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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6 영어 즉문즉설, 베트남 청년들 만남
“불쾌한 감정이 들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798
2024.05.29.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베트남 다낭에서 온 청년 단체 VTS(VCIL Travel School) 활동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오전 8시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2백 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사회자가 활기차게 인사를 했습니다.
“Hello everyone! It’s good to have you join us.”
먼저 스님이 지난 5월 초에 워싱턴D.C.를 방문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두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중 한 명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불쾌한 감정이 들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How can I live my life with confidence if I keep doubting myself? I have been told that Buddha said that there is no right or wrong way to live in this world. I understand that it is important to be happy with who I am. Whenever I seek and expect more from myself than I have done, I make myself feel the breath. From time to time I lose confidence in myself or in my life, then I strongly question whether there is something wrong with my life. But I do not know the exact reason. When I feel unhappy or uncomfortable, is it just a feeling like being happy or calm? I have learned that being gloomy or unhappy is a kind of habit. Do you think I need to remove or fix these feelings for my practice? or is it okay to question myself whenever I have unpleasant feelings or thoughts about my life?”
(자신을 계속 의심하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옳고 그른 삶의 방식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기대할 때마다 숨을 쉬며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때때로 제 자신이나 저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내 삶에 문제가 있는지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불행하거나 불편한 기분이 들 때 그것 또한 행복하거나 평온한 느낌과 같은 감정으로 보면 될까요? 우울하거나 불행한 것은 일종의 습관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수행을 위해 이런 감정을 없애거나 고쳐야 할까요? 아니면 불쾌한 감정이나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가져도 괜찮나요?)
“불쾌한 감정은 부정적인 심리 현상이라서 안 일어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불쾌한 감정을 갖고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왜 우리가 이런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탐구해서 이 불쾌한 감정을 가능하면 적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가령 이런 불쾌한 감정 중에는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열등의식은 본인이 열등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열등하다고 느끼면 그것이 불쾌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100이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내 욕심으로 200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200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내 존재가 열등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200으로 끌어올리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물론 이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해도 성취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또 만약에 노력해서 200의 능력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잠깐은 만족합니다. 그러나 이 욕망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300의 역량을 갖고 싶어 하게 합니다. 그래서 만족감은 잠시뿐이고 또다시 부족감 속에 헤매게 되어 계속 열등의식 속에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 이 열등의식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100의 역량이 있으면 100 자체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열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기서 내가 조금 더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하면 됩니다. ‘100으로도 괜찮지만 조금 더 노력해보고 싶다’ 하는 것과 ‘나는 200이 되어야 한다’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역량이 100이라면 100도 사실은 굉장한 능력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자 현재의 능력대로 다 완전합니다. 부족함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살아도 됩니다. 조금 더 능력이 갖고 싶으면 노력해서 그렇게 해도 됩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고, 더 노력해도 되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관점을 가지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100으로도 만족하며 산다는 말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더 하고 싶다면 그건 더 노력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자연생태계를 비유로 든다면, 토끼는 토끼로서 완전하고, 다람쥐는 다람쥐로서 완전하고, 고양이는 고양이로서 완전합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달리기가 부족하다’, ‘사나운 게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자연생태계는 각자의 존재가 다 완전합니다. 그런 기초 위에서 조금 더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자연생태계에서도 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는 모두 다 온전합니다. 현재의 내 삶은 지금 이대로 온전하고, 남이 볼 때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어떤 것을 좀 더 하고 싶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도 되고, 또 그것이 뜻대로 안 되어도 나는 부족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현재의 상태 그대로도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I see your general point. I just want to make sure that I need to breathe and realize that I am complete as I am when I feel unhappy or uncomfortable.”
