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부터 이번 여행 컨셉(!)을 '낯선 봄맞이'로 정하고 '가본 적이 없는 통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1박2일 시간을 내서 동백꽃, 벚꽃, 유채꽃 등 계절 면에서 낯설고 지역 면에서도 낯선 '그 어떤 곳'에 가고싶어서다.
그.러.나 출발 전날 다음지도로 통영까지의 거리가 450km 남짓임을 확인한 순간, 그리고 우리 부부의 '비축체력 잔고'가 달랑달랑한다는 사실을 함께 인지한 순간, 일고의 여지없이 없었던 일로 돌렸다. 그.래.서 지역적으로 낯설지는 않지만 계절적으로는 낯선 '만만한 그곳 강릉!'으로 급선회했다. 컨셉은 '눈과 입으로만 즐기자!'
먼저 숙박예약. 찾아보니 임해자연휴양림이 딱이다. 숙소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있어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만 움직여도 많이 볼 수 있는 곳! 캬캬캬! 예약하려다 보니 숙박비가 평일은 주말의 거의 절반이다. 우리는 이래저래 주말을 피해다녀야 하는 운명인가보다. 경제적이라서 그리고 한적해서.
임해자연휴양림 숙소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전경. 에고~더 넓은데... 파노라마로 찍을껄^^;
그리고 강릉에서 입을 움직이게 할 것 찾기. 냉면, 난장캠프? 닭강정... 대충 메모.
그리고 일요일 늦으막하게 출발. 헐~ 출발한 지 20분 만에.... 산이 온통.... 눈이네.
이래서 봄맞으러 가고픈거다. 우리가 전에 살던 곳에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마을에 사는 지인에게 겨울의 어떤 점이 제일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 친구,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이제 정말 봄이 온거지? 했는데 밤새 쌓인 눈을 또 보게 되는 4월'이라고 했었다. 나도 그 심정을 얼마간은 이해한다. 이미 봄의 한 복판에서 살고있는 '따땃한 남녘' 양반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차 세워놓고 찍은 사진을 융단투척한다.
홍천군 내촌면 아홉싸리 고갯길에서
생강나무 꽃. 어쩌라고~ 열매를 달 수 있기는 할까?
인제군과 양양군 사이의 백두대간을 잇는 조침령에서
백두대간을 터널로 지나서 산 아래 내려서니 이미 봄이닷!!!!!
'음.... 봄을 단지 나무 한 그루로 느낄 수도 있군.' 하게 만드는 벚나무를 제일 먼저 만난다. 내려서 사진 한 컷!
양양군 서면 현서분교에 있는 한 그루의 벚나무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꽃 한송이^^
주변 구경을 하야 하니 빨리 가고싶은 생각도 없다. 네비가 안내하는 빨리 가는 길(동해고속도로)을 매번 거절하면서 일요일 12시 무렵 강릉에 들어서다. 점심은 좀 늦게 하기로 하고 경포대 벚꽃구경을 먼저 할 요량으로 벚꽃길에 들어섰는데.... 어뜨케~ 차가 오도가도 못해~ 아~ 아직 일요일이 다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나 왜 몰랐을까나. ㅠㅠ
옆길로 빠지기로 하고 L-turn. 마침 손바닥만한 공간이 있어 차세우고 잠시 걷다. 근데.... 봄이 왤케 추워?
경포대 벗꽃길 초입 부근에서
아~ 사철나무~ 상록활엽수~ 벌써 이렇게 연두빛 새싹을 우후죽순 격으로다 키워내고 있구나....
가까이 두고싶어서 십여그루 구해 심었으나 매년 줄기의 절반이 동사해서 키우지도 캐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얼른 옆길로 빠져 '뚱보냉면' 집으로. 참 골목 깊은 곳에 있다. 맛집 정보 검색기능과 네비, 둘 중 하나만 없어도 평생 스쳐지날 일도 없을 만한 곳^^ 맛이 있네!!! 특별한 맛이 드러나지 않고 깊고 어우러진 맛이라서 말이지~ (음.... 지금 내가 맛집에 대한 멘트를 쓰고있다. 나 맞아? @.@!)
