운이 대지로 나오려다가 아직 '火'기운이 강렬하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굴복(屈伏)}'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바로 "엎드릴 복{伏}"자를 쓰는 이유다.
열흘 간격으로 삼복이 오는데, 혹서(酷暑)의 계절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혹 중복과 말복의 사이가 20일이 되는 경우를 월복(越伏)이라 한다.
- 삼계탕(蔘鷄湯): 원기(元氣) 회복의 차원에서 더위를 물리치는 음식으로 복날 대부분의 가정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 삼계탕(蔘鷄湯)이다.
보통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人蔘)과 대추, 찹쌀을 넣고 삶아 먹는데, 더위를 이겨낸다고 한다.
- 개장[구장(狗醬), 구탕(狗湯), 보신탕(補身湯)] '복(伏)'자가 '사람 인'변[人]에 개 견[犬]자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복날 개를 삶아 먹는 것은 더위를 잊는 것뿐만 아니라 보신(補身)과 액(厄)을 물리치는 일까지 결부되어 보신탕(補身湯)으로도 불린다.
보통 개를 잡아 삶을 때 파를 넣어 냄새를 없애고 보리밥과 함께 먹었다.
현대에 와서 서양(西洋)의 문화에 종속되는 경향으로 인해 전통(傳統) 음식(飮食)의 하나인 보신탕(補身湯)이 혐오(嫌惡) 음식(飮食)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전통문화(傳統文化)의 삶에는 가축 가운데 소와 함께 개가 동일한 인식에서 기르고 먹었던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비둘기나 말까지 잡아먹는 그들의 입김에 우리의 음식(飮食) 문화(文化)까지 좌지우지(左之右之)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 팥죽: 무더운 복중에 악귀(惡鬼)를 쫓는 의미에서 붉은 빛의 음식인 팥죽을 먹는 풍속도 있다.
보통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경단(瓊團)]을 함께 넣어 먹었다.
궁궐(宮闕)에서는 종묘(宗廟)에 피, 기장, 조, 벼 등을 올려 제사(祭祀)를 지내고 각 관청(官廳)에 여름의 특별 하사품(下賜品)으로 얼음을 나누어주었다.
국수를 어저귀 국에 말아먹거나 미역국에 익혀 먹기도 하고, 호박전을 붙여 먹거나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아 먹기도 하는데, 모두 여름철의 시절음식(時節飮食)으로 먹는 소박한 음식들이다.
이와 함께 참외와 수박 등은 더위를 씻는 좋은 과일들이다.
칠월(七月) 칠석(七夕)
七夕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애틋한 사랑 전설(傳說)을 간직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아낙네들의 길쌈 솜씨나 청년들의 학문 연마(硏磨)를 위해 밤하늘에 별을 그리며 소원을 빌곤 합니다. 애절한 사랑 전설(傳說)만큼이나 잠 못 이루는 한여름 밤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 칠석(七夕)은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을 연결하는 풍속(風俗)으로 발전하였다.
양력(陽曆) 1999년의 칠석(七夕)은 8월 17일이다.
은하수(銀河水)의 양 끝 둑에 살고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 칠석(七夕)이다.
너무나 사랑을 속삭이던 두 별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노여움으로 1년에 한 번 칠석(七夕) 전날 밤에 은하수(銀河水)를 건너 만나게 된다.
이 때 까치[작(鵲)]와 까마귀[오(烏)]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한다.
그래서 칠석날 아침에 비가 내리면 견우직녀(牽牛織女) 상봉(相逢)의 눈물이요, 저녁에 비가 내리면 이별(離別)의 눈물이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설(傳說)과는 달리 실제 천체(天體)의 운행(運行)에서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의 각(角)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고 단순하게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이맘때 즈음에 초저녁 하늘 가운데 뜨기 때문에 시야(視野)에 가득 들어오고 7월 7일이 양수(陽數)가 겹치는 왕성한 날이기에 애절한 견우직녀 전설과 함께 어울려 늦여름의 행사로 정착된 것이다.
여름철 장마가 지난 뒤에 습기(濕氣)가 찬 의류(衣類)나 서적류(書籍類)가 좀이 먹거나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칠석날을 기해 강한 여름철 햇빛에 말려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위가 약간 줄어든 이 시절에는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고, 호박이 잘 열려 호박부침을 즐겨 만들어 먹고 칠성당(七星堂) 재(齋)에 올리기도 한다
마군후, 백중일(百中日), 백종일(百種日), 망혼일(亡魂日), 중원(中元)
백중일{7월 보름}은 여타 보름날 명절(名節)과 같이 고래(古來)로 남녀가 모여 온갖 음식을 갖추어 놓고 가무(歌舞)를 즐기면서 하루를 놀았다.
지방에 따라 씨름 대회를 즐겼는데, 사찰(寺刹)의 승려(僧侶)들과 머슴들까지 다양한 풍속(風俗)을 즐겼다. 백중(百中)이라는 말은 '여러 종류의 음식을 다 갖추었다'는 의미의 백종(百種)의 뜻에서 유래(由來)된 것으로 보는데, 이 무렵은 과일, 채소, 곡식 등이 왕성하게 나는 철이기에 백종(百種)의 의미로 풍속(風俗)이 생겨난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잘 익은 과실(果實)을 따서 사당(祠堂)에 먼저 올리는 천신(薦新) 차례(茶禮)를 지내기도 한다.
