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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백성의 삶 중에서 참으로 중요한 믿음에 대해서 모든 분들과 은혜를 나누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서 오는 구원을 온전히 누리게 하소서!
샬롬! 오늘은 구원의 파노라마 6번째 단계로 믿음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오직 믿음! 은 개신교의 너무나 중요한 모토입니다.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믿음에 대한 강조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참으로 많은 신앙의 부분을 믿음을 통해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소리쳐 외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의 실체에 대해선 정작 별로 관심도 연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올바른 내용을 파악도 못하고 믿음과 행함을 분리해서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라 외쳤습니다. 적어도 5백 년은 그렇게 개신교는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고 이 땅에도 그러한 주장을 펴는 개신교가 150년 전에 들어와서 검토도 없이 그대로 모든 목사 신학자 교인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개신교의 특징이라 하면서 천주교와는 다른 예수님을 더욱 올바로 믿고 성경의 더욱 올바로 이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그대로 우리는 수용을 했고 이는 캘빈과 루터에게서 비롯이 되었으며 이를 이제 우리는 과연 이런 내용이 성경적으로 올바른지 검토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무도 이를 검토하게 되었으니 이는 전적으로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이 됩니다.
캘빈과 루터의 당시 즉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에 천주교와 정교회 외에는 다른 기독교 종파가 없었습니다. 루터는 신부였고 독일인이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하게 되었으니 독일 말로 된 성경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성경을 읽을 수가 있던 사람은 제한이 되어 있었고 각국의 언어로 번역이 또 되어 있지도 않아서 일반인이 성경을 읽을 수도 없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루터가 들고 나온 것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였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으로 당시의 천주교의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공격했습니다. 죄의 사함을 면죄부를 통해서 가능하다 했던 천주교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이를 그대로 수용한 사람들이 캘빈을 비롯한 프로테스탄트이고 개신교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이 그렇게 강조한 내용들을 성경을 통해서 검증을 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지금의 개신교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성경의 올바른 내용과 어떻게 다른지 또 살펴볼 것인데 이는 한글만 아는 분들 그리고 영어를 조금만 아시는 분들은 모두가 정확하게 그 내용을 분별할 수가 있으니 이 진리를 외면치 마시고 올바른 내용의 믿음을 이해하시고 올바른 길로 가시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믿음을 정의와 대상, 그리고 그 생성과 기능 등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믿음은 그 정의를 히브리서 11장 1절에 있습니다. 옛날 믿음 생활을 잘 하시는 유명한 축구선수 차범근 선수의 등 번호가 11번이었는데 이렇게 암송을 하시면 됩니다.(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본래 모습이며 볼 수 없는 것들의 확실한 증거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하는 것들을 믿음을 통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될 일들에 대해서 믿음으로 그 일이 이루어짐을 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재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질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존재에 대해서 비록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우리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순종하며, 천국에 대해서도 실제로 존재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인식하는 오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정말로 실존하고 그리고 비록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될 일들에 대해서 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또 다른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에 대해 또 미래의 될 일에 대해서 인식과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 혹은 세계를 보게 하시고 또 그 세계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미리 알게 하셨는데 믿음이 없이는 이런 또 다른 차원의 일들과 세상에 대해서 알 수가 없으니 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고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말씀이다 하셨는데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7.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17.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믿음은 들어야 생기며 그 들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전도를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함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직접 예수님에 대한 설명을 바울 사도와 같이 하는 방법도 있고, 유명한 사영리를 통해서 하는 방법도 있으며, 그리고 성경책을 선물로 해서 읽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여하튼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전함으로 믿음이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도 이렇게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전함을 통해서 생겼습니다. 전도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고 성경의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고 믿음으로 상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믿음의 5단계로 파워포인트 제목을 정했는데 마치 믿음의 단계가 다섯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설명하는 말과 같으나 실상은 믿음 생활의 단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복음 즉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은 분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성경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아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게 산 자신의 모습이 잘못된 것이며 이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이 잘못된 길에서 떠나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를 가장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신의 과거의 사랑 