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디빌딩의 시작은 해방 후 서상천 선생이 중앙 체육 연구소를 설립하여 역도체조 보디빌딩을 처음 지도하였다. 그 후에1960년대까지 한국 체육관과 성동 체육관이 보디빌딩의 산실이 되었으며, 1970년 이후로 YMCA를 비롯한 헬스 클럽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는 국민소득의 증가와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인하여 체력을 증진시키는 헬스 클럽의 필요성 때문에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고급 헬스 센터 및 체력 센터와 일반 헬스 클럽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서는 1961년에 백용기 교수님과 당시 중앙 대학교 체육학과 학생이던 김경남씨가 중앙 대학교 역도 부장을 맡으면서 역도부가 창설되고 역도 선수 보디빌딩 선수를 육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 대학교는 1961년에 제1회 미스터 중앙 선발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수년 후에는 미스터 고려대, 미스터 한양대, 미스터 건국대, 미스터 동아대, 미스터 국민대, 미스터 세종대, 미스터 홍익대, 미스터 경원대등 많은 대학에서 보디빌딩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1970년에는 역도 연맹이 주최하고 중앙 대학교가 주관하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미스터 유니버시티"를 개최하였으나 지속되지는 못하다가, 1980년대 전국 대학 보디빌딩 동아리회 연합에서 주최, 주관한 "미스터 유니버시티"가 수년간 개최되었다.
1988년에는 역도 연맹의 보디빌딩 분과위원회에서 대한 보디빌딩 협회 (조동환 회장)가 분리되어 대한 체육회에 준 가맹 단체로 가입이 되었으며, 1989년에는 김남학 회장의 영입과 김덕현 부회장, 홍영표 전무이사 및 20여명의 이사진을 구성함으로써 대한 체육회에 정식 가맹 단체로 가입이 되어 한국 보디빌딩이 발전되는 전환기를 맞았다. 따라서 1988년(중앙대학교 김준호 우승), 1989년(인천대학교 연제호 우승), 1991년(중앙대학교 이태우 우승), 1992년(중앙대학교 권만근 우승)년에는 대한 보디빌딩 협회가 주최하여 중앙 대학교에서, 1990년(중앙대 정문석 우승)과 1993년(중앙대학교 이신언 우승)은 용인 대학교에서, 1994년 (동명대 장병호 우승)은 인제 대학교에서 미스터 유니버시티가 개최되었으며, 1995년(인제대 오경모 우승), 1996년(단국대 최재덕 우승)에는 서대문 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미스터 유니버시티 우승자들은 국가대표선수로서 활약을 하였으며, 현역 대표선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미스터 코리아 대회는 1949년 명동 시공관에서 제1회가 개최되었으며, 일반부 한 체급으로 시작하였으며, YMCA소속의 조순동씨가 우승하였다. 6회까지는 6.25사변으로 치루지 못하고, 제7회 미스터 코리아 대회는 전남 광주(홍정식 우승)에서 열렸다. 그 후 8회, 9회는 협회 사정으로 치루지 못하다가 제10회는 서울 동화극장에서 1958년에 개최되어 현 대한 보디빌딩 협회 김덕현 부회장이 우승하였다. 대회도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되었으며, 1982년에는 아시아 보디빌딩 선수권 대회에서 박영철 선수(현 하야트 호텔 클럽 올림퍼스 총책임자)가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 하였으며, 1984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보디빌딩 선수권 대회에서는 방운혁 선수와 한동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84년에는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 보디빌딩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으나 세계적 수준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대한 보디빌딩 협회가 설립된 이후 많은 노력으로 1988년 호주에서 개최되었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라이트급에서 한동기 선수가 2위, 박영철 선수가 3위에 입상함으로서 우리 나라도 보디빌딩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1989년 세계 주니어 보디빌딩 선수권 대회가 개최 되어 김준호 선수(중앙대학교)가 우승을 하였다. 1994년에는 이진호 선수(인제대학교)가 세계 주니어 보디빌딩 대회 미들급에서 우승을 하고, 1996년에는 요르단에서 개최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라이트급에서 한동기 선수의 우승과 웰터급에서 김준호 선수가 준우승 하였다. 또 홍영표 전무이사는 1990년 7월 "Muscle and Fitness" 번역판을 내기 시작함으로서 한국 보디빌딩의 이론 정립에 한몫을 하고 있다.
1990년에는 전국체전에 보디빌딩이 시범 종목으로 선정되어 충북 수안보에서 시합을 하였다. 1991년도에도 전북 이리시에서 두 번째로 시범 종목으로 경기를 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전국 15개 시도가 종합 순위를 놓고 경합을 벌리게 되었다.1986년부터는 중앙 대학교에서 이석인 교수가 보디빌딩 지도교수를 맡으면서 정문석, 김준호, 김양수, 이태우, 이신언, 권영섭, 박찬일, 김병균, 이세진, 김성환 등의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였고, 1990년부터 인제 대학 교에서 1970년 미스터 코리아 출신의 신정태 교수가 보디빌딩 선수를 스카웃을 하기 시작하여 이진호, 오경모, 김다위, 이정춘, 김윤상 등의 우수 선수를 육성하였고, 그 후 인천 대학교에서는 연제호, 강경원 선수와 용인대학교 에서는 오종훈 선수 등이 우수 선수로 육성되었다.
또한 인천 전문대학, 부산 동명 대학 등에 보디빌딩 선수가 육성되고 있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양 체육과목으로써 보디빌딩 강좌를 개설 하여 맣은 호응을 얻고 있다. 1992년에는 강원도 고성군 팀에 보디빌딩 팀이 처음으로 창설되고, 인천광역시, 부산광역시, 전남, 충북, 서울, 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등에 실업팀들이 있다. 한편 2002년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안 게임에 보디빌딩이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하게되어 보디빌딩의 전망은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