백중일(百中日)의 사찰(寺刹) 재(齋)는 아직까지 큰 명절(名節)로 행해진다.
불교(佛敎)에서의 백중일 유래(由來)는 효성이 지극한 목련비구(目蓮比丘)가 지옥에 떨어진 모친(母親)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오미(五味)를 가진 음식과 온갖 과실(果實)을 갖추어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했다는 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는 불경(佛經)의 이야기에서 연유(緣由)하는데, 이 때 백과(百果)가 지금의 백중(百中)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신라(新羅) 시대에 벌써 사찰(寺刹)에서의 백중 행사가 있었고, 불교(佛敎)를 숭상(崇尙)한 고려(高麗) 시대에는 백중일에 우란분회(盂蘭盆會: 혹은 우란분재)를 열어 속인(俗人)들도 공양(供養)을 할 정도였으나 조선시대(朝鮮時代) 이후는 승려(僧侶)들만의 행사가 된다. 齋(재) 재계하다, 불공
우리나라 풍속으로 백중일(百中日)을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하는데, 민가(民家)에서 달이 뜨는 밤이 되면 과일, 채소, 술, 밥 등을 차려 돌아가신 부모, 망친(亡親)]의 혼(魂)을 불러들여 제사(祭祀)를 지낸다 해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다. 이 시기는 농사(農事)에 김매기를 거의 끝내고 추수(秋收)를 기다리는 시기이기에 농촌에서 불필요한 농기구(農器具)를 씻어 손질해 둔다는 의미에서 '호미씻이'라 한다. 또한 흥겹게 하루를 즐기는데, 과거(過去)에는 동네 머슴들을 위해 하루를 쉬게 하여 위로(慰勞)하였다.
중추절(仲秋節) : 秋夕, 한가위, 가위, 가배(嘉俳) 仲秋節{8월 보름} 한가위는 원단(元旦: 설)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名節)답게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데, '가위'라는 명칭이 신라 시대 가배(嘉俳 : 혹은 嘉排) 풍속에서 변천된 것이고, '추석(秋夕)'이라는 명칭은 <예기(禮記)>의 "춘조월추석월(春朝月 秋夕月)"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특히 가을의 중심 8월은 만물이 성숙(成熟)하는 좋은 철이기에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하여 온갖 음식과 과실(果實)을 풍성하게 장만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속담(俗談)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풍요로움 속에서 조상의 은덕(恩德)을 기리고 밝은 한가위 달과 함께 다양한 행사와 풍속으로 지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가배(嘉俳)의 유래(由來)는 다음과 같다.
신라(新羅) 유리왕(儒理王) 때에 육부(六部)를 나누어 두 편을 만들고 왕녀(王女) 2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나눈 부락(部落)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16일부터 매일 큰 부락의 광장에 모여 길쌈 짜는 내기를 하는데, 을야(乙夜 :밤 9시 - 11시)가 되어서야 하루를 마쳤다.
그러다가 8월 보름이 되면 각 편의 길쌈 결과물의 많고 적음을 따져 내기에 진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놀이를 즐겼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한다. 그런데, 이 때 내기에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하면서 "회소(會蘇) 회소(會蘇)"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애절(哀絶)하면서도 단아(端雅)해서 후대 사람들이 그것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한다.
이상의 사료(史料)를 통해서 그 유래를 살펴보면 신라(新羅)가 부족국가(部族國家)에서 고대국가(古代國歌) 체제(體制)로 전환되는 시점에 부족의 결속력(結束力)과 응집력(凝集力)을 모으는 방편으로 길쌈내기를 시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회소(會蘇)'라는 의미 역시 "모여서[會] 다시 하자[蘇]"라는 아쉬움의 표현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가배(嘉俳)는 국가적 단결(團結) 행사에서 출발하여 풍요와 결실의 계절에 넉넉함을 나눌 수 있는 풍속(風俗) 행사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사일도 거의 끝나 햇곡식을 먹을 수 있는 시기이기에 새로 수확(收穫)한 곡식(穀食)이나 과실(果實)로 사당(祠堂)에 차례(茶禮)를 올리는데, 절차는 설날과 같은 절차를 따릅니다. 이와 함께 한식(寒食) 때 손질한 이후 여름철 내내 풀로 무성한 조상(祖上)의 묘소(墓所)를 찾아 벌초(伐草)를 함으로써 겨울을 잘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고향(故鄕)을 찾아 떠나는 민족(民族)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이 시기는 조상(祖上)의 음덕(陰德)을 잊지 않는 우리 민족(民族)의 아름다운 풍속(風俗)의 한 모습이다
중추(仲秋) 풍속(風俗)
한가위는 가을의 풍속으로 가장 성대한 민족의 명절이기에 그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풍속(風俗)과 시절(時節) 음식(飮食) 모두 넉넉하고 여유 있는 인심(人心)과 감사(感謝)와 기쁨을 바탕으로 한 풍속들이다. 수확(收穫)의 계절 가을답게 새로 수확한 온갖 곡식(穀食) 및 과실(果實)들로 인해 시절(時節) 음식(飮食) 역시 새로운 수확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 중추 떡: 풍요로운 수확물인 햅쌀로 가정에서는 송편을 만들어 차례에도 사용하며, 무나 호박을 넣어서 시루떡도 만든다.