강릉 뚱보냉면집
냉면으로 점심 먹고 닭강정 사러 강릉 중앙시장으로. 지난번 속초 닭강정을 매운맛으로 했다가 혼난 기억이 있다. 에에후아후아.... 이번엔 약간 매운 맛으로 반 마리! (오~ 반 마리도 파네~) 닭강정 몰려있는 곳에 가서 가게 탐색. 일단 한산한 곳은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질 수가 있다. 물론 지극정성 소량생산하는 분이 세상 워~디든 계시는 건 알지만 구별할 수가 없잖아? 별 수 없다. 피할 수 밖에. 그 다음엔 '테레비 맛집'임을 너무 지나치게 극성으로 알리는 집 피하기. 맛으로 승부하자는 건지 이미지로 승부하자는 건지 헷갈려서리. 적당한 가게를 골라 반 마리 주문하고 지불하고 기다리는데 옆 가게 아줌마가 수작을 건다. '그 가게 TV에 안나온 집이라요'
아~ 네^^; (속으로는 나도 알아요~^^하지만 난 이미지세대가 아니라 텍스트세대거등요~)
닭강정을 사고 나오는데 꽃가게가 있다. 얼핏 보는데 눈에 확 달려드는 녀석이 있다. 바로 무스카리!! 가평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집단식재한 것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겨울에 얼어죽지 않는단다^^ 이 얼마나 중요하고 반가운 정보인가!^^ 3,000원 주고 분 하나를 덥석 집어오다.
(근데... 우리 동네에서도 정말 안죽을까? 갸웃)
무스카리
인근 가게에 들러 '대박' 막걸리 4병과 컵라면 2개를 샀다. 닭강정 반마리와 이걸로 오늘 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 끝. 우린 참 위대할 수 없는 사람들.
숙소인 임해자연휴양림에 도착. 주변 돌아보기 5분! 바로 숙소로! 오~ 전망~^^
이 때부터 뒹굴거리기, 책 읽기, 쪽잠 자기, 낮술 한잔 또 한잔, 가벼운 대화 무겁고 깊은 대화 그리고...
TV 다시보기를 눌러 '불후의명곡' 골라듣기. 초록손이의 '이미자, 심수봉' 발견이 가장 인상적.
숙소 베란다에서의 왼편 전망(오후)
숙소 베란다에서의 오른편 전망(해진 직후)
오~ 그대 뒷모습~ 김민기의 '그 사이'를 부르면 딱이겠네^^
묵었던 숙소를 배경으로. 자작나무의 재발견! 느티나무 따위와 달리 건물 가까이에 붙어 있어도 좋은.
주제 - 바람^^
산기슭 진달래와 나무 새잎
월요일. 11시경 숙소에서 나와 다시 경포대를 향하여 출발. 경포대 중심부에 들어와도 하~안사~안^^
정말 한산함을 좋아한다는^^
개구리벤치. 우리집 마당에 귀여운 동물을 표현한 석물 한 두점은 들여놔야 하는데.... 정보가....
경포호 산책로 주변에 많은 야외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좋다. 생각할 계기를 준다.
그런데.... 이 작품. 쉬운 듯한데.... 똑 떨어지지가 않는다. 생각의 흐름에 아귀가 안맞는 부분이 있어서리....
작품은 부리? 주둥이가 뒤틀어져 있는 독수리와 물리적인 힘이 느껴지는 사람의 팔과 손.
그 손아귀로 움켜쥐고 있는 것은 한 마리 쥐. 그리고 작품명은 "섭리(攝理)에 불복(不服)"
끙~ See you later.
