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석양길, 물길 따라 운길산에서 적갑산 지나 예봉산으로
예봉산 전망대, 다시 멈춰 서서 나란히 어깨 맞대고
남양주일대에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불빛을 바라보니
눈발 흩날리지만 훈훈한 추억 한 덩어리
메아리 되어 가슴깊이 스며든다.
저 아래 북한강과 남한강, 서로 만나 아리수 한 몸 되어 눈이 오건 바람 불건 유유히 흘러 세월을 만들어간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침만으로는 부족했을까. 팔당댐 위쪽 광주에서 흘러든 경안천까지 두물머리에 합쳐짐으로써 그 물길만 놓고 보면 세물머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삼수리三水里? 역시 늘 불러오던 양수리兩水里가 자연스럽다.
강과 또 강물의 합수, 강원도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 춘천을 거쳐 흘러내려온 북한강물과 강원도 대덕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영월, 충주를 거쳐 흘러온 남한강물이 서로 만나는 양수리 인근의 운길산은 팔을 뻗어 감싸 안은 듯 갑산을 끼고 있으며 팔당 쪽으로 긴 능선을 따라 적갑산에서 예봉산으로 이어진다.
모처럼 오랜 모임친구들 아홉 명이 팔당역 앞에 모여섰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막 내리기 시작하는 게 눈인지 빗물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오늘 산행은 틀렸어. 장어나 먹으러 가자구. 이 동네 장어구이가 끝내준다는데.”
“우리가 산에 가려고 이렇게 모인 게 얼마만이냐. 금방 그칠 것 같은데 올라가보자.”
먹는 쪽보다 가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운길산에서의 경관은 그야말로 동방으뜸이로다.”
첫눈인 양 싶었던 초겨울 빗물은 다행히 금세 멈춰주었다. 술 먹는 자리가 아닌 주말산행의 귀한 시간을 하늘이 배려해준 것 같다. 들머리엔 딱 아홉 명의 산객, 우리들뿐이다. 운길산을 올라 적갑산을 지나 예봉산까지 갔다가 다 같이 내려오면 아마도 거의 한나절은 소비할 듯하다. 무릎이 시원찮은 선일이가 가장 문제다.
“오늘 태영이랑 인섭이가 선일이를 맡아.”
그렇게 운길산을 오른다. 능선엔 휘어질듯 꼿꼿한 소나무들이 줄을 이어 도열해 있으며, 검버섯처럼 피부가 거칠게 도드라진 굴참나무, 근육질의 신갈나무 그리고 물푸레나무군락지, 철쭉군락지가 있고 주변에 다양한 명소와 휴양지가 있어 서울과 경기지역 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서거정이 탄복한 곳이라잖아.”
운길산이 초행인 영빈이와 노천이가 탄성을 자아낸다. 운길산으로 오르며 내려다보는 북한강은 깊고 검푸른 물빛과 조각나서 둥둥 떠 있는 섬들을 돌아 흐르다가 산중으로 스며드는 물살의 이음이 그림보다 더 그림처럼 보인다. 운길산 중턱 수종사에서는 이런 그림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경관만큼은 동방으뜸이라는 서거정의 극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순희가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읊조리는데 태영이가 이어 부르며 음정을 흩뜨리자 그림을 감상하던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조선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물길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중 양수리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이게 무슨 소리냐?”
물소리인지, 종소리인지 가늠키 어려운 소리가 산중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이 산 숲속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이 종소리를 내는 것에 감명 받은 세조가 그 자리에 사찰을 지어 수종사水鐘寺라 명하도록 했다.
이후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많은 학자와 명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그런 내력이 아니더라도 수종사에 들어서면 수령 500년을 넘긴 커다란 은행나무와 팔각 5층 석탑(지방문화재 제22호), 기타 많은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고풍에 잠시 넋을 놓게 된다.
역시 수종사는 물과 뗄 수 없는 사찰임을 느끼게 된다. 맑디맑은 샘, 석간수로 달인 차를 맛볼 수 있다. 그 맛을 친구들과 음미하고자 삼정헌에서 잠시 쉬었다가기로 한다.
다산이 초의선사와 즐겼다는 차 맛을 본다고 생각해서일까. 시詩, 선禪, 다茶가 하나라는 의미의 삼정헌, 등산화를 벗고 그 다실에 올라서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한음 이덕형은 틈틈이 인근 사제촌에서 이곳 수종사에 자주 들르곤 하였는데 수종사 주지스님이던 덕인스님이 사제촌으로 한음을 방문하자 겨울풍광의 시를 적어 주었다고 한다.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앞개울 얼어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만첩청산에 쌍련대 매었네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또 임진왜란이 끝난 어느 초여름 수종사를 찾은 한음은 극심한 정쟁을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고 적혀있다.
