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쓰는 재소자들”
소통의 시를 전하는 시인, 이승하 교수
시를 써본 적이 있는가. 혹은 마지막으로 글을 써본 것이 언제인가. 시, 수필을 비롯한 글쓰기는 학생이나 전문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는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복역 중인 재소자들도 시를 쓴다. 그들에게 시를 전하고 자기 자신 혹은 세상과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이승하 교수. 그가 만난 ‘시 쓰는 재소자들’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글 이지희 사진 황윤호
글쓰기는 ‘나’를 만나는 행위
이승하 교수(시인ㆍ중앙대 교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소자 문예계간지 『새길』의 작품 심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 각 교도소와 구치소의 수감자들이 복닥거리는 방 안에서 웅크리고 머리 싸매 적은 수필 수십여 편을 보내오면 이 중 절반 정도를 뽑아 순위를 매기고 심사평을 적어 법무부 사회복귀과로 다시 보내는 것이다.
글 쓰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공들여 쓴 작품들을 무려 절반이나 걸러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유독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난감한 과정은 잊고 문학인으로서의 희열과 인간적인 감동에 전율할 뿐. 이번 봄호의 심사에서도 그는 한 30대 여성 재소자가 쓴 수필에 가슴 아팠다. 그녀의 늙은 아버지는 딸을 보기 위해 왕복 5시간의 거리를 마다않고 찾아와서는 매번 울고만 갔다. "밥은 먹었니?", "춥진 않고?", "아픈 곳은 없니?" 단 몇 마디 질문과 대답이 오갈 뿐, 아버지는 수의를 입은 딸의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울다 7분의 면회시간도 채우지도 못하고 매번 5분 만에 돌아서곤 했다.
지난 겨울호에도 그의 콧잔등을 시큰하게 하는 작품이 있었다. 장애아 딸을 둔 한 남성 재소자는 딸이 태어난 첫날 아내가 아이를 안고 울고 또 울던 기억을 회고했다. 잠을 자다 깨어 보면 아내가 아이를 안고 소리 죽여 울고 있곤 했다. 하지만 아내는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하느님이 이 아이를 이 세상에 보내야 하는데, 어느 집에 보내야 가장 사랑을 받으며 예쁘게 자랄 수 있을까 살펴보다가 우리 부부를 발견하고 우리 딸로 보내주신 거예요. 처음엔 너무도 원망했어요. 그런데 이젠 원망하지 않아요. 당신과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선택된 존재예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신성한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기로 해요."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감동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이 자리에서 다 소개할 수 없는 것이 그는 안타깝다. 그리고 그 글들 중에는 교도관들의 작품도 섞여 있다. 교도관과 재소자가 서로 대립의 관계가 아닌, 상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관계가 되길 바라는 염원이 바로 『새길』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가 쓴 책 중에 『감시와 처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책 제목만 놓고 보면 교도관과 재소자가 감시하는 자와 벌 받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을 보면 교도관이 하나의 직업으로서 재소자의 교육과 재범 방지를 위해 일하고, 재소자는 교도관의 말을 잘 따르고 건의도 하는 상생(相生)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새길』은 교도소 내에만 배포되기 때문에 사보(社報)에 가깝지만 재소자는 이 책을 통해 교도관의 입장을 이해하고, 교도관은 재소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1948년 창간한 『새길』이 2001년 계간지로 재탄생하면서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재소자들이 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고, 감시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교도관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것. 이 교수는 진솔한 글이 갖는 엄청난 파급력에 대해 강조한다.
“재소자들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패배의식과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난생 처음 시와 수필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며, 뒤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고 영혼의 정화도 체험하게 되는 것이죠. 금방 표시가 나는 일은 아니지만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상처난 영혼을 치유하는데 이만한 방법이 또 있을까요?”
누구보다 진솔한 글을 쓰는 사람들
『새길』 출간의 근본적인 목적은 재소자들의 재범 방지에 있다.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오렌지』에서처럼 범죄자들이 나쁜 맘을 먹을 때마다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세뇌교육을 시킬 수 없는 한, 스스로 교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교정사업의 핵심인 셈이다.