특히 인절미[인병(引餠)]를 만드는데, 찹쌀가루를 쪄서 떡을 만들어 볶은 검은콩이나 혹은 누런 콩가루나 참깨를 묻힌다.
- 신도주(新稻酒): 햅쌀로 가을에 새로운 술을 빚는데, 이를 신도주(新稻酒)라 합니다. 차례(茶禮) 때 사용하고 음복(飮福)하는 풍속은 자연스럽게 후손(後孫)들에게 조상의 은덕(恩德)과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전통(傳統)이라 할 것이다.
- 밤단자[율단자(栗團子)]: 찹쌀가루를 쪄서 계란 형태의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밤을 꿀에 개어 바른 것을 밤 단자라 한다.
밤이 아닌 토란으로 만든 단자는 토란단자라 한다.
- 줄다리기[조리지희(照里之戱)]: 제주도(濟州道) 풍속으로 한가위에 남녀가 모여 춤추며 노래하고 즐겁게 노는데, 좌우(左右)로 편을 갈라 큰 줄을 당기는 줄다리기 놀이를 한다. 또한 그네뛰기도 하며 닭잡기 놀이[포계지희(捕鷄之戱)]도 하였다. [ 照(조) 비추다, 대조하다 ]
- 충청도 씨름: 16일에 술과 음식을 차려 즐기면서 씨름판을 벌인다.
이것은 농한기(農閑期)를 맞이해 그간의 노고를 풀고자 하는 것이다.
전라남도(全羅南道) 남해안(南海岸) 지방의 전통 풍속 놀이인 강강술래는 '강강수월래'라고도 불리는데, 부녀자(婦女子)들만의 놀이로 계승되어 오며, 경상도(慶尙道)의 남자들 놀이인 '캐지나칭칭 나네' 놀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강술래의 어의(語義)에 대해서는 '왜적이 쳐들어온다. 는 의미로 한자(漢字)인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나 '강강수월래(强羌隨月來)' 등으로 설명하거나 우리말 어원 설로 '강'은 둘레나 원(圓)을 의미하고 '술래'는 한자어 순라(巡邏): '경계하다'는 의미)에서 와 '주위를 경계하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본다.
추석날 단장을 한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광장에 모여 서로 손을 잡고 원(圓)을 그리며 뛰노는 놀이인데, 목청 좋은 한 여자가 먼저 선창(先唱)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강강수월래'라는 후렴(後斂)을 후창(後唱)하는 놀이다.
- 유래: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왜적(倭賊)에게 육지(陸地)를 지키는 우리 병사(兵士)들이 강함을 위장하기 위해 해안(海岸) 바위 등에서 부녀자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유래되어 그 후 호시절(好時節)인 8월 한가위를 택해 놀이로 계승된 것이다
중양절(重陽節): 중구(重九), 구중(九重), 重陽節{음력 9월 9일}은 양수(陽數)가 겹친 날이라는 의미이고, 중구(重九) 역시 구(九)가 중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중양절은 양수중복일(陽數重複日) 풍속의 하나로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는 계절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다양한 시절음식(時節飮食)과 풍속(風俗)들이 행해집니다. 또한 이 날은 제비가 강남(江南)으로 간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이 시기가 되면 제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국화전(菊花煎): 여염(閭閻)집 가정에서 이 날 국화 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와 반죽해 단자(團子) 모양의 찹쌀떡을 만들어 먹는데, 이를 국화전(菊花煎)이라 합니다. 국화전은 3월 3일 삼짇날의 봄철 진달래 화전(花煎)과 동일한 가을철 화전(花煎)입니다. 본래 국화전의 유래(由來)는 서울 사람들이 9월 9일에 밀가루로 떡을 쪄서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 맹원로(孟元老)가 서술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전한다.
- 화채(花菜): 잘게 썬 배와 유자(柚子), 석류(石榴)를 꿀물에 타서 잣을 띄워 마시는 것을 화채(花菜)라 한다. 특히 화채는 계절의 미각을 느끼게 해주는 시절음식으로 제사(祭祀) 때 사용하기도 한다.
서울 풍속에 중양절(重陽節)을 맞이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남산(南山)이나 북악산 등에 올라가 시식(時食)을 배불리 먹고 하루를 흥겹게 지냈는데, 이를 단풍놀이라 합니다. 이는 본래 중국 후한(後漢) 때 환경(桓景)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된 '등고(登高)'의 풍속을 답습한 것이다.
특히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해 국화꽃잎을 술잔에 띄워 마시며 풍류(風流)를 즐기면서 가을을 만끽했다. 이러한 전통(傳統)은 가을 소풍이나 단풍놀이로 현대까지 계승(繼承)되어 오고 있다.
충남 공주군 장승
시월 제례풍속: 오일(午日), 시제(時祭)
十月은 '상달'이라 하듯이 겨울을 준비하는 맹동(孟冬)이자 입동(立冬)의 달이면서 다양한 제례(祭禮)의 행사가 행해지는 때이다.