경포호 산책로 주변엔 많은 야외 미술작품 중 하나. 작품명 "섭리(攝理)에 불복(不服)"
배가 고프다. 아침 컵라면 하나에 지금이 오후 1시면 당연한 현상.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토담순두부' 집으로 이동. 전에 와본 집이다. 허난설헌 생가와 붙어있다. 순두부찌개에 들어있는 잘게 썬 익은김치 씹히는 맛이란^^ 역시 권하고 싶은 맛이다. 내 입맛 기준으로는 백담사 주변의 양념간장으로 간해서 먹는 순두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옴마~ 나 또 맛집 멘트 쓰고있어~;; 모~든 인간이 먹는 것은 다 맛있어하는, 영원식욕에 미맹인 내가....^^;)
토담집 순두부전골 2인분.
사족 하나. 된장박이 고추장아치는 맛도 맛이지만 40년 이전의 과거와 연결시켜 준다.
모든 것이 귀한 시절이라서 그랬을까 싶었는데 지금 풍요시대에서도 맛과 향이 그대로 일품이다.
이제 1박2일 일정 끝. 집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갈 수있나?^^ 넘어왔던 조침령을 피해 넘어갈 땐 한계령을 택해서. 한계령휴게소에 도착. 참새가 방앗간을 피해갈 수는 있어도 한계령을 넘다가 한계령휴게소를 못본 척 하고 갈 순 없다. 커피 한잔 하며 눈덮힌 설악산(사실은 점봉산)을 보고가야지^^
한계령휴게소 안에서
한계령을 넘어 인제로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방키 어디다 두셨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아차차!!! 방키!!! 미, 미안합니다. 제 뒷주머니에 넣어둔 채 깜박했네요+_+! 어떻게 하지요?"
"주소 문자로 넣어드릴테니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하이고오~ 고맙습니다~"
집에 오다가 도중에서 인제읍에 들러 우체국 찾아 빠른등기 우편으로 부쳤다.
(근데 말이지~ 방키를 숙소에서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 안보전시관 사무실 키반납함에 넣어달라면... 그 중간에 사방경치 구경 등 딴짓할 것도 무지 많은데 깜빡하는게 정상 아닐까? 혼자 궁시렁궁시렁^^;)
집에 오자마자 무스카리를 화단에 심었다. 포기나누기해서 심었더니 꽤 개체수가 많아보인다^^
몸은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눈과 입만 사용해서 봄을 만끽하고 오자는 컨셉 그대로 차질없이 여행을 마쳤다^^
월말휴가 중 여행을 마치고 생각해본다. 휴가는 새로운 충전이라야 한다. 충전이라 함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 것 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면서 좁아질 수 밖에 없는 시야를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되넓힐 계기를 만나는 것을 포함해서다. 물론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익숙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틈틈이 낯섬을 통해 '산다는 건 좋은 것이여~' 하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 삶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으니까. 피로사회에 사는 현대인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피로사회는 피로를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피로를 견뎌내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란 점에서 남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잖은가.
옆길로 샜나? 암튼!^^
휴가는 충전이자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기회라야 하는데 우리는 소진된 체력의 회복과 다음달 프로그램 준비에 급급한 편이다. 이래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그럴까? 우리가 늘 과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어서인가? 그건 아니다. 그럼?
쉴 기회가 많음에도 쉬지 못해서, 아니 쉬지 않아서(!)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왜?
청소년들과 24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에 동고동락을 함께 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서다. 어렸을 때 나에게 뭘 시킨 어른이 놀고있으면 갑자기 더 하기싫어진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고생(?)하는데 내가 편하게 쉬면 아이들이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땐 종일 뛰어놀아도 지치지 않았고, 청소년 시기에 시험준비할 때 2~3일 밤을 하얗게 지새워도 괜찮았고, 30대에 프로젝트 때문에 이틀 정도 철야해도 끝내고나서 사우나 찾아 반나절 쉬면 회복됐다. 하지만 나이들고 아빠되어 아이와 잠깐만 놀아도 한참을 쉬어야 했고, 상가집에서 하루밤을 새고 나면 다음날 낮에도 힘들고 밤에 푹 쉬어도 회복이 잘 되지않기 시작했다.
