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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1.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마태복음 6장 9-13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람이 왜 기도하는가? 이런 질문 앞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왜 밤에만 우는가? 독수리는 왜 창공을 저렇게 나는가? 라고 묻는 질문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본분입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세력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종교심을 빼앗아 갈 세력이 없습니다.
어떤 인류에게도 기도 없이 살라는 것은 마치 공기 없이 살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세 가지 방향입니다.
교회의 성가대가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거니와 찬송 중에 거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영원히 경배받으실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찬송으로 경배합니다.
찬송으로 경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경외합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 말씀을 순종함에 있습니다.
또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신리를 둡니다.
말이 아니라 삶 전체를 내가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린다는 고백입니다.
기도는 사람의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1장에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앞서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를 또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돌아오셨을 때에 그 제자가 말하기를 "주여, 세례 요한처럼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거룩한 삶의 기초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권능 있는 삶의 기초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순종의 삶 그 자체가 기도인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권능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지 않고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거룩한 삶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만듭니다.
기도는 우리의 발걸음을 거룩으로 향하여 달리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기도하는 무릎 없이 거룩이란 단어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2천 년을 내려오면서 의미 없는 군중의 소리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배가 끝날 때, 자기의 신앙고백 없이 그냥 의미 없이 외워지는 예배마감 형식의 한 주문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럿이 모여서 어떤 모임을 끝낼 때, 내가 가르친 기도를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내 인격 전체를 이 기도에 실으라고 하셨습니다.
내 영혼 전체로 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 이 시간 이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중요한 것을 몇 가지 배우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르칩니다.
그 관계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그냥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의 어린아이라고 가르칩니다.
자녀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시여" 이렇게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창공중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서의 우리,
"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셋째,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임을 가르칩니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말은 '다스려 주옵소서' 라는 뜻이 있습니다.
넷째, 주인과 종인 것을 가르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주님의 뜻을 나를 통해서 이루시옵소서 라는 의미입니다.
종과 주인입니다.
다섯째, 은혜의 공급자이신 하나님과 은혜를 받아야 하는 나를 가르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 없이 우리는 일분 일초도 살 수가 없습니다.
여섯째, 구세주인 주님과 죄인인 나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내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회사에서 아무개 국장, 또 관공서에서 무슨 과장, 내가 대학에서 박사가 아니라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죄악에서 구속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일곱째, 나의 삶의 인도자이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순례길을 다니는 순례자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순례길 가는 인생길 참 시험을 많이 받습니다.
내 본향에 갈 때까지 그 시험은 끝나지 않습니다.
여덟째, 구원자이신 우리 하나님과 포로인 나, 그분의 핏값으로 나르 가르쳐 줍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주기도문은 그냥 의미 없이 해버리는 예배의 끝맺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뵤여주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준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첫째, 비 이기적인 마음, 이것이 기도의 중요한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이기적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아버지는 이기적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자식으로서의 마음을 기도할 때마다 가져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은총의 보호하심을 입은, 그래서 "아버지..." 라고 불러야 합니다.
내가 자식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를적마다 내가 자식이라는 확신에 불타야 합니다.
셋째, 경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의 바른 자세는 마음입니다.
경배의 마음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넷째, 충성된 마음이 기도에 요구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다섯째, 복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해놓고 불순종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여섯째, 의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ㅘㅂ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아무리 쌀이 떨어져도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확신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곱째,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기도할 때마다 내 모든 악이, 잘못이 늘 깨끗이 씻겨져야 합니다.
회개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나는 늘 너어집니다. 약합니다"
침 우리는 약한 존재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덟째,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나라가 영원히 아버지께 있습니다" 하는 확신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간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든지 간에, 무슨 일이 일에나든지 간에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최후의 주장자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아홉째, 승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권세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입니다.
참된 권세,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명령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 참된 권세, 저 거대한 태양을 떠오르게 하신 권세, "우주야,
운행하라!" 하신 한 말씀에 저 광활한 우주의 질서가 단 한 번의 충돌이 없이 그대로 지탱하고 있는 무서운 권세가 하나님 아버지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 60만 대도 못 되는 자동차에다 사람 하나씩 다 붙여도 하루에 수십 건씩 교통사고가 나는데, 이 거대한 우주가 수억 천만 개의 별이 한 번이라도 충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참된 권세는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열째,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주기도문 이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어떤 관계인가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이 기도는 우리가 어떤 영적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이 기도는 모든 기도의 모범입니다.
기도의 순서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내 필요를 항상 먼저 구하는 습성( 습관이 되어 버린 성질 )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여섯 가지를 구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는 하나님의 것을 구했고 그리고 세 가지는 인간의 필요를 구했는데 이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쉽게, 급해서 내 필요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내 필요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하나님이 해답이십니다.
내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풍성하신 하나님이 문제입니다.
항상 우리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려고 듭니다.
여러분, 탕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주려 죽게 됐습니다.
이 탕자에 있어서 최대의 문제 해답은 무엇입니까?
신발 입니까, 먹을 음식 입니까, 옷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아버지이십니다.
탕자의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은 그의 아버지입니다.
또 더 많은 재산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문제해답의 전부인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할 때마다 잊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과 '오직 하나님 만이 내 문제의 완전한 해답'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조그마한 내 필요에만, 내 적은 부족에만 급급해 버리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순서는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가장 좋은 모범입니다.
이 기도는 간결합니다.
참으로 간단합니다.
영어로는 66단어밖에 안 되고 한글로는 그나마 50단어밖에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짤막한 주기도문 안에 기도의 전부를 다 넣으셨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서적이 있는데 그중에 80%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은 간단하게 13절로 사랑의 완전성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짧습니다.
그러나 분명합니다.
그리고 완전합니다.
우리가 간결하게 말하는 비결도 하나님께 배워야 하겠습니다.
낭비한 언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짧다고 약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간단하지만 근본적이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우리의 일용할 양식, 사죄, 구출, 보호 이런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넘치는 확신, 감사와 찬송, 기도의 모범중에 모범입니다.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 첫번째 문단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보여주는 세 가지 부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
둘째, 아버지 하나님.
셋째, 우리 하나님.
간단한 말입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다 포함된 말입니다.
첫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아무리 도달( 목적한 곳이나 수준에 다다름 )하려고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계시는 초절
(다른 것에 비하여 유별나게 뛰어남 ,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하신 하나님,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그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인간 같지 않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원성, 영원하심입니다.
여러분! 정권도 지나갈 것입니다.
어떤 사상도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 영원을 우리가 아무리 좇아가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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