오일(午日: 마일(馬日)) 고사(告祀)와 성주제, 그리고 시제(時祭) 등 많은 제례 행사는 감사(感謝)와 안녕(安寧)의 기원을 희망하는 풍속들이다.
오(午)'는 12지수 가운데 말{마(馬)}에 해당한다.
그래서 시월 오일(午日)이 되면 말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병(無病)을 기원하는 고사(告祀)를 지냈는데, 팥으로 시루떡을 쪄서 마구간에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습니다. 보통 시월에 두 번 정도의 오일(午日)이 드는데, 병오일(丙午日)일 때에는 '병(丙)'이 병이라는 의미의 '병(病)'과 음(音)이 같아서 고사(告祀)를 지내지 않고 금기(禁忌)시 했고, 무오일(戊午日)일 경우는 상마일(上馬日)이라 해서 아주 성대하게 지낸다. 이 역시 '무(戊)'가 번성한다는 의미의 '무(茂)'와 음(音)이 같은 것에서 연유한다.
성주'는 민속(民俗)에서 집안을 지키는 신령(神靈)으로 일컫는데, 주로 오일(午日)에 각 가정에서 성주에게 지내는 제사를 성주제라 합니다. 성주신은 상량신(上樑神)을 의미하는데, 집안에서 제일 높고, 집안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담당하고 있어 제물(祭物)을 마련해 제사(祭祀)를 지내거나 무당(巫堂)을 불러 굿을 하는 경우도 있어 '성주굿', '성주받이굿' 등으로도 불립니다.
시월 보름날이나 그 날을 전후해 조상신(祖上神)에게 지내는 제사(祭祀)를 시제(時祭) 또는 시향(時享)이라 하는데, 시월 시제는 동지(冬至) 뒤 세 번째 미일(未日)에 지내는 납향(臘享)과 함께 겨울철 대표적인 제례(祭禮) 행사입니다. 본래 조상(祖上)에 대한 제사(祭祀)는 4대 봉사(奉祀)라 해서 4대조까지는 사당(祠堂)이나 집안에서 지내고 5대조 이상의 조상들은 늦가을에 묘소(墓所)에서 직접 제사(祭祀)를 지내온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5대조 이상의 조상들의 시제(時祭)를 위해 별도의 지역에 사당(祠堂)을 설립해 시제를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 臘(납) 납향, 섣달 ]
세시풍속-10월[제례풍속]
시월 시절음식(時節飮食) 겨울의 입구에 해당하는 시월에는 계절의 미각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시절음식(時節飮食)이 있습니다.
차가운 기운이 다가오기 때문에 끓이거나 구워 먹는 음식으로 추이를 막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현대까지 대중적 음식으로 사랑 받고 있는 만두 음식은 시월뿐만 아니라 겨울의 대표적 음식 중의 하나입니다.
다음은 몇 가지 시월상달의 시절 음식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현대의 연회(宴會) 상(床)에 마련되는 신선(神仙)들의 화로(火爐) 음식이라는 의미의 신선로(神仙爐)는 화로 위에 전골 틀을 놓고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무, 오이, 마늘, 파, 계란 등을 넣어 장국으로 끓이는 것인데, 입을 기쁘게 한다 하여 열구자탕(悅口子湯)이라고도 합니다.
메밀가루나 밀가루로 만두(饅頭)를 만드는데, 속에는 채소, 파,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두부 등을 다져 넣고 장국에 끓여 먹습니다.
만두의 유래,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魏)의 맹획(孟獲)을 공격할 때, 어떤 사람이 "남만(南蠻: 남쪽 오랑캐)에서는 사람을 죽여서 그 머리를 제물(祭物)로 하여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그러면 신이 음병(陰兵: 은밀하게 도움을 주는 병사)을 보내 준다고 합니다."
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공명(孔明)은 그대로 하지 않고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소를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것으로 인해 음식 이름을 '남만(南蠻)의 머리'라는 의미로 만두(灣頭)라 했다가 음식 명칭인 만두(饅頭)로 변화된 것입니다.
서울 풍속에 화로(火爐)에 숯불을 피워 그 위에 전철(煎鐵: 지짐 등에 쓰이는 솥뚜껑 모양의 도구)을 올려놓고 화롯가에 모여 앉아 쇠고기에 기름장, 계란, 파, 마늘, 고추장 등의 양념을 해서 구워 먹었는데, 이를 난로회(煖爐會)라 합니다.
두부를 잘게 잘라 썰어서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부치거나 닭고기를 섞어 국으로 끓인 것을 연포탕(軟泡湯)이라 합니다.
여기에서 '거품'이란 뜻의 '포(泡)'가 두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두부는 현재까지 서민(庶民)들의 기본 반찬으로 많은 영양가(營養價)를 제공하는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강정은 시월 경부터 시절음식으로 많이 만들어 먹는데, 오색강정, 갓강정, 매화강정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또한 홍색과 백색의 강정은 설날과 봄철에 민가(民家)에서 제수(祭需)로 과실(果實)과 같이 취급하며, 세찬(歲饌)으로 손님을 접대할 때에도 많이 사용하는 음식입니다.