(스님의 요점을 잘 알겠습니다.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은, 불행하거나 불편한 기분이 들 때, 호흡을 통해 알아차린 후, 있는 그대로의 내가 완전하다는 걸 알면 되는 건가요?)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다스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마음이 지금 불쾌한 감정에 휩싸여 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불쾌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얼마간 시간이 지나 그 감정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수행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알아차림’입니다. 감정이 일어난 원인을 규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왜 불쾌한 감정이 일어날까?’ 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대화하는데 왜 불쾌할까요?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래부터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그 사람이 말해주거나 행동해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고 거기에 집착되어 있으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쾌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사람마다 생각, 말, 행동이 다릅니다.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서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식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 하는 집착이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 집착을 놓아버리게 되면 불쾌한 감정이 사라집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thank you. I see."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전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치고, 9시 30분부터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어제부터 정토회 청년특별지부 회원들도 두북수련원에 머물며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농사일을 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과 정토회 청년들 50여 명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게송을 읊으며 발우를 펴고 조용히 식사한 후 김치로 발우를 깨끗이 닦아 먹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지난 5일 동안 두북 수련원에서 발우공양을 해서 그런지 발우 작법이 제법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스님이 베트남 청년들과 청년지부 회원들을 환영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과 정토회 청년특별지부 회원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모두 환영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어서 발우공양을 하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발우공양에 깃든 네 가지 정신
“발우공양에는 네 가지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첫째, 음식을 아주 간소하게 먹습니다. 둘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습니다. 셋째, 모든 사람이 똑같이 평등하게 먹습니다. 넷째, 청결하게 먹습니다. 자신의 발우는 각자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전염성 없이 청결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발우 공양을 할 때 외우는 경전을 ‘소심경’이라고 합니다. 소심경에는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또 내가 이 음식을 먹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자신의 하루 생활을 점검하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배고픈 사람을 생각해서 나누어 먹자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수행자가 음식을 먹는 목적은 배불리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잘 유지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또한 발우공양은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왔기 때문에 부처님과 수행자들을 생각하면서 ‘나도 수행 정진하리라’ 하고 다짐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전통이라고 해서 다 계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우공양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수행자는 이런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토회에서는 발우공양만큼은 그 전통을 잘 계승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는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생활해야 하기에 아침 한 끼라도 발우공양을 하면서 삶의 자세를 점검해야 합니다.
공동체성을 자각하는 시간
그리고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발우공양을 할 때만이라도 다 같이 모여 각자 오늘은 어떤 생활을 할 계획인지 서로 알립니다. 또한 어제 본인이 생활하면서 부족한 것이 있었거나 계율을 어긴 것이 있었다면 대중을 향해 ‘제가 이러이러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하고 고백함으로써 대중들의 마음에 오해가 없도록 합니다.
무엇보다 현대사회는 공동체 안에서도 개별적으로 사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함께 사는데도 불구하고 공동체성이 약화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발우공양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발우공양을 하면서 그 정신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뒷정리와 설거지를 한 후 11시 30분부터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청년 단체 VCIL(Vietnamese Community of Independent Learners)은 20대 청년들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고, 주로 대안 교육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운동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토회의 사상과 실천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올해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정토회 견학을 하러 오기로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먼저 스님이 두북 수련원에서 하고 있는 일을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이 학교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입니다. 입학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를 했는데 20년 전에 이곳을 임대해서 수련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토회가 이곳에 온 이유는 농촌 사회가 붕괴되는 것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도 있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구현해 보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쓸만한 물건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려지는 물건들을 재사용할 수 있게 하는 환경 운동도 이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보내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용도로도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청소를 해주거나 밑반찬을 만들어주거나 여행을 시켜주거나 하는 노인 복지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제가 직접 이곳에 내려와 상주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베트남 청년들이 다양한 질문들을 스님에게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VCIL의 리더인 부(Bu) 님이 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발전 이면에 생긴 부작용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베트남이 한국 경제 성장의 부작용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에 와서 베트남이 따라가려고 하는 한국의 경제 성장 이면에는 고령화, 저출산, 높은 자살률이라는 그늘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요?”
“서구 사회는 현재와 같이 발전하는 데에 20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50년 만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미국의 발전 모델을 한국 사회에 직접 모방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빠른 성장을 이룬 반면 외래 문명을 곧바로 이식했기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발전 모델을 배우려는 사람들만 많았지 그것이 갖는 부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지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발전의 이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 한국에도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이 있지만 한국 사회의 발전 이면에 있는 그늘에 대해 연구해서 베트남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역할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20년 뒤에 베트남 사회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똑같은 부작용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20년 전에 일본 사회가 장기 침체에 들어갔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이 많다, 이런 사실들을 다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일본보다 그 현상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곳 한국의 시골에서 일주일을 살아봤는데요. 얼핏 보면 ‘시골에도 도로가 참 잘 만들어져 있구나’, ‘농업도 다 기계화가 되어 있구나’ 이렇게만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골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 소를 키우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농장이 크다, 공장이 크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지역 발전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나마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입니다. 도시에 나가 있는 자녀들은 일 년에 한 번 내지 두 번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어떤 자식은 아예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발전이 노인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나이가 들어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요양병원으로 옮겨져서 쓸쓸히 죽어가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결혼도 안 하고, 부모 집에 얹혀서 살고,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이런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0.7까지 낮아졌고,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런 모습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요?
