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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세계
새란 무엇인가?
생물의 진화론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억 9000만 년 전에 새는 파충류(爬蟲類)에서 진화하였다. 파충류와 새의 중간 형태인 시조새의 화석이 1861년에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의 졸른호펜의 채석장에서 발견되었다. 이 화석으로 미루어 보면 시조새는 몸길이 40cm 정도이며 날개 끝에는 발톱이 달린 3개의 발가락이 붙어 있다. 이 시조새는 현재의 조류와는 달리 자유로이 날 수는 없고 글라이더처럼 공중을 활강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시조새가 진화하여 오늘날에는 약 9천 종의 새가 숲을 비롯하여 암벽, 사막은 물론 도시의 한 복판에서도 살고 있다.
새는 다른 동물과 달리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깃털을 가지고 있다. 깃털은 파충류의 비늘이 변형된 것으로서 가볍고 강하며 보온과 방수 기능이 있다. 둘째, 몸이 너무 무겁거나 날 필요가 없는 몇몇 종을 제외하고 모든 새는 하늘을 날 수 있다. 날개는 파충류 앞다리가 변해서 된 것인데 날개깃을 이용하여 새는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날기에 유리하도록 몸은 유선형이며 뛰어난 시력과 가벼운 뼈를 지녔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기 위해서는 뛰어난 시력이 필요하다. 새는 머리 무게의 15%나 되는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으며 빠른 판단을 내림으로써 충돌을 피한다. 몸이 무거우면 날아다닐 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므로 새의 뼈는 속이 비어 있고 내장은 짧다. 가장 무거운 새는 큰고니로서 최대 14kg의 몸무게를 가진다. 큰고니보다 훨씬 몸이 무거운 타조는 나는 것을 포기하고 다리를 발달시켰다. 네째. 후손을 위해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는다. 묵은 둥지는 벌레나 균이 번식하기 쉬우므로 대부분 매년 새로 짓거나 옛날 둥지를 새로이 보수하여 사용한다. 알은 어미가 키울 수 있을 만큼 낳아 품는데 독수리는 1개, 오리류는 15개 안팎의 알을 낳는다. 다섯째.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피해 먼 거리를 이동한다. 도요새는 시베리아 북부에서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4,000km 이상을 매년 왕복하며 생활한다. 조류학자들이 실험한 결과 새들은 밤에 별자리를 나침반으로 삼아 먼 거리를 이동한다고 한다.
새는 크게 철새와 텃새로 나눈다. 봄 하늘을 날며 아름다운 소리로 우는 뻐꾸기 그리고 제비, 두루미, 기러기 등은 모두 철새로서 한동안 눈에 띄다가 남쪽으로 이동을 한다.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새는 까치, 참새, 비둘기 종류가 대표적인 텃새이다. 철새라고 해서 함부로 왔다갔다 하지는 않는다. 매년 정확한 시기에 날아왔다가 정확한 시기에 날아간다고 한다. 이당 저당으로 당적을 바꿔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철새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며, 철새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의 수난
환경주의의 효시가 되는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이 나온 것은 1962년으로서 그 당시 전 세계는 풍요로운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제1장은 ‘내일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미국 중부지역에 있는 한 마을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이상한 정적이 그곳에 감돌았습니다. 그처럼 많았던 새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태에 대해 당황하고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들에게 모이를 주던 뒤뜰도 황폐해졌습니다. 어쩌다 발견되는 몇 마리 안 되는 작은 새들은 빈사상태로 몸을 심하게 떨었고 날지도 못했습니다. 생명의 소리가 없는 침묵의 봄이었습니다. 한 때 떠오르는 해와 함께 들려왔던 종달새, 개똥지바뀌, 비둘기, 굴뚝새 등 수많은 새들의 지저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무거운 침묵만이 벌판과 숲, 소택지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새들은 왜 사라졌을까? 저자인 카슨(Carson) 여사가 밝힌 원인은 농약 때문이었다. 2차대전 이후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하여 단일 경작을 하게 되었다. 단일경작을 하게 되자 해충의 피해가 심해지고, 해충을 죽이기 위해서 농약을 대량으로 살포하기 시작하였다. 작물 수확량은 늘어나고 사람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엉뚱하게도 곤충을 잡아먹는 새가 수난을 당하게 된 것이다.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식물을 먹는 일차소비자인 곤충은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한 쌍의 파리가 낳는 알이 모두 부화되고 살아남아 계속 번식한다면 7개월이 지나 파리 떼는 지구 크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곤충의 천적이 새이다. 새가 곤충의 애벌레나 성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에서 곤충의 수는 통제되고, 나무와 풀은 곤충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제비는 하루에 100번 정도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다 준다고 한다. 새끼가 어릴 때에는 모기나 하루살이 따위의 작은 벌레를 잡아다 침을 발라 입에 넣어 준다. 조금 자라면 등에나 잠자리를 잡아서 그대로 준다고 한다. 새들은 대부분 먹이사슬의 최종소비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가 사라진다는 것은 하부 생태계에 교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계에서 새가 사라지면 아무리 농약을 뿌려도 농업과 임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농약이 없던 시절에 해충은 천적인 새에 의하여 통제되었는데, 새가 줄어들면 인간과 해충과의 싸움이 더욱 힘겨워질 것이다.
