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혜명 류동학의 東洋學산책 .12] 세조 자손들의 불행 ④
수양대군은 12세에 정희왕후(1418∼83)와 가례를 올렸다. 정희왕후는 예종과 성종 재위시 조선에서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인물이다. 수렴청정(垂簾聽政)은 동아시아에서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리로 정치를 맡는 일을 말한다.
세조와 정희왕후는 의경세자(후에 덕종으로 추존), 의숙공주, 해양대군(예종) 등 2남1녀를 두었다. 의숙공주는 영의정 정인지의 아들인 정현조에게 출가해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고 36세에 요절했다. 최근에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는 수양의 딸과 김종서 아들의 러브스토리는 야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허구적인 내용을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예종(1450~69)은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 한씨(1445~61)사이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한씨가 산후병으로 17세에 요절하고 인성대군마저 세 살에 요절한다. 이후 예종은 한백륜의 딸인 안순왕후를 계비로 맞아 제안대군(1466~1525)과 현숙공주·혜순공주를 낳았으나 재위 14개월 만에 사망한다. 제안대군은 후사가 없고, 현숙공주는 갑자사화를 주도한 간신인 임사홍의 며느리가 되어 슬하에 소생은 없고 39세에 요절한다. 혜순공주는 두 살에 요절한다.
세조의 장남인 덕종(1438~57)은 1450년에 한확의 딸 소혜왕후 한씨와 혼례를 올렸다. 덕종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혼령에 시달렸으며, 20세로 요절하였다. 사인은 가위눌림이라고 하나 불확실하다. 야사는 의경세자와 세조가 문종비 현덕왕후의 원한을 샀다고 전하나, 덕종은 단종보다 일찍 죽는다. 소혜왕후 한씨는 남편이 요절하는 바람에 시동생인 해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재위 14개월 만에 예종이 죽는 바람에 권력가인 한명회의 딸(공혜왕후 청주한씨)과 혼인한 둘째아들 자을산군을, 장남 월산대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을 제외시키고 왕으로 등극케 하여 대비로서의 지위를 얻은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폐비 윤씨 사건’을 주도함으로써 손자 연산군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는 비운의 인물이 되고 만다.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 사이에는 월산대군 정(1454~88)과 자을산대군 혈(1457~94), 딸 명숙공주(1455~82)가 있다.
세조의 장손인 월산대군은 승평부부인 박씨와 혼인했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35세에 요절했다. 아내 박씨는 연산군과의 추문에 휘말리며 결국 자결하였다. 박씨의 동생은 나중에 중종반정을 주도한 박원종으로, 박씨는 인종의 생모인 장경왕후의 고모가 되기도 한다. 월산대군은 첩실에서 독자인 덕풍군을 두었으나 역시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덕풍군은 3명의 아들 파림군(坡林君), 계림군(桂林君), 전성부정(全城副正)을 두었다. 그러나 세조의 현손인 파림군은 41세에 죽고, 계림군은 성종의 서자인 계성군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을사사화(1545) 당시 역모의 모함을 받아 동생인 전성부정과 함께 처형된다. 명숙공주는 28세에 요절하였다.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12명의 부인에게서 16남 12녀를 두었으나 38세에 일찍 죽고 만다. 세조의 악업(惡業)은 본인이 희귀한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자손들이 일찍 죽는 결과를 낳았고 행복보다는 불행한 삶이 많았다. 그 당시 백성들은 부당한 권력찬탈로 인한 인과응보의 현상으로 생각하여 수많은 야사(野史)를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