조리 과정, 찹쌀가루를 물과 술로 반죽하여 둥글거나 모나게 만들어 크고 작게 잘라서 햇볕에 말렸다가 기름에 튀기면 마치 누에고치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속은 비게 됩니다. 그것에 볶은 흰 참깨나 들깨, 흰 콩가루, 파란 콩가루 등을 엿에다 버무려 붙인 것이 강정입니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란 말처럼 가을에 수확(收穫)한 곡식을 겨울에 저장(貯藏)해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에, 겨우내 집안의 기초 음식의 대표적인 김장 김치를 담그는 일이 시월부터 시작됩니다.
현재 우리 나라 전통음식(傳統飮食) 김치를 담그는 김장 담기는 여름철의 장(醬) 담기와 함께 일반 가정에서 1년 중 아주 중요한 행사입니다.
동지(冬至): 아세(亞歲)
冬至{양력 12월 22, 23일경}는 겨울철의 대표적 명절(名節)로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와 대칭되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입니다.
자원(字源)으로 볼 때도 하지.동지의 지(至)자의 의미가 '이르다, 지극하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하지와 동지는 태양의 운행을 중심으로 여름과 겨울의 도달을 의미하면서 또한 그 계절의 정점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지는 고대(古代) 시절에 설{원단(元旦)}로 삼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아세(亞歲: 작은 설)라고도 합니다.
특히 민간(民間)에서는 동지 팥죽이라 하여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합니다. 동짓날은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祠堂)에 차례(茶禮)를 지내고 나서 방이나 마루, 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또한 솔잎에 적시거나 수저로 떠서 대문, 벽 등에 뿌려 액(厄)을 막고 잡귀(雜鬼)를 물리쳤습니다.
동지팥죽의 유래 중국 고대(古代) 요순시대(堯舜時代) 때, 형벌(刑罰)을 담당했다고 하는 신화(神話)적인 인물인 공공씨(共工氏)에게서 유래된 이야기입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가 불초(不肖)한 자식을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질 귀신[역귀(疫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역귀(疫鬼)가 생전(生前)에 팥을 싫어했기 때문에 동짓날이 되면 팥으로 죽을 쑤어 역귀(疫鬼)를 쫓는 풍속(風俗)으로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붉은 빛은 양기(陽氣)를 의미하기에 붉은 빛을 띠는 팥이 귀신을 쫓는 역할(役割)을 하는 음식으로 전래(傳來)되어 잡귀(雜鬼)를 물리치는 용도로 팥죽을 사용해 왔다는 것입니다.
조리 과정, 동지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거나 체에 걸러내고, 찹쌀로 새알 정도 크기로 단자를 만들어 함께 쑤는데, 이 단자를 '새알심'이라 합니다.
새알심의 의미는 아마도 새알의 부화(孵化)를 의미하는 새로운 변화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조선조 시대에는 동지(冬至)가 되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새 달력을 만들어 궁궐(宮闕)에 올렸습니다. 임금은 이를 황색 표지의 '황장력(黃粧曆)'과 백색 표지의 '백장력(白粧曆)' 등으로 분리해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옥새(玉璽)를 찍어 신하(臣下)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또한 각 관청(官廳)에서도 일정 수량의 책력(冊曆)을 나누어 받고, 각자 자신의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이 전래되어 서울 지방에서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풍속이 정착되는데, 이는 여름철에는 단오날 부채를 선물하고, 겨울철에는 동짓날 달력을 선물하는 풍속입니다. 궁궐의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겨울철 내내 사용하기 위해 계피, 후추, 설탕, 꿀 등을 쇠가죽과 함께 푹 고아 고약(膏藥)을 만들어 진상했는데, 이를 전약(煎藥)이라 합니다.
현대의 고약(膏藥)이 여기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동짓달 시식(時食),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서는 동짓달에는 겨울철 특유의 다양한 시절음식(時節飮食)들이 많습니다.
다소 신선한 음식을 보충하기 어려운 시기이기에 다양한 별미(別味)의 음식들이 전래되었고, 또한 많은 풍속들도 함께 어울러 집니다.
주로 동짓날 궁중(宮中)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士大夫) 집안에서도 청어(靑魚)를 사당(祠堂)에 올리는 청어 천신(薦新)의 풍속이 행해졌습니다.
이는 청어(靑魚)가 푸른빛을 내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음식을 조상(祖上)에 올리려는 후손(後孫)들의 정성어린 풍속입니다. 청어(靑魚)는 황해도 해주(海州)와 경상도 통영(統營)이 유명했는데, 청어(靑魚)를 실은 배가 한강(漢江)에 와 닿으면 생선 상인들이 거리를 누비며 청어 팔기를 합니다.
조선시대에 동짓달이 되면 제주(濟州) 목사(牧使)가 중앙으로 감귤(柑橘), 유자(柚子) 등을 진상(進上)하는데, 임금은 이를 치하(致賀)하는 의미에서 성균관(成均館)과 사학(四學)의 유생(儒生)들에게 과거(科擧)를 보고 귤(橘)을 나누어주는 것이 감제(柑製)입니다.
과거의 선발과정은 절일제(節日製)의 형식과 동일했습니다.