산들바람 일고 옅은 구름비는 개었건만
사립문 향하는 걸음걸이 다시금 더디네
구십일의 봄날을 시름 속에 보내며
운길산 꽃구경은 또 시기를 놓쳤구나
“차 맛이 어때?”
“절에서 마시는 거라 찻집만큼 진하지는 않군.”
“인마! 그래서 은은하다고 하는 거야.”
“찻집에서는 빵조각이랑 같이 주던데.”
“다산이나 한음이 널 보면서 한숨을 내쉬겠다.”
산사에서 처음 마셔본 따끈한 설록차 맛에 노천이, 병소, 선일이가 나름대로 댓글들을 달다가 한바탕 웃음을 쏟아내고 다시 길을 향한다.
그래도 그들은 느낄 것이다. 수종사에서 음미한 해탈의 차향에서 마음을 내려놓아 가벼이 하라는 가르침을 얻었으리라. 다시 산을 오르는 친구들 걸음이 훨씬 가벼워졌으니 말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심하고 기온이 더욱 떨어진다. 얼어붙을 듯 황량한 추위 때문일까. 북한강은 담녹색 물빛으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름철보다 훨씬 그늘진 정취를 풍긴다. 산에 올라 멀리 내려다보아 더욱 그런가보다.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운 강물위로 짙은 우수가 담겨있다. 바람 세차게 불어 강변 나뭇가지의 흔들림이 작지 않을 터인데 강물은 잔잔한 미동조차 없이 고요하게 아래로만 가라앉는 듯 보인다.
해발 610m 운길산 정상석 옆 안내판에는 구름이 가다 산에 걸려 멈추었다하여 운길산雲吉山이라는 명칭유래가 적혀있다. 여기서 적갑산을 지나고 철문봉을 거쳐 예봉산 정상까지는 6km에 이르는데 새재를 넘어 돌아가면 그보다 더 먼 길이 된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겹겹이 거듭되는 산을 넘다 여기 이르러 또 강물이 길게 흐르니 구름인들 이쯤에서 쉬어가야 편할 것이다.
구름 머무는 산정에 아홉 사내가 모였다
먼저 오른 병소와 계원이가 간식을 꺼내 먹으면서 아직 못 쫓아온 후미를 기다린다.
“아홉 명 다 왔으니 또 가자.”
“우린 쉬지도 못하고 또 따라가야 되는 겨?”
“발이 아닌 눈과 마음으로 걸으면 걸으면서도 쉴 수 있는 곳이 산이거늘. 쯧쯧.”
“뭔 소리야? 말이야, 막걸리야?”
운길산 정상에서 새재로 가는 능선은 근육질 소나무와 조경사의 손을 거친 듯 모양 좋은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수십 년 능선지킴이 생활이 지루한 양 몸뚱이 비틀고 팔 꼬아가며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눈비에 젖고 바람에 긁히다가도 자네들은 따뜻한 햇볕이 몸 말려 주잖는가. 저 아래 세상에선 세찬 풍파에 마냥 몸 맡기면서도 그게 사는 법인 양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네. 우리들도 그렇고 말이야.”
나그네 충고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인지 잔가지 하나가 머금은 빗물을 털어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미안하구먼, 고결하게 이어온 세월의 주인공들을 사람들 삶에 빗댔으니 짜증낼 만하지.”
눈치 살피며 허리 굽혀 소나무지대를 빠져나가 새재에서 뒤돌아본 운길산은 잿빛하늘이 덮어 저 아래 강물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더욱 흐려지는 날씨가 본격적으로 눈발을 날릴 기세다.
예봉산 가는 길에 친구들과 첫눈을 맞다
운길산과 예봉산을 잇는 중간접점인 적갑산(해발 560m)에서도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삼삼오오 닿는 대로 모여 사진을 찍고 또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출발하기 때문이다.
철쭉동산 지나니 바로 물푸레나무군락지로 이어진다. 봄이면 길을 멈춰서 연분홍 아름다움에 한껏 눈길을 줄만한 곳이 지금은 그저 썰렁하기만 하다.
“물푸레나무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파랗게 변한다지?”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지.”
“그 나뭇가지 회초리에 맞아봤어? 물빛이 아무리 바뀐들 그 회초리에 맞은 종아리만큼이나 파랗게 변할까.”
“엉덩이에 곤장 맞지 않고 큰 걸 다행으로 알아.”
허물없는 친구들이 여럿 모이니 주고받는 농담도 중구난방이다. 그래서 더욱 즐겁다. 철문봉에 이르자 송이송이 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철문봉에서 보는 예봉산 정상부가 흐릿하다. 뿌연 눈안개를 보니 오싹 한기를 느끼고 만다. 철문봉은 정양용, 약전, 약종 3형제가 남양주 조안면에 있는 본가 여유당에서 능선을 따라 여기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하여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수종사 설록차는 모락모락 김 오르며 은은한 향기 남아있는데 산허리에 일찌감치 해거름 드리우니 길 미끄러운데도 바쁜 걸음 재촉하게 된다.