한국에 오면 화려한 모습만 보고 가기가 쉬운데 여러분처럼 그늘진 모습까지 살펴보고 여러분이 사는 베트남을 어떤 사회로 만들어갈 것인지 연구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단 한국과 베트남을 넘어서서 오늘날 인류 문명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부탄에서 인류가 미래에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나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에 유학을 온 베트남 청년들이 8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제가 아직 그들과는 만남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한국의 발전 이면에 그늘진 모습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저와 만나게 된 거예요.”
정토회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스님은 어떻게 정토회를 운영해 왔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나왔습니다. 람(Lam) 님은 스님이 30년 동안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스님께서 30년 동안 일관성을 유지하며 정토회를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별로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까 계속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자이니까요. 누구나 힘들고 지치면 오래 못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라다크에서 온 쿤잔(Kunzan) 님은 스트레스 없이 일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스님께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오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저도 현장에서 6년 동안 농사도 짓고, 글도 쓰고, 원주민들의 지식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적 동기가 떨어질 때도 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물론 극복할 때가 많지만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님께서는 20대와 30대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스트레스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할 때 받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욕심내서 했는데 뜻대로 잘 안될 때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안 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그만두어도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그 일을 하기로 선택해서 성취하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안 되는 것을 갖고 되어야 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구를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고 연구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우리가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이유는 그 일이 안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진 욕심 때문입니다. 열 번을 해야 될 일을 세 번 만에 완성시키려고 하면 네 번째부터는 안 될 때마다 좌절하거나 절망하게 되는 겁니다.
‘이 일은 언제든지 그만둬도 되고, 내가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만큼 노력하면 된다.’
관점을 이렇게 가진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됩니다. 그 일을 꼭 해야 된다는 생각에 집착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일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집착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집착을 버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저도 집착할 때도 있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아! 이게 나의 집착에서 오는 것이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금방 스트레스에서 벗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울력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저녁에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청년특별지부 회원들은 여기까지 함께 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운동장으로 나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We love peace in Korea and Vietnam”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도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비닐하우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감자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일찍 감자를 심어서 하지감자보다 한 달 일찍 감자를 수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함께 명심문을 세 번 외친 후 농사팀장의 안내를 받고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Everything has its place.”
(만물에는 제 자리가 있습니다.)
어제 감자 줄기를 다 베어내고 일곱 고랑 중에 네 고랑을 관리기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관리기가 한 번 지나간 자리마다 감자가 땅 위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작년보다 감자의 크기가 훨씬 굵고 알찼습니다.
감자의 크기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해서 박스에 담았습니다. 계란보다 큰 것, 계란만 한 것, 계란보다 작은 것, 아주 작은 것, 감자의 크기마다 따로 모았습니다. 감자를 캐다가 호미로 찌르거나 상처가 난 감자는 별도로 구분했습니다.
스님은 비닐하우스의 가장자리부터 감자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가장자리에는 풀이 많이 자라서 풀을 뽑으면서 손으로 감자를 하나씩 주워 냈습니다. 호미로 두둑 밑을 긁어서 무너뜨리면 그 속에서 감자가 우르르 나왔습니다.
“이 감자는 계란보다 큰 건가요?”
“네, 큰 것 같습니다.”
행자님이 대야를 여러 개 가져다주면 스님이 크기별로 대야에 감자를 담았습니다.
베트남 청년들도 고랑마다 줄을 지어 앉아서 땅속에서 감자를 캤습니다. 감자알이 작년보다 제법 굵고 많았습니다. 손만 대면 감자가 나왔습니다.
모두가 감자 분류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VCIL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봉(Bong) 님이 아주 큰 감자를 발견했습니다.
“I think this potato is the biggest potato harvested today. It’s very big.”
(이 감자가 오늘 수확한 감자 중에 제일 큰 감자인 것 같아요. 아주 큽니다.)
수확해야 할 감자가 너무 많다 보니 다들 감자 수확에만 열중했습니다. 아직 수확해야 할 감자가 많이 남았지만 울력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 울력을 마쳐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나오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작년에 온 청년들은 일하면서 노래를 계속 부르던데 오늘은 왜 노래를 안 해요?”
“오늘은 감자 수확에만 집중했네요. 지금이라도 노래를 부를까요?” (웃음)
라다크에서 온 청년이 뒤늦게 노래 한 곡을 불렀습니다.
감자가 가득 담긴 컨테이너 박스를 모두 트럭에 싣고 나서 명심문을 다시 세 번 외친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이 베트남식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스님도 베트남식 요리를 먹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오후 5시부터 다시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이어 나갔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화가 날 때가 많은데,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예불을 하고 나서 영가단을 향해 기도를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정토회의 회원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아직 외국인 회원이 적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스님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동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입니다. 대표로 일하다 보니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사이비 종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부탄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마지막으로 손을 들고 질문한 타오(Thao) 님은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정토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염려되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돌아가시면 정토회는 어떻게 될까요?