현대에 사계절 별미(別味) 음식으로 자리잡은 냉면(冷麵)은 본래 동짓달의 시절음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메밀국수를 무, 김치나 배추김치에 말아 돼지고기를 넣어 만드는데, 특히 잡채나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과 간장을 메밀국수에 넣은 것은 골동면(骨董麵)이라 합니다.
겨울철의 입맛을 돋우는 시절음식으로 수정과(水正果)를 들 수 있습니다.
계피와 생강을 달인 물에다 곶감을 담그고 잣을 띄워 먹는 것으로 현재 식혜(食醯)와 함께 전통음료의 대표 격으로 계승(繼承)되고 있습니다.
무로 담그는 김치 가운데 시원한 물김치가 동치미인데, 주로 무 뿌리가 비교적 작은 것으로 담습니다.
납일(臘日) - 납평(臘平) : 가평절(嘉平節), 臘日은 중국에서 시작된 풍속이지만 오행신앙(五行信仰)에 의해 시대와 나라마다 납일을 정하는 방식이 달라 동지(冬至) 후 세 번째 술일(戌日), 진일(辰日) 등으로 이어왔는데, 우리 나라는 조선시대에 와서 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에 해당하는 날을 납일(臘日)로 정하고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큰제사를 지냈습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오색(五色)으로 청제(靑帝)는 미랍(未臘)에 해당하니, 오행(五行)으로 목(木)에 해당하고 목(木)은 방위로 동(東)에 해당하기에 동방(東方)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미일(未日)로 정해졌다."라는 설(說)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년의 납일을 따져보면 양력(陽曆)으로는 서기 1999년 1월 19일이고, 음력(陰曆)으로는 무인년(戊寅年) 12월 2일{申未日}에 해당합니다.
臘(랍)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왼쪽 부분은 육(肉)변이고 오른쪽 부분은 '랍'의 발음으로 의미는 '백신(百神)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납일에 한 해 동안의 일이나 농사 결과를 하늘에 고하는 제사를 납향(臘享) 또는 납제(臘祭)라 합니다. 납향으로 인해 납일(臘日)의 명칭이 정해졌고, 12월을 납월(臘月)이라 불리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합니다.
국가에서는 이 날 새나 짐승을 잡아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공물(供物)로 바치고 제사를 지냈는데, 사맹삭(四猛朔;춘하추동의 각 첫 달인 1,4,7,10월의 삭일 제사)과 함께 5대제향(五大祭享)으로 중요시했고, 민가에서도 혹 제사를 지냈습니다. 또한 제향에 사용하는 제물(祭物)에 관련된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납향의 제물은 멧돼지와 토끼를 쓰는데, 조선조 후기 정조(正祖)대에 경기도 산골 군(郡)에서 국가에 헌상할 멧돼지를 잡기 위해 온 군민이 동원되는 폐단을 없애고자 정조 임금이 서울의 포수에게 명해 용문산(龍門山)이나 축령산(祝靈山) 등에서 직접 잡아 사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궁궐(宮闕)에서는 내의원(內醫院)에서 여러 종류의 환약(丸藥)을 지어 올리고 임금은 이를 신하들에게 하사(下賜)했는데, 이를 납약(臘藥) 또는 납제(臘劑)라고 합니다.
특히 심경(心經)의 열을 푸는 청심환(淸心丸)과 열을 내리는데 쓰는 안신환(安神丸), 곽란{한여름에 급격한 토사(吐瀉)를 일으키는 급성 병}을 다스리는데 쓰는 소합환(蘇合丸)이 가장 중요한 약이었습니다. 또한 정조(正祖)대{1790년}에는 소합환 보다 더욱 효과가 있다는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을 만들어 군졸(軍卒)들의 구급(救急)에 사용토록 했다고 합니다.
- 새잡이 : 납일에 잡는 짐승의 고기는 사람에게 모두 좋다고 하는데, 특히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고 하거나 병약(病弱)한 사람에게 좋다 해서 그물이나 총을 사용해서 참새를 잡습니다.
- 납설수(臘雪水) : 납일에 내린 눈을 녹여 그 물을 납설수(臘雪水)라 하는데, 약(藥)으로 쓰고 그 물에 수건을 적셔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납설수(臘雪水)는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고, 의류와 서적의 좀을 막을 수 있으며, 눈을 씻으면 안질(眼疾)을 막고 눈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 엿 고기 : 충청.호남지방에서는 납일에 엿을 고는 풍속이 있습니다.
당분(糖分)의 섭취를 위한 엿 고기는 주로 납일날 밤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 완성이 됩니다.
제석(除夕)- 제야(除夜) : 섣달 그믐 除夕은 한 해를 마감하는 날{除는 제거한다는 의미, 夕은 저녁}입니다.
