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호모 사피엔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그들… 사교성이 비결이래요
입력 : 2021.12.28 03:30 조선일보
호모 사피엔스
▲ /그래픽=유재일
현생 인류는 약 30만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등장했어요.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뛰어난 지능으로 문명을 이룩했죠. 오늘날 세계에는 약 8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어요.
이들은 모두 생물학적 종(種)이 같아요.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달라도 유전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는 뜻이에요. 동물은 사는 지역이 다르면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사람은 달라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두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서 비교해도 유전자의 차이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 종으로 불리죠.
지금의 인류는 단일 종이지만, 과거에는 아니었어요. 처음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을 땐 다른 인류가 여럿 있었죠. 이렇게 유전자가 조금 다르지만 다른 종으로 분류할 만큼의 큰 차이는 없는 무리를 '아종(亞種)'으로 불러요. 대표적으로 인류의 사촌으로 불리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가 있어요.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시기 유럽·아시아 일부 지역에 살다가 약 4만년 전 멸종했죠.
낯선 사람과 교류하는 능력 뛰어나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흔히 뛰어난 지능 덕으로 여겨지곤 해요. 하지만 요즘에는 낯선 사람과 교류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이론이 눈길을 끌고 있어요.
같은 무리의 누군가를 돕는 행동은 다른 인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예컨대 약 5만년 전 이라크의 한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발견됐는데, 심하게 부상당했다가 나았던 흔적이 있었어요. 무리 내의 누군가가 상처가 나을 수 있도록 돌봐줬다는 뜻이에요.
이런 문화는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돼요. 서로 협력해 덩치가 큰 코뿔소나 매머드 같은 사냥감을 잡을 수 있거든요. 혼자 잡는 것보다 덜 위험하니 수명이 길어지는 효과도 있죠. 노인이 돼서는 손자를 돌보며 집단에 힘을 보탤 수도 있고요.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는 무리 내 다른 인류뿐 아니라 다른 무리와 교류하는 능력도 뛰어났대요. 이런 모습은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부터 나타났다고 추정돼요. 그 무렵 아프리카 케냐 남부에 있는 올로지사일리 분지에서 창살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흑요석(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굳어진 화산암)을 멀게는 최대 90㎞ 거리까지 옮기기 시작했대요.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건 외부 집단과 교류가 있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미국 미시간대의 고고학자 스튜어트 교수와 일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3만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타조알 껍질로 만든 구슬을 다른 무리와 교환하기도 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300㎞ 거리를 넘나들었대요.
다른 지역의 호모 사피엔스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요. 호모 사피엔스는 5만년 전부터 남아시아에서도 살기 시작했어요.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역사과학연구소의 패트릭 로버츠 박사는 스리랑카의 정글 깊숙한 곳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뼈를 발견했어요. 이들은 1년 내내 숲에 살면서 활로 다람쥐나 원숭이를 사냥하며 살았대요. 그런데 뼈 근처에서 조개껍데기와 상어 이빨 등이 같이 발견된 거예요. 이들이 바닷가에 살던 부족과 교류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어요.
외부 집단과의 교류는 생존에 유리해요. 한 집단이 만들고 발견한 기술과 지식이 또 다른 집단으로 퍼질 수 있죠. 어려운 시기 다른 집단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요. 예컨대 숲에서 사냥감을 찾지 못했을 땐, 바닷가에 사는 집단과 거래해 해산물을 얻을 수 있겠죠. 결국 호모 사피엔스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거예요.
사교성은 '윌리엄스 증후군' 때문?
외부 집단과 교류를 잘 하기 위해선 낯선 상대를 우호적으로 대할 수 있는 성격이어야 해요. 과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이런 성격을 갖게 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희소 유전자 질환을 연구하고 있어요. 이 증후군은 7번 염색체에 있는 어떤 유전자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날 때 생긴대요. 뉴질랜드 심장 전문의인 존 사이프리안 핍스 윌리엄스가 1961년 처음 이 증후군의 존재를 알렸어요.
윌리엄스 증후군이 있으면 엘라스틴이라는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죠. 이 단백질은 신체 조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없으니 외형도 달라진대요. 이들은 코가 작고 이마가 넓으면서 입이 커요. 다른 인류와 비교하면 외모가 덜 위협적으로 보이게 됐어요. 네안데르탈인을 재현한 그림을 보면 오늘날의 인류보다 험상궂어 보이죠.
호모 사피엔스는 사교성이 뛰어나 낯선 사람을 만나도 두려움 없이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이 같은 성격이 윌리엄스 증후군과 비슷한 변이 때문이었다고 추측해요. 이 증후군이 어떤 방식으로 친근한 성격을 형성하게 했는지까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이론대로라면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처럼 번성하게 된 건 친절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돼요. '이웃에게 친절하라'는 말은 훌륭한 조언이 맞나 봅니다.
[사람과 친한 개도 유전자 결함 있죠]
사람과 가장 친한 동물인 개도 윌리엄스 증후군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한 유전자 결함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고 친근하게 구는 거죠. 2017년 프린스턴대 진화생물학자인 브리짓 본 홀트 교수는 국제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개의 사회성 유전자 변이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어요. 개의 사회성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유전자 2개를 분석했는데, 유전자 변이가 심할수록 사교성이 뛰어나고 사람을 좋아했대요. 이는 사람으로 치면 윌리엄스 증후군과 같다는 거예요. 즉, 개는 윌리엄스 증후군에 걸린 늑대와 같은 셈이에요.
학자들은 1만4000여 년 전 무렵부터 개가 이런 특성을 갖게 됐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이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속에서 사람과 개의 유골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에요. 비슷한 유전자 결함을 가진 보노보 원숭이도 침팬지와 달리 자신의 영역에서 낯선 상대를 만났을 때 비교적 우호적이래요.
고호관·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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