“어제 정토회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영감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보아하니 청년들이 스님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습니다. 스님이 곧 청년들이 정토회에 들어오게 된 동기이자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계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님이 안 계실 때 정토회는 어떻게 될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나 구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무래도 정토회를 창설한 사람이니까 제가 살아있을 때는 영향력이 제일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토회 회원들이 단순히 스님만 보고 들어왔고 그 이유로 단체가 움직인다면 스님이 죽었을 때 바로 와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내부 시스템이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에요. 붓다 담마를 중심으로 일을 하는 법사단이 별도로 있고, 단체를 행정적으로 운영하는 대표 이하 지부, 지회, 모둠의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의사결정 또한 굉장히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토회의 가장 핵심 프로그램이 정토불교대학과 깨달음의 장입니다. 정토불교대학은 스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서 입학하거나 공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행자, 돕는이와 같은 봉사자들과 학생들이 영상으로 강의를 듣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재 살아있어도 정토불교대학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깨달음의 장 역시 지금은 제가 진행하지 않고 모두 법사님들이 진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제가 없어도 운영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내부적으로는 법륜 스님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외부적인 확장에 관계된 일 중에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영향력인데, 이것은 누가 정토회의 책임자가 된다고 해서 바로 인수인계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영향력입니다. 이것도 누가 대체한다고 금방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스님이 죽으면 외부적인 확장에 관계된 일들은 잠시 정체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이 정말로 바른 법이라면 법륜 스님이 죽은 뒤에도 법륜 스님에 의지하지 않고 계속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다시 나올 것입니다. 물론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가장 핵심은 ‘이 가르침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필요한가’입니다. 이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이 법륜 스님이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법륜 스님이 없는 정토회는 바로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시선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안전장치를 훨씬 더 많이 갖추고 있는 편이에요.
그러나 개척 분야는 상당 기간 정체 국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은 대부분 법륜 스님이 하고 있고, 정토회의 지도 그룹 대부분이 이미 개척된 분야를 관리하고 확장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북 수련원의 농장 운영도 그동안 ‘이런 일을 해야 한다’ 하는 얘기는 많이 나왔지만 시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에 제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되면서 일단 시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아무래도 제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시스템이 마련되어서 각자가 일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없어도 될 만큼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부탄에서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정토회 사업을 제가 개척해 오다 보니 제가 아이디어를 좀 많이 가진 편이기도 하고, 결정권도 일부 가지고 있어서 제가 개척을 하면 사업이 좀 빠르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멤버들은 어떤 결정을 하려면 충분한 회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어떤 실험적인 일을 할 때는 진행이 좀 더딘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처럼 아직 규모가 작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규모가 작을 때는 회의를 해도 결정된 내용이 빨리 집행이 되고, 실패를 해도 피해가 크지 않습니다.
현재 정토회는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 어떤 사업을 해서 실패하게 되면 그 피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갈수록 안전하게 운영하는 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개척을 하거나 실험하는 분야에 투자를 적게 하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하는 사업의 규모가 작거나 일의 경험이 적다고 불리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의 규모가 작고 일의 경험이 적은 덕분에 여러분들은 더 많은 실험과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큰 사업을 하는 것에 비해 결정과 평가도 신속하게 할 수 있어서 빨리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어요. 사업의 규모가 작으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멤버들 간 결속력도 매우 강해지게 됩니다.
정토회의 초기 멤버들은 전부 저와 같이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결속력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토회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최근에 새로 들어온 멤버들은 같은 정토회 멤버라고 해도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결속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경험을 함께 했을 때 신뢰가 쌓여서 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스님을 존경하는 것만 가지고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규모가 큰 단체일수록 새로 들어온 멤버들과 함께 규모가 작은 일을 다양하게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다른 단체의 좋은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장점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작은 규모의 단체라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저녁 예불을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내일 오전에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 다 함께 저녁 예불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베트남 청년들은 얼마 전 스님이 워싱턴D.C.를 방문하여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화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베트남 청년들은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 프로그램을 마치기 때문에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며 무엇을 느꼈는지 전체가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해질녘에 밀을 심어놓은 논으로 향했습니다. 밀이 다 익었는지 살펴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베트남 청년들과 마지막 대화 시간을 갖고 두북 수련원을 떠나는 청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후에는 대전으로 이동하여 서구청 대강당에서 행복한 대화 네 번째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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