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기 교수가 쓴 '최명길 평전' 책을 보고싶었지만 지금까지 시간이 없어서 못보고 있었다.난중일기 등장인물을 연구하면서, 작년과 올해는 '명량해전 참전자 연구'라는 자료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한명기 교수가 '최명길의 처가'를 언급했는지 궁금했었다.내가 아는 작은 부분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오늘 책을 사서 확인해보니, 최명길의 처가에 대한 기술이 있지만 다른 한편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다.최명길의 처가는 둘이다. 첫번째 장인이 인동장씨 장만(張晩)이고 둘째 장인이 양천허씨 허린(許嶙)이다. 이 두번째 부인의 친정인 양천허씨가의 관련 내용은 없다.
최명길의 두번째 처가에 대한 기술이 없는데 '최명길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최명길의 처가 - 허린(許嶙)의 가계와 문중>
처고조부는 양천허씨 허구(許昫)이고 처증조부가 허기(許芑), 처조부는 허식(許寔)이고 처부는 허린(許嶙)입니다. 처조모는 남응정(南應井)의 딸 의령남씨이고 장모는 권순(權淳)의 딸 안동권씨입니다.
허구의 동생이 초당(草堂) 허엽(許曄)인데, 허성(許筬)·허봉(許篈)·허균(許筠)·허난설헌·박순원(朴舜元)·우성전(禹性傳) 6남매의 부친이죠. 강릉 초당두부는 초당 선생이 즐겨먹던 두부음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허엽의 호를 따서 초당동명도 붙였죠.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권율의 도원수부를 찾아가던 백의종군 때 급히 비를 피하러 들어가서 하룻밤을 유숙한 박호원의 농노의 집이 있습니다. 아주 불편하게 잤다고 기록해놨습니다.그래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수십채있는 남사예담촌의 박호원의 농노가는 절대아닙니다.남사예담촌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외진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박호원(朴好元)은 호가 송월당(松月堂)이고 판서를 지낸 분인데, 위 허엽의 사위 박순원의 형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년전에 1589년 '기축옥사(己丑獄事)' 같은 이상한 옥사가 일어나서 전국의 많은 선비들이 모함을 받았고, 수많은 동인 선비들이 유배를 가거나 혹은 죽습니다. 혹설에는 1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때 光州의 광산이씨 이중호(李仲虎)의 아들 이발(李潑)은 가족 전체가 화를 입습니다. 위관 정철은 이발의 노모와 어린 자녀들까지 찢어죽이죠. 이때 죽은 이발의 처남이 박호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어도 이순신은 알고 있었겠죠. 제가 전국의 300여 문중의 족보를 봤는데, 광산이씨 이발의 족보와 밀양박씨 박호원가의 족보,양천허씨가의 족보를 연결시켜보니 정말로 놀라움을 금치못했습니다. 관련된 분들 학술회의나 역사자료, 기타 자료들에서 전혀 단 한번도 언급되지 못한 내용들이죠. 이렇게 족보를 연결시켜서 보면 많은 역사자료가 나옵니다.
이발의 부친 이중호는 묘지명이 보물로 지정된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의 현손이고, 해남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증조부인 윤구(尹衢)의 사위이죠. 즉 윤선도의 대고모부입니다. 그래서 윤선도는 가문의 영향을 받아 남인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하는 거죠.
최명길의 처고모부가 삼학사의 한분인 홍익한(洪翼漢)입니다.이것도 언급이 안된 것으로 봅니다. 최명길의 처조부인 허식(許寔)의 동생들이 허주(許宙).허완(許完) 형제가 있습니다.홍익한의 처숙부들입니다. 허주는 이순신의 자형 변기(卞騏)의 사위이고 명량과 노량해전에 참전했죠. 변기의 아들이 변유헌(卞有憲,이순신의 생질)인데 난중일기에 8회의 기록이 있습니다.
허주의 동생 허완(許完)은 1598년 11월 남평현감일때 당진출신 나주목사 남유(南瑜)와 함께 노량해전에 참전했고, 그후 전라우수사를 3번이나 역임했으며, 노량해전부터 30년 뒤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로서 병자호란(丙子胡亂) 쌍령전투(雙嶺戰鬪)에서 전사해서 공신이 됩니다만...(강릉에서 허균과 허난설헌에 대한 학술회의를 20회나 진행했지만 임진왜란 때 활약한 ,난중일기에 기록된 허주와 허완 형제와 관련된 문중과 가문의 역사는 짚은 적이 없습니다.사돈들도 명문가인데 후손들과 교류가 전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혼맥을 짚어놨는지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1.그런데 책을 사서 확인해보니, 쌍령전투(雙嶺戰鬪=광교산전투)와 이때 전사한 경상좌병사 허완(許完)은 중요한 내용인데 없더군요.
2.또한 이 책을 슬쩍보니 인물에 대한 각주가 전혀없더군요.아쉽습니다. 인물연구 중요합니다. 홍익한과 최명길,허완 등의 혼맥관계도 정말 중요합니다. 처부와 처조부, 동서와 처남,조카와 종조부,이모부와 이종사촌, 고모부와 고종사촌 등등 혼맥을 모르면 인물연구는 절반이 없다고 봐야합니다.
3.남유의 아들이 이책에 등장하는 남이흥(南以興)장군입니다. 1627년 정묘호란때 '안주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공신으로 책록됩니다. 예를 들어 "남이흥의 부친은 이순신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나주목사 남유이다." 이란 각주하나가 있는지 없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4.평전에 언급된 류효걸(柳孝傑,유효걸)은 류형(柳珩)의 제2자입니다. 류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막하에서 해남현감으로 명량과 노량해전 등에 참전하였고, 나중에 5代 통제사가 됩니다. 류형의 종제(류효걸의 당숙)가류림(柳琳,유림)인데병자호란 때 조선군이 유일하게 승전한 전투인'김화전투(金化戰鬪)'의 주인공입니다. 혹시 언급이 있을까하고 찾아봤지만 류효걸과 류림의 자료에 이러한 내용이 없고, '김화전투'도 언급이 없더군요. 유림은 29대와 32대 통제사도 역임합니다만...
5.이순신과 함께 활동한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의 매제인 조한영(曺漢英)은 이억기의 활동 시대와 조금 늦는데 아마도 서녀 사위인 것으로 추정한다(창녕조씨 족보와 전주이씨 족보를 확인해야 한다). 조문수(曺文秀)의 아들인 회곡(晦谷) 조한영(曺漢英)은 인조 때 배청파(排淸派)로 지목되어 김상헌(金尙憲)·최명길(崔鳴吉) 등과 함께 심양(瀋陽)까지 잡혀갔다가 돌아오는 고초를 겪었다.☞그런데 최명길 평전에는 조한영이 없다. 즉 최명길과 함께 활동한 중요한 인물이 누락된 것이다.
6.유림(류림,柳琳) 장군은 병자호란 때 유일하게 승전했다는 '김화대첩(金化大捷)' 또는'김화 백전 전투(金化栢田戰鬪)'의 주인공으로 평안도병사(平安道兵使)였습니다. 유림 장군의 김화 백전 전투는 책에서 언급이 없더군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전투라고 사료됩니다만, 우리가 몰라도 될 전쟁사료인지요?
한명기 교수님! 다음에 재판 낼때 인물각주를 넣으면 좋겠습니다.
6년전 2017년에 산청에 있는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치러진 남명 조식 선생 학술회의에서 '이순신과 함께한 남명학파 인물들' 자료를 발표한 것이 저입니다. 그리고 2년전에 나주 의병 학술회의에서 다시 만나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