내가 솔선해야 하는 점은 맞지만 쉴 때 함께 쉬고 공부/일할 때 함께 해야 한다는 건 맞지않다는 점을 내 스스로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납득시켜야겠다. 연령에 따라 체력적으로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시간표대로 하면 되지만 우리도 시간표대로 할 수는 없잖은가? 학교 선생님이 5시간 수업한다고 5시간 근무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암시랑토 않은데 나 혼자 옳고그름에 매여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과 글로 정리하니 일목요연해진다. 음.... 앞으로 귀찮더라도 여행기는 써야겠군.
첫댓글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이 있었군요! ㅎㅎ/
그러고보니 그 무스카리는 휜둥이가 뜯어버렸다는데.../
학교라면 왜 선생님은 우리를 공부하게 하고 자신은 쉬느냐고 하는데 풀꾳에서는
자기 스스로, 자기 주도적으로 하기 때문인지라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아요.
옆에서 언제나 저희를 도와주시니까 충분히 고맙습니다^^ ㅎㅎ
눈이 아직도 안녹은 곳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네요.ㅎㅎ /
무스카리라는 꽃의 죽음은 안좋게 끝난것 같네요.ㅜ^/
풀꽃에서 프로그램과 공부방법을 지도해주시는 것도 감사해요.ㅎ
휴가가 아닐때도 아줌마,아저씨께서 편히 쉬셔도 괜찮아요.ㅎㅎ
휴가는 충전이어야 하는데 저의 요번 휴가는 오히려 방전의 시간이었던것 같습니다(게임 너무 많이 해썽)
그리고 저희들 그런 생각 가지지 않으니 아저씨 푹 쉬셔도 괜찮아요 또한 저는 여기 생활한지가 1년이 다 되가는데 너무 아줌마 아저씨께 의존했던것 같네요... 아저씨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제가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진짜 벚꽃이 너무너무 예쁜것 같아요 ㅠ.ㅜb / 그리고 편히 쉬셔도 괜찮아요 ㅠ.ㅜ 상담도 해주시고 프로그램도 만들어주시고 공부도 봐주시고 질문도 받아주시고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이미 충분히 감사합니다 ㅠ.ㅜ
무스카리라는 꽃을 흰둥이가 물어 뜯었다는데..
이번 휴가에는 휴식을 하지 않고 너무 방전을 한것 같습니다.
다음휴가때는 방전 말고 충전을 해야겠습니다.
제가 공부를 할 때 어른들이 쉬고 계시면 공부가 하기 싫거나 그런 생각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휴가가 아닐때도 쉬고 싶으실때 편히 쉬셔도 괜찮습니다.
상담을 해주셔서 저의 않좋은 점을 고치게 해주신다는 것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이 너무 일찍 피어서 얼어죽을 것 같아요..날이 또 따뜻해지길..저도 집에 와 보니 아파트에 벗꽃이 많이 피었더라구요..개나리도 폈구요..그냥 노란꽃도 폈고..벗꽃 구경을 하러 갔더니 차가 무지막지하게 밀려서 결국은 다시 돌아오고 말았어요..멋진 휴가 보내신 것 같아요 ㅎ 통영은 굴비로 유명하던가요..? 제가 아는 식당 이름도 토담이어서 깜짝 놀랐었어요 ㅋ
순두부찌개 맛잇어 보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저희 부부는 아직 둘이서 여행간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온가족 출동 이에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이겠죠??
충전은 좋은 거 같습니다~~
가끔은 아이들 떼어놓고 다녀보시는 것도 좋아요.
우리는 아이들 애기 때부터 이따금 할머니, 보모, 이모, 외삼촌.... 보는대로 품에 던져놓고(!) 다닌지라^^
동문서당 아이들이니? 동문서답들을 하게? -_-;;
효정아~ 고맙다~ 너 밖에 없네~~ㅠㅠ
험~ 엎드려서라도 절은 받아야 해^^;;
풀꽃아줌마아저씨에게는 가정이 곧 일터이니 출퇴근시간이나 퇴근해 돌아가 쉴 곳도 따로 없잖아요.....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고 충전해가며 더힘내서 하시구 그랫음좋겟어요~
(from 오십대 아빠가 걱정되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