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그림
박갑순
작은 갤러리에 갔다. 사업가로 성공했다는 여성 작가의 개인전이었다. 전시된 작품은 국내외 여행지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함덕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세 여인이 그려진 작품은 자주 가는 바다를 보는 것처럼 내면까지 잘 보였다. 그러나 모로코 패스 골목 그림이나 좌측에 태아를 담은 태반이 있고, 우측으로 심장 모양이 있고, 위쪽으로 커다란 회오리가 그려진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화가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내 인식 밖의 그림 앞에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화가가 그린 오이도의 노을빛이 내려앉은 시간, 슬며시 허기가 돌았다. 근처 소문난 죽 전문점으로 갔다. 갤러리에서의 설렘과 감흥이 이어져서일까? 아담한 죽집 내부가 내게는 작은 전시실 같았다.
4인 식탁에 홀로 앉아 열심히 죽을 먹고 있는 모습은 여백이 넉넉한 작품 같고, 이마를 맞대고 메뉴를 고르는 연인들은 빛과 그림자를 완성도 높게 처리한 작품 같다. 작품이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예술가도 있다.
예약되었던 그림인지 대작이 들어왔다. 작품은 4인 식탁 두 개를 이어붙인 중앙에 설치되었다. 남녀 아이의 부모인 듯한 젊은 부부와 그의 시부모인 듯한 중년 부부. 그림의 채도가 너무 낮고 색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젊은 여자가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 입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고 젊은 남자가 죽을 주문했다.
“들깨칼국수 하나, 옹심이 팥죽 하나, 바지락칼국수 둘요.”
젊은 남자가 남자아이에게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주의를 주고, 중년 여인은 남자아이가 잡은 컵에 물을 조금 따라주었다.
주문한 죽이 나왔다. 들깨죽은 젊은 남자 앞에, 팥죽은 중년 여인 앞에, 2인분의 바지락칼국수는 여자아이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젊은 여인과 중년 남자 사이에 놓였다.
“아버지, 먼저 드세요.”
색 바랜 신사복을 입은 채 불편한 자세로 앉아서 자신의 그릇에 칼국수를 담는 뒷모습이 짠해 보였다. 얼른 한 그릇 담아서 “아버님, 먼저 드세요.” 할 줄 알았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아무리 봐도 가족인데 가족 같지 않은 그림이다. 그러고 보니 중년 여인도 아이들도 모두 이상했다.
“아이고 우리 손자 할머니에게 오렴. 할머니가 죽 줄까, 아 해.”
“할머니, 이게 뭐야?”
“옹심이 팥죽이야. 맛있지?”
이런 류의 대화 한마디 없었다. 젊은 여자가 아버지라고 부른 것 외에 그들의 모습만으로는 가족이라는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난해한 그림이었다.
전시장에서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보이지 않던 그림을 잘 보기 위해 두어 바퀴 더 돌았던 것처럼 말없이 죽을 먹는 중년 여인의 표정을 살폈다. 웃음기라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듯 입으로 꾸역꾸역 죽만 퍼날랐다. 중년의 신사는 불투명한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마주앉은 여인과 눈도 맞추지 않는 것을 보면 꽤 심기가 불편한 것으로 짐작했다.
표면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큰 그림 앞에서 이면이 보이지 않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구도상으로는 가족이 분명한데 크기나 배치, 명암이 초점을 흐리게 했다.
가족 간에 애정을 표현하라면 ‘가족끼리 왜 그래. 그러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농으로만 생각했는데…. 따뜻한 대화는 실종된 지 오래인 듯 전투적으로 허기만 해결하고 있는 그림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유독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그림에 대해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은 『어린 왕자』의 보아뱀 이야기까지 확장되었다. 어린 왕자가 하나의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던진 질문에 어른들은 하나같이 ‘모자’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의 편견과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이야기라지만, 나는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우매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는 내용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거나, 그 가족만의 일상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의문의 꼬리를 접었다.
전시회를 보고 안목이 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림의 트집을 잡아내느라 맛난 시간을 허비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