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토요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팔달문에 도착한 것은 내가 새파랗게 젊었을 때 옛날의 화홍문화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원화성문화제로 그 명칭이 바뀌었지만 시골에서 라디오방송으로만 들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추억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이게 하는 마법의 상자인지도 몰랐다.
목적지는 행궁 앞 광장으로 생각하고 나섰는데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여기서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동시장 쪽에서는 음악소리와 함께 무슨 공연이 열리고 있는지 복잡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 화성문화축제가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열리는 이때에 이곳 시장이라고 하여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동교에는 젊은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팔달문지역 시장 거리축제 공연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근의 공중화장실이 사라져버리고 전통시장 먹거리 장터로 둔갑해버린 터라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한참동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상황을 파악하니 천막 뒤로 돌아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앗! 못 찾겠다, 화장실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슬슬 발걸음을 돌린 나는 본래의 목적지인 화성행궁광장으로 갔다. 그 넓은 마당은 물론 주변의 행사장까지 곳곳마다 구경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런 좋은 날 집에만 박혀 있다면, 그래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싶었던 나는 큰맘 먹고 나오기를 참 잘했구나싶었다.
행궁을 에워싸고 있는 팔달산 위에는 서장대의 모습도 늠름한데 쾌청한 가을 하늘빛이 축하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원문화재단 앞을 지나 행궁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온통 음식문화축제의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와글와글 들끓는 인파 속에 수원갈비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그 밖의 많은 외국 음식들도 맛볼 수 있는 좋은 자리 였다.
수원화성문화제 현장마다 인산인해 이뤄_2
또 발길을 돌려 신풍루 앞에 오니 전통 줄타기 공연이 한창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지켜보며 웃고 박수치는 가운데 하나가 된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재미있고 정겹게 느껴진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인파 속을 비집고 나와 옆문을 통해 행궁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도 보았지만 여기저기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한 탈 만들기, 활쏘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공예 체험 현장 또한 인기를 끌며 대 성황이었다. 그런 한쪽 그늘 막에는 어느 노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 가방속의 바나나를 꺼내어 나눠 먹는 모습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수원화성문화축제는 그야말로 수원 시민의 날로 잔치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내 봉수당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이야기가 있는 행궁 음악회' 가 막 시작되는 판이었다. 먼저 돌쇠차림을 한 소금장수가 촐랑대며 나오는가 싶더니 소금을 사라고 한 바퀴 돌며 외쳐댔다. 그 넉살 좋은 입담으로 좌중을 한판 웃기더니 궁중음악과 함께 궁녀들의 춤사위가 흥을 돋우며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수원화성문화제 현장마다 인산인해 이뤄_4
그러고는 다시 현대음악과 노래가 펼쳐지며 분위기는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었다. 이곳 봉수당은 정조 대왕이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여기서 회갑연을 열었다고 하여 더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러니 정조 대왕의 효심이 배인 만큼이나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현대음악이나 노래보다는 이곳에서 만큼은 궁중음악과 춤을 더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관중들의 다양성을 고려해서였겠지만, 이백 여 년 전 궁중의 회갑연에서 치러졌던 그 음악과 춤을 보며 당시를 상상해보고 흠뻑 빠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곳 화성행궁은 정조 대왕의 어진을 모신 곳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곳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봉수당의 회갑연이 아니겠는가.
사실 행궁음악회는 그런 분위기에는 못 미쳤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나는 12일 일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1시까지 이곳 봉수당에서 있을 혜경궁홍씨 진찬(회갑)연에 다시 오기로 마음을 다졌다. 모두가 왕이 된다는 왕의 놀이터에 와서 왕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고, 특별히 왕이 차린 진찬을 받고 함께 어울리며 즐겨보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