그래서 1년간을 마무리하는 의미의 다양한 풍속들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결국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1년간 거래(去來)의 청산(淸算)을 이 날 끝내야 했기 때문에 외상이나 빚을 받기 위해 밤 늦도록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날 자정(子正)을 넘기면 정월 보름까지 독촉을 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제야(除夜)의 종(鐘)은 본래 각 절에서 108번을 치는 것에서 유래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와 전통(傳統)의 보전 차원에서 행해지는 서울 보신각(寶信閣)의 33번 타종(打鐘)도 본래 제석(除夕)에 행해졌기에, 양력(陽曆)으로 12월 31일에 행해지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묵은세배라고 하는 구세배(舊歲拜)는 그믐날 사당(祀堂)에 절을 하고, 가까운 친척을 찾아 뵙고 한 해 동안의 감사와 축원을 드리는 의미로 행해졌던 풍속입니다. 저녁 무렵부터 밤늦도록 초롱불을 든 구세배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미덕(美德). 아쉽게도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풍속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해를 지킨다'는 의미의 수세(守歲)는 '별세(別歲)', '해지킴'이라고도 하는데, 그믐날 밤에 다락, 마루, 방, 부엌, 곳간 등 집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혀놓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것입니다.
일설에는 경신일(庚申日)에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도교(道敎)의 풍속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고, 소동파(蘇東坡)의 기록에 의한 중국 촉(蜀)나라 지방의 풍속에서 연유한 것이라도 합니다.
이밖에 불을 밝혀 잡귀(雜鬼)를 막거나 부엌의 조왕신을 모시기 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섣달 그믐날은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합니다.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주로 윷놀이를 하거나 모여서 옛날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읽어 밤을 지냅니다. 간혹 어린아이가 잠이 들면 분이나 밀가루를 눈썹에 발라놓고 깨워서 놀려대곤 합니다.
섣달 그믐 무렵부터 정월 초(正月初)까지 행해지고, 또 단오(端午)나 한가위 때에도 행하는 부녀자들의 판자{板}를 뛰는{跳} 놀이{戱}인 널뛰기는 여자들의 놀이 문화에서 그네뛰기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활동성 있는 전통 명절 놀이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전승(傳承)되어오는 놀이로 알려진 널뛰기의 놀이 방법은 긴 널조각을 짚단 위에 걸쳐놓고 그 널빤지의 양끝에 마주 서서 뛰면서 서로 번갈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데, 몇 자정도 씩 뛰어 오르고, 힘이 빠져 지치기까지 하면서도 즐겁게 놀았습니다.
조선시대는 제석(除夕)에 궁궐에서 연종포(年終砲), 혹은 연종방포(年終放砲)라는 대포를 쏘면서 해를 마감했고,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벽온단(僻瘟丹)이라는 향(香)을 만들어 진상을 하는데, 임금은 설날 이른 아침에 그 향 한 심지를 피웁니다. 돌림병인 염병{瘟}을 물리친다는 벽온단의 처방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윤달 - 윤월(閏月), 윤삭(閏朔), 윤여(閏餘), 閏月은 일반적으로 전통 태음력(太陰曆)에서 19년 동안 7번의 윤달을 넣어 책력(冊曆)과 계절(季節)을 일치시켰는데, 명칭은 윤월(閏月), 윤삭(閏朔), 윤여(閏餘) 등으로 불립니다.
윤달은 일년 중 한 달이 가외로 더 있는 달이기에 모든 일에 부정(不淨)을 타거나 액(厄)이 끼이지 않는 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주로 집안의 수리나 이사(移徙)를 하기 도 하고, 특히 혼례(婚禮)를 올리는 날로 잡거나 집안 어른의 수의(壽衣)를 만들어 놓으면 좋다 하여 윤달에 많이 거행합니다. 전국의 큰 사찰(寺刹)에서는 예전부터 윤달에 부녀자들이 불탑(佛榻)에 돈을 놓고 불공(佛供)을 드리는데, 치성(致誠)을 드리면 죽은 후에 극락(極樂)에 간다고 믿어 윤달 내내 주로 부녀자들이 정성스럽게 불공을 드립니다. 중부 이남 지방에서는 윤달에 성(城)이 있는 마을 부녀자들이 성터에 올라가 성 줄기를 따라 도는 풍속(風俗)이 있는데, 이를 '성돌이또는 '성밟기'라고 합니다.
이 역시 불교(佛敎) 신앙(信仰)의 '탑돌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극락(極樂)으로 가고자 하는 염원(念願)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전라도 고창 지역에서는 '성돌기' 할 때 액(厄)을 물리치고 장수(長壽)한다는 의미에서 돌을 머리에 이고 돌기도 합니다.
절기복(節期服)
① 춘기복(春期服)
正月 元旦은 한해의 첫날이므로 歲首라고 하며 보통 「설날」이라고 한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깨끗이 세수를 하고 준비해 놓은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새옷을 설빔[歲庇廕] 이라고 하여 男女老少 모두 설빔을 입는데, 가정 형편에 따라 진솔옷을 지을 형편이 못 되는 집에서는 입던 옷이라도 깨끗이 빨아 푸새하여 다듬이질해서 새로 궤매어 입는다.
설날에는 모두 이러한 설빔을 입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歲拜하고 歲饌을 대접받는다. 男子 아이들은 「幼年服」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바지저고리 위에 까치두루마기나 두루마기를 입히고 그 위에 戰服을 더 입히기도 하고 복건을 씌운다.
또 바지와 색동저고리에 조끼를 입히고 외출시에 두루마기를 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갖추어 입으려면 바지 위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조끼와 마고자를 입고 까치두루마기, 전복을 차려입고 복건을 쓴다.