이로운 새 - 제비
제비는 예로부터 9월 9일(음력) 중앙절에 강남에 갔다가 3월 3일(음력) 삼짇날 돌아온다고 해서 날이 겹치는 양수날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조라고 여겼다. 이러한 제비의 이름을 차용한 제비꽃은 제비가 돌아오는 때와 이 식물이 꽃피는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한 해에 약 500만 마리의 제비가 날아와 2500만 마리의 새끼를 낳고, 약 2000억 마리의 해충을 잡아먹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이로운 새인 제비가 날로 줄어들고 있으며 전년에 살던 곳에 돌아오는 비율도 격감하고 있다. 한 표본조사를 보면 전년에 살던 곳에 다시 돌아오는 비율인 귀소율은 어미는 약 47%, 새끼는 16%, 암수 부부는 10% 미만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제비는 항해 속도도 조류 중에서 가장 빠르고 항속 거리도 제일 긴 철새인데, 도중에 추락해 죽는 제비가 늘고 있다. 제비는 섭씨 9도의 등온선을 따라 이동하는데, 이러한 온도 감각에 이상이 생겨 중국의 따뜻한 지방인 강남에 제철에 못 돌아가는 낙오자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것은 제비가 농약에 오염된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농약오염으로 인해 제비에게 독특한 생체 적응력, 즉 바이오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다. 설화 속의 놀부는 제비 한 마리의 다리를 분질러 놓았지만, 인간이 뿌린 농약은 제비 종족을 위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놀부가 받은 악과응보(惡果應報)는 어떠한 형태로 인간에게 재현될 지 걱정이 된다.
해로운 새로 변한 까치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다. 동구 밖 나무 가지에서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올 징조라는 것이다. 그만큼 까치는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이고 인간에게 매우 친근한 새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번 칠월 칠석 날 만날 때에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만드는 다리가 오작교이다. 까치는 작침(鵲枕)이라는 보물을 가져다 주는 새이기도 한다. 단오날 까치집을 뒤지면 조그마한 옥돌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작침이라고 한다. 작침은 사내가 몸에 지니고 다니면 마음에 둔 여인이 스스로 낭자를 풀고, 부인이 지니고 다니면 사나이가 잠 못 이룬다는 사랑의 묘약이다. 단란한 집을 까치집이라고 하고 불화한 집을 꾀꼬리집이라고 한다. 까치집은 나무토막을 낱낱이 제가 물어다 지어올린 집이기에 단란하고, 꾀꼬리집은 남의 집을 훔쳐 제 집을 삼기에 불안하고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식량을 대랑으로 생산하기 위해 농약을 뿌리게 되면서 까치가 잡아먹는 벌레와 곤충이 줄어들게 되자 까치는 농사지은 과일을 먹이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출하기를 앞둔 포도나 배를 파먹는 까치는 과수 농가에게는 해로운 새이다. 배의 주산지인 전남 나주에서는 매년 까치로 인한 피해액이 연간 20억 원 대로 추정되고 있다. 까치 퇴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으나 영리한 까치를 몰아내지를 못하고 있다. 카바이드를 이용한 폭음과 과수원에 매단 스피커의 소음은 까치에게는 너무 익숙해진 구식 방법이지만 아직도 상당수 농가가 이를 이용하고 있다. 망사 주머니에 냄새가 고약한 좀약이나 나프탈렌, 목초액 등도 걸어놓지만 까치는 며칠 뒤면 곧 적응력이 생겨 별로 효과가 없다. 피라미드 모양의 반사거울과 반짝이 줄, 과수원 곳곳에 까치 사체를 매달아 놓기 등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효과는 역시 신통치 않다. 결국에는 공기총을 이용하여 까치를 쏘아 죽이는 살벌한 방법까지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농촌에서 배척을 받은 까치는 도시로 진출하여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전신주나 고압 철탑에 짓는 까치집은 정전사고의 원인이 되어 한국전력회사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까치로 인해 5분 이상 정전이 되는 건수는 매년 50~60건으로 보고되고 있다. 까치가 둥지를 지을 때 나뭇가지 외에 철사, 우산대 조각, 철근조각 같은 쇠붙이를 물어다 쓰고, 이러한 조각들이 전선과 접촉해 정전사고를 일으킨다고 한다.
