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잊은 그대에게 (隨筆)
예진당 / 황해숙
시나브로 흐르는 시간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었다. 날마다 달의 표정이 달라지는 모습을 살필 겨를도 없이 24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7개의 동그라미를 말을 타고 달리듯 지나치면서 한 달을 지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빴을까.
어쩌다 발아래 보일락 말락 보랏빛 까치꽃의 미소를 실루엣처럼 보았을 뿐이었다. 그 언저리에 피어있는 샛노란 민들레꽃의 몸짓에도 눈길을 주지 못했다. 스마트 폰 단체 카톡방에 진달래꽃이 피고 개나리꽃이 피어도 내게 닿지 못했었다.
오전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촐촐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쳇바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에 쉼표를 찍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창문을 열어본다. 내 책상의 바로 왼쪽에 있는 이중창문의 안쪽 창문은 불투명한 유리창이다. 안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더니 바깥 창문은 투명한 유리다. 감기기운이 있어 바깥 창문은 닫은 채로 하늘을 향하여 시선을 던진다.
내 시선은 하늘을 주시하다가 빗줄기 따라 내려오다가 봉긋한 꽃망울을 맺고 있는 키 큰 목련나무에 이른다. 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꽃받침이 겨우내 꽃눈을 꼭 감싸고 있었다. 북풍한설을 막아내려고 털옷을 입고 있었을 게다. 봄 햇살의 입맞춤에 옷깃을 열었을까. 봄비를 맞이하기 위해 옷고름을 풀었을까. 목련 꽃잎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봄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목련 꽃잎의 개화를 놓칠 뻔했다. 꽃눈을 감싸고 있던 외투는 개화하는 꽃잎을 소중하게 받치고 있잖은가. 목련은 수줍은 듯 분홍색 속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내 시선은 목련나무를 더듬으면서 허리를 지나 발아래까지 내려왔다.
아! 진달래꽃이 피었다.
거기 그 자리에 진달래가 있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진달래는 연분홍 얼굴에 함지박 미소를 머금었다. 저 꽃을 아름 따다 고운 님 가시는 길에 뿌린다면 내 님은 꽃길을 걸을 텐데···. 진달래 꽃 한 아름 따서 별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생각에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잠시 소녀시절에 읊조리던 詩의 한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나 보다.
봄을 잊은 그대에게!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온 까닭은 내가 봄을 잊을까 봐 하늘이 보내준 시그널이었을까. 봄비가 속살거리지 않았다면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문을 열지 않았으리. 목련의 해산 과정을 지나치고 진달래꽃이 낙화 한 다음에 하염없이 울고 있었으리라.
하늘과 땅이 허락한 축복에 감읍한다. 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없겠지만 잊었던 봄을 만났으니 따뜻하게 잠을 청할 수 있으리라. -끝-
첫댓글 오늘밤은 별을 볼 수 없겠지만 잊었던 봄을 만났으니 ....
이제 꽃샘추위가 지나면 짧지만 봄은 오겠지요?
마음의 봄이 먼저오길
느껴보길 소원합니다 메멘토모리카르페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