이렇게 모두 갖추어 입으면 무겁고 힘들어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한두 가지를 생략해서 입히는 경우도 많다. 女子 아이들의 설빔으로는 치마․ 저고리에 배자를 입히고 外出時 두루마기를 그 위에 덧입힌다.
이때의 옷감은 보통 비단이며 연두색 저고리나 노랑색 저고리에 빨강색 치마를 받쳐 입힌다. 설빔으로 저고리는 보통 색동저고리를 많이 입히며, 깃과 고름․끝동에 금박을 박아 화려하게 입힌다. 成人 男子의 경우 바지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마고자를 입으며, 그 위에 두루마기를 입는다.
두루마기는 外出時에만 입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서도 손님을 맞이할 때라든가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서는 두루마기를 입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는 집안에서 지낼 때는 마고자나 조끼만으로도 크게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록 옷차림 뿐 아니라 모든 生活의 규범이 간편해진 때문일 것이다. 宮中에서는 正朝와 誕日을 가장 큰 名日로 쳤는데 順和宮 帖草를 보면 後宮의 服飾은 다음과 같다.
초록색 織金唐衣에 紅色膝襴치마를 입고 남색의 스란 웃치마를 입는다.
세 줄 노리개를 차고 큰머리․七寶를 장식하고 眞珠주머니를 찬다.
正月의 보름 名節에는 衣服의 옷감이 공단으로 바뀌는 外에는모두 같다.
2月 초일에는 초록색 공단 당고의를 입고 3月 望日에는 초록 항라 당저고리를 입는다. 4月 초파일에는 초록색 광사 당저고리를 입는다.
廣紗란 일반적으로 生水를 말한다.
② 하기복(夏期服)
5月 端午날은 戍衣(수의), 또는 天中節이라 부른다.
맛있는 음식을 차리어 端午茶禮를 지내고 새옷을 갈아입고 즐겁게 지낸다. 단오날에는 菖蒲(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 윤기가 있고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으며 소담하다고 해서 男女가 모두 그렇게 한다.
특히 부녀자는 더욱 정성스레 머리를 감는다.
부녀자들은 菖蒲의 뿌리를 잘라 머리의 비녀를 한다.
비녀에 壽․福 두 글자를 새기고 혹은 인주나 臙脂(연지)로 붉게 칠하는 수도 있다. 붉은색은 陽色으로 귀신을 쫓는 기능을 가졌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포 탕을 만들 때에는 창포만을 삶기도 하고 쑥을 넣어서 같이 삶기도 한다. 端午의 辟邪로 호리병이나 작은 인형을 만들어 허리띠에 차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疾疫을 쫓는다고 한다. 宮中에서는 5月 端午에 후궁들이 초록색 광사 깎은 당한삼, 사(紗) 웃치마를 입는다.
「깎은 당한삼」이란 홑당의를 말하는 것으로 솔기가 깎은 듯이 가늘다는 뜻이다. 端午가 지나 伏中에는 陰曆 5月 10日 頃이면 宮中에서는 妃嬪을 위시하여 나인들이 흰옷을 입는다. 이것은 「흰다」라고 한다.
③ 추기복(秋期服)
秋夕날이 되면 여아들은 색동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남아들은 바지 저고리에 조끼와 마고자를 입는데, 어린아이들은 색동저고리에 보라색이나 남색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조끼와 마고자를 입기도 한다. 어른들도 모두 새옷으로 갈아입고 먼 곳에 갔던 사람들도 모두 모여 伐草하고 성묘한다.
宮中에서는 8月 10日은 色衣襨를 입는데 윗전인 正妃가 色衣襨를 입으면 나인들은 따라서 입는다.
즉 端午前으로 환원해서 초록 광사 당의를 입는 것이다.
8月 20日 후에 秋氣가 돌면 겹唐衣를 입는다. 9月에 亢羅(항라) 唐저고리를 입을 때까지는 날씨를 보아 겹으로 된 紗 겉치마를 입기도 한다.
陰曆 9月 20日 頃에 공단 당저고리를 입는데 이것은 홑저고리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日勢를 보아 아직 더우면 항라를 입어도 좋다.
④ 동기복(冬期服)
겨울이 되면 추위를 막기 위하여 솜저고리를 입는데, 솜을 두어 누빈 누비저고리는 약간 추워지기 시작할 때 입으며, 아주 추워지면 솜을 두껍게 둔 솜저고리를 입는다. 옷감은 명주나 비단을 주로 쓴다.
바지도 솜을 두어 누비건마 누비지 않은 솜바지를 입는다.
치마도 솜 둔 누비치마나 솜치마를 입었으나 차츰 韓末에는 솜치마가 사라지고 겹치마를 입는 것이 보통이다.
근래에 와서 메리야스로 짠 내복이 나온 後에는 韓服의 솜저고리나 솜 둔 누비저고리나 솜바지 등까지도 차츰 없어졌다. 宮中에서는 음력 10月이면 초겨울이므로 초록 공단 겹당의에 비단 겉치마를 입는다. 冬至날에는 초록색 金壽․福字 당저고리․大襴치마․비단 겉치마․세줄 노리개를 찬다. 正朝에는 겉치마도 스란치마였는데, 여기에서는 겉치마가 비단으로 된 치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