없이 산 삶이 전부가 올바르지 않다고 고백함과 동시에 이제는 힘을 다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삶을 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경을 말씀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를 하신 분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 사람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 사람은 이제는 죄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에게 반드시 성령께서 오십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특별히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길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제가 설명한 믿음 생활의 단계인데 5단계로 표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이해를 해 주실 것을 부탁을 드립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이 내용이 있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아래 그림은 바울의 회개와 어거스틴의 회개의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으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실 때에 사셨습니다. 유대인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자신은 믿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 승천하신 뒤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유대교의 적으로 보고서 잡아 가두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눈이 멀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알던 죽은 예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고 자신의 모든 과거를 회개하고 아나니아를 통해서 예수님 이름의 세례와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구약의 약속된 메시아가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구약의 이해를 통해서 완벽하게 구약에서 약속하신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알게 되고 이제는 이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온 세상에서 최고가 되었고 신약의 많은 서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로 술 취함과 방탕에서 돌이켜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도록 부름받고 성령을 사모해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절차를 그대로 지켜서 성령을 선물로 받고 전도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가 있는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성장에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아래의 말씀을 모두 다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같이 성경을 보면서 이해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늘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믿음이냐 행위나 혹은 믿음이냐 율법이냐를 늘 우리는 설명하고자 했고 믿음과 행위를 분리를 했고 왜 그렇다면 성경에 야고보서와 로마서가 다르게 설명을 했느냐고 궁금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예 믿음이지 행위가 아니다라고 해서 믿음 생활만 잘 하면 구원을 받고 또 천국에도 갈 수가 있다고 주장을 하고, 또 율법으로 구원은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니 이제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율법을 배울 생각도 아니하고 가르칠 생각도 아니하고 율법의 내용에 대해서도 관심도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런 모습이 대부분의 개신교 국가의 주장이요, 한국의 개신교의 모습입니다. 글을 읽으시는 형제는 어디에 속해 있으며 어떤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를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 잘못이 있다면 비록 개신교의 대표적인 모토라 해도 신학이라 해도 또 500년을 변함없이 지켜왔다 해도 성경적으로 틀린다면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캘빈이나 루터가 보는 것과 달리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봄으로써 성경의 참된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올바로 알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참된 성경의 가르침 속으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같이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믿음의 부분은 과연 어떤 믿음이 의롭게 인정을 받는 믿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져와서 가르친 것은 절대로 틀린 점이 없는데 문제는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에 대해선 성경의 내용이 분명하게 증거를 하고 있는데 이를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이 외면으로 우리는 믿음이 행함과는 다른 어떤 내용이라고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조상으로 성경에 증거 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냥 오늘 믿는 믿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이 없는 그냥 마음의 믿음도 아님을 금방 누구나 알 수가 있는데 이렇게 로마서에 분명하게 기록이 된 내용을 우리는 500년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보시겠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로마서 4장 17절로부터 24절까지는 의롭게 되는 믿음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예로 설명을 하시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성경에 너무나 정확하게 어떤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니 누구도 이 내용을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선 의롭게 되는 시기가 분명하게 백세로 되어 있고 그리고 75세에 부름받아 25년을 한결같이 불가능한 약속을 믿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이런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고 우리도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될 것인데 그 믿음 역시 오늘 하루 믿는 믿음이 아니라 믿다가 안 믿다가 하는 믿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인정이 있을 때까지 한결같이 변함없이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9세에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완전한 행동을 하는 삶을 사라고 명령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의 내용같이 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이 들을 수가 있게 온전한 행동을 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이와 함께 또 같은 맥락의 말씀을 더욱 구체적으로 하십니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와 명령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믿음 하나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정의롭게 살도록 명령을 하시고 또 이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합니다. 