까치에 대한 서양인의 인식은 대체로 좋지 않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에 모든 새들이 모여 상복을 입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유독 까치만이 상복입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또한 까치만이 노아의 방주에 타기를 거부했다는 전설이 있어서 기독교인의 눈 밖에 났던 새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까치가 귀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까치보다 까마귀가 친근한 새로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덕이 있는 새 - 갈매기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가 갈매기인데, 우리 조상들의 갈매기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갈매기는 3덕이 있다고 하여 과거시험에서 초시(初試)) 문제로 자주 출제되었다. 갈매기의 첫째 덕은, 사람의 숨은 마음을 살펴서 사특하면 가까이 오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고 한다. 갈매기와 친하다는 압구(狎鷗)는 부귀영화로부터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서울에 있는 압구정동은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동네인데, 집값이 매우 비싼 부자 동네이다.)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갈매기는 살아 움직이는 고기는 먹지 않고, 죽은 고기만 먹는다. 유럽에서 갈매기 때문에 어장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동물행동학의 창시자이며 1973년도 노벨상 수상자인 틴버겐(Tinbergen)의 갈매기 연구로 갈매기는 누명을 벗었다. 이처럼 불살생계를 지키는 자비가 갈매기의 두 번째 덕이다. 전통 시조에 “짝 잃은 갈매기 울어옌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갈매기는 암수 간에 금슬이 좋고 짝을 잃으면 암수 간에 따로 짝을 이루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정절이 갈매기의 세 번째 덕이다.
2007년 12월에 태안반도 앞 바다에서 크레인과 유조선의 충돌 사고로 인하여 엄청나게 넓은 바다와 모래사장이 오염되었다. TV 화면에서 기름 투성이가 되어 원망스러운 눈으로 쏘아보는 갈매기를 본 사람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충격과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의 실수로 엉뚱하게도 갈매기와 바다가 피해를 입고 말았다.
새와 함께 산다
<논어>의 술이편(述而篇)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자 조이불강 익불사숙 (子 釣而不綱 弋不射宿).” 풀이하면 공자는 낚시질은 했으나 그물질은 하지 않았고, 주살로 날아가는 새를 잡기는 했으나 둥지에 든 새는 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자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난하여 물고기와 새를 잡아야 했다. 공자는 낚시질은 했지만 촘촘한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지는 않았고, 나는 새는 잡았지만 둥지에 들어있는 새는 알이나 새끼를 품고 있기 때문에 차마 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동물을 배려하는 어진 마음은 유교를 통하여 조선 시대에 계속 이어져 왔다고 본다.
옛날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배고픈 독수리가 꿩을 잡아먹고자 쫒아가는데 궁지에 몰린 꿩이 나무꾼의 품으로 숨어들었다. 독수리가 나무꾼더러 꿩을 내놓으라고 하자 나무꾼은 살생해서는 안 된다면서 막무가내였다. 이에 독수리는 “지금 그 꿩을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인데, 내가 죽는 건 살생이 아니고 꿩 죽는 것만이 살생이냐?”고 대들었다. 독수리 말이 옳다고 생각한 나무꾼은 낫으로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을 적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권에 나온다. 이같은 불경 이야기가 동화로 구전되어 내려옴으로써, 날짐승과 들짐승을 살생하지 않고 오히려 먹이를 주어 공생하는 심성이 우리 국민의 마음 속 깊이 체질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에 명컬럼을 연재했던 이규태씨는 이러한 휴머니즘을 ‘조수(鳥獸)휴머니즘’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수휴머니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만큼 투철했던 민족도 드물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을 딸 때 나뭇가지 끝에 예닐곱 개의 감을 따지 않고 남겨두기 마련인데, 이를 까치밥이라고 했다. 날짐승이 와서 따 먹고 겨울에 죽지 않고 살아남으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러한 생태 친화적인 관습은 새와 사람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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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천시: 새와 나무/이준관
새는 나무가 좋다
잎피면.. 잎구경~
꽃피면.. 꽃구경~
새는 나무가 좋다
열매 열면.. 열매 구경~
단풍 들면.. 단풍 구경~
새는 나무가 좋아,
쉴새 없이 나무에서 노래부른다
쉴새 없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