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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 3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 - 벧전 4: 6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벧전 4: 3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는 이방인의 뜻을 좇아 죄악 된 생활을 한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의 삶에 이끌리고 거기에 빠져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지난날의 죄악 된 삶으로 족하다. 그 죄악 된 삶도 부끄러운 것뿐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죄의 낙을 누리며 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죄악 된 일에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였다(롬 8: 13). 성도에게도 죄의 충동은 있으나 성도는 더 이상 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죄악 된 삶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
1] 너희가 ...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본 절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삶에 대한 묘사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삶은 과거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으로 족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방인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본 절의 '뜻'(불레마)은 2절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뜻'(델레마)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불레마'는 확고한 목적성이 없어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처럼 변하기 쉬운 것을 가리키며 '델레마'는 목적을 위해서 변하지 않는 뜻을 가리킨다(Caffin).
'행한 것'(카테이르가스다이)는 완료 분사로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모두 이방인이었음을 암시한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수신자들은 더 이상 과거 이방인의 삶과 동일한 죄악 된 삶을 영위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죄악 된 삶은 과거 이방인 시절로 족한 것이다.
베드로는 경고하기 위해서 과거 수신자들이 저지른 세 가지 부류의 죄악을 열거한다.
(1) 음란과 정욕과
본문은 성(性)과 관계된 죄악이다. '음란'은 절제되지 않은 지나친 정욕으로 인한 부도덕한 성행위를 가리키며, '정욕'은 사악한 욕망들이 내적으로 감추어진 상태를 말한다.
* 출 34: 15-16 - 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찌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16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 겔 6: 9 -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 마 12: 39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 '정욕'은 '음란'으로 향하게 된다(2절).
* 벧전 2: 11 -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연락)
본문은 '술'과 관계된 죄악이다. '술 취함'(오이노플뤼기아이스)는 '포도주'라는 뜻의 '오이노스'와 '솟아 오르다'라는 뜻의 '플뤼오'의 합성어로서 술에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방탕'은 술 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쏘다니며 난동을 부리는 것을 의미하며 '연락'은 '큰 술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 술에 만취 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성을 상실하고 쉽게 죄를 범하게 된다.
* 삼하 6: 20 -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 눅 21: 34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갈 5: 21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3)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무법한'(아데미토이스)는 부정 접두어 '아'와 '허락하다'라는 뜻의 '데미토스'가 합성된 말로서 자연과 양심의 법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우상 숭배를 가리킨다. 이러한 우상 숭배는 음주와 음란이 섞인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 왕상 21: 26 -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 겔 7: 20 -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만들었은즉 내가 그것을 그들에게 오물이 되게 하여
* 롬 2: 22 -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그 결과 죄를 범할 뿐만 아니라 창조주며 구속 주이신 하나님을 기억치 못하게 되고 그분을 떠나 허탄한 우상에 빠져버리게 된다.
벧전 4: 4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 -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
성도가 세상 친구들과 같이 극한 방탕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를 이상히 여기며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친구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1] 이러므로 그들이(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이러므로'(엔 호)는 본서에서 다섯 번 나타나며(1: 6; 2: 12; 3: 16, 19) '이러한 생활 안에 있으므로'를 의미한다. 이것은 한때 이방인과 같은 생활을 하였지만 이제 그리스도로 인하여 변화된 삶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상히 여겨'(크세니존타이)는 '이방인'을 의미하는 '크세노스'에서 유래된 말로 '낯선 사람처럼 보이다'라는 의미이다.
* 행 10: 6, 18 - ⑥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⑱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 행 17: 20 -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이방인들은 과거에 자신들과 같은 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며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Bigg).
이러한 모욕과 비방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2] 너희가 그들과(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본문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비방하는 이유이다. '극한'(아소티아스)은 자기 자신을 무모하게 버려두는 것을 의미한다.
* 눅 15: 13 -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그러므로 '극한 방탕'은 자신을 절제하지 않으며 방종한 생활에 버려둠으로 도저히 구원받지 못할 생활을 말한다.
* 엡 5: 18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 딛 1: 6 -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이방인들은 과거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아 전혀 다른 새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자신들처럼 살지 않는다고 비방한다.
벧전 4: 5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 -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
주께서는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시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4: 1-2에서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권면하였다.
의인들과 악인들은 마지막 날에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5: 29에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가르치셨다.
사도들은 사도행전 24: 15에서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고 입증하였다. 마지막 날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들의 죄들을 다 직접 고백하게 될 것이다.
1] 그들이(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죽은 자 심판하기를)
본래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던 심판의 권세를 그리스도께 주셨다.
* 요 5: 22, 27 -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 행 17: 31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 롬 2: 16 -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생활에 대해서 마땅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 자와 죽은 자'는 그 당시에 살아 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자들을 말한다.
* 살전 4: 15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여기서 '죽은 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와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자들도 포함된다.