철문봉에서 본 예봉산 정상에 눈이 덮이기 시작한다
먼 산, 하늘 닿아 하나 되는 운길산 지날 때
뼛속 그리움 앵두내음 풍기다가
삭풍 몰아치는 새재 넘어 적갑산 향하는 길
초침에 부서지는 내 넋 한 점 쪼아 물고
어둠 비껴가려 철새무리 서둘러 재를 넘네
철문봉에 뿌리는 눈송이 하얗게 길 밝히어
잰걸음 막아서며 서두르지 말라하네
예봉산禮峯山 정상(해발 683.2m)의 평지는 드문드문 눈밭으로 변했다. 지체되긴 했어도 여기까지 아무런 탈 없이 왔다. 무릎이 불편해 산에 다니는 걸 자제했었다가 친구들과 함께여서 조심스레 길을 나섰다. 동남아가족여행을 한 주 후로 미루고 친구들과의 산행에 나섰다. 제각각 참석하기 어려운 나름의 이유가 있음에도 그들은 오늘아침 팔당으로 왔다.
세 개의 산을 함께 섭렵했다는 충만감, 삼십년 넘는 지기들이 다 같이 완주했다는 성취감이 환한 웃음을 짓게 한다.
“산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바다?”
독재국가의 정상은 국민들 눈물을 뽑아내지만 산에서의 정상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웃음에 더해 만족감까지 얹어준다. 정상은 거기 다가선 이에게 그 자릴 내어주므로 정권유지에 급급한 정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후덕하다.
“그래서 산의 반대말은 바다가 아닌 정치판이라고 적어도 정답으로 처리하지.”
오래 산을 다닌 태영이의 조크가 예봉산을 친구들의 웃음으로 메아리치게 한다.
“그러면 땅하고도 키가 같고 하늘하고도 체중이 같은 건 뭘까?”
“…….”
올라와서 보니 산도, 나무도, 구름도, 하늘도, 그리고 친구들도 다 같은 위치에 있다. 운길산 올랐다가 적갑산 닿아서도 잠잠하더니 예봉산에 도달해 둘러보니 친구들 하나같이 하회탈처럼 만면에 웃음 짓는다. 노을 지며 더욱 추워지는데도 오늘을 붙들어두려는 공통된 마음은 속에 가누고도 펼쳐내기 인색했던 우리 친구들 사랑이었구나. 수십 년 횃불 밝혀 서로를 비춰주었던 우리들 우정이 땅과 하늘에 빗댈 정도로 엄청난 거였구나.
미소가 번지면서 넉넉하고, 숙연한 듯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들이 산 아래 북한강에 시선을 담근다. 예봉산 인근주민들은 이 산을 사랑산이라고 불러왔는데 수림이 울창하여 조선시대 때는 인근과 서울에 땔감을 대주던 연료공급지였다고 한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에 소재하였으니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날씨 좋을 때 여기 오르면 그야말로 인근 온 사방으로 세상천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남의 검단산과 두물머리는 물론 미사리, 팔당, 구리시 등을 둘러보다 방향을 바꿔 북한산, 도봉산이 우뚝한데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올 태세다. 또 남산을 움켜쥔 서울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데 오늘은 바람을 업은 눈발 때문에 거기까지 내다 볼 수가 없다.
어쩌랴, 반가우나 머물 수도 없는 곳. 속수무책 나부끼는 눈발을 피할 수가 없다. 지는 노을 밟고 경사 급한 비탈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혼자 눈에 담기 아까워 이 산, 두루 살피다보면 늘 그대들과 함께 오고 싶었었지. 홀로 산비탈에 서서 속으로 감탄하고 가파른 바윗길 조심스레 내딛을라치면 눈에 아른거려 소리라도 질러대며 포옹하고픈 그대들이었지. 몇 번이나 뇌까리고 되뇌다가 무거운 걸음 아래로 내딛다보면 물들어 한껏 채색된 단풍은 낙엽 되어 스러지고 말았더랬지.
예봉산 전망대, 다시 멈춰 서서 나란히 어깨 맞대고 남양주일대에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불빛을 바라보니 눈발 흩날리지만 한 움큼의 훈훈한 추억이 메아리 되어 가슴깊이 스며든다.
“그래, 오래오래 같이 산에 다니며 서로서로 사랑하자.”
때 / 초겨울
곳 / 운길산역 - 중리 - 운길산 - 주막샘 오거리 - 새재 - 송전탑 - 적갑산 - 철문봉 - 예봉산 - 예봉산 전망대 - 팔당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