반드시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다 인정을 받는 변치 않는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이렇게 살고 반드시 이렇게 믿어야 의롭다 인정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일이 아브라함의 의를 온 세상에 전파하고자 함도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야고보서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성경적으로 올바로 이해를 한다면 야고보서의 내용과 로마서의 내용이 절대로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절대로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 하나만으로 어떻게 살던 사람이 절대로 아님을 믿으시기 바라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믿음 하나만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위의 구절을 보면서 이제는 하박국서의 내용을 먼저 살펴서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로 가야 합니다. 이는 조금 시간이 걸리고 검토가 광범위하게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우선 이에 대해선 자세하게 조금 뒤에 알아보고,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과 로마서와 하박국서의 개요를 그림으로 간단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정리했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이신칭의를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의 예를 들었는데 아브라함의 삶을 보아야 그 내용을 올바로 알 수가 있기에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개략과 하박국서의 구조 그리고 다시 로마서의 내용을 16장을 도표로 설명을 했습니다. 먼저 1-8장을 교리 그리고 후반부의 9-16장까지 8장은 실천에 대한 내용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믿음 홀로 모든 것을 다 푸는 내용은 조금 성경을 잘 살펴보면 한곳도 없습니다. 이신칭의를 주장하신 바울 사도께서 9-16장까지 성도가 어떻게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그리고 신자끼리 살아야 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이 모든 내용이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 하나도 되는 일이 없는 내용이고 모두가 행동을 해야 되는 일들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행위가 아니고 믿음이다 하고 또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 할 때 그 의미와 한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 강조하면서 율법도 없애고 사랑의 행위도 없애서 마음대로 세상에서 살도록 하는 주장은 절대로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망치는 주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 일천만의 성도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믿고 실천을 하고 살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과 행위를 성경의 잘못된 이해로 없앤 한국의 기독교인의 모습은 한마디로 법이 없이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서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로 규정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법은 오직 헌법과 국법만 잘 배워서 지킬뿐입니다. 세상과 완전히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모르고 삽니다. 부자가 되는 일이 만 악의 시작이고 근본이라 했지만 모두가 부자가 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에 인용이 된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믿음에 대해서 본문을 영어로도 보면서 다시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위에서 설명의 반복입니다. 4장 22절의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처음 믿은 믿음에 대한 인정도 아니요, 마지막 믿음에 대한 인정도 아니요, 시간적으로 한결같이 변치 않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약 2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언제나 늘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인간적으로 절대로 불가능한 약속이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칭의가 되는 믿음임을 분명하게 설명을 하고 있으니 오늘 믿고 믿는 중에 있고 왔다 갔다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모두가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그렇게 설교를 하시면 큰 잘못을 행하시는 것이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믿는 모든 사람은 칭의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예를 드신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잘 믿어야 된다는 것이지 아브라함은 그렇게 잘 믿고 너는 그냥 대충 믿어도 의롭게 된다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임을 바로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믿는 이에게 칭의를 적용할 때 얼마나 조심을 해야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함께 로마서 1장 17절의 하박국서의 인용 부분을 다시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박국서 2장 4절에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이 있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이 구절은 하박국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박국에서 의인은 어떻하다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은 반드시 영문과같이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같이 다양한 버전으로 그 올바른 의미를 알아봅시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
(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다행히 하박국서는 3장으로 누구나 그 장별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고 그리고 2장 4절의 의미도 올바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냥 이 한 구절만 놓고 보면 특히 개역 개정의 경우는 의인은 믿음이 있기에 죽지 않고 생존한다라고 이해가 가능하기도 할 것 같지만 3가지 버전을 다 보고 또 1장과 연결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면 조금 다른 내용을 이 구절이 설명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모두가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개략적으로 전후 상황을 설명을 해 보면 하박국 선지는 약 기원전 607년 경에 예언을 했는데 이때는 북 이스라엘이 망하고 약 100년이 지났고 남 유다도 586년에 멸망을 하니 남 유다의 말기에 살았던 선지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에 따르면 당시의 남유다는 율법이 해이해지고 불의가 만연해서 정의로운 사람은 살기가 너무나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를 촉구해도 듣지 않고 왕과 고관과 제사장과 일반인까지 모두가 타락을 했습니다. 