2] 예비하신 이(자)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직고하리라).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는 '마땅히 심판하시는 자'를 표현한 것으로 심판의 필연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벧전 4: 6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
사람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장차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현재 죽은 자들에게도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복음이 전파되었다. 비록 그들이 죽었지만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 영이 영생의 생명이므로 살아 있다.
육체로는 사람들이 받는 것처럼 심판을 받아 죽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1]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본 절에 '이를 위하여'라 함은 그리스도께서 산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심을 가리킨다(Selwyn).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시기 위해서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죽은 자'에 대해서 혹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나(Augustine, Frasmus, Luther) 이 견해는 문맥상 타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앞 절에서 육체적으로 죽은 자에 대해 이미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Stibbs).
따라서 본 절의 '죽은 자'는 살아있을 동안에 복음을 듣고 회개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하기 전에 죽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Dalton, Kelly, Moffat, Selwyn, Cranfield).
여기서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 곧 불신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이유는 이렇다. 비록 이전에 그들이 성도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핍박한 죄로 그들의 육신은 심판을 받을지라도 그들의 영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2]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육체로'와 '영으로'를, '심판을 받으나'와 '살게 하려 함이니라'로 대조시켜서 본 절이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목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심판을 받으나'(크리도시)는 부정 과거로 육체로는 세상에서 이미 심판을 당하였음을 시사한다. 반면에 '살게 하려 함이니라'(조시)는 현재형으로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아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였을지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영으로는 영원히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복음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다.
* 요일 3: 14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할 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복음이 제공하는 생명력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 : 이한규 목사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본문 2절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1. 고난을 축복으로 만드는 삶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왜 베드로는 주님처럼 고난을 받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까? 고난을 통해 죄를 끊고, 고난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남을 위로할 때 제일 많이 쓰는 말이 “Keep going(계속 가라)!”란 말입니다. 마음속에 목표를 그리며 꾸준히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면 길은 열립니다. 때로 무엇인가를 잃어도 여전히 잃은 것보다는 남은 것이 더 많습니다. 우표는 목표물에 꼭 달라붙어서 목표물을 목표지점에 기어이 도착하게 만듭니다. 그처럼 고난이 있어도 비전과 사명을 꼭 붙잡고 나가면 반드시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2. 이방인의 뜻을 버리는 삶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 구절을 보면 베드로는‘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면 이방인의 뜻인 욕심과 쾌락주의와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이방인의 뜻대로 살면 인생의 결말이 비참하게 됩니다.
성공을 원하면 군중심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바른 소원을 가지고, 그 소원을 마음 판에 계속 새기고, 그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성공을 막는 제일 대적은 내 안에 있는 죄와 욕심입니다. 그처럼 죄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면 하나님은 진짜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우리가 욕심과 쾌락주의와 우상숭배를 버리고 성결하게 살면 사람들이 칭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비방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타락한 삶이 더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요새 인터넷을 보면 기독교를 비방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내용도 있지만 이유 없는 감정적인 비방도 많습니다.
그런 이유 없는 비방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잘못했을 때 비방을 받으면 회개하고, 잘못이 없을 때 비방을 받으면 성도에게 들려진 가장 소중한 무기인 기도를 활용하면 됩니다.
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토록 기도를 중시했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고 기도는 헛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요새 사람들이 기도를 잘 안합니까? 기도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한 대로 됩니다. 욕심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넘치도록 응답해주십니다.
4. 복음을 전파하는 삶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은 믿지 않고 죽은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파하면 그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죽은 자들’이란 이미 ‘복음을 영접하고 죽은 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이 육체로는 죽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우쳐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전도와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으면 천국에서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제일 사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된 사실이 정말로 믿어지고 정말로 감사하면 그 은혜를 열심히 전해야 정상입니다.
< 문제는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
지금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마음을 다시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새롭게 각오하십시오. 환경이 어렵고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문제와 장애물이 있어도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앞세워 나가면 우리 앞에 놓인 장애와 문제를 극복하고 어느 누구보다 감동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날,제임스 크레프트란 식품회사 창업주가 처음에 65달러의 자본을 가지고 치즈장사를 했다가 65달러를 다 날리고 페디라는 말을 타고 시카고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말에게 물었습니다. “페디! 이제 끝났어! 도대체 문제가 뭘까?” 그때 마음에 신비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 음성을 듣고 그 다음부터 하나님 중심적인 경영을 통해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문제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진짜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입니다. 죽어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노래하며 죽으면 그 삶은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실패도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고, 곧 진짜 성공도 주어집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나머지 생애를 더욱 멋지게 살아가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죄에 대해 죽은 줄 알고 죄를 멀리하며 더 이상 죄를 범치 말아야 한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3: 9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죄를 [계속]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증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삶이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고 우리의 남은 날들을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두려워해야 한다.