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서 고3 학생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수능 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과 글이 여기저기 뿌려지고 있지만 수능도 안 보고 대학도 안 가는 저에게 앞으로의 삶을 응원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담임교사와 상담하면서 앞으로 뭘 할거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대학을 가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삶에 대한 불안이 더 커졌던 이유는 학교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 삶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 대부분이 대학에 가고, 교사들도 대학을 가지 않는 삶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저 기술을 배우라고 하거나 고졸 성공 신화를 보여주면서 응원할 뿐 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대학에 가는 삶뿐만 아니라 사람의 다양한 삶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학교는 대학에 가야 되는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으며 대학을 가는 사람들만 응원했고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응원도 받지 못한 채 묻히고 있었습니다. 결국 묻힌 사람들의 존재는 점점 지워지고 모든 학생들은 대학에 간다는 하나의 믿음만 남았고, 그 믿음은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지금까지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희는 더 이상 학교에서, 사회에서 묻히고 싶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간다는 믿음을 깨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응원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학교는 대학이라는 한 가지 길이 아닌 다양한 삶을 얘기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알 (2018대학입시거부선언자 /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하는 19살 탈학교 청소년 김나연입니다.
저는 학교가 싫어서 자퇴를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에 있으면 저의 존재가 지워질 것 같아서 자퇴를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저의 존재를 오직 성적만으로 평가했습니다. 1등급 한우나 3등급 돼지고기처럼 사람 앞에 등급을 붙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등급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자 그 사람의 미래였고. 그 안에서 제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싫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힘듭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런 것들이 서로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릴 때부터 학생들에게 하나의 목표를 강요합니다. 어떤 것이 하고 싶더라도 ‘대학을 가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낙오자이자 패배자이며, 노력하지 않았기에 차별받아도 당연한 존재가 됩니다. 이 결론이 하나의 판가름으로 결정됩니다.
아직까지 저는 불안합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해서 두렵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정한 목표를 따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학교를 나온 저에게도 사람들은 ‘검정고시 잘 보면 대학에 더 쉽게 갈 수 있어.’, ‘너 대학 잘 가려고 자퇴한 거지?’ 라고 말합니다.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과 나와 우리를 위해서 여기에 서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존중받아야할 존재이기에 잔혹한 입시경쟁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저의 전부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느리게 걷겠습니다. 그리고 느리게 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두고두고 보여주겠습니다.
김나연 (2018대학입시거부선언자 / 19살 탈학교청소년)
안녕하세요. 저는 20살 성윤서 입니다. 저는 올해 대학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 대학거부를 준비하면서 나는 왜 대학에 가지 않았는지 고민해보았습니다. 그 중 한 이유는 대학 가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 입니다.
고2 때 친구에게 너는 왜 대학에 가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라고 했습니다. 취업하기 위해서. 그러면서 제게, 대학에 안가면 무얼 하며 살 거냐고 했습니다. 대학에 가는 것이 취업하기 위해서라면 대학에 안 갈 생각을 하는 저는 현실적이지 못한 걸까요? 그렇다면 현실을 생각해서 대학에 가야하는 것 아닐까요?
같은 해에 아는 어른들에게 대학에 안가는 삶을 물어보자 한 선생님은 제게 대학에 가지 않는다면 하루살이로 알바해서 지낼 거냐고 되물었습니다. 하루살이가 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은 하루살이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 사회에서 누군 하루살이 취급을 받고 누군 아닌 것이 의문스럽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손바닥 뒤집듯이 누군 죽고 누군 살고. 저를 포함한 대다수가 그렇지 않은가요? 올라가는 등급, 내려가는 점수에 살고 죽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하루살이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시간들이 되려 다음 날 죽을 지 살지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면 그것들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대학이 필요하면 대학에 가라. 맞는 말입니다. 저는 결국 대학 원서를 넣고 작년 이맘 때쯤 수능를 치뤘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권유 받았을 때 저는 정말 대학이 필요했을까요. 1년이라도 뒤쳐질까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대학이었을까요?
입시경쟁을 멈추자는 말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회의 문제입니다. 또 10대만의 일이 아닙니다. 모두의 일입니다.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성윤서 (2018대학입시거부선언자 / 20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