이제 멸망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이미 바벨론이 쳐들어 오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고 모두가 불의를 행하고 있을 때 하박국 선지가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어떻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의한 남 유다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보고만 계십니까하고 묻습니다. 타국의 심판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남유다의 심판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족의 심판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천주교 박해 시 어떤 분이 교황께 사실을 보고한 것을 충분히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절대로 보고만 계시지 않고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을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대답에 대해서 다시 하박국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아무리 남유다 악해도 당시 온 세상을 다 멸하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며 모든 민족을 겁탈하던 악한 나라 중에 가장 악한 나라를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까하고 묻자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이 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본문을 보시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교만하여 절대로 의롭다 않다고 하십니다. 다만 도구로 사용이 될 뿐이지 절대로 바벨론을 의롭다 여기시지 않는다는 말씀이고 바벨론 역시 멸망을 반드시 당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의로운 사람은 그의 믿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즉 믿음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이 정확한 이해입니다. 3가지 버전을 동시에 보면서 이해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 즉 하박국과 같은 분들은 불의한 세상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이 동족을 포로로 잡아가는 창자가 뒤틀리는 상황에서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런 모든 불의를 척결하시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분이심을 믿고서 하루하루 정의로운 삶을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의인들의 믿음대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서 망하고 동족도 포로에서 귀환을 하게 되는 날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를 행하던 왕과 귀족은 죽거나 혹은 포로로 잡혀가고 이들의 불의로 어렵게 살던 빈민이 그들의 집과 땅을 차지하는 날이 왔습니다. 보시겠습니다. 먼저 이사야서의 이들 불의한 자들에 대한 경고를 보시고 이들의 망한 후의 남 유다의 모습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렘 39: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얼마나 무서운 일이 하나님의 경고대로 일어났습니까? 지금 시대 한국의 현실을 보면 땅과 집의 부동산 투자의 광풍이 불고 집과 땅을 너도 나도 과도하게 가지고자 하여 이제 가용 국토의 약 50%를 국민의 1%인 50만이 일 인당 최저 5만 평 이상 가지고 있고, 나머지 땅 50%는 국민의 약 30%인 1천6백만이 가지고 있으므로 국민의 약 70%는 땅이 한 평도 없는 나라가 한국이며, 집이 없는 사람도 약 국민의 48%가 되는 이런 상황에서 이 불의하고 불공정한 현실을 고쳐야 하는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목자는 자신이 먼저 자본주의의 혜택을 챙겨놓고 성도를 부자가 되게 부추끼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에겐 율법도 행위도 없이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구원받고 천국까지 가고 보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지옥이 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을 합니까? 이렇게 사는 자들을 경고하고 이들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해서 국민 모두가 땅과 집을 가지고 결혼도 하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게 하고, 자녀도 낳고 살게 해야 되는데 이렇게 불의로 가는 세상에서 불의의 열매로 배를 채우며 성도를 불의한 길로 오늘도 인도하고 있으니 이들을 받을 벌은 위의 구절과 같이 무서울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바국서의 믿음에 대해서 대해서 반복해서 요약해 봅니다. 이제 올바른 이해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성경도 없이 어떤 주장을 그대로 믿어왔습니다. 이제 모든 성도는 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한국에서 행해지는 칭의에 대한 설교를 분별할 힘이 생겼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과 같이 한결같은 믿음을 늘 지속적으로 가져야 하겠고 하박국과 같이 불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나도 같이 세상의 풍조를 쫓아서 자본주의의 유혹을 쫓아서 집과 땅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살면서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오시고 이런 악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야만 하바국과 같은 의인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로마서의 의롭게 되는 믿음은 이런 의미가 있어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면 로마서, 창세기, 하박국서, 그리고 야고보서가 모두가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임을 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도표로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이 믿음에 대한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이고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시는 것이니 칭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피상적이고 일시적이며 시작하는 믿음이 아니라 일생을 건 믿음이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롭게 사는 행동하는 믿음이며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한결같은 믿음에 대해서 칭의를 하면서 설명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믿음 생활에 반드시 전력투구해야 되고 자본주의 물신에 빠져서 허우적 그림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고 모든 한국의 성도와 개신교 성도는 각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당신도 알다시피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23.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24.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21. Was not our ancestor Abraham considered righteous for what he did when he offered his son Isaac on the altar?
22.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23.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that says,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and he was called God's friend.
24. You see that a person is justified by what he does and not by faith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