“글 쓰는 것 자체도 큰 도움이 되지만 글을 투고하고 책으로 출간하는 것도 큰 동기 부여가 됩니다. 『새길』 같은 잡지에 자신의 글이 실리면 큰 기쁨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이 경험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교도소 밖의 문예지 투고와 등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또 죄를 짓겠습니까. 교도소에서 수형자들이 또 다른 범죄를 배우고 나오기도 하지만 글쓰기는 오히려 백신이나 치료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지난 2007년에는 장기수로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69년생 이정진 씨가 계간 『창작 21』을 통해 시로 등단했으며, 2009년에는 춘천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50대 수형자가 계간 『한국문학예술』 신인작품상에 당선된 사례가 있다. 이정진 시인의 등단작을 유심히 본 이 교수는 『2008 젊은 시』에서 “감동의 충격파는 그 어떤 시인의 등단작보다 윗길이다”, “갇혀 있는 자의 절규가 이렇게 큰 감동과 충격과 깨달음을 선물하고 있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춘천교도소의 수형자는 교도소 내에서 운영하는 '시창작 교실'의 피교육생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허전 시인과 손옥자 시인은 10여년 전 이 교수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이다.
『새길』 심사에 참여하기 수년 전부터 이 교수는 영등포구치소, 춘천교도소, 안양교도소, 남부교도소 등에서 재소자 교화사업에 참여해왔다. 그가 처음 시 프로그램을 통해 교화사업에 참여했던 2007년 이전에는 별도의 시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때 교화사업이라고 하면 종교인들의 선교활동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이 마련되었고, 그가 재소자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재소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마약사범이나 아동성폭행범도 전혀 흉악범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몸에 잔뜩 문신이 그려진 폭력사범도 말을 해보면 더없이 순합니다. 이곳에서는 다들 후회하고 반성하며 살아가지요. 대개 불우한 성장기를 겪었고 범죄의 세계에 빠져드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의 소재는 다양할 수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은 서툽니다. 평소 독서도 별로 하지 않으며 살아왔고 시나 수필을 습작해본 경험도 거의 없어서 작품의 수준도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작품에는 울림이 있습니다. 진실함과 절심함 때문이죠. 요즘 시집이 지나치게 난해해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문학은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감동도 따르게 됩니다. 기술적으로 서툴 수는 있지만 불필요한 가식이나 실험적 요소가 없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분들의 작품을 접하며 큰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며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재소자들의 시 일부를 소개했다.
이 죄인을 죄인이라 부르지 않고
아들이라 부르시는 어머님은
천사가 맞으시죠
늦었지만 불러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지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죄인이 아닌 어머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운 어머님!
―<천사가 되신 어머님께> 중에서
행복으로 열 달 동안
인간 꼴을 품으시고
산고를 더없이 기뻐하며
이 세상에 한 생명으로
나를 탄생시키셨다
밤낮으로 지구는 돌았고
순하디순한 아기였을 땐
내가 어머니의 햇살이었다
—<어머니> 중에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관심’
기성 문인들의 시와 달리 이들이 보여준 시구(詩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대단히 철학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진심이 소통과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십분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그는 불신으로 가득했던 재소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 '감방'이라 명명한 지하방에서 경찰직을 그만둔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온 가족이 끔찍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문방구를 하며 근근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던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저는 자살 기도도 여러 번 했고 장문의 유서를 써놓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늘 폭력적인 아버지의 죽음을 꿈꿨죠. 이런 얘기를 재소자들에게 해주면 날카롭던 눈빛에서 경계심이 사라집니다.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솔한 고백도 통하지 않았던 곳이 있다. 바로 소년원이다. 처음 시창작 특강을 통해 스무 명의 소년 재소자들을 대면했을 때, 이 교수는 그들이 일반 재소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가족에 대한 질문에 눈시울을 붉히기는커녕 오히려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엄마의 무관심, 가출, 재혼 등에 큰 상처를 받고 탈선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바늘로 찔러도 꿈쩍할 것 같지 않았던 아이들이 줄줄이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마치 물꼬가 터진 듯 말이죠. 어른들에게 부당한 취급을 당했던 기억이 특히 많은 듯합니다. 그 아이들이 스스로 입을 다문 것이 아니라 들어줄 사람, 이야기할 통로가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저 제멋대로 비틀린 ‘요즘 애들’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일 뿐인 거죠.”
세상에 어떤 아이들이 혹은 어떤 사람들이 따뜻한 애정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외모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고 평범한 그들이 한 순간 실수를 저지른 것은 그저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한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가만 들여다보면 때로 인생에서 실수하고 넘어지고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것은 비단 우리의 일상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좌를 마친 뒤에 재소자가 편지와 시를 보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에 대한 조언과 함께 꼭 책을 부쳐줍니다. 양서를 통해 그분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죠. 하지만 지도교사 없이 계속 시를 쓰기가 쉽지 않은지 두세 번 보내다 그만둡니다. 시창작 교실은 예산 문제 때문인지 교도소장이 바뀌면 없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이 생기고 꾸준히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분들에게 양질의 책을 공급하는 단체도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분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입니다. 전과자라는 부정의식도 과도한 동정심도 말고 그저 여느 이웃 대하듯 평범하게 대해주는 것, 그것이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